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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게 쏠리는 시선
6월 1일, 한 달의 시작을 알리는 경기들이 모두 끝이 나고, 각 스포츠 채널에서는 하루의 경기를 마무리하는 야구 프로그램 방영에 들어가 있었다.
리모콘을 쥔 거친 손길은 야구 편성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특정 방송국의 채널에서 리모컨 버튼 누르기를 멈춘다.
그러자 스포츠 채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여자 아나운서가 인사말과 함께 오늘 경기의 핫이슈를 전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대전 경기에서 의미 있는 기록 하나가 달성 되었는데요. 이글스와 자이언츠 경기였습니다. 그 주인공을 지금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배지현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화면은 대전에서 벌어졌던 자이언츠와 이글스의 중계 화면으로 넘어간다.
중계 화면의 시작은 1회 초부터 솔로 포를 터뜨리는 강호의 홈런 화면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 이월형과의 13구째 승부 끝에 제대로 받아칩니다! 그리고 이 타구가 담장을 넘깁니다! 이 홈런은 백강호의 18호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편집된 중계화면에서 강호의 첫 홈런에 이어 4회 자이언츠 공격 화면으로 넘어간다.
"백강호 타자 또 칩니다! 그리고 또 넘어갑니다! 백강호의 홈런은 이제 19개째로 늘어나게 됩니다. 앞으로 20홈런, 20도루까지는 홈런 1개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계화면에 덧입혀진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강호의 두 번째 홈런으로 만들어진 자이언츠의 대량득점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화면에는 6회 초 주자 1, 2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강호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오늘 백강호 선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1회와 4회 연 타석 솔로포를 때려 낸 백강호 타자. 또 칩니다! 그리고 또 넘어갑니다! 이 홈런은 올 시즌 백강호 선수의 첫 3연타석 홈런으로 기록되면서 올 시즌 첫 20-20기록을 달성하는 선수로 이름을 올립니다. 백강호! 자이언츠의 역사를 다시 씁니다!"
편집된 화면은 다시 8회에 강호가 중전 안타를 때려내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었고,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안타를 치고 나간 강호가 대주자 임정으로 교체됨을 알린다.
"오늘 백강호 선수는 자신의 역할을 200% 달성하고 대주자 임정으로 교체가 됩니다. 백강호 오늘 4타수 4안타 3연타석 홈런 5타점 그리고 20-20을 어렵지 않게 달성하며 팀 동료들의 환영을 받으며 덕 아웃으로 들어갑니다."
그 후 중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자이언츠가 11 대 4의 대승을 거뒀다는 말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방송사의 기록화면에는 오늘 3연타석 홈런과 20-20을 달성한 강호를 MVP로 선정했다는 코멘터리가 달렸다.
그것을 확인한 배지현 아나운서가 곧바로 입을 연다.
"네. 백강호 선수가 자이언츠의 국내 선수로는 최초의 20-20 기록을 달성했는데요. 오늘이 6월 1일이거든요. 이렇게 되면 30-30 달성도 충분하다고 보여 지는데, 두 분 위원님들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배지현 아나운서의 물음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박재헌 위원이었다.
그는 강호와 비슷한 임팩트를 뽐내며 데뷔한 것으로 유명한 현역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해설위원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다.
데뷔 시즌 30-30 달성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과 함께 프로생활을 시작한 박 위원이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강호의 활약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네. 우선은 백강호 선수의 20홈런 20도루 달성을 축하드리고요. 30-30 달성 가능성을 물으시는 질문에 대답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다른 위원들께서 시즌 초반에 백강호 선수의 30-30달성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볼 때도, 저는 일관적으로 주장을 했었는데요. 30-30뿐만 아니라, 40-40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봅니다."
박재헌 위원은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20-20 이라고 하면 홈런이나 도루 중에 더 적은기록에 타이틀을 맞추거든요. 오늘 20-20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20-40이예요. 백강호 선수 벌써 41개째 도루를 기록 중에 있거든요. 문제는 홈런인데요. 데이터를 살펴보면 백강호 선수가 기록한 20개의 홈런 중에 5월에 나온 홈런이 13개입니다. 4월에 기록한 게 7개고요. 홈런 페이스가 더 올라왔다는 증거인데요. 물론 홈런이 늘어나면서 4월에 5할 1푼 4리였던 타율이 5월에 3할 8푼 9리까지 떨어지긴 했는데요. 그래도 여전히 4할 6푼의 타율입니다. 여름이 되면 페이스가 떨어지겠지만, 30-30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봅니다."
