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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움직임들
숙소인 호텔 방에 자신의 짐을 풀고 있던 강호에게 최근 들어 친분을 쌓은 백업 포수 안민경이 찾아와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민경은 98년생, 22살의 어린 선수로 강호와 함께 스프링캠프를 함께 했던 2군 주전 포수에서 지금은 1군의 백업 포수로 승격한 상태였다.
그가 흥분된 어조로 강호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강호 선배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구단에서 지터하고 휴고를 웨이버 공시했답니다!"
강호의 숙소 방에 찾아온 민경은 지터와 휴고의 웨이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웨이버(waiver)공시는 권리포기라는 뜻으로서 구단이 소속선수와의 계약을 해제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강호가 베어스에서 방출될 때도 이 웨이버 공시를 통해 방출됐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웨이버 공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강호였다.
'구단에서 칼을 빼 들었구나. 한동현 감독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휴고와 지터를 동시에 방출하다니. 하긴 지터와 휴고가 팀에 와서 올린 성적을 생각해본다면 방출을 결정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돼.'
강호는 기억 속에 있는 두 외국인 선수의 기록을 떠올려 본다.
지터는 팀의 에이스 역할을 기대하며 데리고 온 우완 강속구 투수였지만, 구속이 130km대에 머물며 선발 승 없이 구원으로만 1승을 올리며 1승 5패, 방어율 8점대의 참담한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휴고는 작년 시즌 팀이 부족했던 장타력과 우익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스카우트 팀의 반대를 무릎 쓰고 한동현 감독의 주장대로 영입한 외인 타자였지만, 홈런 1개를 때릴 동안 30개가 넘는 삼진을 기록하며 2할 3푼의 타율로 2군에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
두 외국인 선수 모두 구단에서 영입한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악의 계약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라일리는 살아남은 모양이네."
강호는 또 한 명의 외국인 용병 투수를 떠올리며 민경에게 대꾸했다.
구단이 칼을 빼들면 세 명의 외국인 선수 모두를 교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비교적 준수하다 말할 수 있는 성적의 라일리 투수는 지켜보기로 한 것 같았다.
라일리는 현재 팀의 1선발, 좌완 외국인 투수로 3승 4패에 4점대 방어율을 기록 중에 있었다.
'그 정도 성적이면 크게 나쁠 것은 없으니까 구단 스카우트 팀에서도 지켜보자는 입장인가 보네. 라일리의 구위가 나쁜 것은 아니니까. 승계 주자를 두고 마운드를 내려가면 뒤이어 오르는 불펜들이 승계 주자 실점을 내주면서 방어율이 올라간 거니까. 라일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 불펜진만 좋았다면 방어율이 3점대로 내려갔을 테니까. 3승 4패인 승패도 조금은 달라졌겠지.'
강호가 홀로 살아남은 라일리 투수에 대해 생각할 동안 곁에 있던 대우가 민경에게 묻고 있었다.
대우는 여전히 강호의 원정 룸메이트로 있었다.
"민경 선배님. 그럼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이 오는 거 아닙니까?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냥 웨이버만 한 게 아니라 교체를 하는 거죠?"
대우의 질문에 민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98년생인 민경은 팀의 막내 격이지만, 00년생인 대우는 민경보다 두 살이 어려 1군에 이름 올린 선수들 중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다.
그런 대우가 불펜 핵심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구단의 상황과 본인의 노력이 겹친 행운과도 같은 일이어서 대우는 구단의 내부 사정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렇겠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데 기사를 읽어보니까 구단에서 영입할 만한 몇몇 외국인 선수들을 추린 모양이던데. 다음 주까지는 결정을 내릴 건가봐."
민경의 대답에 대우는 즉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구단에서 보도 자료로 내놓은 기사를 검색해 본다.
"강호 선배님, 여기 있습니다. 지터하고 휴고의 웨이버 공시 기사요."
대우가 검색해준 두 외국인 선수의 웨이버 공시 기사를 읽으며 강호는 생각에 잠긴다.
'시즌 초반부터 부진했던 두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겠다는 구단 의도는 옳아 보여. 그런데 그 시점이 중요해. 한 감독이 자진 하차한 시점에서 손명학 선배와 윤길준 선배, 그리고 문표 선배가 1군에 콜 업 되면서 팀에 부족했던 불펜과 대타 자원에 여유가 생겼어. 여기에 새로운 외국인 선수 2명이 합류하게 된다면 충분히 중위권 도약이 가능해. 구단에서 김민철 대행 체제로 승부수를 띄운다는 뜻일까?'
강호가 보기에는 구단에서 확실한 칼을 빼든 것으로 보였다.
만약 여기에 몇몇 한 감독 계로 분류되던 코칭스태프까지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김민철 대행의 정식 감독 계약이 확실시 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잠시 후, 호텔 로비를 지나다 우연히 듣게 된 코치들의 대화를 통해 강호의 추측은 확신으로 바뀐다.
