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21화 (121/335)

0121 / 0335 ----------------------------------------------

고군분투

22일 경기를 5대 6으로 내어주며 자이언츠는 와이번스와의 전적 2승 3패로 여전이 열세를 유지하게 된다.

이로서 팀 성적 17승 25패 승률 0.405까지 밀리게 되면서, 연승 가도를 달리며 16승 24패까지 올라 승률 0.4로 올라선 10위 팀 위즈와는 승패 마진 없이 승률 5리 차이까지 추격당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9위를 유지하고 있는 자이언츠였다.

그렇기 때문에 꼴찌로 내려설 수 없다는 자이언츠의 절실함과 꼴찌를 탈출하겠다는 위즈의 절박함 중 어느 팀이 더 집중력 있는 경기를 펼치느냐에 따라 오늘 경기가 끝나고 10위 팀이 다시 정해지게 되는 것이다.

"위즈가 3연승을 하고 있다고? 오늘 경기에서 우리가 지고 위즈가 이기면 순위가 바뀌는 거야?"

박상현 투수의 물음이 자이언츠의 위기감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21일 경기에서 8대 3. 손쉬운 승리를 가져왔을 때만해도 좋았던 자이언츠의 팀 분위기는 강호의 사이클링히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경기를 패하며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특히 어제 경기에서 팀이 올린 5점의 점수 중 4타점을 올린 강호에게 선배 선수들이 가지는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대기록을 달성했음에도 팀이 패해 방송사 인터뷰를 거절해야했던 후배의 심정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것을 떠올려 보던 한 선수가 묵직한 어조로 입을 연다.

"안 바뀌게 해야죠.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절대 지면 안 됩니다. 올해가 데뷔 시즌인 강호도 저렇게 잘 해주는데 우리 선배들이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상현의 말에 답하고 있는 사람은 팀의 캡틴인 강민수 선수였다.

상현과 민수 그리고 몇몇 베테랑 선수들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숙소의 휴게실에 모여앉아 팀 부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중이었다.

"이게 우리만 애쓴다고 될 일입니까? 듣자하니까 한 감독이 오늘 경기에서 중호를 빼고, 강호를 좌익수 자리에 넣는다는 말도 있던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민수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은 2루수 최훈이었다.

그는 키스톤 콤비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호가 뜬금없이 좌익수로 이동할 수 있다는 소식에 이 자리에 없는 강호를 대신하여 분개하는 모습이었다.

"뭐? 강호를 좌익수로 보낸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고참 선수들을 뭘로 보고? 우리가 조금만 부진하면 강호를 그 자리에 넣어서 우리에게 주의를 주겠다는 속셈인거야?"

최훈의 말에 최근 타순에서 제외되어 간간히 대타로만 출전하고 있는 채중석이 분통을 터뜨린다.

그 모습에 맞은편에 앉은 캡틴 강민수가 만류하고 나선다.

"중석이 형. 잠시만 진정해 보세요. 훈이 너, 그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최훈은 자신의 말의 출처를 묻는 캡틴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다.

"오늘 아침에 조식 먹으려고 2층으로 가다가 한 감독하고 김 수석님이 강호 좌익수 이동 문제로 언쟁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김 수석님이 한사코 반대하시던데 한 감독은 밀어붙일 생각이던데요."

최훈이 직접 들었다고 출처를 밝히자 캡틴 강민수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워진다.

"이래서는 안 돼! 우리 고참 야수들에게 강호를 이용해서 한 감독이 협박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경기에서 조금만 부진하면 라인업에서 빼버리고, 강호를 그 자리에 대신 넣겠다는 말이잖아. 이게 말이나 돼? 강호도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고생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자존심 상하고, 나는 이건 아닌 것 같아!"

결국 중석은 테이블을 내려진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그가 휴게실에서 나가버리자 잠자코 있던 팀의 4번 타자 황제인이 다물고 있던 입을 연다.

"말려야 되는 거 아닙니까? 중석 선배가 한 감독에게 찾아가서 따지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걱정스런 어조로 말하고 있는 제인에게 박상현 투수가 걱정 말라는 식으로 입을 연다.

"중석이가 보기에는 산적같이 보여도 순한 놈이야. 한 감독에게 찾아가기는. 별 걱정을 다 하네. 분명 자기 방에 가서 간식이라도 먹으면서 스트레스 풀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상현의 말에 반쯤 몸을 일으켰던 제인은 다시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러자 캡틴인 민수가 곧장 입을 열었다.

"중석이 형이나 강호보다는 오늘 경기가 걱정입니다. 한 감독하고 김 수석님이 또 언쟁을 벌이셨다면, 코칭스태프들 간에도 소통이 단절됐다는 말이잖아요. 이런 상황이 후배 선수들에게도 느껴질 텐데, 오늘 경기에서 영향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민수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한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기가 시작된 후, 강호가 볼넷 2개와 안타 1개로 3출루를 이어나가는 동안, 자이언츠가 기록하고 있는 안타는 강호가 때려낸 것이 유일한 안타일 정도로 빈타에 허덕이고 있었다.

