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32화 (13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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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움직임들

강호가 손성조 감독의 1군 합류를 바라며 자신의 배트를 집어들었을 무렵, 이미 강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시간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까지 2군에만 계실 생각입니까? 손 감독께서 잘 하고 있다고 평가하던 한동현 감독이 자진사퇴를 했어요. 팀 성적을 10위까지 떨어뜨린 뒤에 말입니다."

강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문으로 서두를 뗀 인물은 다름 아닌 구단의 최고 수장인 지정만 사장이었다.

그는 원정 경기를 마치고 상동으로 돌아온 자이언츠 2군 선수단을 찾아 손성조 감독을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김민철 대행은 좋은 지도자에요."

지 사장의 물음에 대한 손 감독의 대답은 간단했다.

김민철 대행이 좋은 지도자라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대신하는 손성조 감독.

속내를 읽기 힘든 표정과 마찬가지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말의 내용에 지 사장은 잠시 '으음'하고 침음을 삼킨다.

"손 감독의 말씀이 맞을 겁니다. 김민철 대행을 감독으로 정식 계약하고, 팀을 맡긴다면 중위권 경쟁이 가능할 거예요. 팬들이 항상 바라는 가을 야구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지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춘다.

이쯤에서 자신의 진심을 밝혀야 하는지, 아니면 돌려서 말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손 감독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내 속내를 밝히지 않고 거래를 하기에는 힘들겠어. 이제 우리 자이언츠도 승부를 걸어야할 때니 손 감독 같은 거인을 2군에서 썩혀둬서는 안되겠지. 더 이상 초짜 감독을 총사령탑으로 임명해서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을 올해도 재현할 수는 없는 거야. 손성조 감독을 반드시 1군 감독 자리에 앉히고 말겠어!'

지정만 사장의 속내는 그러했다.

그가 자신의 개인 루트를 통해 철저히 조사한 손성조 감독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육성군 선수들을 주전급 선수로 키워내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손을 거쳐 스타급 선수로 성장한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왜 이런 사람이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2군이나 3군 지도자 자리에만 앉아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단한 능력과 식견을 가진 손 감독이었다.

'내가 생각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손성조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

생각을 모두 정리한 지 사장은 드디어 자신의 속내와 목표를 입 밖으로 꺼낸다.

"나는 가을야구나 보고 끝낼 생각이 없어요. 자이언츠는 프로야구 창단 때부터 같이 했던 원년 구단입니다. 우리가 우승을 못한 지가 얼마나 된지 아십니까? 27년이에요. 84년, 92년 우승 후에 우승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팀 창단 이후에 정규리그 우승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정만 사장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답답했을 뿐이다.

지정만 본인이 부산이나 경남 권 출신도 아니었고, 자이언츠의 팬인 것도 아니었다.

구단의 사장이 된 것도 본사 오너 자리를 놓고 벌인 각축전에서 참패하여 밀려난 것일 뿐이다.

'처음엔 치열했던 본부 임원 시절과는 다르게 널널하고, 경쟁 없는 구단 사장 자리를 즐기려고 했었지. 하지만 자이언츠의 구단 역사를 알고 나서부터는 그럴 수 없게 되었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야? 어떻게 원년 구단이라는 팀이 이 따위 역사를 가지고 있을 수가 있어? 우승 두 번이라니. 한 때 경쟁자라 불리던 타이거즈가 10번의 우승을 하는 동안 단 두 번이야. 이제 자이언츠는 어떤 상위권 팀과도 경쟁자로 불릴 수 없게 되었어. 수십 년의 세월동안 팬들을 실망시킨 하위권 팀으로 전락해 버렸으니까.'

지 사장은 구단 운영을 위해 공부했던 팀 자이언츠의 역사를 보고 경악해야만 했다.

원년구단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지 사장은 자신의 대에서 그 초라한 성적표에 마침표를 찍고자 했다.

그래서 선택한 사람이 바로 손성조 감독인 것이다.

"내 목표는 5강 경쟁을 통해 가을야구나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바라는 건 우승입니다. 우승 말이에요!"

지 사장은 드디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커다란 비전 하나를 제시하고 나섰다.

