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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힘
중석의 투런포로 1회 말을 마무리한 자이언츠 선수들은 각자의 글러브를 챙겨들고는 그라운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선발 투수인 성수제 역시 팀의 화끈한 득점 지원을 등에 업은 채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승을 따낼 기회야. 게다가 오늘 승리 투수가 되면 팀을 10위에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내게 된다! 최대한 실점 없이 막아보자!'
성수제 투수는 오랜만에 자신에게 찾아온 승전 기회에 욕심을 내게 된다.
한동안 팀의 부진으로 인해 승리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던 수제였다.
그런데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게 되면 팀을 10위에서 끌어올리는 의미 있는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수제의 욕심은 포수 미트를 향한 투구에도 어김없이 드러나게 된다.
"볼."
주심의 초구 볼 판정과 함께 포수인 캡틴 강민수는 눈썹을 꿈틀하게 된다.
'응? 초구가 좋지 않은데? 제구가 흔들리는 건가? 아니면 실투인 거야? 일단은 지켜봐 보자.'
수제의 초구가 싸인을 낸 것과는 달리 민수는 긴장된 표정으로 낮은 코스의 변화구 싸인을 낸다.
그런데 수제가 던진 2구는 초구와 마찬가지로 싸인을 낸 코스와는 거리가 먼, 높은 쪽 빠지는 공이었다.
포수의 미트를 훌쩍 넘기는 공에 주심은 볼 판정도 미뤄두고 몸을 피하기에 바빴다.
"어이쿠!"
주심이 놀란 목소리로 몸을 피한 후 수제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깨달은 강민수가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를 향해 황급히 뛰어 오른다.
"수제야, 왜 그래? 릴리스 포인트가 안 맞는 거야? 어디 아픈 건 아니고?"
강민수 포수는 먼저 성수제 투수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말로 입을 뗀다.
그러자 수제는 '아닙니다. 공을 놓친 거예요. 제구에는 이상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그의 대답에 수제의 갑작스런 제구 불안이 몸 상태 이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고 판단한 민수가 수제를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툭 친다.
"수제야, 너무 강하게 던질 필요 없어. 아직 2회 초잖아. 몇 점 내줘도 된다는 생각으로 어깨 힘 풀고 던져도 돼. 긴장하지 말고, 알겠지? 우리 쉽게 가도록 하자."
민수는 자신의 어깨를 털어 보이면서 수제 또한 어깨에 내려앉은 부담감과 욕심을 털어내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민수의 목소리는 혹시라도 수제가 자신의 말에 더욱 긴장하게 될까봐 친근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캡틴 강민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특유의 친화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힘 빼고 던지도록 할게요."
수제는 민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후 민수가 한 행동을 흉내 내며 자신도 어깨를 한 차례 털어 보인다.
그의 행동에 만족한 민수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제구가 불안정하던 수제의 3구째가 민수의 미트를 향해 던져진다.
퍼엉.
수제의 3구째는 1, 2구와는 다르게 스트라이크 존 근처에 던져진 공이었다.
약간 높기는 했지만, 스트라이크로 판정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코스였다.
"스트라이크!"
주심은 그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며, 이제 볼 카운트 2볼 1스트라이크 상황이 된다.
그 모습을 자신의 수비 위치에서 지켜보던 강호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공이 높아. 민수 선배가 마운드에 오르면서 심하게 흔들리던 제구가 잡혔지만, 아직은 공이 높아. 타이거즈 타선에게 높은 공은 위험할 텐데. 수제 선배가 아무리 좌완 투수라지만 타이거즈 타자들은 높은 코스에 형성되는 공을 어렵지 않게 때려낼 능력이 있어. 이제부터 위험할 수도 있겠어.'
강호는 여전히 높게 형성되고 있는 수제의 3구째를 바라보며 긴장감을 더욱 끌어 올린다.
타석에 선 타이거즈 타자는 4번 타자 나지환이었다.
강한 펀치력을 가진 그에게 수제가 던지는 높은 코스의 공은 때려내기 쉬운 배팅볼처럼 위태롭게 느껴진다.
강호는 나지환 타자가 우투우타인 것과 타구의 70%가량이 좌중간에 형성된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집중력 있는 수비를 위해 자세를 더욱 낮추게 된다.
그런 강호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이템 사용을 묻는 시스템 메시지에 강호는 미소 지어 보인다.
마침 타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으니 이 타구를 아웃카운트로 연결시킨다면 제구력이 흔들리는 수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먼저 시스템을 향해 '아니'라고 대답한 강호는 즉시 타구가 향할 것으로 보이는 3루 방면으로 몸을 날린다.
