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46화 (14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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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자이언츠

6월 5일 수요일, 여느 때처럼 오전 일찍 경기장으로 출근해 기 코치와 함께 훈련에 전념하고 있던 강호는 오후 때가 되어 경기장을 찾은 새로운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오~ 덩치가 엄청난데? 야구 선수가 아니라 레슬링 선수 같네."

강호의 곁에 있던 기성태 코치가 용병 선수들과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감탄사를 뱉어낸다.

그가 감탄사를 토하며 시선을 두고 있는 외국인 선수는 타자인 스팅이었다.

도널드 스팅. 조금은 희한한 이름을 가진 흑인 선수는 191cm의 키에 120kg이라는 엄청난 하드웨어를 가진 파워 형 타자였다.

원래는 쿠바 태생이었지만,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어선을 타고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에서 선수 시절을 보내다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기량이 하락하여 마지막 선수 생활을 불태우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지었다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이력의 선수였다.

스팅은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워낙 체구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데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흑인이었던 까닭에 위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자메이카에서 연수 생활을 하며 많은 흑인들과 생활했던 기 코치였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쉽사리 다가가지도 못하는 스팅에게 반갑게 악수를 건넨다.

"올라(Hola). 엥깐따도 데 꼬노쎄를레(Encantado de conocerle). 비엔베니도

(bienvenido)."

기 코치는 제법 유창한 스페인 어로 스팅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가 건넨 말의 뜻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근처에서 기웃대던 선수들이 놀란 토끼 눈이 되었고, 그것은 곁에 있던 강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어설프게 아는 스페인 어가 아니라 제법 발음이 유창하게 들렸던 것이다.

스팅 역시도 그 점을 포착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스팅이 기 코치의 손을 맞잡으며 입을 열었을 때였다.

"올라(Hola). 셀 로 아그라데쓰꼬(Se lo agradezco)! 나 그런데 한국 말 찰 해. 한국어 공부 오래 해써."

유창한 한국말과 '환영해줘서 고맙다'는 의미의 에스파냐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스팅의 대답에 손을 맞잡고 있던 기 코치마저 놀라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웃겼던 것인지 스팅의 옆에 있던 몬테사 투수가 희죽 웃으면서 스팅에게 뭔가를 물어본다.

몬테사 역시 에스파냐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그 역시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코치님. 스페인어도 하시는 겁니까?"

강호는 몬테사와 스팅이 서로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에스파냐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기 코치에게 물어본다.

강호의 물음에 기 코치는 '조금은 해'라고 대꾸하며 두 외국인 선수에게 강호를 소개시켜 준다.

"캉호, 올라(Hola)! 얘기 마니 들어써. 캉호가 이 팀의 베스트라며? 잘 부탁할께."

두 사람 중 한국말이 가능한 스팅이 강호가 건넨 오른 손을 맞잡으며 포옹을 해온다.

악수를 건네려 했던 강호는 본의 아니게 스팅과 포옹하며 그의 엄청난 체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게 흑인 선수의 위용이라는 건가? 이 정도 체격이면 한 손으로 배트를 잡아도 안타는 칠 것 같은데? 왜 이런 하드웨어의 선수가 한국으로 온 거지? 메이저리그는 이런 하드웨어로도 생존이 힘든 곳인가?'

강호는 문득 스팅과의 만남을 통해 메이저리그 무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있었다.

아직 스팅의 타격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근육의 집합체로 보이는 엄청난 하드웨어를 가진 스팅이 경쟁에서 밀릴 정도로 메이저리그 무대의 무게감은 남다른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진다.

스팅에 이어서 양팔을 벌리며 다가오는 몬테사가 지척에 닿아있었던 것이다.

"올라(Hola). 엥깐따도 데 꼬노쎄를레(Encantado de conocerle)."

몬테사는 한국말을 못하는 것인지 자국어인 에스파냐 어로 인사를 건네 온다.

