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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게 쏠리는 시선
이월형 투수. 자이언츠가 오늘 상대해야할 이글스 선발 투수의 이름이다.
그는 한 때 팔꿈치 수술로 2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날려버렸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후에는 모두의 우려를 떨쳐내는 호투로 전성기에 들어섰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90년생, 올해로 서른 살이 된 중견 투수 이월형은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잔뜩 칼을 갈고 나온 상태였다.
'시리즈 첫 경기 때처럼 허술하게 흐름을 내주는 일은 없을 거야. 준비를 많이 하고 나왔으니까.'
월형은 자이언츠와의 첫 시리즈 맞대결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4월 11일, 자이언츠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강호에게 벼락같은 투런 홈런을 내어주며 경기의 흐름을 너무 쉽게 빼앗기고 말았다.
월형은 그 경기를 패하며 자이언츠에게 치욕적인 시리즈 스웝을 허용하는 선발 투수로 기록되고만 것이었다.
월형이 오늘 경기를 위해 이를 악물고 준비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다른 타자들에 대한 준비도 많이 했지만, 특히 백강호! 내가 너만은 반드시 삼진으로 잡아내겠어! 두 번 다시 홈런을 허용하는 일은 없을 거야.'
월형은 경기 전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강호를 노려보며 투지를 불태운다.
강호에게 내줬었던 홈런은 월형의 그날 밤 꿈에 나올 정도로 악몽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앙갚음을 하기 위해 꼬박 며칠 동안 강호의 약점분석에 매달렸던 월형이었다.
'백강호, 모든 타자는 약점을 가지고 있거든. 너 역시도 마찬가지인 거야. 네가 본인의 약점을 알든 모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건 네가 상대할 투수인 내가 네 약점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월형은 수비 훈련에 열중하는 강호를 노려보며 입으로는 진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월형의 눈빛은 지나칠 정도로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상대팀 선수들인 자이언츠 선수들까지 의식할 정도였다.
"강호야. 이월형 투수가 너를 왜 저런 눈빛으로 보는 거야? 자꾸 너를 쳐다보면서 웃는데?"
문표는 강호를 향해 바짝 붙으면서 귓속말을 건네 온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도 선발 1루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강호는 자신의 곁으로 바짝 다가온 문표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며 대꾸했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월형 투수하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저렇게 보니까 문표 선배 평소 웃는 모습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강호가 보기에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월형의 모습은 평소 음흉한 농담을 하며 웃음짓는 문표의 모습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문표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강호의 말에 곧바로 반박하고 나선다.
"뭐? 설마. 내가 평소에 저렇게 음흉하게 웃는다는 말이야?"
"네, 저것보다 훨씬 심합니다."
"우리 강호 후배가 장난이 심하네. 내가 이월형 투수처럼 잘 생겼다는 말은 인정하겠지만, 음흉한 구석은 없는 사람이야. 강호 후배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선배님 며칠 전에 걸 그룹 영상 보면서 딱 저렇게 웃었습니다. '걸프렌드'였나요? 그 때 보시던 걸 그룹 이름이요."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강호의 말에 문표는 '걸프렌드'라는 걸 그룹이 춤추는 모습이 생각난 것인지 강호의 말대로 음흉하게 웃어 보인다.
"흐흐. 그건 음흉한 게 아니고, 따뜻하다고 표현하는 거야! 여동생을 바라보는 친 오빠의 심정같은 거라고."
또 다시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변호하는 문표의 말에 강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걔네들도 안 됐네요. 문표 선배같은 친 오빠가 생기다뇨. 그리고 저리로 좀 떨어지십시오. 송구 훈련 안할 겁니까?"
"지금 훈련이 중요해? 내 소중한 여동생들을 욕하다니?!"
"걔네들을 욕한 게 아니라 선배를 욕한 겁니다. 송구 훈련 안하실거면 그냥 상훈 선배하고 하겠습니다."
"그건 안 돼! 내 포지션 경쟁자하고 수비 훈련을 하겠다니? 강호 후배는 누구 편인 거야? 이리로 냉큼 돌아와!"
강호가 자신이 아닌 주전 1루수 김상훈을 부르기 위해 걸음을 옮기자 문표는 별 수 잡담을 멈추고 다시금 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현재 1군에는 문표를 포함해 1루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선수가 3명이나 된다.
주전 1루수인 김상훈과 며칠 전 1군으로 올라온 문표, 거기에 원래부터 백업 1루수로 올라와있던 이인호까지.
여기에 1루수 수비가 가능한 지명타자 채중석까지 더하게 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것이다.
문표의 입장에서는 사실 잡담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서 내게 공을 던져봐. 전부 잡아내 주겠어!"
