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25화 (12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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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힘

1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은 좋은 예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삼진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삼진 판정 속에 선두 타자로 나선 전준오가 고개를 휘휘저으며 타석에서 물러선다.

그는 대기 타석에 있던 2번 타자 유성철과 강호를 지나치며 상대 선발 투수를 상대한 감상평을 말한다.

"오늘 동석이 공이 장난 아니네. 구위가 묵직한데, 포심 제구도 끝장이야. 제구력 안 좋은 투수가 하필이면 오늘 긁히는 날인가보네."

준오는 덕 아웃으로 들어서기 전, 성철과 강호에게 상대 선발 투수 심동석의 정보를 간략하게 말해준다.

'준오 선배 말처럼 심동석 투수의 제구력이 평소에 비해 월등히 좋아. 오늘이 긁히는 날인가보네.'

강호는 대기 타석에 있던 성철이 타석으로 향하자 그를 대신해서 대기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며 자신이 지켜 본 심동석 투수의 투구 내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오늘 타이거즈의 선발로 나선 투수는 팀의 4선발인 심동석이었다.

데뷔 시즌 이후 타이거즈 팬들과 코칭스태프의 지속적인 기대를 받으며 터질 듯, 터지지 않던 그가 작년부터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제구력 문제와 멘탈적인 부분을 보완해 선발 한 자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91년생, 올해로 29살이 된 심동석의 잠재력이 드디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심동석 투수의 제구력이 작년 시즌부터 눈에 띄게 안정되고 있어. 거기에 멘탈적인 약점도 보완해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유형의 투수가 돼버렸어. 과거의 나였더라면 가장 상대하기 힘든 유형의 투수였을 거야.'

강호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어쩌면 심동석 투수가 자신에게는 상극의 투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강호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받던 투수 유형인 완급 조절이 가능한 좌완투수인데다가 140km후반대의 강력한 강속구를 보유한 심동석이다.

과거 같았으면 헛스윙 삼진이나 운이 좋아 공을 때려내도 범타 처리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투수인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좌완 투수에 대한 약점도 어느 정도 극복했고, 파워가 늘어나서 140km후반대의 강속구도 정타로 때려낼 수 있게 됐잖아. 거기에 완급 조절 능력은 기간제 아이템으로 간파가 가능해졌어. 더 이상 심동석 투수와 같은 유형의 투수에게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어졌어.'

강호는 한 때 약점으로 지적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심동석 투수에 대한 분석과 그를 상대하기 위한 전략을 모두 구상한 후 타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2번 타자로 타석에 섰던 유성철은 심동석 투수의 5구째에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제 3번 타자인 강호가 타석에 설 차례. 두 사람의 대결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모두의 시선이 타석으로 향한다.

특히 중계석에 앉은 두 해설 위원 중,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뛴 경력이 있는 김신우 위원이 먼저 심동석 투수에 대한 해설의 말을 꺼낸다.

"오늘 심동석 투수의 제구력이 상당히 좋아 보이네요. 포심 구속도 147km까지 나오고 있고요, 구위도 묵직합니다. 투수들이 간혹 가다가 볼끝도 좋고, 제구력도 원하는 대로 던져지는 날을 긁히는 날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오늘 심동석 투수의 투구를 보니까 긁히는 날 같아요. 자이언츠 타자들 입장에서는 긴장할 필요가 있겠어요."

김신우 위원의 말에 반대편에 앉아 있는 박재헌 위원이 동감을 표하며 말을 받는다.

"반면에 타석에 선 백강호 타자도 최근 타격감이 무척 좋습니다. 4월 데뷔와 함께 맹타를 휘두르다 5월에 들어서서 타율이 많이 떨어지는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와이번스와의 시리즈에서 이틀 동안 전 타석 출루를 기록하고, 사이클링히트까지 때려냈습니다. 덕분에 5월 타율이 다시 4할 3푼 8리까지 올라갔어요. 시즌 타율은 4할 6푼 2리입니다. OPS가 1.497이나 되거든요. 기록만 놓고 본다면 심동석 투수에게 밀리지는 않을 거예요."

박재헌 위원은 최근 강호의 기록들을 나열하며 심동석 투수가 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동석의 긁히는 날을 말했던 김신우 위원과는 대조적인 해설 내용이었다.

같은 투수 출신이라 심동석 투수의 편을 들고 있는 김신우 위원, 반대로 호타준족의 상징이었던 타자 출신 박재헌 위원. 두 사람의 엇갈린 해설 속에 강호를 향한 심동석의 초구가 뿌려진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초구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강호는 동석의 초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서 반발짝 물러나 생각을 정리한다.