"오늘 백강호 선수가 어색한 좌익수 수비에도 큰 실책 없이 3출루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중심타선에서 그 출루를 득점으로 연결시켜주지 못하고 있네요."

중계석의 전 캐스터가 5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득점 없이 끝난 점을 지적하며 오늘 경기에서도 강호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늘 와이번스 선발인 윤희성 투수의 호투가 돋보입니다. 게다가 와이번스 야수들이 잘 맞은 타구를 범타로 막아내 주면서 5회까지 윤희성 투수가 허용한 안타가 고작 하나에요. 반면에 자이언츠 타선은 답답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효범 위원의 해설대로 자이언츠 입장에서는 공격의 흐름이 번번이 끊기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이언츠 선발인 박진웅 투수는 4회까지 1실점으로 와이번스 타선을 잘 막아냈지만, 팀 타선의 전무한 득점 지원과 오랜만에 주전으로 나선 유격수 오진택과 대수비로 교체된 2루수 이어산의 엇박자를 빌미로 5회 말 수비 상황에서 대거 4실점하며 무너지고 만다.

이어서 계투로 마운드에 오른 박상현 투수가 5회 말을 추가 실점 없이 잘 막아내었지만, 여전히 자이언츠 타선의 무득점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5대 0으로 자이언츠가 암울한 분위기 속에 이닝은 8회 초로 이어지고, 8회 초의 선두타자로 타석에 오르는 타자는 강호였다.

'이대로라면 오늘 경기는 지고 말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루를 해야만 해!'

강호는 각오를 다지며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2경기 연속 전 타석 출루를 달성해야하는 미션 수행 내용이 아니더라도 패색이 짙은 경기 분위기를 뒤바꾸기 위해 꼭 출루할 생각이었다.

그 의지를 담아 7회까지 무실점 호투하고 내려간 윤희성 투수 대신 마운드에 오른 바뀐 투수를 매서운 눈으로 응시한다.

'채병인 투수, 한 때는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구위의 포심이 일품이었지만, 지금은 제구력 위주의 투수로 탈바꿈한 선수야. 완급 조절 능력이 좋아서 예전의 나였다면 삼진을 당하거나 범타로 물러났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가장 상대하기 쉬운 유형의 투수일 거야.'

바뀐 투수인 채병인 투수를 바라보는 강호의 생각이었다.

두 개의 기간제 아이템으로 인해 강호는 더 이상 완급 조절 능력이 있는 베테랑 투수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구종과 구속, 코스를 알 수 있는 강호에게 상대 투수의 완급조절 능력은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메시지가 시야에 떠오르고 있었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1km

코스와 구종, 구속 모두 정타를 때려내기에는 어려움이 없는 채병인의 초구였다.

곧바로 컨택 지점을 포착한 뒤 망설임 없이 배트를 뻗는다.

따악.

몸 쪽 높은 코스의 공이 강호의 배트에 맞아 투수인 채병인 쪽을 향하는 타구가 만들어진다.

투수인 채병인은 강호가 때린 타구가 자신 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후 얼른 피해냈고, 그 덕에 그 타구는 투수 곁을 스치는 중전 안타로 기록된다.

'이 상황에서는 단타를 때리는 게 더 유리해. 주루 플레이로 상대 투수의 정신을 흔들어 놓을 수 있으니까.'

1루 베이스를 밟은 강호는 다음 타순부터 시작되는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에 기회를 연결시켜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며 리드 폭을 넓게 벌린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조금 전 강호의 타격 상황에서 타구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몸을 움직였던 와이번스 계투 채병인 투수가 종아리 쪽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와이번스의 투수 코치와 트레이너가 급하게 마운드 위로 오른다.

"병인아 왼쪽 발을 헛디딘 거지? 어때? 교체해줄까? 점수 차가 5점 차이나 나고 있으니까 무리할 생각 말고, 안 좋으면 지금 얘기해."

걱정 어린 투수 코치의 말에 채병인 투수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다른 투수가 준비 됐으면 교체해 주십시오. 종아리가 올라온 것 같습니다."

"알겠다."

그렇게 8회에 계투로 오른 채병인 투수는 1개의 투구 수를 기록하며, 다음 투수로 교체된다.

그리고 새롭게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의 얼굴을 확인한 와이번스 홈 팬들은 환호성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아~ 지금 김광헌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네요! 김광헌 투수, 4월부터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었거든요. 오늘 경기에서 컨디션 점검 차원으로 오르는 것 같습니다."

중계석의 전용제 캐스터가 김광헌의 등판을 알리자 이효범 위원이 해설을 덧붙인다.

"컨디션 점검 차원도 있고요. 백강호 주자의 빠른 발을 묶어두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광헌 투수 주자 견제 능력이 좋거든요. 게다가 좌완이고요. 지금 와이번스 불펜에 좌완투수가 마무리 투수인 박희준 선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부터 엔트리에 등록된 좌완 김광헌 투수를 점검하는 것과 동시에 백강호 선수의 도루를 막아보겠다는 와이번스 덕 아웃의 의도로 보입니다."

