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41화 (14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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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감독의 안배

강호가 기성태 코치와 함께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개선된 주루 플레이 훈련에 돌입했을 무렵, 휴식 일을 맞아 짧은 휴식을 가지게 된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중 강호와 더불어 올 시즌 가장 뜨거운 타자 중에 한 명인 와이번스의 정의준은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며 여가를 즐기다가 함께 검색되는 관련 기사를 확인한 후 몸을 바로하고 있었다.

정의준은 와이번스의 4번 타자로서 트윈스에서 이적된 후 포텐셜이 폭발하여 지금은 와이번스에서 없어서는 안 될 타자가 되어 올 시즌 홈런 23개를 때려내며 홈런 1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이적 이후 슬럼프 없는 맹활약으로 와이번스 팬들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데뷔 후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있는 정의준이었다.

그런 그가 표정을 굳힌 것은 인터넷 기사에서 자신의 이름과 비교되고 있는 한 선수의 이름 때문이었다.

"백강호."

의준은 기사를 통해 비교되고 있는 강호의 이름을 홀로 되뇐다.

올 시즌 '백강호'라는 이름을 듣는 날이 많았다.

데뷔 경기 사이클링히트에 이어 3경기 연속 홈런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슈퍼 루키, 4월까지 5할 대의 타율을 유지하다가 지금까지 4할 대의 고타율로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야구계의 신성.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신경 쓰이는 경쟁자 중 한 명이었던 강호가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의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의준이 보고 있는 인터넷 기사로 인한 변화였다.

[백강호. 타격 7관왕을 넘어 8관왕을 넘보다! 본격화되는 홈런왕 경쟁]

자이언츠의 신성인 강호를 다룬 기사는 최근 들어 자주 접하는 기사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강호가 7개 부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의준이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이 문제였다.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홈런왕 경쟁에서 홈런 2위를 달리고 있는 강호의 시즌 8관왕 달성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그러면 내가 홈런 경쟁에서 밀릴 거라는 말이잖아?"

의준은 기분이 상한 어조로 혼자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현재까지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의준의 입장으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기사였다.

아직 1위 자리를 내준 것도 아닌데 2위인 강호의 홈런왕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기사에 결국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있었다.

"웃기는 기사네. 아직 시즌이 한참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 난리야. 기자가 무슨 점술가라도 되는 거야?"

그렇게 웃음 지으며 잊어보려 했지만, 기사에는 의준 자신의 사진보다 강호의 사진을 더 위에 내걸며 홈런왕 경쟁의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다.

"에라이, 씨! 내가 쉽게 밀리나보자. 이게 몇 년 만에 찾아온 전성기인데. 데뷔시즌 루키한테 밀려버리면 되겠어?!"

의준은 결국 운동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휴식 일에는 웬만한 일이 아니면 찾지 않았던 와이번스 행복드림구장이었다.

"의준 선배님?! 휴식 일에 구장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자신의 방문에 의아해하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배트 한 자루를 챙겨들고 나타난 의준은 곧장 타격 훈련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후 타격 훈련장에는 의준이 공을 때리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따앙, 따악!

분노의 타격음 속에 와이번스 4번 타자 정의준이 각성했을 무렵, 또 다른 경기장에서는 이미 몇 주 전부터 지옥 훈련에 돌입한 선수가 있었다.

장소는 인천에서 서울로 옮겨진다.

따앙, 따악!

정의준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파워가 느껴지는 타격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장소는 실내 타격 훈련장. 구슬땀을 흘리며 타격에 집중하고 있는 한 선수를 바라보는 많은 눈들이 있었다.

"재성이 왜 저러는 거야? 요즘 들어 독기가 바짝 올랐는데. 성적도 나쁘지 앉잖아. 3할 4푼에 홈런도 벌써 20개 넘게 때리고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이를 가는 거야?"

누군가의 물음에 곁에서 구경하고 있던 다른 선수가 대답했다.

