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49화 (14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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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방문, 그리고

와이번스와의 경기는 4대 3으로 자이언츠가 한 점차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자이언츠 선수단은 팀이 앞선 상황에서 오히려 경기를 쫓기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원인은 팀의 4번 타자 대결에서 자이언츠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소는 사직구장, 홈 팀인 자이언츠의 덕 아웃이었다.

"제인아, 손목 통증이 심해 보이는데. 오늘은 이만하고 쉬는 게 어때? 감독님께는 내가 말할 테니까."

트레이닝 코치인 윤영찬 코치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다시 손목 통증이 시작됐다는 제인으로 인해 윤 코치의 수심이 깊었다.

엑스레이나 CT촬영 상에 가벼운 염좌 증상만 있어서 경기에 참가하는 것은 가능할 거라 여겼었다.

경기를 치르면서도 회복이 될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제인의 손목 통증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파스나 조금 더 뿌려주십시오."

제인은 타격을 할 때마다 욱신거리는 손목 통증을 억지로 참아내며 남은 경기에 대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곧 철회되고 만다.

통증을 억지로 참아내며 타격하고 있는 제인의 최근 3경기 타율이 2할 대도 못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김 대행으로서는 교체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제인이는 팀의 4번 타자야. 경기 중에 교체해 버리면 대체할 수 있는 타자가 전무해. 지금으로서는 문표나 박철로 교체할 수밖에 없는데.'

김 대행은 오늘의 라인업을 후회하고 있었다.

제인의 손목 부상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장타력을 가진 외국인 타자, 스팅을 5번 배치했던 것이 실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인이 손목 통증을 호소한 것이 오늘 경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미처 라인업 수정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제인의 손목 통증은 며칠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지만, 제인 본인이 비밀로 하고 있던 터라 김 대행으로서는 오늘에서야 알게 된 상태였다.

'문표냐, 박철이냐? 결국 그게 문제로구나.'

김 대행은 남아있는 4개의 이닝동안 4번 타자 자리를 맡길 대체자를 고민하고 있었다.

게슴츠레하게 뜬 김 대행의 눈에 최근 라인업에서 빠졌음에도 벤치를 활보하고 다니는 문표와 조금은 침울한 얼굴의 박철이 보인다.

'철이는 요즘 타격 페이스가 떨어져서 4번 자리에 놓으면 부담감만 커질 거야. 차라리 아무 생각 없는 문표를 4번에 놓는 게...'

잠시 제인의 대체자로 문표를 고려하던 김 대행.

그의 시선에 타격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강호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문표의 모습이 보인다.

"강호 후배! 이번 타석에서는 시원하게 홈런 한 방 날려줘~ 저기 와이번스 선수들이 우리 깔보는 거 안 보여? 저기 봐. 보란 말이야. 특히 정의준 표정 봐. 아까 홈런 한 방 때리고 나서 노골적으로 비웃고 있잖아. 강호 후배가 아무리 홈런 경쟁에서 뒤진다고 해도 저렇게 비웃는 건 아니잖아. 홈런 안 때릴 거면 저 번지르한 얼굴에 타구 한 방 맞춰버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제가 정의준 선배 얼굴에 타구 맞출 실력 있으면 그 타격 능력으로 홈런을 치죠. 왜 타구로 사람을 맞춥니까? 저리 비켜 주세요. 대기 타석에 올라가게요."

"그래. 강호 후배! 그런 마인드 좋아. 타격으로 사람 맞출 바에 홈런을 때리라고. 와이번스 선수들 기고만장한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버려!"

문표는 대기 타석에 오르려는 강호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며 응원을 하는 건지, 부담을 주는 건지 모를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 문표의 행태에 검은색 고글 너머 김 대행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내가 저런 놈을 4번 타자로 올려야 해? 차라리 제인이한테 조금만 참고 버텨내라고 해볼까?'

그런 생각으로 제인이 앉은 벤치를 바라보는 김 대행. 여전히 파스로 손목을 도배하고 있는 제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결국 눈을 질끈 감게 된다.

"정 코치. 문표에게 대타 준비하라고 해!"

김 대행은 곁에 서있던 정호종 타격 코치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의 목소리에 정 코치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다.

"감독님. 설마 문표를 4번 자리에 대타로 올리시려고요?"

"별 수 없잖아. 손목이 안 좋은 제인이를 억지로 올려봐야 제인이 기록만 까먹고, 강호가 연결시켜준 기회만 날리는 거지. 그래도 인호나 박철이 보다는 문표의 컨디션이 월등하니까. 문표가 2군에서는 4할 대 타율도 때려낸 경력도 있고."

김 대행은 본인도 믿지 못하는 최문표 대타 카드를 꺼내며 정 코치를 납득시키기 위한 말을 한다.