문표의 호기로운 외침 속에 강호와 그의 송구 훈련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잠시 후 이글스와의 5차전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왜 6번으로 내려간 거야?! 내 타격 능력을 인정해서 중심타선으로 기용하려던 것 아니었어?"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자신의 타순을 확인한 문표의 절규 속에 1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된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삼진 판정에 자이언츠의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선 전준오가 황망한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린다.
"스트라이크에요?"
준오는 미련을 가지고 주심에게 살짝 항의해봤지만, 주심은 '맞아'라고 짧게 대답할 뿐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준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타석에서 물러선다.
그러면서 타석으로 오르는 성철과 대기 타석에 있는 강호를 향해 작게 불평의 말을 한다.
"분명 볼이었는데. 너희도 조심해. 이월형 투수 제구력이 오늘따라 장난이 아니야. 긁히는 날인가 봐. 주심 스트라이크 존도 좀 넓은 것 같고."
덕 아웃으로 들어서며 준오가 건넨 말에 성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 들어섰고, 대기 타석에 남은 강호는 선두 타자로 나섰던 준오에게 던졌던 이월형의 구종과 코스 선택 등을 떠올려보며 타격 전략을 변경하고 있었다.
'전략을 변경해야겠어. 이월형 투수의 투구 패턴이 리포팅 자료에 나와 있는 것과는 달라졌어. 4월에 상대했던 것과도 다르고 말이야.'
강호는 달라진 이월형의 투구 패턴에 자신이 가지고 온 타격 전략을 곧바로 수정했다.
'이월형 투수는 포심 비중이 높은 투수야. 리포팅 자료에도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그런데 전준오 선배를 공 4개로 돌려세울 동안 포심을 단 하나도 던지지 않았어. 그렇다는 것은 오늘 경기에 맞춤 전략을 짜왔다는 뜻이야.'
강호는 이월형의 포심 패스트볼에 맞춰 두었던 타격 전략을 수정하며 2번 타자인 유성철과의 승부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런 강호의 시선을 읽은 이월형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헷갈리지? 네가 세워둔 타격 전략이 뭐가 됐든 간에 다시 생각해야 할 거야. 그래봤자 삼진은 정해져 있겠지만.'
월형은 강호의 눈빛을 의식하며 2번 타자인 유성철마저 6구째 승부 끝에 범타로 돌려세운다.
이제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강호의 타석 차례.
강호는 배트를 가볍게 쥔 채로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준오 선배에게는 포심을 던지지 않았지만, 성철 선배에게는 거의 포심만 던졌어. 이런 변칙 투구가 배터리에서 나온 작전은 아닌 것 같고, 이월형 투수 본인의 투구 전략인 건가?'
강호는 두 타자를 상대한 월형의 투구 내용을 지켜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두 타자를 범타로 돌려세운 월형의 투구가 투수 본인의 결정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런 전제를 통해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내게도 평범한 볼배합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겠지. 어쩌면 앞선 타자들을 상대했던 구종 선택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투구 내용일지도 모르겠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호는 피식 웃음 지으며 대기타석에서 수정한 타격 전략을 완전히 파기한다.
그리고는 생각을 비운 채 배트를 힘껏 쥔다.
그 모습을 목격한 이월형 투수는 마운드 위에 선 채로 인상을 써 보인다.
'웃어? 나한테 홈런 하나를 따냈다고 내 투구가 우습게 보인다는 거야? 건방진...!'
월형은 속으로 이를 갈며 바로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간다.
그리고 며칠 동안 구상해둔 강호를 위한 초구가 뿌려진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8km
강호는 시야에 포착되는 메시지에 정신을 차린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구종이나 구속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몸 쪽으로 찍히고 있는 초구 코스에 얼른 몸을 피하게 된다.
"볼."
강호가 몸을 피한 후 주심은 몸에 맞는 공인지를 살펴보다가 이내 볼 판정을 내린다.
상당히 위협적인 몸 쪽 공이기는 했지만, 강호의 몸에 맞지는 않아서 투수에게 따로 주의를 주지는 않았다.
'의도된 몸 쪽 공이었어. 홈플레이트에서 물러서게 만들 생각인 건가? 바깥 쪽 공을 던지려고?'
강호는 월형의 초구 선택에 2구째 공을 예측해본다.
그러나 다시 시야에 표시된 월형의 2구는 예측을 벗어나는 공이었다.
구종: 체인지업
구속: 122km
이번 공은 역시나 몸 쪽으로 붙는 체인지업이었다.
구종은 바뀌었지만, 몸 쪽으로 붙는 코스는 여전했다.
눈에 띄게 벗어난 2구에 강호는 배트를 낼 생각도 없이 몸을 피한다.
"볼 투."
주심의 판정은 역시 볼.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타석에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좋아.'
강호는 2구 연속으로 몸 쪽 위협구를 던지는 월형의 투구 내용에 이를 악물었다.
