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29화 (12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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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수단

강호는 휴식일인 월요일에 오썬 스포츠의 허일수 기자와 오랜만의 재회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신인 급 선수인 강호의 입장으로서는 구단에서 지시한 인터뷰 스케쥴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허일수 기자와는 과거 베어스 2군 시절에서의 좋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인터뷰는 격식 없이 진행되는 인터뷰 자리였다.

"백강호 선수.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드리고 종종 연락드려도 될까요?"

허 기자는 인터뷰를 마친 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강호에게 악수를 건네 온다.

강호는 허 기자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대신 경기 있는 날은 연락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휴대폰 확인을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강호의 대답에 허 기자가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다.

"일주일 중에 6일 동안은 매일 경기 스케쥴이 잡혀 있으니 월요일 빼고는 연락이 어렵다는 말이네요. 하하. 이해합니다."

허 기자는 강호의 대꾸에 그렇게 응수한 후, 걸음을 옮기려다 문득 생각이 난 것인지 얘기 하나를 꺼낸다.

"아! 백강호 선수. 요즘 인터넷 상에 백강호 선수의 팬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sns나 트위터를 안 한다고 했으니 잘 모르시겠지만, 백강호 선수가 팬들하고 함께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 상에 퍼져나가고 있어요. 물론 반응은 좋습니다. 혹시 시간 나시면 한 번 검색해 보세요. 재밌을 겁니다."

허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자리에서 강호를 향해 그렇게 말을 했다.

강호는 그 말을 크게 담아두지 않고 예의상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작별을 고한다.

허 기자가 악의적인 기사를 쓴다거나 자극적인 소재의 기사를 쓸 거라고는 걱정되지 않았다.

두산 2군 시절 경험한 허 기자는 선수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사람이었고,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전문성 있는 야구 지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기사로 풀어내는 기자였다.

'덕분에 오전 시간은 무료하지 않게 보냈네.'

강호는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상동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이왕 사직까지 온 김에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돌린게 된다.

"지금 상동으로 돌아가 봐야 할 일도 없는데. 침대에 누워서 자료를 읽거나 러닝을 하는 게 전부겠지. 차라리 그럴 바에 경기장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

강호는 그렇게 되뇌며 사직구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직업이 야구 선수라서 야구에 전념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강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은 바로 야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휴식일이 되어도 야구 훈련이나 개인 운동을 제외한다면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취미생활을 가지기에는 강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너무도 뜨거웠던 것이다.

"백강호 선수! 안녕하세요. 오늘도 개인 훈련 나오신 거예요?"

구장 내부에서 마주친 구단 직원들이 강호를 향해 인사를 해온다.

강호 역시 그들에게 마주 인사하며 익숙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개인훈련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강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체력 단련실이었다.

"어?! 강호도 왔네? 마침 네 얘기하고 있었는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단련실에 들어서는 강호에게 말을 건네는 1루수 김상훈. 그와 함께 익숙한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는 그 중 자신에게 말을 건넨 상훈의 인사에 대꾸한다.

"제 얘기요? 혹시 나쁜 일입니까?"

"하하하, 아니~ 요즘 인터넷에 네 얘기가 하도 많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찾아보고 있었어. 강호 너 대단하네. 벌써 인터넷에서는 스타네, 스타!"

상훈은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강호에게 내밀며 웃어 보인다.

강호는 상훈이 내민 태블릿 PC를 받아들고는 화면에 떠있는 각종 사진들을 넘겨본다.

그런 강호에게 상훈이 물었다.

"너 언제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어준 거야? 온통 네 사진이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네이버나 다음에 '자이언츠'라고 치면 네 사진밖에 안 나올 정도야. 언제 날 잡아서 하루 종일 사진 찍어주러 다니는 거야? 휴식 일에는 경기장에 훈련하러 오거나 숙소에 틀어박혀 있다며? 언제 이렇게 팬들하고 사진을 많이 찍은 거야?"

상훈은 강호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태블릿 PC에 가득 찬 사진들과 sns메시지들, 그리고 트위터 코멘터리 등을 넘겨보며 묻고 있었다.

'허 기자님이 얘기했던 게 이거구나. 가끔 러닝을 하거나 외출할 때마다 팬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했던 걸 거절하지 않고 찍어줬더니 사진이 이렇게 많아졌네.'

