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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게 쏠리는 시선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위해 이글스 파크에 도착한 자이언츠 선수단은 경기장에 감도는 묵직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 분위기에 대해 가장 먼저 거론하고 나선 사람은 문표였다.
"쟤네들 왜 저래? 어제는 이월형만 저러더니 오늘은 단체로 잡아먹을 기세네. 무서워서 어디 경기하겠어?"
문표의 불평에 경기 전 훈련에 들어간 자이언츠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움직인다.
그들의 눈에도 이글스 선수단의 뜨거운 눈빛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게요. 아! 맞다. 오늘 경기까지 우리가 이기면 올 시즌 이글스 전 전승입니다. 이글스 선수들이 독기를 품을만 하죠."
문표의 말에 대꾸한 것은 어느새 1군의 주전 우익수가 된 유성철이었다.
성철의 대답에 문표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다들 월급 받고 경기하는 건데 독기까지 품고 그래? 이렇게 되면 우리도 독기 품고 경기 해야지. 강호 후배! 오늘도 연타석 홈런 때려야지! 이리와 봐. 이 선배가 홈런을 충전해 주겠어."
문표의 말에 강호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괜찮습니다. 선배님한테 충전 받으면 방망이가 고장 날 거 같아요. 어서 송구 훈련이나 하시죠."
강호가 장난스럽게 던진 자신의 말에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문표는 서운하다는 표정을 연기하며 울상을 지어 보인다.
"우리 강호 후배가 애정이 식었구만. 2군에 있을 때는 내 옆에 찰떡 같이 불어서 안 떨어지려고 하더니. 1군에 와서는 사람이 달라져 버렸어. 내가 이 소식을 지금 당장 기자들에게 뿌려야겠어!"
문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여전히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말한다.
그 모습에 강호는 걸음을 옮기게 된다.
"상훈 선배가 어디 갔지? 송구 훈련은 상훈 선배하고 하겠습니다. 이글스 선수단이 독기를 품었는데 저희도 그에 맞게 대비를 해야죠. 훈련 안하실거면 저는 갑니다."
"김상훈은 안 돼! 알았어. 훈련하자고."
자신의 포지션 경쟁자인 상훈에게 간다는 강호의 말에 문표는 재빨리 태세 전환을 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양 팀 선수들이 각자의 훈련에 전념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경기에 들어가기 전 김민철 감독 대행이 선수들을 불러 모아 오늘 경기에 대한 작전과 함께 주의 사항을 일러준다.
"다들 이글스 분위기 확인했지? 저렇게 독기가 올라왔는데 우리가 마음 놓고 있으면 경기 결과는 뻔하다! 우리가 위닝 시리즈를 가져왔다고 해서 허술하게 경기하다가는 꼼짝없이 지게 될 테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해. 오늘 경기에서 어수룩한 플레이를 하는 사람 있으면 즉시 교체된다는 사실을 알아 둬!"
김 대행은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렇게 말한 후, 곁에 서있는 낯선 사람을 소개한다.
그는 어제 손성조 2군 감독을 방문했었던 기성태 코치였다.
어느새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있는 기 코치는 영락없는 자이언츠의 일원처럼 느껴졌다.
"이번에 합류하게 된 기성태 코치는 앞으로 주루 코치를 담당하게 될 거야. 기 코치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선수들은 잘 협조해주고, 기 코치도 잘 적응해 줬으면 한다. 기 코치는 미국과 자메이카에서 1년 가까이 현지 연수 과정을 배우고 왔으니까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선수들은 기 코치가 현지에서 배워온 노하우를 잘 익히도록 해."
김 대행의 소개로 기성태 코치의 인사가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1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은 의외의 양상으로 끝이 난다.
전준오, 유성철, 강호로 이어지는 1, 2, 3번 타순이 모두 외야 뜬공으로 범타 처리되며 이닝이 빠르게 종료된 것이다.
성철과 강호는 거의 홈런이 될 뻔했던 큰 타구를 때려내긴 했지만, 모두 이글스 외야수의 호수비에 가로막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지금 타구는 못해도 2루타 성 코스였는데 김경헌 우익수가 너무 잘 막았어. 저렇게 수비가 좋은 선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독기를 품었구나.'
타석에서 물러선 강호는 오늘 경기가 치열한 접전 양상이 될 것을 예상하며, 글러브를 챙겨든다.