사실은 김 대행 본인이 납득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도 문표 녀석은 손 감독님이 작년부터 공을 들인 녀석이니까. 득점권 타율도 나쁘지 않고. 손목이 안 좋은 제인이보다는 나을 수도 있어.'

김 대행은 속으로 문표에 대한 칭찬을 계속 되뇌어도 최문표라는 선수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지금도 곁에 앉은 백업 야수들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가관일 정도다.

그런 문표를 향해 김 대행의 지시를 받은 정호종 타격 코치가 다가선다.

"문표, 대타다. 준비해."

한창 후배들을 향해 음담패설을 내뱉던 문표는 등 뒤에서 자신을 붙드는 손길에 고개를 획하고 돌린다.

"대타요? 몇 번입니까? 설마?"

"4번. 오랜만의 기회니까 또 병살타로 까먹지 말고 잘 해내도록 해."

"4번이요?! 드디어 제 진가를 보여드릴 때가 왔네요. 병살타 염려는 접어두시고, 홈런 구경이나 하십시오. 이 최문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문표는 정 코치의 당부에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화답하며 자신의 배트를 집어든다.

"와하하, 후배님들 잘 보고 계쇼. 이 형님이 홈런 한 방으로 결승타를 때리고 올 테니까!"

벤치에 앉은 선수들은 문표의 호언장담에 웃음 짓고 있었다.

'문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인해 어느새 1군에서 개그를 담당하게 된 문표. 그를 바라보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눈빛에는 진지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기 타석에 있던 강호가 타석에 오르고, 이어서 대기 타석에 오르게 된 문표의 눈빛은 1%의 장난기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손 감독님이 1군으로 오시기 전의 경기를 연패로 안겨드릴 수는 없는 일이야. 오늘 홈런을 때린 정의준이나 와이번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겨야 해. 손 감독님을 위해서!'

문표는 겉으로 드러난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완전히 지운 채 강호와 와이번스 투수의 대결을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한다.

그러면서 상대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 타이밍에 배트 스피드를 맞추는 것을 잊지 않는다.

따악.

그 사이 오늘 경기에서 무안타로 침묵하고 있던 강호가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를 때려내고 있었다.

강호의 타구로 4대 3, 불안한 리드를 가져가던 자이언츠에게 1사 2루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팀의 4번 타자인 제인을 대신해서 대타로 오르게 된 문표에게 주어진다.

문표를 4번 타순의 대타로 올린 김 대행은 강호가 때린 2루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다.

"그래도 다행이네. 강호가 2루까지 진루했으니까 문표가 땅볼을 때려도 병살은 안 나오겠어."

김 대행의 말에 곁에 있던 정 코치가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정 코치의 말은 타격 코치가 한 말치고는 불손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말을 내뱉은 직후, 스스로 잠시 경직되었을 정도였다.

"모르는 겁니다. 문표 녀석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병살타를 때릴 수도 있어요. 왜 종종 2루 주자를 아웃시키는 병살타도 나오지 않습니까?"

정 코치는 김 대행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후, 갑자기 찾아오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팀 타자들을 변호해 줘야하는 타격 코치가 오히려 팀 타자인 문표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 코치는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말에 헛기침을 삼키며 김 대행에게서 한 발짝 물러선다.

'당분간 문표 녀석하고 말을 섞지 말아야겠어. 문표하고 친하게 지내다보니까 녀석의 너스레가 나한테까지 전염돼 버렸잖아. 젠장.'

정 코치는 속으로 문표를 탓하면서 경기의 내용에 집중한다.

이럴 때 차라리 문표가 적시타를 때려 타점이라도 올려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자신이 문표의 병살타 가능성을 얘기한 상태에서 문표가 진짜로 병살타라도 때려낸다면 그것보다 민망한 상황도 없을 것 같았다.

'문표! 한 방 날려 버려!'

정 코치는 속으로 문표를 응원하며 의외로 끈질기게 승부하는 문표의 타석을 지켜본다.

그런 정 코치의 바람이 통한 것인지 문표는 와이번스 투수의 7구째를 통타하는 타구를 외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따악!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장타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타격음에 자이언츠 덕 아웃의 모든 이들이 외야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 중 가장 앞에 나서 문표의 타구 방향을 살피는 사람은 타격 코치인 정호종이었다.

"넘어갔어! 홈런이야!"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정 코치의 말대로 문표가 외야로 날린 타구는 사직 구장의 좌측 담장을 살짝 넘기는 홈런이었다.

문표는 먼저 홈을 밟고 기다리고 있던 강호와 힘찬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포효하고 있었다.

"이것 봐! 이 형님이 한 방 해줄 거라고 했지?!"

강호는 문표의 투런 포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도 되묻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언제 말입니까? 그런 말 들은 기억 없는데요."

"내가 한 달 전에 말했었어. 그냥 넘어가자. 기분도 좋은데."

