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16화 (11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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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홈런

장소는 경기장에서 잠시 자이언츠 구단 본부로 옮겨진다.

"요즘은 구단 기사 댓글에 칭찬 찾아보기가 힘드네. 구단에서 내는 기사는 한동안 내지 말아야겠어. 사회공헌 기사에도 욕밖에 안 달리는구나."

지정만 사장은 본부 사장실에서 찜찜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자이언츠 기사는 팀 성적 하락으로 성난 팬심을 되돌려보기 위해 구단에서 진행 중인 유소년 야구 지원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였다.

댓글에는 자이언츠의 성난 팬심을 반영한 비난의 말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그 중 다소 순한 댓글들을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았다.

"이런 거 할 시간에 감독 교체나 해라."

"자이언츠 애쓴다. 이제 야구만 잘 하면 돼네. 야구나 잘 해라!"

"사회 공헌 좋지. 그런데 팬이 없으면 구단도 없고, 사회 공헌도 필요 없어지는 거야. 이런 거 챙기는 것도 좋지만, 팀 성적부터 챙겼으면 좋겠네."

"꼴찌 경쟁하니까 머리가 꼴통이 되나보네. 이럴 시간에 한 감독이나 짤라!"

지 사장은 댓글들을 읽다말고 시선을 돌린다.

하나의 단어가 그의 울화병을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꼴...통 이라니? 내가 이런 말까지 들어야해?"

지 사장은 머리 쪽으로 올라오는 울화를 참기 위해 심호흡과 함께 눈을 감아버린다.

그 때 마침 인터폰이 울리고, 이어서 김유진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허동준 기획실장이 접견을 청합니다.

김 비서의 목소리에 마침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던 지 사장이 즉시 답한다.

"어서 들어오라 그래."

-네.

지 사장의 대답이 떨어지자 곧 사장실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와!"

지 사장의 우렁찬 목소리에 문 밖에서 노크하던 허 실장의 손길이 멈칫하게 된다.

'아, 뭐야? 저 목소리는 사장님 기분이 별로일 때 목소리인데...타이밍 잘못 잡았구나.'

허 실장은 속으로 한탄하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사장실 문고리를 돌린다.

그리고는 사장실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입을 연다. 먼저 선수를 쳐보려는 의도였다.

"사장님, 찾아냈습니다!"

허 실장은 자신을 향해 쏟아질 지 사장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토해내듯 말을 뱉어낸다.

그리고 그의 꼼수는 통했다.

'찾아냈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에 지 사장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진다.

"정말이야? 한 감독의 티끌을 찾아냈단 말이야?"

"네, 증인 확보하고 증거도 수집했습니다."

"좋아!"

허 실장의 보고에 지 사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벗어두었던 외투를 입으며 사장실 문을 나선다.

"..."

그 때까지 멀뚱히 서있던 허 실장은 이미 나가버린 지 사장이 문 밖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헐레벌떡 걸음을 옮기게 된다.

"뭐하고 있어?! 지금부터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서 따라와!"

"네! 지금 갑니다!"

그렇게 답하며 허 실장 역시 사장실을 나선다.

지정만 사장과 허동준 기획 실장, 두 사람의 발걸음이 구단 본부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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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김민철 수석은 공 하나를 들고 강호를 찾고 있었다.

"강호야. 여기 네가 부탁했던 공이야."

강호는 김 수석이 내민 공을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러면서 김 수석을 향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 수석은 문득 궁금해진다.

강호가 시즌 홈런 중에 하나인 12호 홈런볼을 회수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이유를.

"강호야. 근데 12호 홈런볼이 왜 필요한 거야? 너 전에도 6호인지, 7호인지 홈런볼도 회수해 달라고 했었잖아."

김 수석의 물음에 손바닥 위에 올려둔 홈런볼을 감상하고 있던 강호의 시선이 김 수석을 향한다.

"저 한테는 의미가 있는 공이라서요. 이 공을 꼭 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강호의 대답에 김 수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여자 친구 없는 건 잘 알고 있고, 가족한테 주려는 거겠지? 잘 알겠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김 수석은 피식 웃음 지으며, 강호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들긴 후 몸을 돌린다.

경기가 이미 끝났으니 김 수석도 퇴근을 해야 했다.

오늘 경기는 홈경기인 데다가 내일이 휴식일인 월요일 이어서 휴일을 가족들과 보내고 싶은 마음에 더 이상의 질문은 멈추고 퇴근을 위한 발걸음을 서두른다.

