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17화 (11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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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의 지배자

"2군 경기장에는 어쩐 일이세요? 혹시 2군 선수들 보러 오신 거예요? 2군 선구단은 퓨처스 일정 때문에 서산에 가있습니다."

누군가가 강호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 오고 있었다.

강호가 고개를 돌려보니 2군 지원팀 소속의 이인한 사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게 '안녕하세요. 이인한씨 맞으시죠?' 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어?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휴식 일에 개인훈련 삼아 러닝하다 보니 주변을 지나게 됐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강호는 그렇게 말하며 인한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인한의 이어진 말을 듣고는 러닝을 멈추고 그를 따라 상동 경기장으로 향하게 된다.

"이번에 모션 캡쳐 장비가 새로 들어왔는데 테스트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손 감독님도 쓸 만하다고 칭찬을 하시던데요?"

인한의 말에 곧장 그러겠다 대답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편인 손 감독이 인정할 정도면 시간을 할애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백강호 선수, 피칭 머신에 140km로 세팅해 놨습니다. 공이 발사되면 자연스럽게 스윙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4D 캠으로 9분할 촬영이 될 겁니다. 그걸 프로그램으로 모션 캡쳐 할 테니까 공 10개만 시험해 볼게요."

함께 실내 훈련장에 도착한 인한의 설명이었다.

강호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 지원팀 막내 인한은 아직 시험 운행 중인 장비를 강호에게 사용하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강호는 실제타석과 동일한 사이즈로 그려진 타석에 들어선 후 반대쪽에 걸려있는 벽걸이 터치 패드화면에 시선을 두게 된다.

화면에는 피칭머신이 발사할 공의 구속과 구종이 표기되어 있었고, 존의 어느 지점을 통과할 것인지가 나타나 있었다.

그 입체적인 영상을 보며, 마침 내일부터 자신이 사용하게 될 두 가지 기간제 아이템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지금 테스트 하는 장비가 내일 경기부터 사용하게 될 아이템들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구나!'

강호는 두 번째 프리마켓 방문때 구입했던 두 개의 아이템을 내일부터 사용할 생각이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1군으로 콜 업된 날부터 사용하려 했었지만, 1회용 아이템들과 단일제 아이템들을 쓰면서도 4할 대의 고 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에 차일피일 미루며 본의 아니게 아껴두게 된 것이다.

'내일부터야. 90의 컨택 능력과 80.1의 파워, 거기에 두 개의 기간제 아이템이 더해진다면 이전과는 다른 타격을 보여줄 수 있을 거야!'

강호는 구입 후 두 달 만에 사용하게 될 아이템의 효과를 기대하며, 피칭 머신에서 발사되는 공을 향해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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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하루는 빠르게 흘렀다.

휴식일인 월요일은 지나가고, 와이번스와의 두 번째 시리즈 맞대결이 인천 문학 구장에서 성사될 예정이었다.

아침 일찍 원정 버스에 오른 선수들은 대부분 잠이 들어 있었다.

그 속에서 강호는 업데이트 된 와이번스의 리포팅 자료를 살피며, 한 손으로는 악력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강호야. 와이번스 전에서 특이사항이 뭐야? 내가 마운드에 오르면 어떤 타자를 조심해야 될까?"

곁에 앉은 박상현 투수가 강호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질문을 던져온다.

대다수가 잠든 원정 버스 안에서 항상 두 사람만은 잠들지 않은 모습이다.

강호는 마흔 살 최고참 투수의 질문에 '다 조심하셔야죠'라고 반쯤은 진심이 담긴 농담으로 대꾸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닌데 내가 와이번스 타자들을 죄다 상대해야하는 선발투수는 아니잖아. '이놈만 조심하면 돼.' 뭐 이런 거 없어? 좀 알려줘 봐."

상현은 코치에게 질문할 내용을 15년이나 후배인 강호에게 묻고 있었다.

강호가 매 경기 때마다 갱신 된 리포팅 자료를 주의 깊게 살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강호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상현이었다.