강호는 사진을 함께 찍어준 팬들이 이토록 활발하게 sns와 인터넷에 사진을 전파할 줄은 몰랐던 건지 자신의 얼굴로 도배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훈이 손가락을 터치해 넘겨주는 자신과 관련된 메시지와 코멘터리들을 읽게 된다.

"백강호 선수, 길가다가 만났는데 키도 엄청 크고 이렇게 잘 생기셨네요. 와, 대박! tv에서 볼 때는 눈매가 너무 무서워서 사진 안 찍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웃으면서 사진 찍어주셨어요. 백강호 선수, 화이팅!"

"백강호 선수, tv로 보던 거 보다 인상이 너무 좋아요. 친절하고요. 같이 사진 찍어 달라고 하니까 바로 찍어줬어요. 그리고 완전 잘생겼어!"

"백강호 선수랑 괜히 찍었어. 내가 못 생겨 보이네. 얼굴도 되게 작고, 키도 엄청 크네요. 화면으로 볼 때는 그렇게 안 커보였는데 바로 옆에서 사진 찍을 때 보니까 무슨 거인인줄 알았어요. 완전 듬직합니다. 여동생 있었으면 소개시켜 줬겠는데 내가 여동생이 없어. 하하하~"

거의 모든 메시지와 코멘터리가 강호의 외모와 인성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강호를 욕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상훈 역시 코멘터리 내용을 모두 읽어보았는지 강호를 향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팬클럽인 줄 알았다니까. 그러고 보니까 요즘 경기장에 네 이름으로 된 플랜카드들이 많이 보이던데. 팬클럽은 언제 그렇게 생긴 거야?"

상훈의 말에 단련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강호에게로 향한다.

백업 포수 안민경과 강호의 원정 룸메이트인 대우, 그리고 성철과 박철 등의 시선이 강호에게 쏟아졌다.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제가 부른 것도 아닌데요.'

강호는 그렇게 대답하려다 이내 말을 삼키게 된다.

갑작스레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옮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렁차게 웃음 짓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강호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하하하~ 잘들 계셨는가? 이 몸이 왔다네! 타격이 부진한 타자들은 긴장 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자이언츠 1군을 평정할 테니까."

호탕한 목소리로 소란을 떠는 사람은 다름 아닌 최문표 선수였다.

지금쯤이면 2군 일정을 위해 이동했을 그가 사직구장의 체력단련실에 와있는 것이었다.

영문을 떠나서 오랜만에 보게 되는 반가운 문표의 모습에 강호가 태블릿을 든 채로 문표를 향해 다가선다.

"문표 선배님! 1군으로 오신 겁니까?"

"당연하쥐~ 한 감독도 하차한 마당에 내가 언제까지 2군에 처박혀 있어야 돼? 내일 경기부터는 이 몸께서도 1군 엔트리에 포함이 된단 말씀이야. 아 참! 손명학 선배하고, 윤길준 선배도 1군으로 콜 업 되는 사소한 일이 있지만, 내가 콜 업 된 게 주된 내용 아니겠어?"

문표는 들고 온 백 팩을 내려놓으며 강호와의 반가운 해후를 함께 한다.

그런 문표를 향해 상훈과 나머지 선수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배님. 그럼 내일 합류하시는 거 아닙니까? 오늘은 휴식일인데 어쩐 일로 구장에 오신 겁니까?"

상훈의 물음에 문표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오히려 되묻는다.

"그러는 후배님들은 휴식일인데 집에서 안 쉬고 경기장에서 뭐하는 거야? 나는 그냥 내 사물함 체스터가 준비됐는지 확인하러 온 건데. 후배님들은 개인 운동을 하러온 모양이네? 이것 참.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문표는 1군에서 자신과 포지션 경쟁을 하게 될 상훈을 장난스럽게 노려보며 대꾸했다.

그러다가 강호가 들고 있던 태블릿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건 뭐야? 이리 줘 봐. 으잉? 강호 후배. 사진 빨 잘 받는데? 이 사람들은 강호 후배 팬클럽이야? 닭살 돋게 칭찬을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원래 일반인들이 유명인들보면 욕하고 비난하는 게 정석 아니었어?"

