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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수 백강호
"3구 타격! 아아~ 공이 투수 정면으로 향합니다! 투수 맥도날드가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이 타구를 잡아냅니다! 원 아웃!"
중계석의 한 캐스터는 강호의 타구가 투수 맥도날드의 글러브에 빨려드는 장면을 중계하며 1아웃 상황을 알린다.
그의 말에 양현준 위원이 자신의 해설을 더했다.
"지금 타구는 강한 타구였거든요. 그런데 맥도날드 투수가 수비를 잘 해내네요. 저 정도면 야수를 봐도 될 것 같은데요? 백강호 타자 입장에서는 아까운 타구일 것 같네요."
양 위원은 투수 정면 타구로 아웃된 강호가 아깝게 아웃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강호의 다음 타자로 타석에 오른 2번 타자 김중호와 3번 타자 유성철이 모두 외야 뜬공으로 범타 처리되며 강호를 범타로 돌려세운 맥도날드의 투구가 그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1회 초 자이언츠 공격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1회 말 히어로즈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강호는 자신의 수비 위치에서 타석에 선 상대팀 1번 타자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한다.
'서건찬 타자. 30대가 되면서 기량이 조금 하락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교타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게다가 좌타자야. 내 쪽으로 오는 타구가 올 가능성이 절반이 넘어. 집중할 필요가 있겠어!'
강호는 히어로즈의 1번 타자로 나선 서건찬을 바라보며 수비 자세를 더욱 견고하게 갖춘다.
우투좌타인 서건찬 타자는 우중간으로 향하는 타율의 비율이 생각보다는 높지 않았다.
밀어 치는 타격에도 능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럼에도 절반 이상의 타구는 우측과 중앙 쪽을 향하는 타자여서 정신을 바짝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중계석에서도 강호가 생각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오늘 양 팀의 리드오프 대결이 흥미로운데요. 앞서 양 위원께서 자이언츠의 키 플레이어로 지목하신 백강호 타자는 투수 정면 타구로 3구만에 물러났었습니다. 히어로즈의 키 플레이어로 지목하신 서건찬 타자가 첫 타석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살펴봐야겠습니다."
한명진 캐스터의 말에 양 위원이 '네네'하고 대답하며 의견을 더한다.
오늘 키 플레이어로 양 팀의 리드오프들을 지목한 것은 양 위원 자신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저는 두 가지만 빼고 본다면 백강호 선수하고, 서건찬 선수가 비슷한 유형의 타자로 보거든요. 두 선수 다 2루수고, 수비 능력이 좋은 편이에요. 컨택 능력도 뛰어나고, 밀어치기에 능하면서 발이 빠르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공을 골라내는 능력도 공통점이 되겠습니다. 물론 두 선수 다 팀의 리드오프라는 점도 있고요."
양 위원의 말이 끝나자 한 캐스터가 얼른 질문을 던진다.
지금 양 위원의 해설은 경기 전에 두 사람 간에 이야기가 끝난 내용이었기 때문에 한 캐스터 역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모른 척 질문을 하고 있었다.
"두 가지 다른 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두 선수가 다른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네, 첫 번째가 장타력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홈런이죠. 서건찬 선수가 커리어하이 시즌인 2014년에 기록한 홈런이 7개거든요? 2루타 41개, 3루타 17개를 때린 것에 비해서 홈런 기록은 적습니다. 데뷔 후에 홈런 개수가 두 자릿수를 넘긴 시즌이 없어요. 반면에 백강호 선수는 4월 9일 데뷔 이후로 8개 홈런을 기록하고 있죠? 펀치 능력은 서건찬 선수보다 백강호 선수가 앞선다고 볼 수 있어요."
양 위원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서건찬의 기록을 읊으며 첫 번째 차이점을 지적한다.
그 사이 서건찬이 자이언츠 선발 투수로 나선 박세준의 2구째를 때려냈지만, 좌측 관중석을 넘기는 파울 타구가 된다.
한 캐스터는 그 상황을 중계한 후, 다시 양 위원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네, 그럼 두 번째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한 캐스터의 정해진 질문에 양 위원이 바로 입을 열었다.
"두 번째는 타점 생산 능력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클러치 능력인데요. 백강호 선수가 여러 타순을 전전하다 1번에 정착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타점이 상당히 높습니다. 벌써 27타점 째를 기록하고 있거든요? 리그 6위를 마크하고 있어요. 반면에 서건찬 선수는 9타점이죠? 이런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봅니다."
양 위원은 두 선수에 대한 비교 분석을 그런 식으로 마무리 한다.
결국 그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강호의 해결사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양 위원의 말이 끝나자 한 캐스터가 미리 입을 맞춰둔 얘기를 꺼낸다.
