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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시작되다
구단 사장실에서 한동현 감독의 해임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무렵, 자이언츠의 소식을 다룬 기사마다 팬들의 분노를 담은 댓글 폭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그 내용은 뜬금없이 강호를 좌익수로 기용한 한 감독의 선수 기용과 팀이 10위까지 추락하게 된 팀 성적 하락을 성토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기사마다 달린 댓글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어제 백강호 선수 좌익수 기용하는 거보고 전광판이 표기 오류인줄 알았네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감독이 제 정신인 걸까요? 김민아, 김재호, 유성철, 박철. 외야 자원이 이렇게 많은데 꼭 백강호를 좌익수로 써야 했습니까? 정 뭣하면 2군에 한택근이나 정민성 같은 루키들도 있잖아요."
"한 감독 완전 미쳤구만. 이 정도면 감독 교체 각 아니야? 왜 이런 사람을 감독으로 앉힌 거야? 구단은 초보 감독 성애자인거야? 경험 있고, 실력 있는 감독으로 앉히면 누가 구단 수뇌부들 월급 깎기라도 해?"
"자이언츠가 위즈 밑에 깔리는 걸 다 보네. 이거 너무 한 거 아냐? 나 수원 사는데 이제 자이언츠 팬이라고 말도 못하겠어. 동네 창피해서 원."
"감독 좀 제발 바꿔, 바꾸라고!"
"감독만 바꿔서 되겠어? 감독 임명한 작자들부터 싹 다 물갈이하고, 구단 사장도 기자회견 열어서 사과하고 물러나라! 그게 자이언츠가 살 길이니까!"
"이렇게 된 김에 이번 시즌 깔끔하게 포기하고, 신인들이나 키웁시다. 2020년 지명 1픽도 가져와서 대형 유망주들도 데려오고요."
"대형 유망주가 무슨 소용이야? 사이클링히트를 한 시즌에 3번이나 기록하고, 4할 5푼이나 때리는 백강호를 데리고도 꼴찌 하는데. 우리 팀에 타자가 없어? 투수가 없어? 뭐가 부족해서 꼴찐데?"
"뻥 안치고 자이언츠 팬들이 팬 투표로 라인업을 짜도 한 감독 보다는 승률 높게 나오겠다. 한동현 감독 제발 팀을 위해서 물러나 주세요!!"
기사마다 달린 댓글은 이제 포화상태를 넘어 있었다.
거친 욕설과 비난이 담긴 댓글들을 보면 한 감독과 구단이 팬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잃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제 몫 이상을 해주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동정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백강호 선수는 대체 무슨 죄야? 2경기 연속 전 타석 출루하고, 22일에는 시즌 3번째 사이클링히트도 때렸는데 팀이 져서 인터뷰도 못하고, 부각되지도 않네요."
"백강호 선수 타율이 4할 6푼 2리에요. 홈런 14개에 도루가 35개가 되는 슈퍼 루키가 팀 잘못 만나서 고생입니다. 제가 다 미안해질 지경입니다."
"백강호만 그런가? 올해 스무 살인 권대우는 방어율 1점대 찍고도 매 경기마다 혹사 당하잖아. 한 감독은 선수 관리 안하는 거야? 2군에서 올라온 신인 투수들 잘 던지던데 왜 권대우나 박상현만 혹사시키는 거야?"
"권대우, 박세준, 박진웅, 가진성, 사준식, 김영명, 표성태, 박철, 유성철, 안민경, 이인호, 임정, 그리고 백강호까지. 이렇게 잘하는 신인급 선수들이 많은데 왜 팀 성적이 이 모양일까? 나는 도대체 자이언츠라는 팀의 정체성을 모르겠다."
어떤 팬들은 팀을 잘못 만난 루키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평하고, 어떤 팬들은 그런 신인들이 튀어나온 2019시즌에 팀이 꼴찌를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며 '괴랄한 자이언츠'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자이언츠 팬들만 아니라 모든 야구팬들, 그리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거론되기 시작했고, 모든 비난의 화살은 한 감독과 구단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이 다음 날 오전이 되어 한 자리에 마주하게 된다.
"한동현 감독. 우리가 얼굴은 오랜만에 보는 거죠? tv중계로 팀 경기를 매일 챙겨보다 보니 자주 보던 사람 같네요."
웃는 얼굴로 한 감독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사람은 구단의 최고 지휘관인 지정만 사장이었다.
지 사장의 인사말에 영문도 모르고 불려나온 한동현 감독은 억지 미소를 짓게 된다.
팀 성적이 10위까지 떨어진 마당에 구단 사장이 감독을 찾는 이유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팀 성적에 대한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라고 짐작하며 한 감독이 먼저 고개를 숙인다.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주셔서 송구합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한 감독의 인사에 지 사장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대꾸하고 있었다.