강호가 워낙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로는 결국 성적이 실력이야. 강호가 저렇게 잘 하는 건 녀석의 분석이나 연구, 사소하게는 훈련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들어진 결과물일 거야. 내가 이 나이에 강호처럼 할 순 없는 일이고, 그냥 옆에서 강호가 알려주는 팁이나 얻어가자.'

프로생활 20년 차 박상현은 1군 경력이 두 달밖에 되지 않는 강호에게 노하우를 배우려 하고 있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속으로 헛웃음을 짓게 된 강호. 그래도 겉으로는 상현을 납득시킬 수 있는 말을 꺼내야 했다.

반쯤은 장난으로 묻는 것일 테지만, 상현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팁을 묻는다고 생각한 강호였다.

"가메스, 정의준, 최현, 이재훈 타자를 조심하셔야죠. 네 타자 모두 좌완투수가 던지는 속구에 강하지 않습니까? 특히 네 명 다 우타자라서 선배님이 브레이킹 볼로 던지시는 왼쪽 백 도어 슬라이더가 안 통하는 유형 아닙니까? 결국 포심하고 체인지업, 포크볼로 승부를 보셔야 되는데, 포크볼이 제구가 되는 구종은 아니어서 포심 위주로 던지시잖아요. 그럼 결정구가 체인지업만 남게 되는데 그것만 노려 치면 얼마든지 장타로 때려낼 수 있는 선수는 그 네 명인 것 같습니다."

강호의 말에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평의 말을 하게 된다.

"그럼 아홉 명의 타자 중에 네 명이나 조심해야 된다는 소리잖아? 이쯤 되면 다 조심하란 소리 아니야? 너는 어떻게 여민석 투수 코치님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럴 거면 그냥 여 코치님한테 물어볼게. 에잉!"

상현의 장난기 어린 대답에 강호는 피식 웃게 된다. 그의 지적대로 강호의 야구를 보는 시선이 여민석 투수코치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폭넓게 성장해 있었다.

물론 여 코치에 연륜이나 경험, 지식 등을 따를 수는 없겠지만, 강호의 야구 보는 안목이 그만큼이나 성장해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상현을 향해 '그러니까 제가 코치님께 여쭤보라고 미리 말씀드렸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며 다시 리포팅 자료에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상현은 강호와의 대화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와이번스 타선의 특이사항을 묻는 질문이 그저 말을 붙이기 위한 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와이번스 전에서는 적어도 위닝 시리즈는 가져와야 될 텐데. 우리가 루징 시리즈를 헌납하고, 위즈 팀에서 위닝 시리즈를 하게 되면 우리 팀이 꼴찌로 내려앉게 되는 거잖아. 자이언츠가 꼴찌가 되면 동네 창피해서 밖에 나다닐 수 있겠어? 안 그래? 나도 이번 시리즈만큼은 정신을 바짝 차릴 테니까, 강호 너도 점수를 팍팍 뽑아줘야 해. 제인이의 타격 페이스가 떨어진 시점에 너까지 부진하게 되면 큰일이야. 우리 팀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라고."

상현은 팀의 4번 타자인 황제인의 타격 부진을 거론하며 강호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강호 본인도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득점권 상황이 놓였을 때 적극적으로 타격 아이템을 사용해서 팀 승리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타격 아이템뿐 아니라 기간제 아이템들도 오늘 경기에서 모두 사용하게 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팀을 꼭 이기게 만들 겁니다.'

강호는 속으로 상현에게 건낼 수 없는 말을 하며 잠시 눈을 감는다.

그의 각오 속에서 자이언츠 선수단을 태운 원정 버스는 이번 시즌 두 번째 맞붙게 될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문학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와이번스와 자이언츠, 자이언츠와 와이번스 간의 시리즈 2차 전, 5월 21일 화요일 중계를 맡은 캐스터 전용제입니다. 해설에는 이효범 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중계석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와이번스와의 네 번째 경기가 시작된다.

오늘 경기에서도 3번 타석에 자리하게 된 강호는 경기 시작과 함께 타석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마친다.

그의 준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두 달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두 개의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심판이다(30일)]

:30일 동안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석의 지배자(30일)]

:30일 동안 타석에서 투수가 던진 공의 구종과 구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달 동안 인벤토리 한 편에 잠들어 있던 기간제 아이템을 드디어 꺼내게 된다.

