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15화 (11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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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홈런

    타이거즈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 시즌 여섯 번째 맛대결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사직 구장에 출근하게 된 강호.

    그런 강호의 외모가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강호의 변화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그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해 단련실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던 1루수 김상훈이었다.

    "어?! 강호, 몸이 왜 이렇게 커진 것 같지? 좋은 거라도 먹고 다니는 모양인데? 이거 시즌 전하고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달라진 느낌인야. 이제 95kg정도는 충분히 넘겠는데?"

    상훈은 어제와는 다르게 커 보이는 강호의 체격을 지적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상훈의 말에 미리 대답할 말을 준비하고 있던 강호는 마주 웃어 보이며 그의 질문에 대답한다.

    "최근에 몸무게가 조금 늘기는 했습니다. 이제 보충제는 그만 먹어도 될 거 같아요. 다섯 번씩 먹던 거를 일곱 번씩 먹으니까 이렇게 체격이 커지네요."

    강호는 항상 섭취하던 보충제 탓을 하며, 변화된 체격에 대해서 설명한다.

    상훈의 입장에서는 유니폼이나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의 강호만 보다가, 타이트한 반팔 티셔츠를 입은 강호가 시각적인 착각으로 커 보인다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그것은 나중에 출근하게 된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강호가 체중을 불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했구나'라고 여기며 한 두 마디 말을 건네고는 자신의 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다른 선수에게 과한 관심을 보이기에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아 개인훈련에 열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강호 역시 다른 선수들과 섞여 개인훈련에 나선다.

    "어! 강호 100kg를 놓고 하는 거야? 너 원래 80kg 놓고 했잖아. 언제 100kg까지 올렸어?

    아~ 이거 긴장해야 되겠는데."

    상훈은 강호의 벤치프레스 바벨무게를 확인하고는 놀란 듯이 묻고 있었다.

    상훈의 지적대로 강호의 근력은 눈에 띄게 증가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확히 70이었던 파워가 80.1로 10.1이나 증가하게 되자 20kg이상의 벤치프레스 무게를 증가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큰 변화였다.

    60대에서 70대로 올라서는 것과 70대에서 80으로 올라서는 것은 근력이나 근지구력 파워 상 엄청난 변화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서 무게를 조금 더 올려도 될 것 같습니다, 그냥 한번 해보려고요."

    강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답하며 들어 올렸던 바벨을 내려놓는다.

    상훈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벤치프레스를 할 정도로 강호의 근력이 강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강호는 이렇게 강화된 파워를 경기에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큰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개인훈련 시간과 팀 훈련시간이 지나 타이거즈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오늘 선발 라인업을 확인했던 선수들이 훈련 상황에서 각자의 불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포구 훈련을 아무리 하고 타율이 2할 9푼을 찍어도 중심 타선에 서기 진짜 힘드네. 7번 타순을 못 벗어나네."

    1루수 상훈의 말에 근처에서 수비 훈련을 하던 최훈이 '그래도 너는 7번이잖아? 나는 8번이라고'  말하며 본인의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89년생인 상훈보다 87년생인 최훈이 2년 선배의 위치에 있었다.

    "나를 왜 8번 타순에 두는 거야? 아, 이거 참 서럽네, 서러워."

    2루수인 최훈은 자신의 타선위치가 8번으로 내려앉았다는 사실에 불만을 토로해 본다.

    원래는 상위타선에 자리했었던 최훈.

    부상에서 회복되어 1군에 올라왔을 때도 중심타선에 포진 되었었지만, 여전히 2할 7푼 대의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어서, 오늘 라인업에서는 8번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가 불만인 이유는 단지 자신이 8번 타순으로 내려앉았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1번 타순으로 올라가게 된 박철이나, 6번 타순으로 자리 잡은 유성철 등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주요타순에 자리 잡으면서 조금씩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최훈도 불만을 가질 수 없는 선수가 있었다.

    "최훈 선배님은 조만간 중심타선으로 이동하시지 않을까요? 아직은 컨디션 회복 차원이 아닐까 합니다."

    최훈의 불만에 대신 대답하는 것은 강호였다.