김 수석이 모습을 감추자 근처에 있던 선수들 중 세준이 강호를 향해 다가온다.

"무슨 공이야? 김 수석님이 너한테 공을 주고 가던데. 아까 때린 13호 홈런볼이야?"

세준이 궁금한 듯이 묻고 있었다.

그런데, 세준의 말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조금 전에 끝났던 타이거즈와의 6차전 경기에서 1회에 때린 투런 홈런 외에 또 하나의 홈런을 때려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경기 1회말, 투런 선제홈런을 때려냈던 강호는 팀이 4대 5로 역전을 허용해 경기를 지고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5회 말 득점권 찬스 때 투런포를 가동한 것이었다.

세준이 지금 묻고 있는 13호 홈런은 5회 때 때려낸 홈런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12호 공이야.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강호의 말에 세준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강호가 야구외에 취미생활이나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세준이기에 강호가 홈런볼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가족일 것이라는 김 수석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홈런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어차피 그가 강호에게 말을 건넨 이유는 홈런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강호야. 오늘은 시간 좀 내야지. 내가 너한테 한 턱 쏘겠다고 한 게 언제인줄 알아? 그 일이 벌써 보름 전 일이야. 우리 백 스타랑 밥 한번 먹기 되게 힘드네. 오늘은 빼지 말고 밥 먹으러 가자."

세준이 5월 3일 히어로즈 전에서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호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그동안 팀 성적이 좋지 않고, 여러 가지 바쁜 일들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벌써 보름의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지금은 세준이 왜 밥을 사주기로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세준아. 오늘도 안 되겠다. 오늘 저녁은 형이랑 먹어야 돼. 형이 아직까지 저녁을 안 먹고 기다리고 있다네. 그 한턱은 다음에 쏴라."

강호는 또 다시 본의 아니게 거절을 하게 된다.

그동안 꽤나 가까워진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준은 강호의 가정사를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다.

강호의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것도, 형이 집안의 가장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세준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강요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리 백 스타를 집에 보내드려야지. 그래도 이번 달 넘기기 전에 밥 한 번 같이 먹자."

세준의 말에 강호는 '꼭 그렇게 할게'라고 약속하며, 들고 있던 공을 조심스럽게 백 팩에 챙겨 넣는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곧장 친형인 강수의 사직동 집으로 향한다.

"강호 왔구나! 오늘 경기도 너무 잘 했어. 결승 홈런에 4타점이나 때려내고, 역시 내 동생이라니까. 배 많이 고프지? 어서 밥 먹으러 들어가자."

형은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집 앞 골목길에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다가 강호를 반겨준다.

그러면서 강호가 들고 있던 백 팩을 대신 둘레 메고 동생의 어깨에 기분 좋게 어깨동무를 해 보인다.

"어렸을 때는 요만했던 놈이 이제 어깨동무하기도 힘들 정도로 커버렸네. 우리 강호, 언제 이렇게 큰 거야? 너무 커버려서 형이 올려다봐야 되겠네."

강수의 말에 강호는 가슴이 애잔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감정적인 말을 별로 해본 적도 없었고, 어느새 서른 살이 돼버린 형의 감성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자신이 어리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형이 어깨동무를 위해 올려두었던 손 위에 백 팩에서 꺼내든 공을 올려두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한다.

"어? 이게 뭐야? 오늘 때린 홈런볼이야?"

강수는 동생이 갑작스럽게 쥐어준 공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도 TV중계를 통해 경기를 보았기 때문에 동생이 오늘 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때린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자신에게 준 것이라 짐작해 본다.

강호는 형의 물음에 '12번 째 홈런볼이야. 형이 보관해 줘'라고 대답하며, 형과 함께 집으로 들어선다.

"그래, 그럴게. 어서 밥 먹자."

형은 홈런볼을 대신 보관해 달라는 동생의 말에 그러겠다고 답하며 동생을 식탁으로 안내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방으로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에 놓인 보관대에 강호가 건넨 공을 조심스럽게 보관해 둔다.

12호 홈런볼을 놓아둔 근처에는 몇 개의 야구공이 보관되어 있었다.

혹시 먼지라도 쌓일까봐 투명 아크릴로 공 주변을 막아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 강호가 건넨 12번째 홈런볼 역시 투명 아크릴 케이스 안에 보관된다.