덕분에 기 코치는 통역을 자처하며 강호와 두 외국인 선수들을 빠르게 가깝게 만들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세 선수와 기 코치가 웃음 띤 얼굴로 대화를 이어나가자 뒤늦게 호기심이 생긴 선수들이 네 사람에게로 다가온다.

"강호, 흑형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나도 소개 좀 시켜줘."

가장 먼저 호기심을 드러내는 선수는 문표였다.

그는 네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다 천연덕스럽게 다가와 두 용병들과 인사를 나눈다.

강호에 이어 문표가 두 외국인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자 뒤이어 나머지 선수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환영 인사를 건넨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민철 대행은 피식 하고 웃음 지었다.

"어떻습니까? 두 외국인 선수들의 친화력이 좋은 편이지요? 사도스키 스카우터가 특별히 실력만큼이나 인성도 좋은 선수들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우리 팀에 금방 융화될 겁니다."

김민철 대행의 곁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그는 김석인 스카우트 총괄 산하 북미 지구 스카우팅을 담당하고 있는 한민철 선임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도스키 스카우터와 가장 밀접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친화력이나 인성이나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구단에서 좋은 선수들을 보내 줬으니까 잘 활용해 보겠습니다."

김민철 대행의 대답은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마치 이번 외국인 선수들의 영입에 본인은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민철 선임은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덕 아웃을 벗어난다.

한 선임이 자신에게 인사한 후 덕 아웃을 나서자 홀로 남게 된 김민철 대행은 그라운드 위에 뒤섞인 용병 선수들과 선수단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손 감독님과 사도스키 스카우터가 함께 고민하고 결정한 선수들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해줄까? 용병 선수들에 대한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을 거야. 그나저나 이제 새로운 용병 선수들이 합류했으니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어.'

김 대행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임감을 벗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김민철 대행 본인도 감독 자리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팀 사령탑 자리를 맡고 싶지는 않았다.

정식적인 감독 임명 절차와 계약을 거쳐서 총사령탑 자리에 앉고 싶은 내심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 자이언츠의 감독 자리에 앉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들어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강호나 대우, 성철이나 박철 같은 2군 선수들이 활약해주고 있는 이번 시즌에 어설픈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면 오히려 지도자 경력에 걸림돌이 되겠지.'

그것이 김 대행의 생각이었다.

언젠가 감독 자리에 앉을 욕심은 있었지만, 한동현 감독이 물러난 자리를 대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자리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올린 커리어를 걸고 모험을 수락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손 감독님, 당신의 생각은 분명 모험입니다. 지금 자이언츠와 감독 계약을 하는 건, 독이 든 성배를 쥐는 행동이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당신의 모험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자이언츠는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한 해로 2019년 시즌을 써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모든 자이언츠 팬들과 선수들의 염원일 테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김 대행은 언제고 손 감독과 술자리를 갖게 된다면 취기를 빌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며 홀로 남은 덕 아웃에서 걸음을 옮긴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이 합류했으니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엔트리에서 2명의 선수들을 2군으로 내려야만 했다.

2군에 내려가게 될 두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프로팀 감독은 결국 실력으로 선수들을 판단하는 자리였다.

김 대행은 두 용병 선수가 포함된 새로운 라인업 구상을 위해 바쁜 발걸음을 움직인다.

이 날 경기에 앞서 1군에 등록된 두 명의 선수, 내야수 임정과 이어산이 2군으로 내려가게 되고, 새로운 용병 선수들이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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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권 도약을 위한 자이언츠 선수단의 개편이 이루어질 무렵, 다른 팀 경기에서는 강호로 인해 각성한 각 팀의 4번 타자들이 맹타를 때려내고 있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 방향을 살피던 와이번스 4번 타자, 정의준이 1루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뗀다.

며칠 만에 때려낸 홈런포로 강호와 함께 공동 선두에 올랐던 홈런 타이틀을 다시금 단독 1위로 탈환하는 정의준.

의준의 홈런포를 덕 아웃에서 지켜보던 베어스의 4번 타자 김재성은 말없이 자신의 배트를 타올로 닦기 시작한다.

