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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분투
이번의 타구는 유격수 키를 넘긴 후 좌익수 김재영과 중견수 김경민의 사이로 빠져나가는 깔끔한 코스의 안타였다.
2아웃 상황에서 미리 스타트를 끊었던 2루 주자 박철은 천천히 3루를 돌아 홈으로 걸음을 떼고 있었고, 강호는 그사이 2루 베이스를 향하며 3루 베이스 코치에게 시선을 옮긴다.
"돌아, 돌아, 돌아! 슬라이딩!!"
3루 베이스 코치는 다소 과격한 제스쳐로 3루 베이스를 향해 양손을 모아 보인다.
강호는 그 모습에 이를 악물고 3루 베이스를 향해 달리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몸을 던진다.
그와 동시에 와이번스의 김경민 중견수가 던진 공이 원 바운드로 3루수 최현의 글러브로 빨려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3루심에게로 향한다.
"세이프!"
3루심의 판정이 세이프가 되자 자이언츠 원정 팬들과 덕 아웃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온다.
"와아아!!"
강호는 함성을 토해내는 팬들과 덕 아웃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며 열띤 함성 소리에 응답한다.
1회 초 2루타를 때려냈던 강호가 3회에는 3루타를 때려내며 또 다시 타점을 올리는 모습에 이곳이 와이번스의 홈 구장인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백강호 선수가 또 다시 해냅니다! 2아웃 상황에서 백강호 선수가 때린 타구는 3루타로 기록됩니다!"
중계석에서 전 캐스터가 중계를 이어나가는 사이 강호의 경기는 계속된다.
강호는 3회 초 3루타에 이어 6회 초에도 안타 하나를 추가하며, 3안타로 경기를 진행 중에 있었다.
그의 맹타에도 불구하고, 후속 타자들이 범타로 물러나며, 양팀 스코어는 3대 3, 동점 상황이 만들어져 있었다.
중계석에서는 치열한 양 팀의 대결 속에 하나의 특이 사항을 발견하고는 그 점을 지적하고 나선다.
"백강호 선수가 안타 하나를 추가하면서 오늘 경기 3안타 경기가 되네요. 아직 6회라서 타순을 고려한다면 9회 초 타석 상황이 남아있거든요. 이렇게 되면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얘기해 봐도 될 것 같아요."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거론하는 전 캐스터의 말에 이효범 위원이 대답한다.
대기록 달성 전에 그것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꺼려하는 이효범 위원이지만, 오늘만큼은 긍정적인 발언으로 강호의 사이클링히트를 점치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의 최근 타격을 살펴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데뷔 전에서 사이클링히트 달성 후에 올 시즌 백강호 선수가 기록하고 있는 사이클링히트가 2개거든요. 남아 있는 게 홈런이라서 조금 어렵게 보이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루타가 남은 것 보다는 홈런이 남은 게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봅니다."
이 위원은 강호의 사이클링히트 달성 가능성을 꽤나 높게 보고 있었다.
홈런이라는 어려운 기록 하나가 남아 있었지만, 최근 좋지 못한 팀 성적으로 침울해 하는 자이언츠 팬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 캐스터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계석과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를 안은 채 3대 5로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 무사 주자 1루 찬스에서 강호가 타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백강호! 때리라!"
"홈런 한 방 때려봐!"
강호의 귀에 들려오는 응원의 목소리는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것도 있었지만,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있었다.
선배 선수들은 강호가 팀을 패배에서 건져내는 홈런을 때리며 사이클링히트 기록이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에 강호는 피식 웃어 보이며, 배트를 들어 올린다.
'이번 타석만큼은 아이템을 아끼지 말자. 또 하나의 사이클링히트 달성이라는 대기록이 달려있기도 하고, 이 홈런 한 방으로 2점차로 지고 있는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어. 분위기를 가져오면 역전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야!'
강호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와이번스 입장에서 본다면 9회에 무사 1루 상황에서 자신을 거를 것 같지는 않았다.
어렵게 승부를 가져갈 수는 있어도 고의사구로 거를 리 없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선다.
-주자 1루 상황입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어김없이 시야에 표시되는 메시지를 향해 강호는 긍정의 말을 전한다.
'홈런. 홈런을 사용하겠어. 이번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하니까.'