1회 말, 이글스의 공격은 자이언츠 선발 투수 성수제의 허를 찌르는 스퀴즈 번트 안타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글스 외야수들의 호수비 못지않은 자이언츠 내야수들의 호수비에 가로막혀 잔루 2개를 남겨두고, 다음 이닝을 기약해야만 했다.
이후, 양팀 야수들의 호수비 속에 0대 0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4회 초 선두 타자로 타석에 오른 강호가 배트를 힘껏 당긴다.
강호의 시야에는 상대 선발 투수인 송창민의 5구째 구종과 코스가 표시되고 있었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39km
다소 구속이 떨어진 송창민의 포심이 높은 코스로 형성된 것을 확인한 강호는 배트를 정확히 날아드는 공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따악!
맞는 순간 장타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소리에 투수 송창민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우중간을 향해 옮겨진다.
중계석의 시선 역시 타구를 따라 외야로 향했다.
"백강호 5구째 공략! 큽니다! 타구가 우중간을 향해 뻗습니다. 백강호가 밀어 친 타구가 담장을 넘깁니다! 시즌 21호 홈런! 백강호의 손에서 드디어 선취점이 만들어 집니다."
캐스터의 중계 후 안 위원의 코멘터리가 이어지고, 그 사이 중계 카메라는 3루 베이스를 밟은 후 자이언츠 원정 팬들에게 손을 뻗고 있는 강호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강호가 홈을 밟는 순간, 자이언츠의 1득점이 기록되고 있었고, 이렇게 경기 흐름이 자이언츠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4회 초 자이언츠의 득점은 그것이 전부였다.
강호에 이어 다음 타자로 타석에 오른 4번 타자 채중석이 볼넷으로 출루하긴 했지만, 5번 타자로 나선 최문표가 병살타를 때리면서 강호가 지핀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다.
순식간에 기회를 날려먹은 문표가 덕 아웃으로 들어오자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강호였다.
"선배님, 충전 좀 해드릴까요? 선배님 방망이가 방전된 것 같은데요."
"시끄러. 나 지금부터 혼자 있을 거니까 저리가."
풀이 죽은 문표의 말에 강호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이닝 끝났어요. 캡틴이 땅볼로 아웃됐다고요. 어서 수비하러 나가셔야죠."
강호는 선배인 문표에게 1루수 전용 글러브를 챙겨주며 등을 떠민다.
그러자 문표가 한숨을 내쉬며, 축 처진 발걸음으로 그라운드 위로 올랐다.
"오늘 경기 한 번 스피디하네. 벤치에서 쉴 시간도 없어."
문표의 푸념 속에 선수들 모두가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표의 말대로 쉴 시간 없이 진행되는 경기는 어느새 7회 말로 넘어가 있었다.
7회 말 박빙의 승부에서 마운드에 오른 권대우 투수가 연달아 두 타자를 볼넷으로 내주는 극도의 제구 불안을 보여준 후 마운드에서 내려간다.
자이언츠에서 가장 믿을만한 불펜인 대우가 흔들리자 자이언츠 덕 아웃이 분주해졌다.
"여 코치, 길준이 준비됐어?"
"길준이는 아직 입니다. 대신 표성태를 올려보는 게 어떨까요?"
김 대행의 물음에 여 코치는 준비가 안 된 윤길준 투수 대신 표성태를 권한다.
한 때 2군에서 마무리로 뛰던 표성태의 최근 모습을 떠올려본 김 대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이글스 타자들이 정통파 우완투수에게 얼마나 강한 줄 알잖아? 그리고 성태의 구속이 140km 중반 밖에 안 나온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성태를 올리는 건 무리야. 차라리 진성이를 올려야지. 진성이 구속이 150km 이상 나와 주고 있잖아."
김 대행이 꺼낸 가진성 카드가 나쁘지 않다고 여긴 것인지 여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진성이는 금방 올릴 수 있습니다. 바로 교체하겠습니다."
여 코치는 대답과 함께 그라운드 위로 올라 주심에게 공 하나를 받아든다.
그리고는 마운드에 오른 여 코치.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숙이는 대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수고했다."
여 코치는 앞으로 팀의 주축 투수로 성장할 대우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여 코치가 건넨 말에 스스로 제 몫을 못했다고 여긴 대우는 '죄송합니다'라고 짧게 사과한 후 마운드를 내려간다.
