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53화 (15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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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4번 타자

강호와 손 감독이 사직 구장에서 손을 맞잡은 순간, 다른 장소에서는 무거운 분위기의 마라톤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장소는 자이언츠 구단 본부 회의실로 옮겨진다.

"손성조 감독이 요청한 상동 시설 증축은 어떻게 됐어? 시행 처는 선정한 거야?"

회의석상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지정만 사장이었다.

지 사장은 모든 임원들과 간부 사원들을 불러 모아 손 감독을 총 사령탑으로 정식계약하며 프런트가 챙겨야 할 사소한 내용까지 정식회의 안건으로 회의를 진행 중에 있었다.

"네, 다섯 개 업체가 추려졌습니다. FB건설, 학민시공, 변경건설, 대원시공, 삼호시공 5개 업체입니다."

물음에 답하는 실무부서 부서장의 대답에 지정만 사장은 미간을 좁힌다.

"학민시공하고 변경건설은 빼. 거긴 너무 날림으로 일을 한단 말이야. 시공비가 올라가더라도 제대로 일을 하는 업체를 선정해야지. 잘 알아둬. 상동 시설공사가 시작되면 내가 시공감사와 일주일에 두 번씩 시찰을 갈 테니까 중간에서 시공비 십 원이라도 세면, 당신은 모가지야. 알아듣겠어?"

서슬 퍼런 지 사장의 말에 해당 부서 부서장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수차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습니다."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은 지 사장은 다른 사람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지 사장의 시선을 받게 된 최치열 운영 본부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지시를 기다린다.

"내일 기자회견은 어떻게 됐어? 이 단장이 잘 준비하고 있는 거야? 장소나 시간이나 기자들 질문에 대한 답변내용이나 심지어 기자들에게 대접할 생수 한 병도 허투로 준비해선 안 돼. 이 단장도 내가 써준 내용대로 토씨하나 틀리지 말라 그래. 괜히 애드립쳐서 이상한 기사 나가게 하지 말고."

"네. 내일 기자회견은 이 단장과 함께 빈틈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회견 당사자인 손 감독이 빠지는 자리니까 최 본부장 당신하고, 이 단장이 그 빈자리를 모두 채워줘야 돼. 실수 없도록 해."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본부장의 대답 후에도 지 사장은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며, 회의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목을 조이는 넥타이가 답답했는지 한손으로 넥타이를 풀어 보인다.

"모두들 넥타이 풀고 와이셔츠 걷어 올려! 당장 오늘부터 넥타이 메지 말도록 해. 우리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은 책상머리 맡에만 앉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야. 필요하다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선수들과 함께 훈련장을 구를 각오도 필요한 거야. 더 이상 자이언츠 프런트가 CCTV로 선수단을 감시하면서 반목을 조장하고, 지시하고, 간섭하고, 군림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돼!"

지 사장이 목소리를 높여감에 따라 그의 지시대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넥타이를 풀고, 외투를 벗어던진다.

그리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이어지는 지 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선수단에 관한 일은 손성조 감독에게 모두 맡길 거야. 그 누구든지 선수단의 일에 간섭하거나 참견할 생각 마! 선수단의 운영은 지금부터 감독이 모두 책임지고, 우리는 선수단을 지원하는 프런트의 책무만 충실하면 돼. 프런트는 지시하고, 간섭하는 자리가 아니라 뒤에서 선수단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자리란 말이야! 지금 내가 한 말을 반드시 머리에 새기도록 해."

지정만 사장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간부 사원들은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구단의 최고 수장인 지 사장 본인 스스로가 권한보다 책임을 강조하며, 권위의식을 내려 놓을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풀어헤친 넥타이가 그것을 상징하는 부분일 것이다.

"곧 무더워질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은 피땀을 흘리고 있을 때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배나 두들길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아. 몸 편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사직서를 내도록 해. 자정이 지나기 전에 사표 수리 해줄 테니까."

지 사장이 발산하고 있는 묘한 열정에 그 어떤 사람도 부정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신 지 사장의 새로운 방침에 따라 자신이 선수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동안 편하기는 했지. 선수들이 땀 흘릴 때 단장이나 전 사장은 에어컨 바람 맞으며 탁상공론이나 했었으니까. 어쩌면 지정만 사장처럼 개혁적인 사람이 우리 구단에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어.’

일부 임원들은 지정만 사장의 새로운 방침들을 반기는 기색이었다.