    최훈이 최근 라인업에 오른 2군 선수들에게 약간은 불만은 있다고 하지만, 강호에게 만큼은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무려 4할 대의 타율을 5월 19일까지 유지하고 있는 강호이지 않은가.

    게다가 원래 자신의 보직이었던 2루수 자리를 강호가 차지하고 있어서 1군에 올라와도 자신의 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오진택이 빠진 유격수 자리로 강호가 이동하면서 최훈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강호에게만큼은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하게 된다.

    "그렇겠지. 아무리 봐도 나는 8번 타선에는 안 어울리는 거 같아. 한 6번이나 7번 정도는 올려줘야지 그래도.. 내가 강호 너 정도까지는 못하겠지만, 빨리 타격감 회복해서 3할대로 타율을 올려야겠어."

    최훈은 강호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그와의 수비훈련을 끝낸다.

    잠시의 팀 훈련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타이거즈 1회 초 공격이 삼자 범퇴로 끝이 나고, 1회 말 공격이 시작되자 배트를 챙겨들고 그라운드로 오를 준비를 한다.

    강호가 곧장 타석에 서지 않는 이유는 오늘 경기의 1번 타자는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베이스 온 볼."

    1번 타자로 나선 박철이 주심에게 볼넷 판정을 확인한 후 1루로 출루하는 모습이 보인다.

    박철은 최근 3할 2푼 6리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타격감을 뽐내고 있는 타자였다.

    그런 타격감과 함께 또 다른 장점으로 거론되는 선구안 능력으로 볼넷을 얻어 1루로 출루하게 된 박철.

    이어서 다음 타자인 2번 타자 전준오가 타석에 올라 상대 투수의 초구를 지켜보는 동안 대기 타석으로 걸어 나가려던 강호의 어깨를 붙드는 손길이 느껴진다.

    "강호야, 오늘 타이거즈 선발 오준영의 제구력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초구가 자꾸 가운데로 몰리는 게 보이지? 철이한테 던진 초구하고 준오한테 던진 초구 모두가 가운데로 몰리는 속구였어. 한 번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대기 타석에 들어서려는 강호에게 타격 코치인 정호종 코치가 해준 말이었다.

    강호는 그의 말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대기 타석에 오른다.

    딱.

    그 사이 공을 때리는 짧은 타격음이 들려온다.

    2번 타자인 전준오가 상대 투수인 오준영 투수의 2구를 받아친다는 것이 3루수 쪽으로 향하는 땅볼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1루 주자인 박철이 아웃될 수 있는 방향의 타구였지만, 그라운드 된 볼이 높게 튀어 올라 3루수인 이범화가 바운드 된 타구를 처리하는 사이 박철은 2루 베이스에 안착할 수 있었다.

    대신 타자 주자인 전준오가 아웃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웃!"

    1루심의 아웃 콜을 들으며 강호는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1회 말 1사 주자 2루의 득점권 기회가 강호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은 아이템 사용 여부를 묻고 있었지만, 강호는 지금 타석만큼은 아이템 사용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타격을 결정한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야겠어. 얼마나 좋아졌을까? 컨택 수치가 90이라는 게 감이 잘 오지 않아. 연습 타격에서는 외야로 뻗는 타구가 많았었는데, 실전에서는 어떨까?'

    강호는 기대감을 가지며 타격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눈빛을 빛내며 상대 선발투수를 노려본다.

    '오준영 투수, 아직 99년생인 루키가 선발자리에 오른걸 보니 제법 구위가 좋은 모양이야. 하지만 오늘 제구가 되지 않는 편이야. 포심은 가운데로 몰리고, 유인구는 존 밖으로 크게 벗어나고 있어. 변화구는 노릴 필요가 없어. 처음부터 포심만 노린다!'

    강호는 상대선발인 오준영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타격전략을 세운다.

    순간 타이거즈 선발인 오준영이 움찔할 정도로 강호의 눈빛은 매서웠다.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팬들이 '하하, 오준영이 쫄았네.' 라고 말하면서 강호 특유의 눈빛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아 백강호는 눈빛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눈빛만 기가 막히나? 타격도 죽이자나. 저 봐 .타이거즈 투수 위축된 거 봐라. 이번엔 분명히 적시타를 때릴 거야. 내기를 해도 좋아."