그가 조금 전에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서 보게 된 동석의 초구는 다음과 같았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9km

150km에 육박하는 강력한 속구가 초구로 뿌려진 것이었다.

앞선 타자들에 비해 더욱 빠른 속구 구속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를 대우해 주겠다는 뜻이겠지? 쉽게 승부하지 않겠다는 뜻이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강호는 자신에게 더 강한 구위의 공을 던지는 동석의 모습에 속으로 미소를 짓게 된다.

이제 상대 팀 투수들도 자신의 타격을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팀의 선발 투수가 경계해야할 정도로 성장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강호, 그 즐거운 감정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다시 타석에서 자세를 잡은 채 눈빛을 빛낸다.

그 투지 넘치는 모습에 자이언츠 홈 팬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역시! 백강호 눈빛 살아있네!"

"백강호 선수는 타석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한 방 해줄 것 같단 말이야!"

"당연하지! 두고 봐. 심동석이 긁히는 날이든 나발이든 백강호가 뭐든 때려내줄 테니까!"

자이언츠 홈 팬들은 스마트 폰으로 tv중계를 함께 들으면서 강호가 심동석에게 안타를 때려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바람은 응원의 목소리가 되어 강호에게 전달되었다.

'팀 순위가 10위까지 내려갔는데도 이렇게 응원을 해주시는 팬들이 있구나.'

강호는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팬들의 응원 소리에 배트를 쥐고 있던 손아귀에 더욱 힘을 준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타격 아이템이라도 사용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지만, 이미 아이템 사용의 기회는 지나가버린 상태였다.

지금 타석은 강호 본인의 능력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단타라도 때려내겠다는 각오로 상대 투수 심동석의 2구째를 기다린다.

구종: 슬라이더

구속: 130km

시스템 메시지는 심동석의 2구가 존의 외곽을 걸치고 들어오는 슬라이더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좌완 투수인 동석의 손끝에서 뿌려진 2구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갈 듯이 형성되다가 갑작스레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휘어들어오는 백 도어 슬라이더였다.

강호가 가장 꺼려하는 구종 중에 하나. 그러나 이 공에 배트를 휘두르는 강호.

따악.

약간은 빗맞은 타격음이 타석에서 울려 퍼진 후, 자이언츠의 덕 아웃에서 혼비백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습을 포착한 중계 카메라로 인해 중계석에서도 상황을 알게 된다.

"지금은 타구가 자이언츠 덕 아웃으로 날아갔어요. 다행히도 타구에 맞은 사람은 없지만, 전준오 선수가 많이 놀란 모양입니다."

조 캐스터의 말대로 타구가 자신의 근처로 날아든 것에 놀란 준오가 양 손을 가슴에 모은 채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중계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그의 목소리가 자이언츠 덕 아웃을 웃음 짓게 만든다.

"우 씨! 뭐야? 나 삼진당했다고 강호가 주의주고 있는 거야? 잘생긴 얼굴에 흠집 날 뻔 했네."

준오는 방금 전 위험할 뻔한 상황을 제스쳐로 표현하며 주변의 동료들을 웃게 만든다.

한 감독의 사퇴 문제로 아직까지 조금은 경직되어 있던 덕 아웃 분위기가 덕분에 조금은 밝아지게 된다.

그 모습을 중계 카메라를 통해 지켜 본 박재헌 위원이 입을 연다.

"지금 자이언츠에는 저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감독이 시즌 중에 하차했다고 해서 남은 시즌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베테랑 선수들이 경직된 선수단 분위기를 풀어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더욱 필요한 것은 선취점일 겁니다."

박 위원은 준오의 장난스런 행동으로 자이언츠 선수단 분위기가 밝아진 점을 말하며 이제는 자이언츠에게 필요한 것은 득점이라는 말로 해설을 이어나간다.

그의 말에 곁에 앉아 있던 김신우 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팀이 선취점을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백강호 선수의 이번 타석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홈런을 마음 먹고 때려낼 수는 없겠지만, 안타나 볼넷으로 출루를 해서 팀에게 기회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에요. 심동석 투수의...."

박 위원의 말을 받아 강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던 김신우 위원은 순간 말을 멈춘다.

왜냐하면 심동석 투수의 3구와 4구째를 골라낸 후, 5구째를 타격한 강호의 타구가 외야를 향해 빠르게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에 중계석의 조 캐스터가 김 위원의 말을 자르고 얼른 목소리를 낸다.