따악.
타구가 뻗는 것과 동시에 강호의 몸이 그라운드 위로 솟아오른다.
나지환의 잘 맞은 타구는 누가 봐도 좌전안타가 될 것 같은 질 좋은 타구였지만, 마치 예정된 것처럼 강호의 글러브에 빨려들고 있었다.
터억.
강호의 글러브에 나지환의 타구가 안착되면서 3루심이 아웃 콜을 선언한다.
3구가 정타로 연결되었을 때, 안타를 예상하고 있던 투수 성수제의 표정이 밝아진다.
"강호, 나이스!"
성수제 투수는 강호를 향해 글러브를 들어 올리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안타가 되야 할 타구가 아웃카운트로 뒤바뀌자 욕심으로 흔들리던 성수제의 마인드가 조금은 원래의 자리를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던지는 공은 여전히 높았다.
따악.
정타는 아니지만, 절묘한 코스로 형성되는 타구가 1루 라인을 걸치며 뻗어져 나간다.
나지환에 이어 5번 타자로 오른 이범화가 우익선상을 걸치는 타구를 때려낸 것이었다.
타구 방향을 확인하는 순간, 1루를 향해 걸음을 떼던 타자 주자 이범화.
"아...!"
그는 곧 한 마디의 침음과 함께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1루수 김상훈이 몸을 날리면서 선상에 걸친 채 빠져나가는 타구를 잡아낸 것이었다.
상훈은 자신이 타구를 잡아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일으켜 1루 베이스를 직접 밟았다.
"아웃!"
1루심의 아웃 판정이 있은 후, 투수 성수제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불길한 기운이 사라짐을 느낀다.
'그래. 욕심내지 말자. 나 혼자만의 경기가 아니잖아. 선수단 모두와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모든 팬들이 바라는 승리야. 욕심을 버리고,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투구에만 집중하자!'
수제는 욕심으로 가득 찼었던 마음을 비운다.
강호에 이어 1루수 김상훈의 호수비가 그의 들끓던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수제는 상훈을 향해 감사의 말을 건넨 후, 1회 초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공을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1회 초에 여민석 투수 코치가 칭찬했었던 그의 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선언으로 2회 초 자이언츠의 수비 상황은 끝이 난다.
나지환과 이범화를 내야 범타로 물러나게 만든 수제가 최근 타격감이 좋은 6번 타자 안치형마저 4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1회부터 시작된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맞이하게 된 2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
두 개의 홈런을 내어주기는 했지만, 심동석 투수의 여전한 구위를 보며 강호는 자신의 타석 기회가 3회에나 되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틀리고 말았다.
7번 타자인 김상훈부터 시작된 2회 말 공격에서 심동석의 빠른 속구를 공략한 상훈이 안타로 출루하고, 이어진 8번 타자 최훈이 볼넷 출루. 그 후 9번 타자인 김중호가 적시타를 때려내며 1타점을 추가하게 된 것이었다.
이어진 1번 타자 전준오가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다음 타자인 유성철이 내야 안타를 때려내며 1사에 주자 만루 상황이 만들어진다.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올라선 타자는 바로 강호였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메시지에 강호는 고개를 내젓는다.
예전 같았으면 타점 욕심에 타격 아이템을 사용했겠지만, 지금은 승부처나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90을 찍은 컨택 스탯과 '칠 때 친다'스킬의 보정 효과까지 더한다면 자신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타격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기회는 내 손으로 해결하자.'
결정을 내린 강호는 눈빛을 빛내며 마운드 위의 투수를 노려본다.
그 도전적인 눈빛에 심동석 투수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다.
동석의 입장에서는 1사 만루의 상황에 장타력이 좋은 강호에게 정타를 허용하게 된다면 대량실점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승부를 피하면 밀어내기 볼넷으로 점수를 내주게 된다.
이어지는 타순이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인 것을 생각하면, 승부를 피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결국 정면 승부만이 답이야!'
판단을 내린 심동석이 포수 미트를 향해 있는 힘껏 공을 뿌린다.
퍼엉!
포수 미트를 터뜨릴 듯이 울려 퍼지는 소리에 주심이 곧장 판정을 내린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선언은 스트라이크였다.
강호에게는 다소 멀어 보이는 코스였지만,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대신 타격 자세를 풀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사이 전광판에 뜨고 있는 동석의 구속을 확인한 관중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야? 152? 심동석이 저런 공도 던져? 무슨 좌완투수가 152를 던져?"