"잘 못 지냈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TV중계로 팀 경기를 매일 챙겨보고 있다고요. 팀 성적이 이 모양인데 구단 사장인 내가 잘 지낼 수 있겠어요?"
웃는 낯으로 말하고 있는 지 사장의 말에는 한 감독을 향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
지 사장의 말이 비수가 되어 순간 한 감독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그는 잠시 대꾸할말을 찾아보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잠자코 지 사장의 말을 듣게 된다.
"한 감독이 기자회견을 해줬으면 해요. 이미 기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을 테니까 곧 바로 회견장으로 이동하면 될 겁니다."
뜬금없이 기자회견을 해달라는 지 사장의 말에 한 감독이 묻게 된다.
"기자회견이요? 어떤 내용으로 말입니까? 혹시 팀 성적에 관한 것이라면..."
지 사장은 내용을 묻는 한 감독의 물음을 중간에 끊으며 힘 있게 말한다.
"한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한다는 기자회견이에요. 한 감독이 구단을 위해서 물러나줬으면 해요."
자신에게 사퇴 기자회견을 하라는 지 사장의 충격적인 말에 순간 한 감독은 말문이 막힌다.
한동안의 침묵은 계속되고, 흔들리는 눈빛의 한 감독이 묻고 있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아직 시즌이 초반인데 잠시잠깐 팀이 10위로 떨어졌다고 해서 물러 나라는 지 사장의 말에 어이를 상실하고 만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를 내치고 싶으시다면 파면시키십시오. 제가 왜 자진사퇴를 해야 합니까? 그리고 기자회견이라뇨? 못 합니다!"
한 감독의 성난 물음에 지 사장은 피식 웃어 보이며 옆에 서있는 허 실장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자 허 실장이 들고 있던 두툼한 서류뭉치를 지 사장에게 공손하게 건네준다.
"한 번 읽어 보세요. 한 감독이 고등부 감독 시절과 중등부 감독 시절에 저질렀던 비리들이 여기에 잘 기록되어있네요."
고등부, 중등부 감독 시절 비리라는 말에 순간 한 감독이 움찔하게 된다.
한 감독의 떨리는 손길이 지 사장이 건넨 서류 뭉치로 향했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변명의 말을 하게 된다.
"고등부에서 있었던 케케묵은 뇌물수수 건을 말씀하신다면 저는 무혐의로 혐의를 벗었습니다. 야구부의 발전 기금으로 학부모들한테 발전기금을 받았던 건데 제 개인적인 일에는 10원 한 푼도 쓴 적이 없어요. 모두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의 장비 구입비와 원정 출장비로 사용했습니다. 검찰에서도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시켰고요. 무혐의로 끝난 일을 또 다시 거론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팀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를 핍박하시는 거라면 적당히 해두시죠."
따져 묻는 한 감독의 말에 지 사장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서 내가 중등부 자료까지 가져왔지 않습니까? 중등부 때도 학교발전기금으로 돈을 받은 겁니까? 이세현, 박다한, 정형식. 이 세 선수들의 학부형에게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뒷돈을 받아 챙기셨더군요. 그 돈은 왜 발전기금으로 쓰지 않았습니까?"
세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지 사장의 추궁에 한 감독은 결국 격한 논쟁을 중단하게 된다.
'여기서 그 이름들이 나올 줄이야.'
한 감독은 눈을 질끈 감는다.
한 때, 프로 팀의 감독 자리를 맡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아마추어 지도자 시절에 학부형들에게 받아 챙겼던 소소한 뒷돈이 지금 발목을 잡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일로 내 모든 커리어가 무너져 내리게 될 거야.'
한 감독은 자신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해 본다.
최악의 경우 구단에서 사건을 검찰에 송치시킨다면 자신의 야구 인생은 물론, 인생 자체가 무너져 버리게 된다.
그래서 한 감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 사장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었다.
"기자 회견하겠습니다. 자진 사퇴도 수용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검찰에 기소하실 작정이십니까?"
사색이 된 한 감독의 물음에 지 사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나도 한 감독의 과거지사로 구단이 소란스러워지는 걸 원치 않아요. 구단이 한 감독의 과거 비리와 연관 되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에요. 검찰에 기소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한 감독이 뇌물을 받았던 학부형과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는 구단 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한 감독은 자진해서 물러나겠다는 구단의 요구 조건만 수용하면 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은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지 사장의 말에 한 감독은 결국 본인의 의사와 관련 없이 자진하차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기자회견은 곧바로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각종 소문들을 양산시키며 빠르게 기사화되어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한 감독이 자진 하차를 해버렸어?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러면 새 감독으로 누가 임명되는 거야?"
"너 기자회견 안 봤구나? 김민철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한다잖아. 한동현 감독보다 김민철 수석이 훨씬 낫지.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고, 자이언츠 코치로 5년 넘게 일하기도 했으니까. 사실 작년부터 실질적인 감독은 한 감독이 아니라 김민철 수석이었다고 봐야 해."