    자이언츠 팬들은 지금의 맞대결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며, 오랜만에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이언츠가 9위로 내려앉게 되자 사직구장을 찾은 팬들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하긴 했지만,

    지금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팀 성적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는 팬들이라 할 수 있었다.

    강호는 그런 팬들의 기대에 부흥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그래서 상대투수의 초구를 헛스윙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스윙을 가져간다.

    그런데 그게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이 타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강호가 힘껏 때린 타구가 외야를 향해 곧게 뻗어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항상 1루를 향해 전력질주로 달리는 강호였지만, 이번 타구에는 전력으로 달리지 않는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타구였기 때문이다.

    강호의 타구가 펜스를 훌쩍 넘기는 것을 확인한 중계진도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아~ 넘어 갔습니다! 백강호 선수가 오준영 투수의 초구를 받아쳐서 좌중간을 완전히 넘겨버리는 투런포를 때려냅니다! 이 홈런은 백강호 선수의 12호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이 홈런으로 자이언츠가 기선을 제압합니다."

    캐스터의 말이 TV로 중계되는 동안 강호는 밝은 표정으로 2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이번 홈런은 사직구장의 좌측 관중석 상단을 때리는 상당히 큰 타구였다.

    여태껏 강호 본인의 힘으로 때린 홈런 중에서는 가장 비거리가 길고, 빠른 스피드의 타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잘했어, 강호! 오늘은 1회부터 한방 해주는구나."

    3루 베이스 코치와 손뼉을 마주치며 강호는 홈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백강호, 최고다!"

    "백강호, 너밖에 없어. 네가 해줘야 돼. 잘했다 백강호."

    홈을 밟은 강호에게 자이언츠 팬들의 찬사가 이어진다.

    팬들의 찬사와 선배 선수들의 환호를 들으며 강호의 발걸음은 덕 아웃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됐어. 이제 진짜 됐어.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야구를 만들어 갈수 있어.'

    강호는 코칭스태프와 선후배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면서 속으로 남다른 감흥을 가지게 된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야구배트를 잡으면서 꿈꿔오던 완벽한 홈런을 스스로 때려냈다는 생각에 강호의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두고 사람들이 했었던 많은 말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백강호? 걔는 안 돼. 타격이 안 되잖아. 수비 아무리 잘 해봐야 반쪽짜리 선수를 어디다 쓰겠어? 그리고 일단 살부터 찌워야 하지 않겠어?"

    "어?! 강호가 2루타를 치네? 저건 사실 땅볼이지. 운이 좋아서 2루타가 된 거야. 타격 능력으로 2루타를 때려야지. 발이 빨라서 어거지로 2루타를 만드는 건 반칙 아냐?"

    "뭐라고? 강호가 홈런을 쳤다고? 오늘 4월 1일이야? 만우절인거야? 너 나한테 거짓말 하는 거지. 강호가 무슨 수로 홈런을 쳐. 저렇게 비쩍 말라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많이 들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

    강호는 그런 부정적인 인식들을 깨뜨리기 위해 프로에 와서도 죽도록 노력하며 선수생활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결국 베어스에서의 방출 결정, 그리고 이어지는 현역으로의 군 입대.

    시련의 시기를 겪어왔던 강호의 가슴에는 단 하나의 바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완벽한 홈런을 때려내고 싶어. 내 힘으로 때려낸, 그 누구도 흠 잡을 수 없는 완벽한 홈런!'

    그것이 강호의 바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마켓에서 경기 보상이나 업적 보상으로 얻은 포인트 대부분을 파워에 투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악력 운동과 허리 근력 운동 등의 개인 훈련에 집착하는 지도 몰랐다.

    강호는 그런 바람들, 그리고 오랜 꿈이 오늘에서야 실현됨을 느낀다.

    '오늘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이제는 그냥 수비 잘하는 선수, 발 빠른 타자, 혹은 똑딱이 타자, 그렇게만 나를 평가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거야. 이제부터 나는 홈런타자가 된다!'

    확신이 담긴 강호의 눈빛은 벅찬 감동과 앞으로의 기대감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야구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점심 먹기 전에 한편 올립니다.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잘 이겨낼 수 있는 주말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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