"와아, 타이거즈는 투수가 많나보네. 152를 던지는 좌완투수를 4선발로 쓰고 있는 거야?"
팬들의 목소리가 타석에 선 강호에게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153km야. 시스템이 알려준 구속은 정확하니까. 구위까지 좋은 이런 공을 타격한다면 배트가 밀려 뜬공이 나올 확률이 커. 포심은 버리자.'
강호는 포심 위주로 투구를 하고 있는 심동석의 포심 공략을 포기하기로 한다.
대신 2스트라이크 이후에 동석이 던지게 될 결정구를 노릴 생각을 하게 된다.
만루 상황에 4할 대 타자를 2스트라이크까지 몰아붙이고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밀어 넣는 공은 던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퍼엉!
"스트라이크!"
동석의 2구째가 뿌려지고, 또 다시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한다.
강호의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2구만에 2스트라이크가 만들어져버린 것이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52km
강호는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타석에서 반발짝 물러선다.
'혹시라도 포심을 또 다시 던진다면, 커트만이 답이겠어. 이 공은 정타로 때려내도 외야수 정면으로 가는 타구가 만들어질 거야.'
강호는 동석이 지금 던지는 포심을 정타로 때려내도 안타로 만들 수 있는 파워가 아직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치로 환산한다면 파워 스탯이 90은 찍어야만 동석이 던지는 강력한 구위의 공을 안타로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트 끝을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한 강호는 타격 자세를 취한 후, 이어진 동석의 3구째에 벼락같이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이번에는 1루 관중석을 향하는 파울 타구가 만들어진다.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이번 공 역시 존을 걸치는 150km대의 포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강호는 속으로 혀를 내두른다.
'3구만에 잡으려는 의도였어? 심동석 투수가 이런 투구도 할 수 있는 투수였구나.'
강호는 조금 더 긴장감을 끌어 올린 후 동석의 4구째를 대비한다.
딱.
4구째 역시 파울이 만들어지고, 경기를 지켜보던 자이언츠 팬들은 심동석 투수와 타자인 강호의 계속되는 접전 상황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와아~ 심동석도 대단하네. 지금 백강호 선수 배트 밀리는 거 봤어? 심동석 구위가 백강호 파워를 이기네."
"이기긴 누가 이겨? 아직 삼진 당한 거 아니잖아? 두고 봐. 백강호가 시원하게 한 방 때려줄 테니까."
자이언츠 팬들은 5구와 6구째까지 계속되는 파울 타구에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진땀 승부에 시선을 고정한다.
팬들의 입장으로서는 오랜만에 보게 되는 자이언츠의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최근 몇 주 동안 팀이 너무도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였기 때문에 한 감독 사퇴 파동이 있는 오늘 경기에서 이토록 재밌는 접전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자이언츠 팬들은 오늘 경기가 졸전이 될까봐 예매해둔 표를 취소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선수들을 믿는 팬 심으로 오늘 경기 관람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그 믿음에 보답하는 플레이로 오늘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정점을 찍는 것은 동석이 던진 7구째를 받아친 강호의 스윙이었다.
따악!
동석의 체인지업을 당겨 친 강호의 타구가 3루수 이범화의 곁을 스치는 페어타구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돌아, 돌아, 돌아!"
3루 베이스 코치는 모든 주자들에게 홈으로 쇄도할 것을 주문하고 있었고, 그의 주문대로
3루 주자 최훈이 천천히 홈을 밟은 이후 2루 주자 중호와 1루 주자 성철 역시 홈을 밟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2루!!"
파울 선상 밖에서 강호가 때린 페어 타구를 잡은 좌익수 나지환이 유격수 강한율의 외침에 홈 송구를 포기하고, 2루를 향해 공을 던진다.
지환이 던진 강한 송구가 2루수 안치형의 글러브에 빨려들고 있었지만, 이미 강호의 빠른 발은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만루 상황에서 모든 주자들을 일소하는 강호의 싹쓸이 2루타가 완성된 것이다.
"우와!!"
"잘했어, 백강호! 오늘은 이기자!!"
강호가 홈팬들을 향해 손을 뻗어보이자 사직 구장을 가득 채우는 함성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팬들의 바람대로 강호를 포함한 자이언츠 선수들이 어제와는 다른 플레이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나선다.
선발 투수 성수제의 호투와 타선의 폭발 속에 어느새 이닝은 6회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9대 2. 자이언츠가 크게 앞선 상황에서 오늘 경기의 최대 승부처인 6회 초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