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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의 추억
중계석에서는 흥미로운 지금의 맞대결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재밌는 대결이에요. 이글스의 배현수 투수가 몇 년 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작년부터 다시 10승 투수의 반열에 올랐거든요. 배현수 투수가 2013년부터 새롭게 연마하기 시작한 구종이 작년부터 빛을 발하고 있어요. 올해로 39살의 베테랑 투수 전성기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에요. 반면에 백강호 타자는 올해 데뷔한 타자거든요. 타율 4할 4푼 9리, 17개의 홈런에 40개의 도루로 20홈런, 20도루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완성형 타자에요. 데뷔 시즌에 이렇게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주는 신인 타자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안경훈 위원은 흥미로운 투타 대결로 말을 시작해서 강호의 기록을 읽어내며 찬사의 말로 해설을 마무리했다.
그의 말에 tv중계로 경기를 시청하고 있던 자이언츠 팬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반대로 이글스 팬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자리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배현수 투수가 보여준 활약에 이글스 팬들 역시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백강호가 아무리 대단한 신인이라도 배현수의 공은 칠 수가 없어! 신인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이 아니잖아."
"그래. 맞아. 앞전 타석에 봐봐. 자이언츠의 1번 전준오는 볼넷으로 나간 거고, 2번은 땅볼로 아웃됐잖아. 정타가 나와서 출루한 게 아니라고. 배현수의 공은 정타로 때릴 수가 없는 거야."
"그렇지. 오늘 같이 하늘이 맑은 날에는 배현수의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팍팍 꽂히는 거라고. 백강호가 4할을 넘게 치든 말든 배현수의 공을 정타로 때리기는 힘들 거야!"
tv중계를 지켜보는 이글스의 팬들은 배현수 투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타석에 선 강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호는 배현수 투수가 선택한 초구 결정에 미간을 좁히게 된다.
구종: 너클볼
구속: 116km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배현수 투수의 초구가 너클볼로 표기된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국내에는 거의 없는 너클볼러. 한 때 우리 구단에서도 활약했었던 옥스프링 투수나 너클볼을 던졌지 국내 투수 중에 너클볼을 자유롭게 구사했던 선수는 얼마 없었어. 아니, 아예 없었다고 해야겠지. 1군에서 통할만큼 너클볼을 익힌 투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배현수 투수가 2013년부터 연마하기 시작한 너클볼이 작년 초부터 1군 무대에서 통하기 시작했어. VR안경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은 많이 해봤지만, 실제로 타석에서 경험하는 너클볼은 어떨까?'
강호는 배현수 투수의 초구를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린다.
실전 경기에서는 처음 상대해보는 너클볼을 눈으로 익히기 위함이었다.
원정 버스 안에서 놀아달라는 문표의 요구를 사양하면서 VR안경 화면에 집중했던 것은 사실 선구안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배현수 투수가 던지는 너클볼에 적응하기 위함이었다.
증강현실 훈련 프로그램에 배현수 투수가 던지는 110km 중반 대 너클볼로 세팅을 해놓은 후 몇 시간에 걸쳐서 너클볼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개나 되는 가상의 너클볼을 눈으로 익힌 상태였지만, 실제로 경험하게 된 배현수의 너클볼은 조금은 다른 구석이 있었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초구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너클볼의 궤적이 묘한 구석이 있어서 판정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포수 미트에 안착한 위치를 확인한 후에 스트라이크로 판정을 내린 것이다.
강호는 처음 상대해본 배현수의 너클볼을 지켜본 후 타석에서 반 발짝 물러서며 생각을 정리한다.
'조금 전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 가깝기는 했지만, 스트라이크는 아니었어. 주심이 너클볼의 무브먼트에 현혹되서 볼을 스트라이크로 잘못 본 거야.'
강호는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오심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기간제 아이템인 '내가 심판이다'로 확인한 초구 코스는 몸 쪽으로 공하나 정도 빠지는 볼이었다.
그럼에도 스트라이크가 선언된 것은 그만큼 너클볼의 무브먼트가 심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공보다는 무브번트가 심하지만, VR안경으로 봤던 것보다 무브먼트가 심한 편은 아니야.'
배현수 투수의 초구로 상황 판단을 끝낸 강호가 다시 타석에 자세를 잡았다.
사실 강호로서는 배현수 투수를 처음 상대하는 것이었다.
데뷔전 경기에서 이글스를 상대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 때는 배현수 투수가 어깨 염증 증세로 엔트리에서 빠져있던 상태였다.
배현수의 너클볼을 실제로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이다.
'분명 까다로운 공이기는 해. 공을 던진 투수도 궤적을 알 수 없는 것이 너클볼의 특징이니까. 하지만 궤적을 알 수 없다고 해도 공은 결국 포수 미트에 도착하게 돼. 세상에 나보다 더 너클볼을 잘 때려낼 수 있는 타자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적어도 한 달 동안은 말이야.'