월형의 3구째를 기다리는 강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이어진 3구와 4구째 공은 각각 스트라이크와 볼이 분명한 코스였지만 강호는 모두 다 커트해내며 2볼 2스트라이크를 자처한다.
그리고 이어진 5구째와 6구째마저 커트해내며 볼카운트를 변함없이 끌고 나간다.
두 사람의 대결이 흥미롭게 전개되자 중계석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다.
"지금 백강호 타자가 연달아서 4개의 공을 커트해 냈거든요. 이월형 투수가 던진 2개의 위협구 이후에 적극적으로 승부해 주고 있어요. 나쁘지 않은 대처입니다. 타자에게는 저런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해요."
안경훈 위원의 말이 끝나자 배성한 캐스터는 이어진 7구와 8구째 승부를 중계하며 두 선수의 흥미로운 승부에 초점을 맞춘다.
"또 커트했습니다. 백강호 타자 벌써 6개째 공을 커트하고 있습니다. 앞선 두 타자에게 10개의 공을 던졌던 이월형 투수가 백강호 타자에게만 9구째 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회 초부터 치열한 승부가 진행되네요."
흥미로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배 캐스터의 목소리가 고조되어 있진 않았다.
1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이어서 승부처는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두 선수의 치열한 승부는 이어지고 있었고, 어느새 강호에게 던진 이월형 투수의 공은 12개째로 늘어나 있었다.
'월형아. 던질 수 있는 건 다 던졌어. 마지막으로 하이 패스트볼로 승부보자!'
포수인 차연목 포수는 고집스럽게 승부를 이어나가는 월형에게 높은 코스의 포심 싸인을 내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이월형 투수는 하이 패스트볼로 승부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차연목의 싸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7km
강호가 확인한 구종은 포심이었고, 빠른 구속과 스트라이크 존 위쪽으로 벗어나는 코스를 확인한 후 배트를 힘껏 끌어당긴다.
'이거다!'
강호는 월형의 13구째 공을 제대로 타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월형 투수의 3구째부터 총 10개의 공을 일부로 파울로 만든 강호, 사실 그 파울 타구는 이 하나의 공을 유도해내기 위한 포석에 불과했다.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의 코스를 알 수 있는 강호만이 가능한 유도전략인 것이다.
강호는 월형이 던진 공의 구속에 자신의 배트 스피드를 더해 있는 힘껏 공을 때린다.
따악!
타석을 가득 채우는 타격음과 동시에 이월형 투수가 '아'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맞는 순간 고개를 떨구게 하는 홈런이었던 것이다.
강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려 했던 월형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4월 11일 경기에 이어 또 다시 홈런을 내어주고 만 것이었다.
'이월형 투수의 전략은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투수가 타자에게 맞춤 전략을 들고 나오면 타자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야지.'
홈런을 때린 후 베이스를 돌면서 강호는 생각하고 있었다.
강호는 이번 타석에서는 일회용 '홈런'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10개의 파울을 만들어내고, 결국 홈런으로 타석을 마무리한 것이다.
삼진을 당할 각오로 전략을 짠 것인데 그것이 짜릿한 홈런으로 만들어지자 묘한 여흥을 느낄 수 있었다.
'역으로 파고든 전략도 좋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야. 다음 프리마켓이 열렸을 때 다른 아이템은 젖혀두더라도 두 개의 기간제 아이템 구매는 심각하게 고려해야겠어.'
베이스를 모두 돈 후, 홈을 밟은 강호는 어느새 다음 프리마켓 방문 때의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리고 경기는 계속 진행되어 4회 초, 주자 없는 상황에서 다시금 타석에 선 강호.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월형 투수와 다시 마주하게 된 강호는 이번에는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일회용 타격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월형 투수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내게는 해결해야할 미션이 있잖아. 오늘 경기에서 남은 미션을 완료해야겠어.'
생각과 함께 타격 아이템 사용을 결정지은 강호.
따악!
호쾌한 타격음에 또 다시 모든 이의 시선이 외야로 옮겨진다.
절치부심을 다짐한 이월형의 초구를 받아친 강호의 타구는 또 다시 홈런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따악!
이어서 6회 초, 1사 1, 2루 상황에서 이글스의 바뀐 투수를 상대로 기록한 쓰리런으로 강호의 3연타석 홈런이 완성된다.
3번의 타석 기회동안 3개의 홈런으로 5타점을 뽑아낸 강호의 타격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너무도 쉽게 달성된 강호의 20-20기록에 동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중계석을 포함한 팬들 역시 크게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놀람은 곧 커다란 함성이 되어 쓰리런 홈런을 때리고 홈으로 들어온 강호를 반기고 있었다.
"와아아아!!"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함성이 이글스파크를 뒤덮고 있었다.
강호는 이 홈런으로 자이언츠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새겨놓는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강호의 기록 달성 소식은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