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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자이언츠
회사원 정현수는 퇴근을 위해 지하철에 올라타며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활성화해 스포츠 기사를 검색해 본다.
바쁜 회사 일정으로 야구 경기를 볼 시간은 없었지만, 퇴근길에 자신이 응원하는 자이언츠의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자이언츠 팀 성적이 부진하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팀의 경기 내용을 몰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팀 성적이 10위까지 떨어진 이후로는 뜨거웠던 관심이 줄어들어 지금은 이렇게 퇴근 후에만 결과와 기사를 확인하는 정도다.
그런 정현수 씨의 관심과 이목을 또 다시 뜨겁게 만들어줄 인터넷 기사들이 네이버 스포츠 란에 떠오르고 있었다.
"엉?"
현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놀란 탄성을 내뱉고는 얼른 입을 가리게 된다.
수줍음을 타는 편이라서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에서는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 현수였다.
그런 현수가 순간 놀란 목소리를 낼 정도로 스포츠 란에는 놀라운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자이언츠 백강호, 홈런 23개로 공동 1위 등극!]
[백강호, 홈런까지 접수하며 타격 8관왕을 노리다]
[자이언츠 신성 백강호! 타격 8관왕 타이틀이 현실로?]
[백강호, 팀을 6위로 올려놓는 결정적인 한 방! 그리고 타격 8관왕 도전기]
스포츠 기사의 하부 카테고리인 야구 기사 란에 자이언츠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기사를 조금만 자세히 읽어본다면 그 기사들 모두가 강호에 대한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아~ 타격 8관왕이라고? 8개 부분 타이틀이면 타격 전 부문에서 1위라는 말이잖아!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한 거야?'
현수는 놀란 눈을 크게 뜨며 강호에 관한 모든 기사들을 죄다 읽어보고 있었다.
취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즌 권을 끊어서 야구 관람을 다닐 정도로 야구광이었던 현수는 오랜만에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강호의 맹활약에 환승역까지 지나치고, 기사에 몰두할 정도였다.
'언제 우리 팀이 6위까지 올라간 거야? 10등까지 떨어진 이후에 금방 올라갔네?'
현수는 강호의 결승타가 팀 순위를 6위까지 올려주는 타점으로 기록됐다는 사실에 더욱 흥분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환승역을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른 다음 역에서 내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린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현수의 시선은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단하네, 진짜! 20-20달성했다는 게 며칠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홈런 1위 경쟁까지 들어간 거야?'
현수는 기사들에 정신이 팔린 사이 벌써 도착한 지하철에 올라탄 후, 잠시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뗀다.
한 정거장만 이동하면 환승역으로 돌아가는 거라서 한눈을 팔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런 현수의 시선에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는 다른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야, 백강호 선수가 홈런왕 될 확률이 더 높은 거 아냐? 백강호는 조금 늦게 1군에 올라왔잖아. 그럼 경기 당 홈런 비율도 정의준보다 높은 거잖아?"
"당연하지. 아마 이번 달에 30-30도 달성할 걸? 페이스가 엄청 빠르잖아. 내가 볼 때 정의준이나 김재성보다 백강호가 한 수 위야."
전철을 타고 있는 시민들 중 많은 이들이 스포츠 란의 기사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잊혀 졌지만, 예전에는 '야구 도시, 구도 부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야구의 인기가 높은 곳이 바로 이곳, 부산 광역시였다.
팀 성적이 4위권 이상만 유지한다면 최대 2만 8천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사직 야구장이 만원으로 가득 찰 정도로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도시였다.
"우리, 내일 오랜만에 야구장에나 놀러갈까? 듣자하니까 야구공 하나 들고 가면 백강호 싸인도 받을 수 있다던데."
"진짜? 백강호 선수는 싸인 잘 해주나보네?"
"그렇다던데? sns나 인스타에 백강호 선수하고 찍은 사진이나 싸인볼 사진 같은 인증 샷도 많이 올라오더라고. 내일 야구장에 놀러가 보자."
"오케이. 콜! 그럼 내가 미리 예매해 놓고, 5시 30분에 사직에서 보자."
전철 안의 많은 시민들이 내일 야구장 방문 약속을 잡으며 환승역에 도착한 전철은 출입문을 개방한다.
현수는 환승역에 내리는 많은 인파에 섞여 걸음을 옮긴 후,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전철을 기다린다.
그런 현수의 손에는 다시 스마트 폰이 쥐어져 있었다.