강호가 배현수 투수를 실제로 접한 후 내린 결론이었다.
기간제 아이템 효과로 상대방 투수가 던지는 구속과 구종, 그리고 포수 미트에 도착하는 도착 지점을 알 수 있는 상태다.
포수 미트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궤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너클볼의 장점이지만, 그 장점은 기간제 아이템을 사용한 강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타자들 중에 너클볼에 대한 대처가 가장 좋을 수밖에 없는 강호였다.
구종: 너클볼
구속: 118km
2구째 공의 정보가 시야에 표시되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강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심한 무브먼트를 보이는 배현수의 2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지점을 확인한 강호는 곧바로 시야에 표시된 지점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공을 제대로 때린 타격음이 울려 퍼진다.
이번에 휘두른 강호의 스윙은 이전 경기 때처럼 크지 않았다.
이글스 배터리에서는 최근 홈런 스윙으로 바뀐 강호의 타격 자세와 스윙을 의식하여 1구와 2구 모두를 정타로 때려내기 힘든 너클볼로 선택했지만, 강호는 짧게 끊어 치는 스윙으로 2구째 공을 우전 안타로 연결해내고 있었다.
"쳤습니다! 백강호 타자가 배현수 투수의 2구째를 밀어 칩니다! 이 타구로 1루 주자였던 전준오가 3루까지 갑니다. 타자 주자 백강호는 1루 까지! 백강호의 안타로 1회 초, 1사 1, 3루의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중계석의 중계대로 1사 주자 1, 3루의 상황이 만들어져 있었다.
강호는 기간제 아이템을 통해 투수가 던진 공의 도착 지점을 알고 있어서 충분히 장타 욕심을 낼 수도 있는 코스였지만, 이번 타석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단타를 때리더라도 팀에 기회를 연결할 수 있는 코스로 타구를 날려 보낸 것이다.
그런 강호의 시선이 3루 쪽 덕 아웃을 향해 움직인다.
'강호 녀석. 정말로 홈런 욕심을 버리고 단타를 노린 타격을 했구나.'
강호와 시선을 마주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캡틴 강민수였다.
캡틴인 강민수는 외국인 웨이버 공시로 촉발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시작되기 전, 숙소인 호텔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수선한 선수단 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하나였고, 경기장으로 이동해야할 시간을 고려한다면 모든 선수들을 돌아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몇몇 선수들을 확인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강호나 대우는 알아서 잘 해주겠지.'
같은 방을 쓰는 대우와 강호를 떠올리고는 다른 숙소 방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아직 스무 살 루키인 대우는 걱정이 되지만, 그와 함께 방을 쓰는 강호는 베테랑 못지않은 멘탈과 마인드를 갖춘 좋은 선수였다.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도 후배인 대우를 잘 다독여 경기에 집중해줄 것이라 믿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경기 시작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장에서 마주하게 된 캡틴 강민수와 강호.
민수는 강호의 얼굴을 확인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게 된다.
강호의 정신력이나 마음가짐을 믿고는 있었지만, 선배 선수들의 분위기에 강호가 동요되지는 않았을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호야 이번 시리즈에서 20-20을 한 번 노려봐야지. 오늘 경기부터 홈런을 노리고 작전을 짠 거야?"
민수는 최근 들어 스윙이 커진 강호의 타격 자세를 떠올리며 묻고 있었다.
타율이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강호가 힘 있는 스윙으로 바꾸면서 조금은 컨택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출루율이 5할 대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3번 타자로서는 다소 욕심을 내는 스윙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됐다.
'너무 직접적으로 묻는 것은 좋지 않아. 강호도 어엿한 프로선수잖아. 자기 타격에 대한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을 텐데.'
강호에게 묻고 있는 민수의 생각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강호를 배려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너 요즘 홈런 스윙하더라. 오늘도 그럴 거야?'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후배 선수인 강호에게 불편하게 작용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멘탈 관리가 중요한 야구선수들에게는 사소할 수 있는 말도 큰 영향이 되기도 한다.
선배나 코치의 말에 선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자기 스윙을 하는데 망설이게 되고, 곧 그것이 슬럼프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수는 강호가 자신이 던진 말로 인해서 슬럼프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최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로 묻고 있는 것이다.
"아니요. 홈런이라뇨. 홈런이 노린다고 때릴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오늘은 출루에 초점을 맞출 겁니다. 경기를 이겨야하지 않겠습니까?"
강호는 티 없이 웃어 보이며 자신의 타격 계획을 밝혔다.