그 후, 마운드에 오른 가진성 투수는 이글스의 다음 타자인 3번 타자 손강민에게 삼진을 잡아내며 한시름 덜어내는 듯 했지만, 뒤이어 오른 4번 타자 김태준에게 던진 초구가 손을 떠남과 동시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린다.
따악!!
가운데로 몰린 가진성의 실투를 놓치지 않은 김태준의 배트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중계석은 좌측 담장을 완전히 넘겨버리는 김태준의 타구에 목소리를 높인다.
"큽니다! 김태준이 받아친 타구는 역전 쓰리런으로 완성이 됩니다! 김태준 9호 홈런!"
중계석의 홈런 선언과 함께 대전 이글스 파크가 팬들의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팀이 꼭 필요할 때 한 방을 해결해준 태준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가 쏟아졌고, 태준은 그런 팬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며 팬들의 환호에 응답했다.
'됐어!'
태준은 자신이 때린 홈런으로 팀의 스윕 패를 막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했다.
그리고 이어진 사리오의 타석으로 확신은 더욱 굳어진다.
따악!
또 다시 호쾌한 타격음이 이글스 파크를 뒤흔든다.
5번 타자로 타석에 오른 사리오마저 솔로 포를 터뜨리며 순식간에 4득점을 올린 이글스가 분위기를 가져가는 모습이었다.
9회 초 이글스의 마무리 투수로 오른 전우량이 선두 타자인 손호섭을 삼진 처리하며 승기를 굳히는 듯 했지만, 9번 타자 김중호와 1번 타자 전준오에게 연달아 안타를 허용하며 주자 1, 3루 상황을 자저하고 만다.
여기에서 자이언츠 덕 아웃은 승부수를 띄운다.
김 대행이 꺼낸 승부수에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함성 소리가 그라운드 위로 울려 퍼졌다.
"황제인! 황제인!"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속에 황제인이 대타로 타석에 오른다.
김 대행은 최근 몇 경기 동안 손목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빠져있던 황제인을 대타로 내세운 것이다.
다음 타자가 팀에서 가장 타격감이 좋은 강호여서 팀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르는 기회를 제인이 강호에게 연결시키길 바라는 김 대행의 특명이 떨어진 상태였다.
특명을 받은 제인은 타석에 올라서며 생각을 정리한다.
'어차피 손목이 안 좋아서 장타를 때려낼 수는 없어. 다음 타자가 강호니까 단타를 때리던지, 볼넷으로 출루하든지. 출루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타석에 들어서는 제인의 속내는 그러했다.
김 대행의 말대로 어떻게든 강호에게 기회를 연결시켜주자는 생각이었다.
원래 팀의 4번 타자였던 제인은 어느새 백강호라는 타자를 팀의 해결사 역할로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그렇기 때문에 긴 한숨과 함께 장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전우량 투수와 끈질긴 승부를 벌이게 된다.
따악. 티익.
계속되는 황제인의 파울 속에 8구째까지 이어진 승부는 결국 전우량의 유인구를 골라낸 황제인의 승리로 끝이 난다.
제인은 전우량의 8구째를 골라내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모든 자이언츠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타자 백강호였다.
만루 찬스가 강호 앞에 주어진 것이다.
'이건 생각해볼 필요도 없어. 팀이 3점 차로 지고 있는 9회 초 1사 만루 상황에서 역전할 수 있는 아이템이 수중에 있어. 이런 상황에서 내 스스로의 타격만 믿고 아이템을 마냥 아껴둘 순 없는 거야. 이글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경기는 내 손으로 끝낸다!'
강호는 타석에 올라서자마자 아이템 사용을 결정하게 된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타격 아이템 사용을 묻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인 강호는 곧 상대 투수 전우량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전우량 투수와 제대로 승부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지.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는 수밖에.'
강호는 초구를 고르고 있는 전우량의 눈빛을 마주하며 배트를 힘껏 쥔다.
그런 강호의 시야에 기간제 아이템 효과로 인한 시스템 메시지들이 표시되고 있었다.
구종: 슬라이더
구속: 131km
전우량의 초구 선택은 슬라이더였다.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가다 존의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평소였으면 노릴 리 없는 유인구를 향해 강호의 배트가 벼락같이 움직인다.
힘껏 끌어당겼던 강호의 배트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전우량 투수의 공을 강타하고 있었다.
따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