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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방문, 그리고
6월 18일 아침이 밝아 있었다.
강호는 휴식 일을 사직동 형의 집에서 보낸 후, 화요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일반인들의 한 주와는 다르게 프로 야구 선수들의 한 주는 화요일부터 시작이 된다.
일주일의 기간 중, 유일한 휴식 일이 월요일이어서 한 주의 첫 경기가 화요일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후우."
강호는 집을 나서기 전, 길게 날숨을 내쉬어 본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긴장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날숨을 내쉰다.
'오늘 경기가 끝난 후에 자정이 되면 프리마켓이 다시 열리게 돼.'
강호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프리마켓의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지난 네 번째 방문을 통해 강호는 컨택 스탯과 주력 스탯을 90대까지 올려놓을 수가 있었다.
그것에 고무되어 최근 한 달 동안은 하루도 쉰 적 없이 개인훈련과 체력단련에 몰두한 강호. 어느새 97kg이었던 체중이 99kg까지 늘어 있는 상태다.
남들 같았으면 고도 비만을 의심할 수 있는 체중이지만, 신장이 187cm까지 자란 강호의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근육을 직접 보게 된다면 비만이라는 의심은 지우게 된다.
트레이닝복을 뚫고 나올 듯이 가득 찬 강호의 근육은 깡말랐던 과거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단기적으로 이렇게 신체를 단련시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프리마켓 시스템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매 번 프리마켓 방문 당일 날은 가슴을 뛰게 하는 기대감에 부풀고는 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강호가 기대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번 방문 때는 파워 스탯을 90으로 만들 수 있을까?'
스킬 구입과 포인트 획득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강호를 가장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파워 스탯에 관한 부분이었다.
한동안 6월 달을 뜨겁게 달구었던 홈런 타이틀 경쟁에서 강호가 한 발짝 물러서게 된 이유는 파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재 파워 스탯은 81.1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들과 경쟁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해 보인다.
일회용 '홈런'아이템도 모두 사용한 마당에 홈런을 의식한 스윙을 하다보니 외야 뜬공 비율이 높아졌고, 그 결과 4할 7푼을 찍었던 타율이 4할 3푼 1리로 내려앉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강호는 과감하게 자기 스윙을 포기하고, 컨택 위주의 스윙으로 전환한 상태.
'80대에 머물고 있는 파워 수치로는 외야로 향하는 모든 타구를 홈런이나 장타로 연결시키기에는 부족했어. 외야로 보낸 타구의 60%이상이 외야 뜬공으로 잡혀버렸으니까.'
강호는 스스로의 기록을 매일같이 체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외야로 날린 타구가 홈런이 되기에는 부족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파워 스탯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게 된다.
강호는 다시 한 번 상태창을 열어 스스로의 스탯들을 확인해 본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90
파 워:81.1
선구안:71.1
주 력:90.5
수 비:83.4
송 구:70.5
멘 탈:87.7
한 달 간 계속 보아왔던 스탯들이 시야에 떠오르고, 그 중 두 가지 스탯을 이번 방문을 통해 90대로 올려놓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진다.
'파워와 멘탈, 이 두개의 스탯은 이번 기회에 90대로 올려두는 게 좋아. 문표 선배나 다른 선수들에게는 욕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홈런을 26개나 때린 마당에 홈런 타이틀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일 테니까.'
강호는 문득 문표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자신이 홈런 욕심이 없다고 말하자 진짜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마는 문표. 그리고 다른 동료 선수들까지.
이상하게도 동료 선수들은 강호가 하는 말을 믿어주는 모습이다.
평소 강호가 거짓말이나 연기와는 담을 쌓고 산 이유도 있었지만, 이제 강호의 말이 동료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배들이나 팀 동료들이 이렇게 나를 믿어주고 있는데, 실망을 시키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도 욕심이 나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너무도 욕심이 난다.
다른 모든 타이틀을 포기하더라도 홈런왕 타이틀을 손에 쥐고 싶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이상하리만치 홈런 경쟁이 심한 시즌이었다.
정의준이 30홈런을 때린 페이스가 다른 시즌에 비해 한 달 이상 앞선 기록이라는 지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사직에서 맞붙게 될 상대 팀이 바로 정의준이 속한 와이번스였다.