오늘은 홈런 스윙이 아니라 단타를 때리더라도 출루에 초점을 맞춘 타격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민수는 그것이 한참 선배인 자신에게 겸손해 보이려고 해본 말이 아닌가하는 의심도 했었지만, 배현수 투수의 2구를 때려낸 강호의 타격을 확인하고는 모든 의심을 거두고 강호의 진정성을 믿게 되었다.
'강호야 내가 잠시 오해했다. 어쩌면 우리 팀에는 너 같은 선수가 필요했는지도 몰라. 그동안 우리 선배들은 너무 자기 기록만 의식하면서, 팀 성적과 관련 없이 스펙 쌓기에 욕심을 냈는지도 모르겠어.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도 필요하고, 너처럼 팀 승리를 위해서 헌신하는 선수도 있어야 했던 거야. 우리 자이언츠가 잊고 있었던 것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팀을 승리를 위해서 선수들이 진심으로 고민하는 것, 내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기록을 위해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 그리고 경기를 승리하는 것. 그런 것들을 잊은 채로 야구를 대했기 때문에 우리 팀은 그동안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철저히 외면당했었던 거야.'
민수는 그렇게 강호에게 전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그라운드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의 시선에는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2루 베이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강호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 직후, 배현수 투수의 투구와 동시에 2루 베이스로 스타트를 끊은 강호의 모습을 확인하며 오늘 있었던 과거의 회상을 정리한다.
'이제는 고민이나 생각이 아니라 야구를 할 때야.'
민수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며 배트를 챙겨든다.
오늘의 4번 타자인 채중석이 타석에 섰으니 6번 타순인 자신도 타격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강호의 2루 도루 성공 후, 채중석까지 볼넷으로 걸어 나가자 다음 타자인 5번 타자 최문표가 타석에 서는 모습이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문표의 끈질긴 8구째 승부의 결과는 주심의 삼진 판정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문표는 익숙하지 않은 너클볼에 배트를 헛치며 삼진으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문표가 타석에서 물러나며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민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아, 어렵습니다. 오늘 배현수 투수의 너클 무브먼트가 너무 심해요. 강호는 저런 공을 어떻게 정타로 때려냈을까요? 하여튼 불가사의한 녀석이라니까요."
문표는 데뷔 1년 선배인 민수를 향해 그렇게 말한 후 덕 아웃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민수는 문표를 대신해서 타석에 서며 그에게 해주고 싶은 대답의 말을 속으로 전한다.
'그게 우리 타자들의 역할이니까.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든 팀 승리를 위해 공을 때려내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야. 그걸 잊지 않는다면 강호 녀석처럼 안타를 때려낼 수가 있는 거야. 문표야, 우리 고참 선수들이 그 당연한 이치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민수는 문표를 향해 그렇게 속으로 말을 전한 후, 자신을 향해 던져진 배현수 투수의 초구에 힘껏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따악!!
공을 정확하게 강타하는 타격음이 경기장을 가득 채운다.
그 공은 이글스파크의 외야를 가로질러 장외까지 날아가 사라지는 장외 홈런이었다.
그리고 이 홈런은 한동안 홈런포 가동을 멈췄던 강민수 선수의 8호 째 홈런이자 팀의 선취점을 가져오는 만루 홈런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또한 최근 들어 타율이 2할 대까지 떨어져 6번 타순으로 밀려났었던 캡틴 강민수의 방망이가 완전히 부활했다는 것을 알리는 자축포이기도 했다.
'역시.'
한편 2루 베이스 언저리에서 캡틴 강민수의 만루 홈런을 바라보던 강호의 눈은 웃고 있었다.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후속 타자들에게 기회를 넘겼던 강호의 선택이 성공이라는 결실로 되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나 혼자 해결해 보려는 생각은 욕심에 불과해. 이미 그런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야구는 결국 팀플레이니까.'
강호는 천천히 3루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은 후, 그랜드슬램을 때려낸 캡틴 강민수를 기다린다.
1루 주자인 채중석이 홈을 밟은 후, 드디어 타자 주자인 민수가 홈을 밟았을 때 강호와 민수의 손뼉이 힘 있게 부딪히고 있었다.
타악!
서로의 손뼉이 마주치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민수와 강호는 굳이 말이 필요 없는 교감을 눈빛으로 교환하며 함께 자이언츠의 덕 아웃으로 들어선다.
============================ 작품 후기 ============================
작중 배현수 투수의 실제 롤모델인 배영수 투수는 실제로 2013년부터 너클볼을 연마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1군에서 사용할 정도로 너클볼이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작중에서는 2018년부터 너클볼이 완성된 것으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한 때 155km의 강속구를 던졌던 배영수 투수의 부활을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인데 결과가
만루홈런이네요^_^;;;
배영수 투수를 응원하시는 분들은 추천 한 번 눌러주세요.^_^
독자님들의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