속으로 프리마켓 시스템을 향해 '아이템 사용'이라고 요청을 하자 곧바로 인벤토리에 있던 두 개의 아이템이 사라지고, 아이템 사용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템 내가 심판이다(30일)를 사용합니다.

-아이템 타석의 지배자(30일)를 사용합니다.

아이템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타석에 들어서지 않아서인지 자세한 효과를 알 수 없었다.

강호는 기대감을 가득 안은 채 자신의 타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티익.

1번 타자로 나선 박철이 와이번스의 선발투수 카라의 4구째를 커트하려다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는 땅볼을 때리게 된다.

박철은 1루를 향해 열심히 뛰었지만, 1루심은 단호한 목소리로 아웃판정을 내린다.

"아웃."

1루심의 아웃판정 후 타석에 들어서게 된 2번 타자 전준오는 상대 선발투수 카라의 강력한 포심 구위에 긴장한 채 타격자세를 취한다.

팀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로 반드시 안타를 때리겠다는 의욕이 준오의 눈빛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강력한 구위와 제구력을 갖춘 포심과는 다르게 카라의 브레이킹 볼은 제구가 되지 않았다.

카라의 변화구를 골라낸 준오는 결국 주심에게 볼넷 판정을 얻어내고는 1루로 출루한다.

그렇게 해서 강호에게 1사 주자1루의 상황이 놓이게 된다.

'자, 한 번 확인해보자.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로 어떤 타격을 할 수 있는지를.'

강호는 대기타석 때부터 상대 선발 투수를 응시하며 천천히 타석으로 들어선다.

그의 발걸음이 타석 위로 옮겨졌을 무렵, 그동안은 볼 수 없었던 것이 시야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이었고, 사각형 내부는 비어있었으며 외곽 부분만 반투명하게 시야에 포착되는 모습이다.

한 눈에 보아도 스트라이크 존인 것을 알 수 있는 가상의 사각형이 상대 투수 카라를 바라보는 강호의 시야 앞에 떠올라 있었다.

'이게 '내가 심판이다' 아이템의 효과로구나.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이 시야에 표시되고, 상대 투수의 공이 도착하는 지점이 미리 표시된다는 건가?'

강호는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카라가 던지는 초구를 지켜보기로 한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초구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주심의 판정으로 카라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강호는 카라의 손에서 공이 떠난 직후의 순간, 이미 스트라이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카라의 손에서 공이 떠남과 동시에 시야에 떠오르는 시스템의 메시지 덕분이었다.

이미 시야에 표시되어 있는 스트라이크 존에는 카라의 공이 바깥 쪽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온다는 사실을 작은 점으로 표시해 주고 있었고, 시야 한 구석에는 구종과 구속이 표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9km

아이템의 효과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강호지만,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에 표시되는 코스와 구종, 그리고 구속까지.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타격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구위가 아닌 투수에게서는 웬만한 공은 모두 정타로 때려낼 자신이 있었다.

'카라의 포심은 정타로 만들기는 힘들어. 구위가 보통의 투수들과는 다르니까. 하지만 변화구를 노리고 친다면 충분히 인필드 안으로 타구를 밀어 보낼 수 있어. 매 타석마다 홈런을 치기는 어렵겠지만, 타이밍을 맞춰서 인필드 안으로 타구를 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

두 개의 기간제 아이템에 대한 판단을 내린 강호는 들고 있던 배트를 힘껏 쥔다.

그의 시선은 상대 팀 선발 투수 카라의 얼굴로 향한다.

1루 주자 전준오를 살핀 후, 포수의 싸인을 받고 있던 카라는 그런 강호의 눈동자를 마주하게 된다.

'웃어?'

와이번스의 선발 투수 카라는 타석에 선 강호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는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악물게 된다.

타석에 선 타자가 웃고 있다는 것은 투수인 자신을 만만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에 강호를 향한 카라의 2구는 포수가 요구한 것과는 다른 구종으로 선택되어 던져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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