박 위원의 긴 설명 후에 바통을 곁에 있던 투수 출신 김신우 위원에게로 넘긴다.
"저도 30-30은 충분하리라 봅니다. 아직 6월 1일밖에 안됐거든요. 자이언츠가 치렀던 경기가 지금까지 51경기니까 아직 90경기 이상이 남아 있어요. 산술적으로는 50-50도 가능한 페이스인데요. 제가 볼 때는 현실적으로 30-30정도는 충분하고, 40-40까지는 선수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김신우 위원은 그렇게 박재헌 위원의 말에 동감을 표하면서 투수 출신 해설위원으로서의 코멘터리를 더한다.
"백강호 선수는 약점이 잘 안 보이는 타자예요. 유일하게 핫 존이 아닌 코스가 바깥 쪽 낮은 코스거든요. 이마저도 3할 3푼이 넘습니다. 사실 이 코스를 이렇게 때리는 타자는 없다고 봐야 되거든요. 모든 타자들의 공통된 약점이니까요. 그런데 백강호 선수는 이 코스에 3할 3푼을 때리면서 콜드 존으로 나타나 있어요. 다른 타자 같았으면 오히려 핫 존으로 표기될 타율입니다. 그만큼 백강호 선수에게 던질 공이 없다는 거예요."
김 위원은 강호가 5툴 플레이어 자질을 갖춘 완성형 타자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박재헌 위원을 가리키며 강호가 박 위원과 흡사한 유형으로 그와 비슷한 커리어를 쌓아나갈 거라 확언한다.
김 위원의 말에 박재헌 위원은 너털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백강호 선수가 저랑 비슷한 유형의 타자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현역시절에 도루 성공률이 많이 낮았거든요. 그런데 백강호 선수는 도루 실패가 하나밖에 없어요. 성공률을 계산해보면 97.5%입니다. 현역 때의 저보다 30%이상 높아요. 수비 포지션도 다르고요. 컨택 능력도 백강호 선수가 저보다 월등합니다. 김신우 위원이 저한테 과찬을 해 주신 것 같은데 칭찬은 제가 아니라 백강호 선수가 받아야죠."
박 위원이 겸양의 말을 하자 스튜디오 분위기가 훈훈해진다.
그 모습을 TV로 보던 사람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TV 전원을 끈다.
그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강호야. 잘 하고 있구나. 처음 너를 봤던 그 때의 내 판단이 틀린 게 아니었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이언츠의 2군 감독인 손성조 감독이었다.
그는 원정 경기 중인 퓨처스 선수단을 이끌고 원정지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다.
손 감독 본인도 계속되는 2군 경기에 피곤할 법도 한데 자이언츠의 1군 경기 특히 강호의 플레이는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강호 네가 활약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날도 머지않았어.'
손 감독은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강호의 활약에 나이 든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음을 느낀다.
서서히 끌어 오르기 시작한 젊은 날의 열정을 잠시 동안 잠재울 필요성을 느끼고,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킨다.
똑똑똑.
그때 숙소 방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손 감독의 이목을 끈다.
"이 늦은 시간에 어떤 놈이야?"
손 감독은 방문자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능청스러운 말투로 묻고 있었다.
그런 손 감독의 기대대로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오랜만에 듣게 된 반가운 목소리였다.
"감독님. 접니다. 기성태 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방문자의 목소리에 손 감독이 반색하며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어젖힌다.
"잘 왔다, 성태야."
손 감독은 기성태 코치를 반갑게 맞이하며 그를 숙소 방으로 들인다.
한동안 서로의 근황을 묻던 두 사람은 점점 표정을 굳히는 손 감독으로 인해 대화를 멈추게 된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던 손 감독의 주름진 얼굴은 이내 심중을 파악하기 힘든 미소를 담고 있었다.