"그 말씀은 백강호 선수가 1번 타순보다는 중심 타선에 어울린다는 말로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게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백강호 선수가 현재까지 고타율을 기록하고 있어서 컨택 형 타자로 보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파워 쪽에도 무게를 둬야할 것 같아요. 득점권 타율도 높고, 타점 생산 능력이 좋은 선수에요. 백강호 선수를 3번이나 4번 자리에 기용할 수 있으면 클러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있는 겁니다. 시즌 중에 중심 타선에서 슬럼프나 부상이 발생하면 백강호 선수를 대체자로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한 캐스터의 질문에 답하는 양현준 위원.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뱉어내고, 의자에 몸을 기댄다.
양 위원이 보기에 강호는 리드오프보다는 중심타선에서 활용하는 쪽이 자이언츠에게 이득이라는 생각이었다.
강호가 1번 타순에서 워낙 잘하고 있어서 묻혀지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백강호는 리드오프보다 4번 자리에 더 잘 어울려. 지금 당장 4번에 놓고 쓰기 곤란하면 유성철 선수 대신에 백강호를 3번에 넣어도 좋을 텐데.'
양 위원은 강호가 4번 자리에 있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속으로 아쉬움을 표하는 사이 타석에 선 서건찬이 박세준의 6구째를 통타하는 안타를 때려내고 있었다.
"서건찬, 좌전 안타로 출루 합니다. 그런데 유격수 오진택 선수의 표정이 좋지 못합니다."
한 캐스터가 서건찬의 좌전 안타 상황과 오진택 유격수의 수비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강호에 대한 생각에서 깨어난 양 위원이 느린 화면을 보며 '아'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지금은 팔꿈치 쪽에 쓸린 것 같은데요? 다이빙을 캐치를 하려다가 지면에 팔꿈치가 쓸린 것 같아요. 아프겠는데요?"
"쓸렸다는 말씀은 찰과상이라는 말이시죠?"
"네, 오진택 선수가 팔꿈치 쪽에 찰과상을 입은 것 같아요. 다이빙 캐치 훈련을 할 때 지면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배우거든요. 손목 부상을 막으려는 이유인데 저런 식으로 가끔 팔꿈치나 무릎 쪽에 찰과상을 입기도 합니다."
양 위원의 지적대로 유격수 오진택의 팔 쪽 유니폼이 찢어져 약간의 혈흔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 중인데다 타자가 아닌 까닭에 진택은 출혈을 참아내며 경기에 임한다.
엄살을 떨기에는 출혈이 심하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양 위원이 걱정스런 어조로 말했다.
"오진택 선수가 통증을 참아내고 있네요. 출혈이 심하지 않더라도 이닝이 종료되는 대로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양 위원의 말대로 1회 말이 종료된 후 덕 아웃에서 치료를 받게 된 진택. 그가 tv화면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었던 내용의 말을 트레이너에게 전한다.
"발목이 접질린 것 같습니다. 약간 뻐근하네요."
진택은 피 몇 방울 흘러나오는 팔꿈치 찰과상보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에 원정 때마다 팀과 동행하는 윤영찬 트레이너가 인상을 찡그린다.
"발목이 접질렸다고? 일단 파스 한 번 뿌려볼게."
윤 트레이너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프레이 파스를 꺼내 오진택의 발목에 뿌린다.
그러면서 시선은 진택의 얼굴을 살폈다.
진택은 스프레이가 뿌려지는 것을 지켜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한명진 캐스터가 곧장 입을 연다.
"아아, 오진택 선수 발목 쪽에 부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1회 말 서건찬 선수가 안타를 때리는 상황에서 수비를 하다가 발목을 접질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캐스터의 말에 양현준 위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의견을 더한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오진택 선수 팔꿈치에 찰과상도 있었거든요. 발목 쪽에 부상을 입으면 주루할 때도 물론이고, 타격할 때도 타구에 힘을 싣기가 힘들어요. 나중에 오진택 선수가 타석에 서면 확인할 수 있겠지만,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양 위원은 오진택 선수의 부상이 심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2회나 3회에 다가올 진택의 타석에서 부상정도를 확인해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양 팀 득점 없이 2회 상황이 지나고 3회초 1아웃의 상황에서 자이언츠의 9번 타자인
오진택이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뭔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진택.
그의 표정에서 어느 정도 상황을 간파한 양 위원이 입을 연다.
"조금 부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오른쪽 발목이거든요. 오진택 선수 보시는 것처럼 우타자에요. 오른쪽 발목에 부상이 있으면, 배트스윙을 할 때 타이밍이 늦을 수밖에 없어요. 요즘 안 그래도 타율이 많이 떨어져 있는 오진택 선수거든요. 자이언츠 벤치에서는 오진택 선수를 교체해서 진료를 받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양 위원의 말대로 진택의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진택은 상대 투수 맥도날드의 4구째 공에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하는 스윙을 하며 삼진으로 돌아선다.