각종 추측성 발언들과 한동현 감독의 사퇴를 반기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고, 자이언츠 팬들은 오랜만에 듣게 된 반가운 소식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자이언츠 기사마다 댓글을 달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시즌 초반에 감독이 경질되는 큰 사건에 선수단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자, 다들 소식 들었지? 내가 고참 선수들만 부른 건 이런 일 때문에 우리 팀 성적에 악영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야. 민수나 중석이, 그리고 상현이나 제인이, 훈이가 후배 선수들 잘 다독여주고. 오늘 경기부터는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독려해줘. 조만간 2군에 내려가 있는 주전 선수들도 다시 콜 업 시킬 거야. 구단에서 감독 임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내려올 때까지 내가 감독을 맡게 될 테니까. 그렇게들 알아두도록 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 감독 대행 자리에 오른 김 수석이 캡틴 강민수를 포함해 팀의 고참급 선수들 불러 모아 한 말이었다.
김 대행은 베테랑 선수들이 후배 선수들을 잘 독려하여 한 감독의 경질로 팀의 분위기가 와해되지 않도록 부탁한다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김 대행이 회의실에서 나선 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채중석 선수였다.
"차라리 잘 됐네. 김 수석님이 감독이 되시니까 마음이 딱! 편하네. 이제 한동현 감독 얼굴 안 봐도 되는 거지? 나 그동안 힘들었다고~"
중석의 말에 곧바로 2루수 최훈이 동조의 말을 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한 감독 때문에 얻은 부상이 몇 개인지 모르겠어요. 김 수석님이 감독 대행을 맡으시면 올해에는 다칠 일없이 경기할 수 있겠네요. "
중석과 최훈의 말을 시작으로 선수들은 그동안 있었던 한 감독의 전횡을 성토하고 있었다.
한 차례 성토와 고백의 장이 지나가고, 잠자코 있던 팁의 캡틴 강민수가 입을 연다.
"김 수석님, 아니 이제부터는 감독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후배 선수들을 잘 다독여서 오늘의 경기부터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해야겠어요. 와이번스와의 시리즈 경기는 저희가 제대로 경기를 못 했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오늘 경기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자고요. 오늘 경기는 홈경기이지 않습니까?"
민수는 감독 대행이 된 김 대행에 대한 호칭 문제를 정리하며 오늘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오늘부터 시작되는 타이거즈와의 시리즈 2차전 경기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사직에서 예견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어수선한 분위기를 매듭짓고, 달라진 경기력을 기대하는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민수의 말이 맞아. 우리가 나서서 후배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단도리해서 오늘 경기는 이기도록 하자. 한 감독이 그만둔 마당에 더 이상 우울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중석이 한 발짝 나서서 캔팁인 민수의 말에 무게감을 더한다.
상황을 정리한 고참 선수들이 회의실을 나와 경기장에 출근한 후배 선수들을 독려하기 시작할 무렵. 베테랑 선수들과 김 대행과의 대화 내용을 알지 못하는 강호로서는 오늘도 오전 일찍 경기장에 나와 개인 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어제 난생 처음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며 희한한 경험을 했었던 강호는 출근과 함께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포지션을 확인하고 있었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90
파 워:81.1
선구안:71.1
주 력:90.5
수 비:83.4
송 구:70.5
멘 탈:87.7
다시 유격수를 가리키는 SS로 돌아와 있는 포지션을 확인하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강호의 포지션은 좌익수를 가리키는 LF였다. 수비력을 나타내는 지표 역시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강호가 어제 경기에서 확인했던 스탯창을 떠올려 본다.
백강호(24)
포지션:LF
컨 택:90
파 워:81.1
선구안:71.1
주 력:90.5
수 비:71.0
송 구:62.9
멘 탈:87.7
좌익수 자리에서의 스탯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수비력에 12.4의 감소와 송구 능력에 7.6의 하락이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웬만한 주전 좌익수 못지않은 스탯을 확인할 수 있었다.
2군에서 외야 수비 훈련을 하기도 했고, 1군에 올라서도 1루수인 김상훈과 부지런히 송구 훈련을 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여겨진다.
강호는 어느새 어떤 포지션에 가져다 놓아도 제 몫을 다하는 선수로 탈바꿈되어 있는 것이다.
'한 감독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부터가 어쩌면 올 시즌 자이언츠의 진정한 시작일지도 몰라. 앞으로 김민철 감독 대행 체제의 야구는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야. 어떤 포지션, 어떤 자리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어야 해!'
그렇게 각오를 다져보는 강호는 개인 훈련을 위해 경기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강호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정신력과 강인한 의지를 얻게 되었다.
그런 강호와 함께 10위로 내려앉은 자이언츠의 재도약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