"아, 쳤습니다! 백강호 타자가 때린 타구가 우중간을 향해 멀리 뻗습니다! 우익수 노수강 선수가 쫓아가지만 역부족입니다. 이 타구는 사직구장의 오른 쪽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로 기록됩니다! 백강호 홈런!"

조 캐스터의 홈런 선언과 함께 현장을 찾은 자이언츠 홈 팬들의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운다.

강호는 그 속에서 빠른 걸음으로 베이스를 돌며 홈 팬들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15번째 홈런을 자축하고 있었다.

"와아~ 역시 백강호!"

"잘 했다! 오늘 좀 이기자! 자이언츠가 꼴찌해서 되겠어? 동네 창피하니까 얼른 올라가자!"

팬들은 홈런을 때려낸 강호에게 각자 저마다의 응원 메시지를 외치며 한 감독의 하차로 침체되어 있는 팀 분위기와 성적이 반등하기를 기원했다.

강호는 그런 팬들의 열화와 같은 목소리를 등에 안고 홈을 밟는다.

"잘 했어, 강호! 역시 한 건 해주네!"

"우리 강호 후배. 목마르지? 내가 음료수 가져다줄까?"

"한 발 늦었어. 내가 벌써 가지고 왔지롱. 강호야, 음료수 한 잔 마시고 편히 쉬고 있어. 나머지는 우리 선배들이 알아서 할게."

팀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강호의 홈런에 선배 선수들은 앞 다투어 강호를 향해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넨다.

특히 오랜만에 선발 라인업에 중심 타자로 이름을 올린 채중석은 대기 타석에 오르다 말고 덕 아웃으로 다시 돌아와 강호에게 하이파이브를 제안하고 있었다.

"잘 했어! 이 형님도 한 방 때리고 올 테니까. 음료수 한 잔 걸치면서 지켜봐. 강호야."

중석은 평소 그답지 않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강호를 향해 검지를 뻗어 보인다.

그 동작은 평소 홈런을 때린 강호가 팬들을 향해 하는 동작을 흉내내본 것이었다.

중석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강호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던 최고참 투수 박상현이 입을 연다.

"오올, 우리 중석이 오늘 컨디션 좋은 모양인데? 그럼 말만하지 말고 너도 홈런 한 방 때리고 와봐."

상현의 주문에 중석이 '보고만 계십시오. 제가 한 방 더 날리고 오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대기 타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따악.

이어서 4번 타자로 나선 황제인이 깔끔한 중전 안타로 1루로 출루하자, 2사 주자 1루의 상황이 큰소리를 치고 타석에 나선 채중석 선수에게로 이어진다.

"중석 선배님이 진짜 홈런 한 방 치시는 거 아닙니까?"

덕 아웃에서 2루수 최훈이 호언장담하고 나선 중석의 홈런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었다.

후배 선수들은 괜히 중석의 홈런을 기대하며 최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반대로 피식 하고 웃어 보이는 선수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팀의 최고참 투수 상현이 최훈의 말에 반박하고 나선다.

"홈런이 뭐 때리고 싶다고 다 때려지는 거야? 그럼 개나 소나 다 50홈런 때리고 있지. 그래도 중석이가 저렇게 기분 좋은 모습으로 타석에 섰으니까 볼넷 정도는 얻어주지 않겠어? 중석이의 최고 장점이 그거잖아. 볼넷 많은 거. 자, 두고 봐. 중석이가 분명 볼넷으로."

상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심동석 투수의 초구에 배트를 낸 채중석의 호쾌한 스윙에 맞은 타구가 강한 소리를 내며 외야를 향해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악!

홈런이었다.

배트에 맞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중석의 대형 타구가 사직 구장의 좌중간을 완전히 가로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강호에 이어 중석이 때려낸 투런포가 또 다시 사직구장을 함성 소리로 들끓게 만든다.

"우와! 뭔데 뭔데? 오늘 무슨 날인데 그러는 거야?"

"뭐긴 뭐야? 한동현, 그 인간이 감독 자리 박차고 나가니까 선수들이 축포를 터뜨리는 거지."

"그래. 오늘 경기는 좀 이기자!"

홈 팬들의 열띤 응원 속에 베이스를 돌고 홈으로 돌아온 채중석 선수.

그의 득점으로 1 대0으로 앞서고 있던 팀 점수가 더해지고 있었다.

3대 0.

오늘 경기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자이언츠 타선의 대폭발을 알리는 시작점이었다.

그동안 한 감독의 전횡으로 불협화음을 내던 자이언츠 선수단이 강호의 홈런과 중석의 이어지는 투런포가 구심점이 되어 저마다 내제되어 있던 기량들을 자이언츠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발산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경기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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