여전히 대답이 없는 손성조 감독의 태도에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자이언츠 1군 감독이 되어주시오. 나는 김민철 대행에게 정식 감독 계약을 제안할 생각이 없어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총사령탑은 손성조 감독, 바로 당신입니다!"

지정만 사장은 그렇게 말한 후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이미 승부수를 띄웠고, 모든 진심과 계획을 밝혔다.

이제 공은 자신에게서 손 감독에게로 옮겨졌다. 선택은 온전히 손 감독 본인의 몫인 것이다.

"...."

손 감독은 한동안 대꾸가 없었다.

그저 오랜 연륜이 담긴 눈빛으로 지정만 사장의 눈동자를 마주할 뿐. 지 사장 역시 손 감독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그의 눈을 마주한다.

지 사장 또한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구단 사장이라는 자리까지 오를 만큼 결코 녹록치 않은 사람이었다.

승부수를 띄운 마당에 당사자와 눈을 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묵직한 눈빛으로 손 감독을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손 감독의 침묵이 길어지자 조금은 불안해지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가 어떠한 답변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무렵, 드디어 손 감독이 입을 열고 있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뗀 손 감독의 말. 지 사장은 그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그 후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자이언츠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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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즈와의 시리즈 2차전 원정을 마치고 사직으로 돌아온 자이언츠 선수단.

금요일 새벽이 되어서야 사직으로 돌아온 선수단은 몇 시간의 짧은 휴식 후 이글스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대전행 버스에 오른다.

원정 버스에 몸을 실은 선수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28일부터 진행되었던 라이온즈 경기에서 위닝 시리즈를 거두며 팀이 8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30일 경기에서 아깝게 패하기는 했지만, 29일까지 팀이 3연승을 달렸다는 사실도 큰 의미가 있었다.

21승 28패. 현재 8위를 마크하고 있는 자이언츠의 전적이었다.

강호는 라이온즈와의 시리즈 동안 16타석 12타수 4안타 1홈런 3도루 5타점 5득점, 볼넷 4개를 얻어내며 3번 타순에서 자신의 몫을 완수하는 모습이었다.

5월 말 들어 페이스가 조금 떨어진 것은 아닌가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컨택과 파워가 동반 상승한 결과로 타구가 외야 뜬공으로 잡히는 비율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강호는 세 경기 동안 5할 대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4, 5번 타순에 기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기록이 타석에서 일회용 타격 아이템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성적이라는 점이 긍정적인 요소였다.

거기에 시리즈 동안 3개의 도루를 추가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3개의 도루가 추가되며 강호의 도루 기록이 40개를 달성한 것이다.

2위권 그룹과는 12개 이상의 격차를 내고 있는 좋은 페이스로 그 어떤 전문가들도 강호의 도루왕 가능성에 부정적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강호 후배. 도루왕 타이틀 미리 축하해."

강호는 옆자리에 앉은 문표가 난데없이 건넨 말에 쓰고 있던 VR안경을 벗었다.

원정 때마다 버스에서 진행되는 강호의 선구안 훈련과 악력 운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다.

이제 팀의 간판타자로 성장한 강호였지만, 스탯을 더욱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무슨 소립니까? 시즌이 한참 남았는데요."

강호가 VR안경을 벗으며 대꾸하자 그의 관심을 돌리는데 성공한 문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곧장 말을 붙인다.

"계속 그렇게 훈련만 하고 있을 거야? 어떻게 원정 가는 버스 안에서도 훈련할 생각만 하는 거야? 버스 안에서 그런 안경 쓰고 있으면 멀미 안 해?"

"저는 원래 멀미 안 한다니까요."

"그래. 강호 후배 잘 나신 거 내가 잘 알아. 아직 6월도 안됐는데 도루 40개를 찍고 있는 우리 자이언츠의 간판 아냐. 게다가 이번 시리즈에서 홈런 3개만 더 때리면 팀 역사상 최초의 20-20을 기록하는 토종타자로 기록되고 말이야. 아주 좋겠어."

"20-20은 최초 기록도 아닌데요. 2015년에 아두치가 달성했잖습니까? 그리고 이번 시리즈 동안 홈런 3개를 어떻게 때립니까? 홈런이 치고 싶다고 나오는 기록도 아니잖아요."