'이상한 일이 또 있어. 월 초에는 그렇게 홈런왕 경쟁에 대해 보도하던 기사들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어. 와이번스와의 맞대결이 벌어지면 정의준 선수와 나에 대한 기사가 나갈 것이라고 여겼는데.'
혹시나 싶은 마음에 조금 전에도 인터넷 야구 기사를 검색해본 강호였다.
그런데 6월 초까지 그렇게 떠들썩하게 홈런왕 경쟁을 보도하던 기사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이는 사실 지정만 사장이 지시한 일이었지만, 강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강호가 경쟁자들에 비해 한 걸음 뒤처지는 것 같은 분위기를 보이자 지정만 사장의 주도 하에 각 언론사들에 요청해 홈런왕 경쟁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약속받은 것이었다.
구단 소속 선수가 활약할 때는 대대적으로 보도를 내보내다가 기세가 한 풀 꺾이면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는 지정만 사장의 일 처리에 지금 야구계의 시선은 강호가 아닌 다른 곳으로 쏠려 있었다.
'요즘 들어서 손성조 감독님에 대한 기사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어. 혹시 구단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걸까?'
강호는 자신의 기사를 대신해서 종종 올라오고 있는 손성조 2군 감독에 대한 기사들을 떠올리며 현관문을 나선다.
그의 추측대로 지정만 사장은 최근 몇 주 간, 손성조 2군 감독의 업적이나 야구 인생을 실은 보도 기사들을 내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야구계의 전문가들은 자이언츠의 다음 감독이 손 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의도에 대해 모르는 자이언츠 팬들은 보도 자료에 실린 손 감독의 활약상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손 감독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았다.
"와아~그럼 백강호 선수를 손성조 2군 감독이 발굴한 거야? 그러고 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네. 한동현 감독 같은 사람이 선수 보는 눈이 있을 리가 없잖아."
"백강호 뿐만 아니라 권대우, 유성철, 박철, 사준식, 김영명, 표성태, 임정 같은 신인 급 선수도 전부 다 손성조 2군 감독 작품입니다. 더군다나 가진성 투수 같은 경우에는 원래 포수 출신이었는데 손 감독이 투수로 전향을 시켰다네요."
"이런 감독이 2군에 계시는데 왜 자이언츠는 그동안 초짜 감독들하고만 계약을 한 거야? 우리 자이언츠에도 연륜 있는 감독이 있었네! 나는 왜 몰랐지?"
"우리가 알고, 모르고 간에 프런트들은 알고 있었다는 소리잖아. 왜 손성조 감독을 1군 감독으로 올리지 않는 거야? 연륜 있는 감독이라서 프런트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까봐 임명을 안 하는 거야? 에잇, 망할놈의 자이언츠 프런트 놈들!"
구단에서 손 감독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를 실을수록 그와는 대조적으로 구단을 욕하는 비난의 말들이 늘어나는 분위기였다.
왜 손성조 감독을 진즉에 1군 사령탑으로 올리지 않았냐는 비난의 댓글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여론을 손성조 감독에게 우호적으로 작용시키기 위해 지정만 사장이 벌인 일이었지만, 일부 전문가들이나 구단 내부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구단에서 손 감독님을 1군 사령탑으로 올리기 위한 물밑 작전을 벌이고 있다면 잘 된 일이야. 그런데 손 감독님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시겠구나. 이렇게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일은 오랜만이실 테니까.'
강호는 혹시나 본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으로 손 감독이 당황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현관문을 나서며 크게 웃음 짓게 된다.
손 감독의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그런 상상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보고 싶습니다. 손성조 감독님.'
강호는 손 감독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속으로 되뇐다.
꽤 오랜 시간 보지 못한 손 감독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든다.
사직과 상동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1군과 2군 선수단의 일정은 완전히 달랐다.
2군 선수단 같은 경우에는 월요일에도 경기 일정이 종종 있어서 마음먹고 원정지를 찾아가지 않는 이상 손 감독의 얼굴을 만나기는 힘든 일이다.
팀이 중위권 경쟁에 돌입한 상태에서 훈련에 전념할 시간도 부족해진 까닭에 손 감독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가 2달이 되어가고 있다.
'언제고, 빠른 시일 안에 감독님을 찾아뵈러 가겠습니다.'