사실 누구도 자신이 속한 구단의 팀 성적이 바닥을 치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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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사장의 업무 개혁으로 팀 성적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바빠진다고 해도 개인의 시간을 내어 놓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만약, 업무 개혁을 했는데도 팀 성적이 하위권으로 내려앉게 되면 지정만 사장의 임기도 위태롭게 될 거야. 개혁을 실패했을 때의 부작용은 그만큼 심각한 거니까.'

일부 임원들은 지 사장의 개혁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자신들의 안위를 보전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 알량한 자리 보존하려는 생각들, 내가 근본부터 뜯어 고쳐 놓겠어. 각오들 하는 게 좋을 거야. 올해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테니까!’

지 사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모든 이들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피고 있었다.

누가 자신의 편이 되어줄지, 아니면 적이 될지를 매와 같은 눈으로 식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어. 올해 결과를 내지 않으면 모험에 나선 내 자리가 위태로워지겠지. 손성조 감독, 모든 것은 당신 손에 달린 겁니다!’

지 사장은 그 날 손 감독이 내비친 열정을 믿고, 자신 역시 모든 것을 내던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다음날이 되었을 때 자이언츠 구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중대발표에 나선다.

“오늘 날짜인 6월 20일 목요일부터 우리 자이언츠 구단은 자진 사퇴한 한동현 감독을 대신해서 손성조 2군 감독을 1군 감독으로 정식 임명합니다.”

자이언츠 구단 단장인 이상현 단장의 선언으로 손성조 감독이 자이언츠의 총 사령탑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상현 단장은 지 사장이 직접 써준 답변서를 든 채로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불만을 품게 된다.

‘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런 회견은 감독이 하는 거 아니었나? 손 감독은 대체 뭘 하고 있기에 단장인 내가 이런 회견까지 나서야 하는 거야?’

이 단장이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시각, 그가 궁금해 하고 있는 당사자는 일찍부터 구장에 나와 1, 2군 선수명단을 모두 점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손 감독의 곁에는 2군 작전 코치였던 김대주와 배터리 코치인 강전호, 3군 투수코치인 조민욱 코치가 함께 하고 있었다.

“훈이 하고, 제인이는 수술시키기로 하지. 선수 본인을 위해서도, 팀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게 낫겠어. 더 이상 부상을 안은 채로 라인업에 올리기에는 득보다 실이 많아.”

손 감독의 말에 곁에 있던 강전호 배터리 코치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는 오늘부터 총 사령탑이 된 손 감독을 따라 1군 배터리 코치로 임명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김대주 2군 작전코치 역시 1군 작전코치로, 조민욱 3군 투수코치는 1군 불펜코치로 보직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기존에 있던 1군의 이동수 배터리코치, 김일군 작전코치, 이용진 불펜코치는 2군으로 보직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손 감독이 1군 사령탑이 되면서 비어버린 2군 감독 자리에는 3군 총괄코치였던 양용민 총괄이 내정 된 상태.

5월 달부터 소문으로만 떠돌던 코칭스태프의 인사이동이 손성조 감독이 1군으로 움직이면서 현실화 된 것이다.

“그럼 대체자로는 오진택과 인태로 가는 겁니까?”

강전호 코치가 되물어 보자 손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애초 계획대로 3루에는 진택이와 임정을 경쟁시키고, 2루는 인태로 대체할거야. 어산이나 호섭이 같은 기존 내야 백업들은 잠재력을 기대하기에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 아직 젊은 임정과 인태를 키워내는 게 우리 코칭스태프들의 역할일 거야.”

손 감독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추가 결정을 입에 담는다.

“이번 기회에 택근이와 치성이도 시험해 봐야 할 거야. 세대교체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줘야 해. 우리의 선택이 틀린  게 아니라면 팀 성적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있어.”

손 감독의 말에 3명의 코치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신구조화를 이루는 세대교체와 팀 성적을 동시에 쟁취하는 것은 모든 코칭스태프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선수단 운용일 것이다.

손 감독이 추구하는 선수단 운용방식이 바로 그와 같았다.

“투수 조도 마찬가지야. 조 코치가 1군 투수들을 모두 점검해서 수술이나 재활이 필요한 투수들을 체크하도록 해. 선수 한, 두 명에게 의존한 경기 운영은 결국 팀의 수명을 깎아먹는 운영 방식인 거야. 수술이 필요한 선수는 수술하게 하고, 다른 대체 자원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어야 장기적인 팀 운영이 가능한 거야. 시즌은 길어. 부상이 있는 선수들을 방치한 채로 좋은 경기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일 뿐이야.”