"성태야. 네가 1군으로 가면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얕은 미소와 함께 시작된 손 감독의 말.
그의 말을 모두 새겨들은 기성태 신임 코치는 곧장 자이언츠 선수단이 있는 대전으로 향하게 된다.
한편 같은 시간, 오늘 경기까지 내어주며 올 시즌 자이언츠와의 팀 전적이 5전 전패가 되어버린 이글스 선수단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몇몇 고참 급 선수들은 경기가 끝났음에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은 채 개인훈련과 내일 경기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건오 선배님, 이러다 또 다시 스윕 당하는 거 아닙니까? 월형이가 이렇게 박살날 줄은 몰랐네요. 좀 전에 보니까 오늘 경기에서 진 후유증이 얼마나 심한지 야식 먹다가 침까지 흘리더라고요. 어쩌면 좋겠습니까?"
이글스의 주전 좌익수 양신우의 선수의 말에 팀의 최고참 중 한 명인 정건오가 한숨을 내쉰다.
"월형이만 불쌍하게 됐지.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가 실책한 게 아니라 본인이 홈런 맞고 무너진 걸. 이것도 승부라면 승부잖아. 정당하게 진 거지, 뭐."
건오의 푸념 섞인 대답에 신우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럼 내일 경기도 정당하게 지면 어떡하죠? 정당한 6연패네요."
신우의 말에 일찍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던 건오가 결국 발걸음을 옮긴다.
"신우, 너. 여기 잠깐 있어봐."
신우를 홀로 남겨둔 정건오 선수가 향한 곳은 팀의 주장인 김태준이 타격 훈련을 하는 곳이었다.
그의 곁에는 이미 또 다른 선수가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팀의 주장 김태준과 정건오와 마찬가지로 82년생 동갑내기인 또 다른 고참 선수 김경헌이었다.
"태준아. 월형이 경기 지고, 침까지 흘리더라. 월형이가 빨리 닦는다고 닦았지만, 내가 다 봤어. 내일 경기 어떡할래? 이렇게 스윕 내줘버리면 자이언츠한테 징크스 생길 건데. 내일 경기만큼은 잡아야 하지 않겠어?"
김경헌 선수의 말에도 묵묵부답으로 타격 훈련에 전념하는 캡틴 김태준이었다.
그가 휘두른 배트에 얻어맞은 배팅 볼이 호쾌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따악, 따악!
태준의 배트가 호쾌한 타격음을 만들어 내며 경기장 외야를 향해 타구를 날려 보낸다.
그 모습에서 태준의 불편한 심사를 읽은 건오. 하지만 나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무런 대비 없이 내일 경기에 들어서게 되면 시리즈 스웝을 당할 거라는 불안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경헌이가 하는 말이 맞아. 우리가 스윕으로 지면 순위 구도도 위험하다고. 이러다 트윈스나 자이언츠한테 따라 잡히고 말거야. 태준아, 우리 고참 선수들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건오까지 나서자 태준은 결국 타격 훈련을 멈추고 배트를 내려놓는다.
그런 태준의 턱 선을 따라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준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한다.
"내일은 이겨야지. 홈경기에서 스윕은 안 돼. 절대로!"
태준은 마치 상처 입은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모습으로 두 친구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두 선수에게 향한 태준의 눈동자는 가득 차오르는 패배감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투지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태준의 지시로 퇴근하지 않고 있던 모든 이글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모여들고 있었다.
태준은 선수들을 향해 내일 경기를 준비하는 임전의 태세를 밝혔고, 이글스 선수단은 그런 태준의 말에 공감하여 내일 경기에 대한 각오를 다지게 된다.
"절대! 내일 경기만큼은 안 돼! 내일 경기까지 지면 전원 삭발이다!"
삭발을 거론하는 태준의 말에 후배 선수들은 올해만큼은 삭발은 안 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올해는 삭발 좀 그만하자. 어떻게 매 해마다 삭발이야? 이번에는 안 돼!'
후배 선수들은 '삭발'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속으로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 이글스 선수단의 투지는 내일 경기에서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