오늘 와이번스와의 맞대결에서 지명 타자이자 팀의 4번 타자로 이름을 올린 김재성은 정의준이 때려낸 홈런을 지켜보며 자신의 타석이 오기 전,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나라고 질 수 없지. 최근에 떨어진 타율을 올리느라 홈런 스윙을 자제했던 거야. 오늘 경기부터 진짜 내 스윙을 보여주겠어!'

재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문다.

시즌 초반 4할대로 시작했던 재성의 타율은 5월 들어 3할 언저리까지 떨어졌었다.

떨어진 타율을 높이기 위해 밀어치는 타격을 했던 재성의 타율은 현재 3할 6푼대. 반면에 장타력이 급감하면서 홈런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선수들보다 홈런 생산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였다.

'그 어처구니없는 평가를 오늘 경기부터는 쏙 들어가게 해주겠어.'

재성은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자신의 타석을 기다린다.

그리고 1사 1, 2루 상황에서 맞이한 득점권 찬스에 몇 주간 갈고 닦았던 타격 능력을 과감하게 뽐내고 있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와이번스 정의준의 투런포를 무위로 돌리는 김재성의 쓰리런이 터져 나온다.

그 모습에 잠실을 찾았던 베어스 홈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광하는 모습이다.

"와아아아! 역시 김재성이네!"

"이제 우리 김재성 선수가 홈런 2위지?"

베어스 홈 팬들은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김재성의 홈런에 연이어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조금 전의 쓰리런으로 23호 홈런을 기록하며 이제 강호와 함께 홈런 공동 2위로 올라서게 되는 재성이었다.

24개의 홈런으로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와이번스의 정의준, 그리고 이 날 경기에서 침묵하며 23개의 홈런으로 공동 2위가 된 강호.

다른 경기장에서도 슬러거들의 연이은 홈런 소식이 전해지며 타고투저가 극심한 이번 시즌의 홈런왕 경쟁이 점차 과열 양상을 띠게 될 것을 알려온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 기량 감소가 예상되던 베테랑 슬러거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면서 올 시즌 홈런왕 경쟁은 더욱 치열한 전개로 이어진다.

잠실에서 열린 와이번스와 베어스의 다음날 경기.

어제 나왔던 와이번스를 대표하는 정의준의 투런과 베어스를 대표하는 김재성의 쓰리런에 두 선수를 향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순간, 한동안 잠잠했던 와이번스 5번 타자 최현의 방망이가 불을 뿜고 있었다.

따악!

또 한 번의 묵직한 타격음으로 이날, 잠실에서 열린 경기의 네 번째 홈런포가 외야를 가로지른다.

"와아아!!"

이번에는 와이번스의 원정 팬들이 잠실구장을 환호성으로 뒤엎고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구장인 까닭에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평가되는 잠실구장이었다.

일부 메이저리그 구장보다 외야 펜스가 넓어서 장타율을 갖춘 타자들의 무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잠실구장에서 와이번스의 5번 타자인 최현은 세 타석을 연타석 홈런으로 기록하며 베어스에게 넘어갔던 승기를 자신의 팀으로 뺏어오고 있었다.

"최현 선수! 3연타석 홈런으로 시즌 8홈런 째를 기록합니다! 최근 두 경기에서 홈런 4개를 몰아치며 홈런 10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최현의 3연타석 홈런에 목소리를 높이는 중계석의 설명대로 지금의 홈런으로 최현은 홈런 10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구장인 마산과 수원, 고척에서 열린 다른 경기에서도 홈런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선수들이 홈런포를 추가하면서 타이틀 경쟁은 이제 점입가경 양상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와중에 5일과 6일, 시리즈 남은 경기 동안 오직 사직 구장에서만 홈런이 나오지 않으며, 강호의 8관왕 타이틀 획득은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트윈스를 사직에서 불러들여 치렀던 시리즈에서 두 번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게 된 자이언츠 선수단.

그들을 태운 원정 버스는 이제 수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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