이 위원은 해설의 말미에 '김광헌 투수는 조만간 선발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겠네요'라는 말로 의견을 덧붙인다.

그런데 그가 지적한 김광헌의 주자 견제는 처음부터 실패하고 말았다.

견제구를 다섯 개나 던졌음에도 리드 폭을 줄이지 않은 강호가 포수를 향해 던져진 광헌의 초구에 곧바로 2루를 향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와이번스 포수 이재훈이 잽싸게 2루로 공을 던졌지만, 2루심은 천천히 양팔을 펼쳐 보이며 선언하고 있었다.

"세이프."

2루심의 선언과 함께 몸을 일으킨 강호의 시선은 어느새 3루를 향하고 있었다.

2루 도루에 이은 강호의 3루 도루 의도를 눈치 챈 이재훈 포수가 마스크 속에서 미간을 좁혀 보인다.

'광헌아. 공하나 빼자. 3루로 뛰는 백강호를 반드시 잡아낼 테니까!'

이재훈 포수의 피치아웃 싸인에 광헌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바깥 쪽 높은 코스에 타자가 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공을 힘껏 던지고 있었다.

타악.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 있던 이재훈 포수는 미트에 공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3루 베이스를 향해 공을 던진다.

신호를 받고 3루 베이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3루수 최현이 글러브로 공을 받자마자 곧장 강호의 팔꿈치를 태그 한다.

"세이프!"

3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연이은 도루 성공에 몇 회 동안 중계할 내용이 별로 없었던 중계석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지금은 이재훈 포수가 피치아웃을 했는데도 도루에 성공합니다. 백강호 선수 정말 빠르네요!"

"네, 이재훈 포수의 도루 저지율이 4할 대가 넘거든요. 피치아웃을 했는데도 도루를 성공하는 백강호 선수입니다. 이재훈 포수의 송구도 정확했고, 최현 3루수의 태그도 빨랐어요. 그런데 백강호 선수의 발이 조금 더 빨랐습니다."

전 캐스터에 이어 이 위원이 쉼 없이 해설을 끝낸 후 타자 황제인에 대한 중계와 해설 내용에 집중한다.

두 사람은 강호의 주루 플레이가 끝이 나고, 이제 황제인의 타격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었다.

TV중계를 시청하는 팬들 역시 제인이 강호가 발로 만든 득점권 기회를 팀의 첫 득점으로 연결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강호의 도루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채병인 투수에서 김광헌 투수로 교체되면서 이런 이점이 생기는구나. 세트 포지션 때 3루 베이스를 바라보는 우완투수와는 다르게 좌완 투수는 세트 포지션에서 1루 베이스를 바라보게 된다. 3루에 위치한 나를 자세히 살필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타석에 선 황제인 선배는 우타자야. 자연스럽게 3루 쪽을 바라보는 포수의 시야를 가릴 수 있는 위치, 홈 스틸을 하기에 최적의 여건인 거야!’

강호는 여태껏 자신의 야구 인생동안 한 번도 시도해 본적 없는 홈으로의 도루를 감행할 생각을 갖는다.

진행 중인 7번째 미션에 이어 동시에 9번째 미션인 '멘탈을 흔들어라'까지 도전해볼 생각인 것이다.

'홈스틸보다 상대 배터리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작전도 없을 거야. 그리고 팀의 첫 득점을 따내면서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어. 이 도루로 무겁게 가라 앚은 벤치의 분위기를 바꿔 보자!'

영리한 강호는 자세한 내용을 듣지 않아도 선수단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 이유를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의 좌익수 이동과 고참 선수들의 라인업 제외, 한 감독의 전횡이 선수단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경기 시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는데. 나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과감한 플레이 하나로 선수단의 의식을 바꿀 필요가 있어!'

강호는 단지 자신의 미션 때문만이 아니라 자이언츠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팀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홈 스틸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강호의 수단은 중요한 순간에 강호를 실망시키고 있었다.

-3루상에서는 도루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프리마켓 시스템은 무분별한 홈스틸을 허용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도루’ 아이템으로는 홈에 대한 도루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강호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최근 들어 타격감이 좋지 못한 4번 타자 황제인과 5번 타자 강민수가 타점을 때려내지 못한다면 팀은 영봉 패를 당하는 수모를 경험하게 된다.

"김광헌 투수 1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3구째를 던집니다."

전 캐스터의 상황 중계 속에 제인을 향해 던져진 김광헌 투수의 3구. 이 때 이미 강호의 발은 3루 베이스를 박차며 홈으로 향하고 있었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홈스틸의 결과는 잠시 후가 되어서야 결과를 알 수 있게 된다.

============================ 작품 후기 ============================

120편, TV중계 내용에서 OPS가 12할 8푼 7리로 잘못 기입된 것은 14할 8푼 7리로 수정하였습니다.

오늘도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네요. 모두 힘내시고, 점심 먹기 전에 한 편 올리고 갑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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