한창 자이언츠와 강호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던 현수는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조만간 야구장에 가봐야겠다.'
현수는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야구장에 가볼 생각을 가져본다.
그것은 비단 현수 씨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올 시즌 들어서도 바닥을 치는 자이언츠의 성적으로 인해 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고 있던 많은 자이언츠 팬들이 야구에 대한 숨겨왔던 애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강호의 타이틀 경쟁으로 촉발된 일이었다.
그리고 부산 시민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은 그날 밤 모든 팀의 경기가 종료된 시간에 진행되는 야구 방송의 시청률이 평소보다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장소는 생중계로 진행되는 방송 스튜디오로 넘어간다.
"오늘 사직에서는 백강호 선수의 23호 홈런이 기록됐는데요. 백강호 선수는 이 홈런으로 정의준 선수와 함께 홈런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타격 부문 타이틀에서 최다안타, 타율, 타점, 득점, 홈런, 도루, 출루율, 장타율까지. 전 부분에서 1위에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아직 시즌이 6월을 지나고 있어서 변동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그래도 팀이 하위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나온 의미 있는 활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위원님들께서는 백강호 선수의 활약, 어떻게 보시나요?"
아나운서인 오현주가 강호의 타이틀 경쟁에 대해 거론하며 바통을 넘기자 먼저 대답한 사람은 이홍철 위원이었다.
그는 시즌 초반부터 계속되고 있는 강호의 활약에도 꽤나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5월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강호의 30-30가능성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는 했던 것이다.
방송을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은 이홍철 위원이 이번에는 강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가 궁금해지고 있었다.
방송을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의 시선 속에 이홍철 위원의 말이 시작된다.
"지금은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범 위원이나 박재헌 위원 이후에 이렇게 임팩트 있는 데뷔 시즌을 보내는 타자가 또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활약입니다. 먼저 백강호 선수의 기록부터 읽어드릴게요. 6월 4일 현재까지. 234타석 180타수 84안타, 타율 4할 6푼 7리. 출루율 5할 4푼 1리에 장타율 1.028입니다. OPS는 1.569나 됩니다. 2루타 18개, 3루타 7개, 홈런 23개, 도루 41개, 87타점, 73득점이에요. 지금 기록만 놓고 본다면 100안타, 100타점, 100득점도 가시권이거든요. 만약에 백강호 선수가 30-30을 달성하게 된다면 데뷔 시즌 30-30에 100안타, 100타점, 100득점 동시달성이 되는 겁니다. 덕분에 지금 백강호 선수의 WAR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앞선 1위를 달리고 있어요."
이 위원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말하며 강호의 기록들을 주욱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강호의 30-30달성 가능성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긍정을 표하는 것을 잊지 않는 모습이다.
아직까지 고집을 부리기에는 강호의 기록 달성 가능성이 지나칠 정도로 높아져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날짜까지 좋은 기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30-30달성은 어렵지 않게 가능해 보이고요. 타격 8관왕 가능성에 대해서 오현주 아나운서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어렵지 않나 합니다. 2010년에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대호 선수가 전대미문의 타격 7관왕 기록을 달성했었죠. 그런데 이대호 선수는 그 이전부터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중견 타자였고, 백강호 선수는 올해가 데뷔 시즌인 신인 타자거든요. 여름철 무더위가 시작되면 지금보다 페이스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도루나 득점 같은 타이틀 획득은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최다 안타나 홈런 같은 타격 타이틀들은 경쟁을 하고 있는 선수들도 만만치 않거든요. 아직은 타격 8관왕을 거론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어요."
앞서서 강호의 기록을 나열하며 긍정적인 발언을 했었던 이 위원은 결국 강호의 타격 8관왕 타이틀은 어렵다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마무리했다.
그의 발언에 관심 있게 방송을 보던 자이언츠 팬들은 '역시나'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이어질 조성한 위원의 말을 기다린다.
조성한 위원은 99년 자이언츠에 입단해서 자이언츠에서 은퇴식을 가졌던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출신 해설위원이었기 때문에 팀 후배인 강호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줄 것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실제로 조 위원은 해설 상황이나 인터뷰, 사석에서도 강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기로 유명했다.
"저는 조금 의견이 다릅니다. 이홍철 위원님께서 앞서 말씀하셨던 이대호 선수도 2010년 타격 7관왕을 달성했을 때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도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타이틀을 얻어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이대호 선수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조 위원은 먼저 이홍철 위원이 거론했던 이대호 선수에 대한 실제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후, 곧 강호에 대한 의견으로 돌아온다.