"박한중 코치하고, 안준영 코치가 어제 날짜로 관둔 모양이야. 구단에서도 사직서를 수리했다고 하네."
우연히 듣게 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팀의 불펜코치인 이용진 코치였다.
업무 특성상 접점이 많지 않아 강호와의 친분은 딱히 없는 이용진 코치. 그가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강호와 큰 친분이 없는 배터리 코치 이동수였다.
이동수 코치는 이용진 코치의 말에 놀라면서 실리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럼 잔여 연봉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것도 포기하고, 나가겠다는 거예요?"
"잔여 연봉은 구단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챙겨주겠지. 앓던 이로 여기던 한 감독 계 코치들이 자발적으로 나가준다는데 그 정도쯤은 챙겨주지 않겠어?"
"그럼 이제 한 감독 계 코치들이 팀을 나갔으니까 김민철 대행님께 구단이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일까요?"
두 사람은 로비를 지나며 대화를 나누다가 마주 걸어오는 강호를 발견하고는 즉시 말을 멈춘다.
강호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어설픈 표정으로 인사를 받고는 강호를 지나쳐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강호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그럼 공석이 된 수비코치하고, 주루코치는 누가 임명되는 겁니까? 2군에 있는 코치를 올리는 걸까요?"
"글쎄. 아마 그렇지 않을까? 2군에 있는 서학수 수비코치를 올리고, 김대주 작전코치를 주루코치로 올릴 수도 있겠지. 2군에는 주루코치가 따로 없잖아. 김대주 코치가 김민철 대행님과는 학교 선후배 사이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겠어?"
이용진 코치와 이동수 코치의 대화를 들은 것은 여기까지였다.
두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자 더 이상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전제만으로도 사태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어떻게 된 거야? 구단에서는 손성조 감독님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었나? 이대로 김민철 대행이 감독 계약을 하는 건가?'
강호는 점점 높아지는 김민철 대행의 정식 감독 계약 가능성에 깊은 생각에 잠긴다.
'김민철 대행도 나쁘지는 않아. 한동현 감독과는 다르게 김 대행님은 상식적인 선수단 운용을 하는 분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 대행이 손성조 감독님보다 좋은 지도자라는 뜻은 아니야. 자이언츠가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손 감독님이 총사령탑을 맡는 게 최고의 선택지일 거야. 구단 수뇌부들은 정말 그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외면하려는 거야?'
강호의 생각으로는 능력이나 연륜으로나 그 어떤 것을 따져보아도 김민철 대행보다는 손성조 2군 감독이 최고의 선택지로 보였다.
강호 본인도 개인적으로 손성조 감독이 총사령탑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김민철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강호의 마음에 약간의 파문이 일고 있었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나는 일개 선수에 불과해. 구단의 감독 임명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야. 당장 오늘 경기부터 걸려있는 중요한 타이틀에 집중하기로 하자. 정신 차려야 해. 나는 야구 선수야. 코칭스태프나 구단 직원이 아닌 야구 선수. 선수는 경기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야.'
강호는 외국인 선수들의 웨이버 공시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태를 그렇게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관여할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본분에 맞게 경기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렇지가 못한 모양이었다.
"2군에서 서학수 수비코치님이 1군으로 올라온다며? 그럼 주루 코치는 누가 올라오는 거야?"
"낸들 알겠어?"
"저는 압니다. 구단 직원한테 들은 건데 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유력하다는데요? 이름이 뭐였더라, 조금 특이한 이름이었는데, 성이 기 씨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선배 선수들은 숙소인 호텔 방에 삼삼오오 모인 채 외국인 선수 웨이버 공시와 코칭스태프 교체로 인해 뒤숭숭해진 분위기에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강호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좋았던 팀 분위기가 또 다시 흔들리고 있어. 이대로는 오늘 경기부터 안 좋은 흐름이 나타날지도 몰라.'
흔들리는 팀 분위기에 강호가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오늘부터 시작될 이글스와의 시리즈 성적이었다.
만약 자신이 고참 선수의 입장이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수들의 멘탈이 흔들리지 않도록 독려했겠지만 강호 본인은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오른 신인 선수다.
이런 사태를 보고 나설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별 수 없겠구나. 경기에서 팀 분위기를 바꿔볼 수밖에. 흔들리는 팀 분위기는 선수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한 방으로 해결하도록 하자. 하나 남은 미션을 수행해야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기는구나.'
강호는 오늘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일회용 타격 아이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문표에게 홈런 스윙이라고 지적받았던 스윙 폼을 고수해서라도 팀 분위기를 바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런 강호의 계획 속에 시간은 흘러 5월의 마지막 경기인 31일 금요일, 이글스와의 시리즈 2차전 첫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5월 31일 금요일, 대전 이글스파크에서 열리는 이글스와 자이언츠, 자이언츠와 이글스 간의 시리즈 2차전, 4번째 경기의 중계를 맡은 캐스터 배성한입니다. 해설에는 안경훈 위원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캐스터의 목소리와 함께 양 팀 경기의 TV중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인사말로 서두를 뗀 배 캐스터는 곧장 오늘 야구계의 이슈 거리를 거론하고 나선다.