강호의 지적에도 싱글벙글 미소 짓는 문표는 강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덕 아웃으로 들어선다.

그런 문표를 향해 선, 후배 선수들의 축하를 빙자한 손바닥 세례가 이어지고, 문표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동료 선수들의 손바닥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음~ 이 맛이지. 홈런치고 두드려 맞는 이 맛에 홈런 때리는 거지. 좋아! 더 세게 좀 때려봐."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문표로 인해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다가서던 다른 선수들이 제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아, 못 때리겠다. 저런 변태 같은 표정을 짓는데 어떻게 때려? 그냥 안 때리고 말지.'

아직 문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지 못한 나머지 동료들은 결국 펼쳤던 손바닥을 고이 접는다.

문표가 때려낸 투런 포로 자이언츠는 4대 3까지 추격했던 와이번스를 6대 3으로 따돌릴 수 있었다.

와이번스는 9회 초 공격 때, 정의준의 솔로포가 터지며 추격의 의지를 내보였지만, 마무리 투수 손명학이 나머지 아웃카운트를 어렵사리 잡아내며 7대 4로 시리즈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게 된다.

이날 경기에서 문표가 때린 투런포가 결승포로 기록되며 승리 인터뷰를 하게 되는 영예를 차지하게 된다.

"문표, 인터뷰 때 너무 까불지 말고 점잖게 해. 쓸데없는 말 하면 안 돼."

"제가 무슨 어린앱니까? 걱정 마십시오."

문표는 코칭스태프의 걱정 속에 의외로 진지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잘 끝내는 모습이다.

평소 그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잘 알고 있는 코칭스태프로서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와이번스와의 시리즈 맞대결 첫 경기를 기분 좋은 승리로 결정지은 자이언츠.

강호는 홈런을 때린 기념으로 밥을 사준다는 문표의 말을 기분 좋게 거절하고는 얼른 자신의 상동 독신자 숙소로 돌아간다.

경기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난 까닭에 강호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강호는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샤워를 시작한다.

경기가 끝난 후에 경기장의 샤워 실에서도 샤워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프리마켓 방문 전에는 깨끗하게 목욕재개를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강호는 한 달마다 있는 월례 행사처럼 샤워를 마친 후, 단정한 옷을 걸쳐 입은 채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은 언제나처럼 흘러간다.

[2019프로야구 프리마켓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 달 만에 듣게 되는 익숙한 목소리 속에 강호의 의식은 프리마켓 매장 안으로 옮겨진다.

한 편 같은 시각, 함평에 있던 손 감독을 만나고 돌아가는 지 사장은 차 안에 앉은 채 조금 전에 있었던 대화를 되뇌어보고 있었다.

손 감독은 대답을 촉구하는 지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말입니다. 총사령탑 같은 자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침묵 끝에 손 감독이 꺼낸 말에 지 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지금 손 감독의 말은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 사장이 설득의 말을 꺼내려할 무렵, 이어진 손 감독의 말에 행동을 멈추게 된다.

"하지만 이 나이에 내가 단 하나 욕심내는 게 있다면 그건 팀의 우승일 겁니다. 그동안 자이언츠는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사이의 불협화음, 그리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갈등 속에 오랜 시간을 우승권과는 멀어진 곳에서 세월을 흘려보냈었습니다. 나는 그런 모습들을 2군 감독 자리에서 지켜보며, 아직은 자이언츠가 우승할 때가 되지 않았다 여기며 지금의 자리에 만족했었습니다."

손 감독은 그렇게 오랜 시간 혼자 간직하고 있던 속내를 밝히고 있었다.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2군에서 발굴하고 키워낸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올 시즌을 보낼 생각이었어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손 감독의 말은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과거형으로 전제를 단다는 것은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잠자코 있던 지 사장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의중이 바뀌었다는 뜻입니까?"

지 사장의 물음에도 손 감독은 여전히 할 말이 남았던 것인지 즉답 대신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만약 내가 1군 감독 자리에 없어도 자이언츠가 우승할 수 있었다면 나는 남은 야구 인생을 그저 2군 감독으로 남으려 했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1군 감독 자리에 올라야 만이 자이언츠의 우승을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남은 말년의 삶을 걸고서라도 그 우승을 노려볼 생각입니다."

손 감독의 말에는 뜨거운 열정과도 같은 힘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말단 사원에서 CEO자리까지 오른 지정만 사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매력이 담겨 있었다.

손 감독의 이어질 말에 지정만 사장 역시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하겠습니다. 자이언츠의 감독 자리. 내가 올 시즌 자이언츠를 한국 시리즈 무대에 올려놓을 겁니다!"

손 감독의 말이 끝을 맺고 있었다.

큰 욕심 없이 선수들을 키워내는 낙으로 살아오던 자이언츠의 원로, 손성조 감독.

오랜 시간을 2군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자이언츠의 알려지지 않은 거인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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