이 홈런으로 강호의 세 번째 사이클링히트는 결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홈런으로 팀 승리를 위한 발판을 놓으려고 한다.
자신의 사이클링히트를 때려낸 경기에서 팀이 패해버린다면 대기록 달성도 빛이 바랄 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팀을 승리하게 만들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상대 투수를 응시한다.
강호와 시선이 마주친 투수는 1점대 방어율을 자랑하고 있는 와이번스의 마무리 투수 박희준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박희준 투수가 던진 초구부터 강하게 배트를 휘두른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8km
강력한 구위를 뽐내는 박희준의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오며 강호의 몸 쪽을 파고드는 절묘한 코스의 잘 던진 공이었다.
그러나 이미 '홈런'아이템을 사용한 배트는 그 공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따악!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장타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타격음에 중계석이 바빠진다.
"아! 쳤습니다! 큽니다! 백강호 선수의 타구가 좌중간을 향해 계속 뻗어나갑니다! 좌익수 김재영, 중견수 김경민이 타구를 향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 타구는 넘어갑니다! 백강호 타자의 초구 공략은 시즌 세 번째 사이클링히트 달성이라는 대기록으로 만들어집니다! 백강호, 사이클링히트!"
전 캐스터의 중계 후 이효범 위원의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자신의 의견을 더한다.
"지금은 대단합니다. 박희준 투수의 포심이 완벽한 코스로 들어갔거든요. 존 외곽에 걸치고 들어가는 저런 공을 홈런으로 때려내면 투수 입장에서는 던질 공이 없어요. 백강호 선수, 이번 사이클링히트가 시즌 세 번째 기록이거든요. 이런 기록이 또 있었나 싶어요. 아마도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아닐까 합니다."
이효범 위원은 강호의 세 번째 사이클링히트 달성을 거론하며 기록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 때 이미 중계 팀의 팀원으로부터 기록을 전달받은 전용제 캐스터가 먼저 입을 연다.
"백강호 타자의 지금 기록이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테인즈 선수가 한 해 두 개를 기록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세 개의 사이클링히트를 한 선수가 기록한 것은 백강호 선수가 처음 써낸 기록입니다. 대단한 기록입니다! 백강호 선수의 기록 달성 축하합니다."
전 캐스터는 강호의 세 번째 대기록 달성이 프로야구 역사 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덧붙이며 강호의 기록 달성을 축하하고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자이언츠의 팬들, 그리고 자이언츠의 덕 아웃에서는 강호의 기록 달성을 반기며 큰 목소리로 강호의 이름을 연호하는 모습이다.
"야아~ 이거 완전 야구 기계네. 기계! 강호, 벌써 세 번째야. 네가 KBO기록 다 갈아치우겠어!"
선배 선수들은 사방에서 강호의 헬멧을 두들기며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이언츠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9회 말, 5 대5. 동점 상황에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라는 특명을 부여받고 마운드에 오른 마무리 투수 홍성빈이 와이번스 4번 타자 정의준에게 불시의 홈런포를 허용하면서 허무하게 경기를 내어주고 만다.
5대 6. 자이언츠의 패배로 어제 쉽게 승을 얻었던 것에 비하면 오늘의 패배는 뼈아픈 패배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팀이 패배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호가 이 경기에서 기록한 세 번째 사이클링히트 달성에 대한 내용은 각종 스포츠 언론 보도와 인터넷 뉴스 기사 등을 통해서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많은 팬들에게 전파되고 있었다.
특히나 모든 경기가 종료되고 스포츠 채널에서 방영되는 아이러브 베이스볼이나, 베이스 볼 투나잇 등 야구전문 방송에서 강호의 기록 달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다.
"오늘 경기에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나오는 대기록이 달성되었는데요. 그 주인공은 자이언츠의 유격수인 백강호 선수입니다. 인터뷰 영상은 팀이 지는 바람에 백강호 선수가 정중히 사양을 했는데요. 시즌 세 번째 달성하는 사이클링히트 기록, 두 위원님들께서는 어떻게 보셨나요?"
베이스볼 투나잇의 배지현 아나운서가 바통을 넘기자 먼저 박재헌 위원이 입을 연다.
한 때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불리던 박 위원이었기 때문에 그가 강호의 세 번째 사이클링히트 기록을 거론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어 보였다.