"자, 주제로 돌아와서 백강호 선수의 8관왕 달성 가능성, 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백강호 선수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타석수나 타수가 적은 편이거든요. 4월 9일에 1군에 합류하면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타석수에서 40타석 정도는 손해를 보고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타격 전 부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세 경기 동안에 때려낸 홈런 개수가 6개에요. 홈런 페이스가 올라왔다는 말이거든요. 이렇게 슬러거 유형의 타자들은 홈런 페이스가 올라왔을 때 몰아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이번 달에 백강호 선수가 30-30을 달성하면서 지금 획득한 타이틀을 조금 더 공고히 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조성한 위원의 말과 동시에 방송으로는 강호가 홈런을 때려내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강호의 홈런포가 그려지고 있는 방송 화면에 조 위원의 긍정적인 코멘터리가 달리게 되니 마치 자이언츠 팬들을 위한 방송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것은 자이언츠 구단 사장인 지정만 사장 이하, 프런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화면이었다.
지 사장은 프런트 임원들을 독촉하여 미리 만들어둔 강호에 대한 영상을 틀어줄 것을 각 방송사들에게 거래를 제안던 것이다.
중계나 방송 중간에 들어가는 CF협상에 관한 내용이나 그 밖에 방송사에 이득이 될 만한 것으로 회유하며 강호에 대한 분량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지 사장이 쏟은 노력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지 사장의 노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이언츠 팬들은 그저 '백강호 선수가 대단한 타자구나'라고 감탄하며 조성한 위원의 말에 빨려들고 있었다.
"한 가지 더 조심스레 의견을 더한다면 저는 백강호 선수의 4할 타율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프로야구 기록에서 백인천 감독님이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기록하신 4할 1푼 2리의 기록이 유일한 4할 기록으로 남아있는데요. 백인천 감독님이 세운 4할 타율은 298타석 동안 수립된 기록입니다. 그 때는 한 해 경기 수가 80경기였고, 규정 타석은 248타석 밖에 되질 않았어요. 시즌 경기가 144경기인 지금에 비해서 비교적 타이틀을 차지하기가 쉬웠다는 의미인데요. 백강호 선수가 지금까지 오른 타석수가 234타석이거든요. 이번 달 중에 큰 이변이나 부상이 없다면 300타석을 넘어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타율이 4할 6푼 7리거든요. 여름에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4할 타율 달성에 대한 가능성은 충분한 시점이에요."
조성한 위원은 과감하게도 강호의 4할 타율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프로야구 원년 이후로 없었던 4할 타율 가능성에 대한 제기.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기록한 1941년 기록 이후에는 없었던 대기록이었다.
조 위원은 그런 엄청난 기록을 강호가 세워줄 것이라는 기대 어린 발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곁에 있던 이 위원이 '하하하'웃으면서 곧장 반박의 말을 더한다.
"저는 그 의견에 대해서는 조금 부정적입니다. 조 위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백강호 선수는 슬러거 유형의 타자거든요. 물론 컨택 정확도가 높은 편이지만, 이런 슬러거 유형의 타자들은 고질적인 약점 하나를 가지고 있어요. 바로 스윙이 크다는 점인데요. 홈런을 많이 때리려면 당연히 자기 스윙을 가져가야 되고, 이게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큰 스윙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백강호 선수 역시도 최근 들어 스윙이 많이 커졌습니다. 이런 스윙이라면 40홈런 달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겠지만, 4할 대 타율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합니다."
이 위원의 대꾸에 중간에 낀 오현주 아나운서가 약간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조 위원의 말에 이은 이홍철 위원의 대응은 대본상에서는 나와 있지 않는 내용이었고, 이쯤에서 두 해설위원의 대립을 중재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네! 두 위원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자이언츠의 또 다른 이슈 사항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입국한 두 외국인 용병 선수들에 관한 내용인데요. 자이언츠 구단은 투수인 바르몬드 몬테사와 외야 수비와 1루수 수비가 가능한 도널드 스팅 선수를 새롭게 영입했는데요. 두 선수의 인터뷰 영상으로 함께 가보겠습니다!"
오현주 아나운서는 두 위원의 갑론을박으로 후끈 달아오른 스튜디오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다음 화면으로 영상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 속에 자이언츠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인터뷰 영상이 이어졌고, 그들은 바로 다음 날인 6월 5일 경기에서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