"선배님. 대체 밖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시기에 욕을 먹는다는 겁니까?"

"아니, 나는 뭐 별 거 안 해. 사진 찍어달라고 해도 안 찍어줘. 내가 사진 빨이 엉망이거든. 그러니까 욕하던데?"

문표는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자신의 1군 콜 업을 강호를 포함한 다른 선수들에게 신고한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다음 시리즈를 위한 화요일 아침이 밝아 있었다.

자이언츠 선수단은 시리즈 두 번째 맞대결을 위해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의 수성구로 이동한다.

대구를 향한 원정 버스 안에서 강호의 왼쪽 자리에 앉게 된 문표.

그는 악력 운동을 하면서도 상현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강호를 보며 피식 웃음 짓게 된다.

"우리 강호 후배 많이 컸구만. 박상현 선배님 같은 고참 선배들하고 얘기도 나누고 말이야. 나랑 같이 2군에 있을 때는 자기 앞 가림 못하는 코 찔찔이 같았는데, 이제 1군 주전 선수 같은 느낌도 물씬 나고 그러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잔뜩 섞은 문표의 말에 강호가 고개를 돌리며 대꾸한다.

"제가 무슨 갓난 애깁니까? 코를 흘리게요."

"코는 안 흘렸었나? 미안해. 내가 기억력이 요즘 조금 안 좋네. 그럼 딴 거 흘렸어?"

"무슨 소립니까? 타격 실력으로 1군 올라오신 게 아니라 농담 따먹기로 콜 업 되신 겁니까?"

"오오~ 강호 후배. 이제 그런 농담도 할 줄 아네. 좋아. 이제 내 아재 개그를 받아줄 동료가 생겼어."

문표는 장난에 장난으로 대꾸하는 강호의 말에 웃어 보인다.

친화력과 적응 능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쾌활한 성격은 여전한 문표였다.

'문표 선배의 친화력과 민수 선배의 친화력 중 누구의 친화력이 더 좋을까?'

강호는 속으로 드는 쓸데없는 생각을 고개를 흔들어 지워내며 무릎에 올려진 리포팅 자료에 집중한다.

구단에 요청해서 새롭게 받은 라이온즈 자료에는 오늘 맞붙게 될 상대팀 선발 투수에 대한 상세 자료가 나와 있었다.

문표는 강호의 곁에서 리포팅 자료를 함께 읽으며 강호의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강호 후배, 농담이 아니라 이제 진짜 야구선수 같네. 1군에 있는 동안 공부 많이 한 모양이야?"

문표의 진지한 어조에 강호는 오히려 미소 짓는다.

하도 장난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다보니 문표의 진지한 모습이 웃기게 느껴질 정도였다.

"선배님도 공부하시렵니까? 자료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됐어. 나는 본능 형 타자라고. 경기 전에 지나치게 공부를 많이 하면 타석에서 생각이 많아져서 안 돼."

문표는 강호의 제안에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문표는 자료 분석을 통해 상대방 배터리의 심리를 읽은 두뇌싸움보다는 경기 때마다 본능에 충실한 타격을 하는 타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군 무대에서 3할 5푼 이상은 항상 때려주는 타자였기 때문에 손성조 감독이 문표를 높이 사는지도 몰랐다.

"공부 많이 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두통이 생기는 건 아니고?"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박상현 투수가 문표를 향해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문표는 그 질문에 '하하' 하고 웃어 보이며 답했다.

"뭐 그런 것도 있습니다. 제가 한글에 좀 약하거든요."

어느새 진지한 태도를 버리고, 너스레를 떨고 있는 문표. 그를 포함해서 2군에서 올라온 손명학 투수와 윤길준 선수까지 추가 된 원정 버스는 잠시 후, 대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연호동의 라이온즈파크에 도착하게 된 자이언츠 선수단.

원정 팀에게 주어진 경기 전 훈련 시간동안 몸을 푼 선수들은 곧 라이온즈와의 시리즈 2차전을 맞이하게 된다.

"안녕하십니까? 라이온즈 파크에서 펼쳐지는 라이온즈와 자이언츠, 두 팀 간의 2차전 시리즈 중계를 맡은 권성호 캐스터입니다. 해설에는 조성한 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계석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자이언츠의 새로운 시리즈 맞대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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