강호는 문표의 어이없는 말에 반문하고 있었다.

이번 이글스 원정에서 마치 자신이 3개의 홈런을 추가할 것을 확정적으로 말하는 문표에게 따져 묻게 된다.

"어허! 이거 왜 이래? 요즘 강호 후배의 스윙이 예전보다 훨씬 커졌던데. 누가 봐도 홈런 스윙 아냐? 홈런 욕심 없는 타자가 그렇게 큰 스윙을 한다는 소린 내가 프로야구 14년 차 동안 들어본 적이 없어."

문표의 지적에 오른 편에 앉은 박상현 투수가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든다.

"나는 프로야구 경력 20년 차 동안 들어본 적 없어. 강호가 요즘 스윙이 좀 커지기는 했지. 나는 시원시원하게 자기 스윙하는 모습이 보기 좋던데, 왜? 상대팀 투수들한테 위협도 되고. 강호가 2할 대 타자면 위협이 안 되겠지만, 4할을 치는 타자가 풀 스윙하는 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아?"

문표의 말에 동조하며 시작한 박상현 투수의 말은 어느새 강호에 대한 변호로 끝을 맺는다.

그런 상현의 말에 문표는 얼른 태세를 전환한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강호의 바뀐 스윙이 상대 배터리한테 위협이 된다는 말을 하려던 거예요. 그리고 강호의 타격 능력이면 이번 시리즈에 홈런 3개 정도 추가하지 않을까요? 우리 강호 후배의 타율이 무려 4할 5푼이지 않습니까? 4할 대 타자가 자기 스윙을 시작했는데 세 경기에서 홈런 3개 정도는 때려주겠지요. 안 그래, 강호?"

문표의 물음에 강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안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 타율은 4할 4푼 9립니다."

문표의 말에 오류를 정정해준 강호는 속으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문표 선배나 상현 선배님이 느끼고 있을 정도면 우리를 상대할 팀들 역시 내 스윙이 커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거야. 어쩌면 이번 시리즈에서 거기에 맞춘 투구 전략을 들고 나올지도 모르겠구나.'

문표와 상현이 말하고 있는 스윙 문제를 강호 본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달라진 컨택 능력과 파워 스탯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큰 스윙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라이온즈와의 시리즈 3경기 동안 타율이 3할 3푼 3리로 감소하며, 외야 뜬공 비율로 처리되는 범타 비율이 높아졌다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보기에 따라서는 홈런 같은 장타를 의식한 스윙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직 루키나 다름없는 내가 20-20기록 달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태야. 홈런 기록을 채우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거기에 이글스 전력 분석원이나 배터리 역시 포함이 되겠지.'

강호는 문표가 꺼낸 전제에서 이번 시리즈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전략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상대 팀의 배터리가 자신의 커진 스윙을 의식한 볼 배합을 한다면, 자신은 그것을 역으로 깨뜨리는 타격 전략을 짜면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문표 선배의 예견대로 이번 시리즈에서 20홈런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강호는 문득 문표의 장난스러운 말대로 결과가 만들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아직 달성하지 않은 하나의 미션과도 연결되고 있었다.

[Mission 8. 연타석 홈런]

정식 경기에서 한 경기 동안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라.

아직 남은 미션인 8번 미션을 떠올리며 생각을 해본다.

이미 7번 미션과 9번 미션은 달성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한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을 때려야 달성되는 8번 미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번 시리즈 경기에서 8번 미션을 달성하는 것과 함께 문표 선배가 말한 20-20을 노려봐야겠어. 내 능력만으로는 힘들 수 있지만, 내게는 프리마켓이라는 최고의 뒷배가 있으니까.'

속으로 이번 시리즈 동안 달성할 계획을 세운 강호는 두 선배와의 대화가 끝난 후, 자신의 훈련에 집중한다.

그런 강호와 선수단을 태운 원정 버스는 대전으로 진입하는 IC를 지나고 있었고, 잠시 후 원정 숙소인 유성 호텔에 도착한 선수단은 충격적인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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