"오늘 자이언츠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웨이버 공시가 있었습니다. 선발로 영입해서 불펜 투수로 활용하던 지터 투수와 재활 군으로 내려가 있던 우익수 휴고에 대한 방출 결정을 내린 건데요. 이제 곧 자이언츠 구단은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게 되겠네요?"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연결되는 배 캐스터의 물음에 준비하고 있던 안 위원이 대답의 말을 꺼낸다.
"네, 지금 미국에 있는 자이언츠의 사도스키 스카우터가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이언츠 구단 쪽에서 전해 듣기로는 투수 쪽에서 4명, 타자 쪽에서도 4명의 후보 선수가 있다고 하네요. 지금은 마이너리그도 리그가 진행 중에 있거든요. 좋은 선수를 추려내기에는 어려운 여건이겠지만, 자이언츠의 사도스키 스카우터라면 또 한 번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줄 가능성이 높겠어요. 이번만큼은 자이언츠 팬들도 좋은 결과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 위원은 자이언츠 구단에게 미리 전달받은 정보를 거론하며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영입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전한다.
그 후 1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고 배 캐스터가 변화된 자이언츠의 선발 라인업을 읽고 있었다.
"자이언츠 타순입니다. 1번에 중견수 전준오, 2번 우익수 유성철, 3번 유격수 백강호, 4번에는 지명타자 채중석, 5번에 1루수 최문표, 6번에는 캡틴 강민수, 7번에 2루수 최훈, 8번 3루수 손호섭, 9번 좌익수 김중호 순입니다."
자이언츠의 타순을 읽어낸 배 캐스터는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에 대해 저적하고 나섰다.
"오늘은 자이언츠의 4번 타자가 바뀌었습니다. 3루수 황제인 선수를 주전에서 빼고, 지명타자 채중석을 4번 자리에 기용했어요. 3루수로는 백업 내야수인 손호섭 선수가 8번 출장했습니다."
"네, 황제인 선수가 경기 전에 손목 통증을 호소했거든요. 김민철 감독 대행에게 물어보니까 라이온즈 전부터 황제인 선수가 손목 통증이 조금 있었다고 해요. 심한 것은 아닌데 휴식 차원에서 빼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1루수로 최문표 선수가 기용됐죠. 최문표 선수가 올 시즌 2군 성적이 좋거든요. 타율이 4할 대가 넘었습니다. 단점으로 지적되던 수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듭니다. 여러모로 자이언츠는 올 시즌 많은 2군 선수들이 1군에서 활약해 주고 있어요. 팀 성적이 하위권이긴 해도, 항상 단점으로 지적되던 2군 선수들과 1군 선수들 간의 실력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거든요. 6월부터 자이언츠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안경훈 위원은 긴 설명으로 자이언츠의 달라진 부분을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자이언츠의 1번 타자인 전준오가 볼넷으로 출루하고, 2번 타자 유성철은 3루 땅볼로 물러난다.
유성철의 내야 땅볼에 더블 플레이가 나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런 앤 히트 작전으로 인해 1루 주자인 전준오는 2루에 안착. 1회 초 1사 주자 2루의 상황이 강호에게로 연결되고 있었다.
"후우."
강호는 타석으로 들어서기 전, 길게 심호흡을 해보인다.
첫 타석부터 아이템을 사용할까말까를 망설이던 그는 우선 한동안 살피지 않았던 자신의 상태창을 한 번 확인하고 나섰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95(+5)
파 워:84.1(+3)
선구안:71.1
주 력:90.5
수 비:83.4
송 구:70.5
멘 탈:87.7
*안타 칠 확률 16%증가
수치상의 변화는 없었지만, 최근 훈련으로 인한 성과는 수치에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 능력치는 수치로 표시되는 것보다 높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주자가 득점권 상황이어서 패시브 스킬인 '칠 때 친다'스킬에 적용되고 있었다.
'주자가 2루에 있는 득점권 상황이야. 스킬 효과로 컨택과 파워 모두 상승한 상태다. 이 정도 스탯이라면.'
강호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상태창의 스탯을 확인하며 스스로가 세운 타격 전략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 작품 후기 ============================
자이언츠 팀 최초 한국인 타자 20-20기록을 다루는 오늘 편을 다 쓰고난 후, 글에 등장하는 자이언츠의 4번 타자 황제인 선수의 실제 롤 모델인 황재균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롯데 자이언츠 한국인 타자 최초로 20-20을 달성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로 인해 글의 내용을 수정할까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거론된 부분이라 놔두기로 했습니다.
아쉽지만 제 글에서는 황재균 선수의 오마주 캐릭터인 황제인의 20-20은 없는 기록이 될 예정입니다.
이에 독자님들의 오해가 없으시기를 공지로 남깁니다.
황재균 선수의 20-20달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