그 후, 자신의 방에서 나온 강수는 강호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함께 한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아, 맞다'라고 말하며 동생에게 입을 연다.

"강호야. 싸인볼 30개만 해주고 가라. 내 동생이 백강호라고 말하고 다녀도 아무도 안 믿어. 우리가 별로 안 닮았나봐. 네 싸인볼이라도 보여주면 믿겠지."

형의 말에 수저로 국을 떠먹던 강호는 '푸흡'하고 뿜을 뻔하며 근처에 있는 티슈로 입을 닦는다.

구도 부산이라 불리는 자이언츠에서 두 달 가까이 맹활약한 강호는 이미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동생을 자랑하고 싶은 형의 마음이 이해되고 있었지만, 30개의 싸인볼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하러 싸인볼이 30개나 필요해? 같이 셀카 한 번 찍으면 되는 일이잖아."

"아, 맞네. 셀카 하나 찍으면 다 해결되는 일이었네. 너 유니폼이랑 선수 모자 좀 갖고 와봐. 지금 당장 찍자!"

강수는 그냥 해본 동생의 말에 박수까지 치면서 지나칠 정도로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강호는 '내가 최근 들어 형이랑 사진 한 장 찍은 적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자책하게 된다.

그런 생각에 유니폼까지 입고 사진을 찍자는 다소 과해보이는 형의 부탁에도 쉽게 승낙하게 된다.

아마도 형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작용된 것으로 보였다.

"웃어. 웃으라고. 그렇게 무뚝뚝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으면 가족같이 안 보일 거 아냐? 누가 보면 내가 너 납치해서 강제로 찍은 줄 알겠네. 그래, 그렇게 더 웃어봐. 손가락도 브이하고 만들어 보고!"

형의 말에 강호는 억지스러워 보이는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인다.

찰칵, 찰칵, 찰칵!

형은 연달아 몇 개의 사진을 찍으면서 지금의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간직한다.

그것은 동생인 강호도 마찬가지여서 소박하긴 하지만, 모처럼 형제애를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으로 5월 19일, 일요일을 기억하게 된다.

강호에게는 여러모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하루였다.

하루의 시간이 흘러 월요일 휴식일을 맞이하게 된 강호.

사직동 집에서 하루를 보낸 강호는 상동의 독신자 숙소로 돌아와 있었다.

손 감독이 말했던 프로 선수로서의 프로다운 휴식을 위해 오늘 하루를 제대로 널브러질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각 팀의 리포팅 자료와 선수들의 기록을 손에서 놓치는 않고 있었다.

"쉬는 것도 몇 시간이지. 하루 종일 어떻게 집에서 쉬고만 있어? 좀이 쑤셔서 안 되겠어. 러닝이라도 하고 와야지."

결국 강호의 휴식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개인 훈련으로 바뀌게 된다.

몸을 일으킨 강호는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현관을 나선다.

그런데 그의 체격이 커지다보니 과거에는 넉넉했던 트레이닝복이 몸에 밀착되어 체지방 없이 근육으로만 가득 찬 강호의 몸매가 옷 밖으로 드러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큰 키에 준수한 이목구비, 그리고 건장한 체격의 강호가 달리는 모습에 길가를 지나던 상동 주민들이 한 번씩은 뒤돌아볼 정도로 건강미 넘치는 모습이었다.

"어?! 백강호 선수 아니야?"

"어디? 나는 못 봤는데. 백강호 선수가 어디 있는데?"

"저기...지나가 버렸네? 와아, 진짜 빠르네."

"어디서 뻥을 치고 있어. 백강호 선수가 왜 상동에 있어? 있으려면 사직에 있겠지."

"아니, 내가 진짜 봤다니까. 백강호 선수가 상동에 살았었나?"

상동 주민들은 빠르게 지나쳐버린 강호에 대해 이야기하며, 토요일에 일어난 신기한 일 중에 하나라 여긴다.

하지만 강호에게 다가가 싸인을 요구하거나 함께 셀카를 찍자고 할 수는 없었다.

주민들이 요청한다면 흔쾌히 응할 강호지만, 주민들이 따라 잡기에는 강호의 러닝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 백강호 아니야?'하는 순간 이미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강호.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상동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

상동에서의 러닝 코스 중에 상동 2군 경기장이 포함돼 있었기에 습관적으로 경기장에 발걸음이 닿은 것이다.

그런 강호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 백강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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