"지난 2015년 다이노스의 테인즈 선수가 한 해 두 개의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었거든요. 국내 리그에서는 처음 있었던 기록이지만, 외국인 타자가 기록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백강호 선수가 데뷔 44일 만에 이 기록을 넘어섰어요."
박재헌 위원의 설명과 함께 TV중계에는 강호가 데뷔전에 기록한 사이클링히트부터 오늘 기록한 것까지의 타석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박 위원은 재생되는 화면과 기록지를 번갈아 보며 강호의 올해 기록을 읽어 내려간다.
"백강호 선수, 올해 182타석 142타수 64안타, 4할 5푼 4리의 타율에 9할 5푼의 장타율, OPS가 1.487이나 됩니다. 홈런 14개에 도루 30개. 61타점, 53득점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올리고 있습니다.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들 중에서는 타율 1위, 출루율 1위, 장타율 1위, 도루 1위, 득점 1위, 타점 1위, 안타 1위의 7개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홈런은 4위에 올라있는데 백강호 선수의 최근 타격감을 본다면 조만간 홈런왕 레이스에도 가세할 것으로 보여 지네요."
박 위원은 홈런을 제외한 7개 타격 부문에서 1위를 마크하고 있는 강호의 기록들을 상세하게 읽어나가며, 강호가 데뷔 경기 이후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올리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긴 설명에 이어 곁에 서있던 이정범 위원이 바통을 넘겨받는다.
"백강호 선수가 제가 현역 때 활동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옆에 계신 박재헌 위원도 현역 시절에 30-30을 달성하셨지만, 저희 때는 30-30달성이 무척이나 어려운 기록이었거든요. 사이클링히트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백강호 선수를 보니까 30-30이 아니라 40-40도 그렇게 어려운 기록은 아닌 것 같아요. 저런 선수와 동시대에 활동을 했었더라면 제 기록이 묻혀버렸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 위원은 반쯤은 농담이 섞인 말로 강호의 대기록 달성뿐만 아니라 30-30달성도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박재헌 위원 역시 강호의 홈런 수가 14개이고, 도루는 이미 30개를 돌파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강호의 30-30달성 가능성은 물론 40-40달성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정범 위원께서도 30-30기록이 있으시고, 저 역시 30-30기록이 있는데요. 그 위로는 테인즈 선수가 2015년에 달성했던 40-40기록이 남아있어요. 국내 프로리그 최초의 기록이지만, 제 입장으로는 국내 선수가 기록을 달성해줬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백강호 선수라면 테인즈 선수의 2015년 기록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듭니다."
박재헌 위원은 과감한 말로 멘트를 마무리한다.
그는 다이노스의 4번 타자인 테인즈가 2015년에 달성했던 40-40기록을 강호가 '넘을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이었다.
기록을 넘는다는 것은 동률이 아닌 그 이상을 말하는 것. 결국 강호의 50홈런 가능성도 염두해 두고 말하는 박 위원이었다.
도루는 사실 거론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데뷔 44일 만에 30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강호였기에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100개 이상의 도루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저는 박 위원의 발언과는 조금 다른 의견인데요. 백강호 선수의 페이스가 좋기는 하지만, 아직 시즌 초반이거든요. 결국 여름이 지나면 선수들의 기록이 제 자리를 찾게 되거든요. 그 때 다시 얘기해 봐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곁에 있던 이정범 위원은 강호의 50홈런 돌파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강호의 40홈런 달성에는 이 위원도 긍정적인 의견을 보탰었지만, 50홈런은 여태껏 프로리그 역사상 몇 번 나온 적이 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50개의 홈런. 그것은 곧 새로운 홈런왕의 탄생을 의미한다.
아시아 홈런 기록을 달성했었던 레전드, 이승엽 선수의 56홈런. 그리고 그와 경쟁했었던 심정수 선수의 53홈런.
2014, 2015시즌 연속 50홈런을 달성했던 박병호 선수까지.
50홈런을 넘어섰던 소수의 선수들은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한 홈런왕으로 남게 되었다.
박 위원은 과감하게도 강호가 그런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는 박재헌 위원이나 일부 전문가들, 그리고 자이언츠 팬들에만 한정된 이런 바람들은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점 신빙성을 더해가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시즌 초반이었고, 강호와 자이언츠가 넘어서야할 벽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