"김재성 선배가 저번 시리즈 동안 시즌 홈런 3위로 밀려났지 않습니까? 자이언츠의 백강호가 이틀 동안 홈런 5개를 몰아치면서 말입니다."

후배의 대꾸에 질문을 던졌던 선배 선수가 혀를 차는 모습이다.

"아니, 아직까지 시즌이 많이 남았는데 누가 먼저 치고 나갈 수도 있고, 슬럼프가 올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거 가지고 저렇게 독기를 뿜어내고 그래? 재성이도 이제 야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올해로 32살이나 됐잖아. 이제는 고참 선수라고 불러도 될 정돈데. 아직도 욕심이 있나 보네?"

혀를 차며 말하는 선배 선수의 말에 검은 그림자가 뒤에서 살짝 다가와 대꾸한다.

"프로 선수가 욕심이 있어야지. 그럼 욕심도 없이 경기를 한단 말이야? 라인업에서 한 번 빠져봐야 욕심을 가질 거야?"

뒤에서 나타난 굵직한 목소리의 질타에 재성의 투지를 타박하고 있던 선배 선수가 어깨를 움찔하며 물러선다.

"아, 감독님?! 휴식일에 구장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선배 선수는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베어스 감독, 구형태의 지적에 움찔하는 모습이다.

그의 목소리는 꽤나 큰 것이어서 구슬땀을 흘리며 배팅 볼을 치고 있던 베어스의 4번 타자, 김재성이 배팅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감독님, 오셨습니까?"

재성은 팀의 총사령탑인 구형태 감독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구 감독은 강호가 베어스 2군 시절에 그의 방출을 결정했던 장본인이었다.

최근 들어 강호가 자이언츠 선수 신분으로 맹활약을 펼치자 그의 베어스 2군 시절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강호의 방출을 결정한 구형태 감독에 대한 재조명으로 연결된다.

베어스 팬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구형태 감독은 생각이 있는 거야? 대체 왜 백강호 같은 선수를 방출한 거야? 다른 선수랑 트레이드한 것도 아니고, 방출이라며. 이게 말이나 돼?"

"헐! 이적이 아니라 방출이었어? 나는 오늘에서야 알았네. 구형태 감독 선수 보는 안목이 그렇게도 없나?!"

"백강호가 우리 팀이었으면 백강호 4번두고, 민정현 3번에 김재성을 5번 타자로 쓰면 완벽한 클린업이잖아. 대체 왜 자이언츠에게 백강호를 거저 내준 거야. 미친 거 아냐?"

베어스 팬들은 강호를 방출했던 2군 감독 시절의 구형태 감독의 결정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래도 구 감독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베어스가 올 시즌 팀 성적 1위를 달리고 있어서 비난의 강도가 생각보다는 심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베어스 기사마다 달리는 백강호 방출에 대한 댓글이 구 감독의 입장으로서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그가 휴식 일에도 맹훈련 중인 팀의 4번 타자 김재성을 확인하러 온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재성아.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 훈련도 좋지만, 프로 선수에게는 휴식도 필요한 거야. 쉬엄쉬엄하도록 해라."

구 감독은 재성에게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훈련을 멈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4번 타자인 재성이 분발하는 모습이 선수단에 긍정적인 분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성에게 조언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배팅 투수가 투구할 때 자세가 오픈 스탠스로 바뀌던데. 의도한 거냐?"

구 감독의 질문에 재성은 다시 타격폼을 취하며 대답해 나간다.

"타격할 때 시야가 조금은 좁아지는 느낌을 받아서 오른발을 바깥쪽으로 조금씩 빼보고 있습니다. 언더 핸드 투수나 쓰리쿼터 유형의 공을 좀 더 일찍 보려고요."

재성이 직접 타격 자세를 취하며 대꾸한 말에 구 감독이 대견하다는 듯이 웃음지어 보인다.