강호는 그렇게 속으로 약속하며, 출근을 위해 사직 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강호의 바람은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시간과 장소는 자이언츠 2군 선수단이 원정 경기를 치룬 후의 원정 숙소로 넘어간다.
"근처를 지나는 길에 이렇게 들르게 되었습니다. 2주 만이지요? 손 감독님."
이미 해가 져버린 시간에 손 감독을 방문한 손님은 지정만 사장이었다.
그는 깔끔한 수트를 차려입은 중년 신사의 모습으로 손 감독에게 악수를 건넨다.
지 사장의 오른손을 맞잡으며 손 감독은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근처를 지났다고요? 여기는 타이거즈 챌린져스 필드입니다. 주소지가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에요. 인근 주민들도 찾아오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이곳을 지나치다가 들렀다는 말씀입니까?"
손 감독은 추궁하는 말투로 지 사장에게 되묻고 있었다.
지나가다 들렀다고 하기에는 숙소의 위치가 너무 외진 곳이었다.
타지 출장 일정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외진 곳에 일정이 잡혔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손 감독은 지 사장이 자신에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확신하게 된다.
"하하, 손 감독님은 속일 수가 없네요. 맞습니다. 손 감독님을 만나려고 이곳으로 직행을 한 거예요. 다른 일정같은 건 없습니다."
지 사장은 괜한 말로 변명하기 보다는 사실대로 말하며 손 감독과의 재회를 나눈다.
그 후, 손 감독이 권한 자리에 앉은 지 사장은 손 감독에게 2군 선수단의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다 잠시 입을 다문다.
손 감독은 지 사장의 말에 일방적으로 대답만 하는 편이어서 지 사장이 입을 다물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게 된다.
"으음."
지 사장은 무거운 침음과 함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2군 선수단이 원정을 떠나있는 함평까지 찾아오기는 했는데 준비한 말을 꺼내자니 왠지 망설여진다.
손 감독의 묵직한 시선이 지 사장을 망설이게 하는지도 몰랐다.
'만약 손 감독이 또 다시 거절 한다면, 올해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거야.'
지정만 사장은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가 2군에 머물고 있는 손 감독을 1군에 올리기 위해 들인 공은 상당했다.
손 감독의 요구대로 외국인 선수들을 교체한 것은 물론이고, 언론의 관심을 이곳저곳으로 분산시키며 손 감독의 1군행에 대한 당위성을 조금씩 심어주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손성조 감독의 이름을 언론에 노출시킨 것은 지정만 사장 본인의 독단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자이언츠 팬들이 손성조 감독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며 1군행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혹시라도 있을 선수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오히려 프런트들에게 돌리기까지 하는 희생을 감수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당신, 손성조 감독 당신을 1군 사령탑으로 올리기 위한 일이었어. 이제 나에게 답을 줘야하지 않겠소이까?'
지정만 사장은 손 감독에게 건넬 말을 속으로 정리한 후 눈빛을 빛낸다.
2주 전에도 손 감독에게 정식 1군 감독 자리를 제안했었지만, 손 감독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었다.
지 사장은 거기에서 단념하지 않고, 손 감독이 바라는 때를 앞당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여겨질 무렵, 망설이지 않고 손 감독이 머물고 있는 함평을 찾은 것이다.
이제 손 감독에 대한 마지막 질문을 던질 차례.
지 사장은 늘 그렇듯이 가감 없는 말로 자신의 의사를 전한다.
"언제까지 2군에만 계실 겁니까? 손 감독께서 말한 조건은 모두 충족됐어요. 이제 사직으로 가셔야하지 않겠습니까? 비어있는 1군 감독 자격으로 말입니다."
지 사장은 손 감독을 향해 강한 어조로 총 사령탑 자리를 권유하고 나섰다.
조금은 강압적이기도 한 태도였다.
자존심 강한 지정만 사장이 손 감독에게 직접적으로 1군 감독 자리를 권한 것이 벌써 세 번째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마저 손 감독이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면 지 사장으로서는 차선책을 준비할 필요도 있었다.
지 사장의 강단 있는 목소리 후에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그동안 굳은 얼굴로만 지 사장을 대하던 손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 미소의 뜻을 읽을 수 없었던 지 사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손 감독의 말을 기다린다.
"나는 말입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손 감독의 목소리였지만, 지 사장은 그의 어조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낀다.
그리고 이어진 손 감독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