그 모습에 김민철 수석이 한숨을 내쉬며 한동현 감독에게 다가선다.
최근 들어 서로 대화가 없는 한 감독과 김 수석이었지만, 선수를 아끼는 김 수석의 입장에서는 진택의 교체 제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님. 진택이 발목 부상을 체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교체하시는 게 어떨까요?"
김 수석의 제안에 한 감독이 습관적으로 거절을 말을 하려다 순간 멈칫하게 된다.
타이거즈 전에서 헤드샷을 경험했던 강호를 곧장 보내지 않아 받아야 했던 무수한 비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한 감독은 결국 김 수석의 제안에 따르게 된다.
"그러면 다음 3회 말 수비 상황에서는 호섭이를 대수비로 올리기로 하죠."
한 감독은 백업 내야수 중 한 명인 손호섭을 진택의 대체자로 내세울 생각이었다.
만약 진택이 상위 타선이나 중심 타선의 타자였다면 교체할 선수를 심각하게 고민했겠지만, 진택은 9번 타자였다.
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대체자로 대수비를 세운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보였다.
"알겠습니다. 호섭이를 유격수로 세우고, 진택이는 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한 감독의 말을 김 수석이 받음으로써 진택의 교체가 결정된다.
그렇게 해서 3회 말 자이언츠의 수비 상황에서는 유격수 자리에 진택이 아닌 손호섭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한 감독은 손호섭이 유격수 자리에 선 것을 확인하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2루수 자리에 있는 강호를 보게 된다.
'가만있자. 호섭이는 통산 타율이 2할대 초반이잖아? 어산이가 그래도 2할 중반 대를 기록하지 않았나? 호섭이보다는 어산이의 타율이 더 높았던 것 같은데?'
한 감독은 백업 내야수들인 손호섭과 이어산을 비교해보며 그들의 기록을 뒤져본다.
과연 그의 기억대로 손호섭의 통산 타율은 2할 9리였고, 이어산은 작년 시즌까지 그래도 2할 5푼 대의 상대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 강호가 2군에 있을 때 유격수를 봤었잖아. 강호를 유격수 자리로 옮기고, 어산이를 2루수 자리에 기용하면 9번 타순에서 공격의 흐름이 끊기는 게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었지? 강호 같은 타자를 2루수에 두는 것보다 유격수로 이동시켜서 야수로서의 수비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괜찮은 일이잖아? 좋아, 4회 때부터는 강호를 유격수로 세우고 어산이를 2루수로 올리도록 하자.'
한 감독은 또 다시 자신만의 독특한 선수기용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호섭을 3회 말 상황에서만 대수비로 쓰고, 9번 타순에 이어산을 대타로 넣는 것과 동시에 그를 2루수로 기용한 후 강호를 유격수 자리로 옮기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한 감독의 이런 생각은 잠시 후, 4회 말 수비상황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자이언츠 쪽 수비 위치에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대 수비로 들어왔던 손호섭 선수가 빠지고, 백강호 선수가 유격수 자리에, 2루수 자리에는 이어산 선수가 들어왔습니다."
중계석의 한 캐스터는 변동된 수비 위치를 짚어주고 있었다.
그의 말에 양 위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름의 해설을 하는 동안 유격수 자리로 이동하게 된 당사자는 속으로 하나의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상태창.'
강호는 오진택의 부상과 갑작스런 한 감독의 변덕으로 옮겨진 자신의 유격수 위치를 받아들이며 상태창을 확인해 본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80
파 워:70
선구안:65.6
주 력:84.2
수 비:79.9
송 구:65.4
멘 탈:85.8
스탯은 다른 내용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84였던 수비력과 70이었던 송구 능력이 하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의 수비 능력이 유격수 자리였을 때보다는 2루수에 있을 때 극대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수치 차이를 떠나 강호는 오랜만에 자리하게 된 유격수 자리에서 묘한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1군 무대 데뷔 후 유격수 자리는 처음이구나.'
베어스 시절 말미부터 자이언츠의 스프링캠프 때까지 줄곧 유격수 자리를 도맡았던 강호였다.
1군 무대에 올라오면서 어색했던 우익수 수비와 익숙한 2루수 수비를 번갈아 맡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2군 시절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오게 되자 남들은 알지 못하는 묘한 감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그 감정은 일종의 기쁨이었다.
'유격수, 여기가 원래 내 자리였어. 2군에서 갈고 닦은 수비 실력을 드디어 보여줄 수 있겠구나.'
강호는 피식 미소 지으면서 타석에 선 타자를 응시한다.
그런 강호의 시선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