"좋은 시도야. 하지만 다리 사이 폭과 발 각도가 변하면서 테이크 백 동작 때 배트가 요동치고 있어. 어깨에는 힘을 뺀 채로 손목을 조금 더 고정시켜 보도록 해. 발의 각도가 변하면,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것때문에 배트가 흔들리는 거야. 시야를 넓게 가져가려는 의도 자체는 좋은 시도니까 의식적으로 어깨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 보려는 노력도 필요한 거야."

구 감독은 재성의 타격 폼을 직접 지도해주며,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전달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두 사람의 연구와 노력이 계속되는 동안 다른 경쟁자들 역시 편히 쉬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홈런 1위의 정의준을 시작으로 홈런 3위인 베어스의 재성과 4위를 마크하고 있는 다이노스의 테인즈, 위즈의 바르테, 라이온즈의 최형수, 이글스의 사리오와 김태준, 타이거즈의 나지환과 이범화 등.

그 밖에도 홈런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모든 선수들이 쉼 없이 타격 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각 팀 홈런 타자들을 각성시켜버린 강호. 그는 다른 경쟁자들처럼 자신만의 훈련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강호가 하고 있는 훈련은 경쟁자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장타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하는 경쟁자들과는 다르게 강호는 기성태 코치와 함께 부상을 줄일 수 있는 유연한 주루 플레이와 30미터 이하 극 단거리에 대한 스퍼트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강호는 홈런 경쟁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많이 남은 자신의 프로 선수 생활을 부상 없이 길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다른 어떤 훈련보다 기 코치와 함께하는 훈련에 전념한다.

"그렇지! 대기 자세에서도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린 채 몸을 준비시켜 둬야 돼. 그리고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는 뒤꿈치부터 발의 전면이 닿을 때까지 다리를 곧게 피는 게 중요해! 또 주루 과정에서 부상을 줄이고 싶으면 평소에 대 둔근을 단련시켜 둬야만 해. 엉덩이 근육 말이야."

기 코치는 훈련에 전념하고 있는 강호에게 계속해서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었다.

강호는 기 코치에게 주루 플레이와 더불어 슬라이딩 동작에서 부상 확률을 줄이면서도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배워나간다.

'참 시기 적절하구나. 지금의 나에게 어쩌면 기 코치님과의 훈련이 가장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우연히든 필연이든, 기성태 코치님을 만난 것은 내게 행운과도 같은 일이야.'

강호는 고된 훈련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상황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기 코치의 노하우를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강호의 머릿속에는 이것이 손 감독이 자신에게 주는 안배라는 것을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한편, 그런 강호를 바라보는 기 코치는 약속한 90분을 넘어 훈련 시간이 3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투지 넘치는 모습으로 훈련을 따라주는 강호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고 있었다.

'배우는 속도가 남들보다 월등히 빠른 건 아니야. 하지만 훈련을 통해 배운 것은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다음 과정을 미리 읽어내고 있어. 신체적인 재능은 중상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야구 센스와 지능은 확실히 남다른 구석이 있어. 신체적으로 부족한 면은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어도 타고난 야구 지능은 훈련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거야. 그런 면에서 강호는 야구 선수로서 가장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 셈이야!'

기 코치는 강호와 함께 훈련을 진행하면서 그가 가진 자질과 잠재력, 야구 센스와 지능, 그리고 무엇보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무형의 에너지가 강호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고 느꼈다.

'투지나 의지, 욕심이나 열정. 어떤 말로든 표현할 수 있겠지. 그런 남다른 힘을 가진 선수만이 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자격이 있는 거야.'

기 코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이를 악문 채로 훈련에 열중하는 강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손 감독이 자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백강호라는 선수에게 욕심을 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 코치는 강호로 인해 뜨겁게 뛰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빠르게 뛰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키는 일을 포기하고, 강호에게 지금 당장은 해줄 수 없는 말을 속으로 되뇐다.

'그런 면에서 강호 너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 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길 자격이!'

강호를 바라보는 기 코치의 시선은 뜨거웠다.

그리고 강호가 흘러내리는 땀방울의 온도 역시 기 코치의 열정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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