손 감독은 자신과 함께 1군에 올라온 세 코치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밝히며, 빠르게 1군 엔트리를 재정비해 나간다.

그런데 그런 손 감독에게 정해지지 않은 타순 한 자리를 조민욱 코치가 물어온다.

이미 타순에 대한 사전 교감이 어느 정도 끝나 있는 두 코치와는 다르게 3군 투수코치로 있던 조 코치는 타순에 대한 교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감독님. 4번 자리에는 누구를 두실 겁니까? 스팅을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조민욱 코치의 물음에 손 감독은 문득 행동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무거운 표정을 풀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있었다.

“당연히 백강호지. 지금 우리 팀에서 강호보다 4번 자리에 적합한 타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 스팅은 5번 자리로 옮기고, 강호를 4번으로 기용한다!”

4번 자리를 묻는 조 코치의 물음에 답변하는 손 감독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었다.

손 감독은 비어있는 4번 타순에 자신이 직접 ‘백강호’라는 이름을 기입하며, 오늘의 선발 라인업을 완성한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자이언츠 덕 아웃에는 변경된 라인업이 내걸린다.

“어?! 뭐야? 내가 왜 3번 자리에, 그것도 지명타자로?”

가장 먼저 변경된 라인업을 확인한 것은 평소에 비해 출근이 빨랐던 문표였다.

문표는 라인업을 확인하자마자 기 코치와 함께 경기장에서 훈련에 전념하고 있던 강호를 향해 소리친다.

“강호 후배! 라인업 봤어?! 이리 와봐. 내가 3번인데?”

문표의 외침에 강호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 강호의 곁에는 기 코치가 함께하고 있었다.

강호와 기 코치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것을 확인한 문표가 동그랗게 뜬 눈을 강호에게로 옮기며 재차 입을 연다.

“그리고 강호 후배가 4번이야!”

문표의 외침에 강호의 시선이 곧장 선발 명단으로 향한다.

그리고 강호의 시선에도 4번 타순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자신의 이름이 보이고 있었다.

유격수 수비 위치에 타순은 4번 타자.

오늘 강호가 선발로 나설 자리는 손 감독이 약속했던 대로 4번 자리인 것이다.

‘드디어! 내가 자이언츠 1군의 4번 타자가 됐구나.’

강호는 라인업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려는 듯이 선발 명단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문득 평소에 비해서 월등히 빠르게 뛰고 있는 맥박 소리가 귀에 까지 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형에게 미리 말할 걸 그랬나? 형이 오늘 경기를 직접 보면 좋을 텐데.’

강호는 덕 아웃에 걸려있는 벽걸이 시계를 확인하며 경기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아쉬워한다.

오늘 형은 김해시에서 있는 장기간 시공 일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에나 사직동으로 올 수 있다고 말했었다.

중요한 순간에 형제를 함께 두지 않는 야속한 운명을 탓해 본다.

‘아니, 그것보다 오늘 경기의 전략을 짜두는 게 좋아. 다름 아닌 4번 타자 자리야. 평소와 같은 전략으로 타석에 설 수는 없어. 상대 투수들의 견제도 더욱 심해질 거고. 내가 사소하게 여기는 부분까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강호는 약속을 지킨 손 감독의 라인업 변경으로 인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손 감독은 항상 자신에게 신뢰를 보여주었고, 이제는 그의 4번 타자로 타석에 서서 믿음에 대한 보답을 보여줄 때였다.

‘예전 같았으면 쫓기는 마음을 가졌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2달 동안이긴 하지만, 1군 무대의 경험이 나를 다른 선수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부담이 느껴지지도, 긴장이 되지도 않아.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야.’

강호는 4번 타자로 나서는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이날을 오랜 시간동안 염원했기 때문에 그저 흘러가는 경기로 보낼 생각은 없었다.

손 감독이 보여준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프리마켓에서 사두었던 비장의 아이템을 꺼내든다.

-아이템 내가 심판이다(30일)를 사용합니다.

-아이템 타석의 지배자(30일)를 사용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성능을 확인했던 두 개의 기간제 아이템을 사용함으로써 4번 타자로 나서는 강호의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이제 강호는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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