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11화 (111/335)

0111 / 0335 ----------------------------------------------

유격수 백강호

5월 3일 금요일, 히어로즈와의 시리즈 첫 경기가 열리는 아침이 밝았다.

자이언츠 선수단은 여전히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상황. 경기가 시작되는 오후 6시 30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곳이 홈이었다면 경기장에 나가 개인 훈련을 했을 강호지만, 이곳은 원정지였다.

원정 구장에서 원정 팀 소속의 선수가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강호로서는 숙소 내에서 할 수 있는 훈련을 찾아봐야만 했다.

벌컥.

"강호, 대우. 뭐해? 점심에 치킨 시켜먹을 건데 너희도..."

강호와 대우에게 배정된 숙소 방에 박상현 투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문가 근처에서 멈춰 서게 된다.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강호의 숙소 방 광경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희들 뭐하고 있는 거야? 이게 놀고 있는 거야? 훈련하는 거야? 정체가 뭐야?"

박상현 투수는 눈썹을 씰룩이며 모두를 향해 묻고 있었다.

지금 숙소 방에는 방주인인 강호와 대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 안에는 우익수 자원인 유성철과 박철, 2군에서 올라온 백업 포수 안민경, 그리고 주전 1루수 김상훈이 강호의 방 안에 함께 하고 있었다.

여섯 사람은 제 각각 다른 자세와 포즈로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각자 노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훈련이나 운동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훈련이라고 여긴 이유는 강호와 성철 때문이었다.

"상현 선배님, 오셨습니까? 지금 개인 훈련하고 있는데 상현 선배님은 이런 거 안 좋아 하시지 않으십니까?"

강호는 그런 식으로 되물으며 상현의 물음에 답을 대신한다.

상현의 물음에 답하면서도 밴딩기를 발끝에 고정시킨 채 오른팔로 스윙하듯이 밴드를 당기고 있는 강호.

성철은 평소 강호가 사용하던 악력기로 손아귀 근력을 키우는 중이었다.

반면에 놀고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민경과 상훈, 그리고 대우, 박철에게 있었다.

그들은 각자 침대에 누워 VR안경을 보고 있기도 했고, A4용지에 인쇄된 자료를 읽으며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제 각각 중구난방인 모습에 잠시 헷갈려하던 상현.

'음~ 놀고 있었구만. 훈련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굴 속이려고?'

상현은 나름의 결론을 내리며 강호에게 다가선다.

"치킨먹자. 치킨! 응? 다 합치면 일곱 명이니까 열네 마리 시키면 되겠네."

상현의 제안에 강호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저는 치킨 안 먹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곱 명인데 왜 치킨이 열네 마리입니까? 1인당 한 마리를 계산해도 일곱 마리가 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상현의 말에 대한 강호의 대답이었다.

강호는 1인당 2마리 꼴로 계산되는 상현의 덧셈 방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자 상현은 '1인당 2닭 아냐? 당연한 거 아냐? 우리는 운동선수잖아. 체력 유지하려면 그 정도는 먹어줘야지~피자도 몇 판 시키려고 했는데?' 라고 대꾸하며 강호가 당기고 있던 밴드에 관심을 보인다.

"그건 또 뭐야? 요가 할 때 쓰는 거 아냐? 재활 훈련할 때 이런 밴드 썼던 것 같은데?"

상현의 물음에 강호가 답했다.

"네, 요가할 때나 재활 훈련할 때 쓰던 밴드 맞습니다. 제가 허리 회전이 조금 느린 것 같아서 밴드로 회전 속도 좀 올려보려고요."

"강호 네가 허리 회전이 느리다고? 너 배트 스피드 빠른 편이잖아? 그런데 거기서 더 높여보겠다는 말이야?"

상현은 허리 회전 속도를 높이겠다는 강호의 말에 배트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훈련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말대로 강호는 배트 스피드를 조금 더 끌어올리기 위해 허리 근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정 경기 전에 심한 근력운동은 자제할까 합니다. 이 정도 근력 운동정도로 조절 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강호의 대답이었다.

어쩌다보니 강호와 친해지게 된 나머지 선수들도 각자의 컨디션과 취향에 맞는 개인 훈련을 하는 모습이었다.

강호의 대답에 상현이 '으이그, 연습 벌레들. 그렇게 훈련하고 또 개인훈련을 한다고?' 라며 질색해 보인다.

"아무튼 치킨은 안 먹겠다는 얘기네? 그러면 호텔에서 제공하는 중식이라도 먹으러 가야지.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아? 벌써 12시가 훌쩍 넘었다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끼니는 챙겨먹어야지. 자, 다들 밥 먹으러 가자~"

상현은 치킨을 마다하는 강호의 말에 간식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의 말에 상훈과 박철이 '저는 치킨 먹는데요?'라고 답했지만, 상현은 그들의 말은 무시하고 있었다.

강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선수들 사이의 친분 관계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5분만 있다가 가시죠? 그래도 하던 훈련은 마무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강호는 그렇게 답하며 자신이 계획했던 개인 훈련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상현은 '그래, 그러자'라고 답하며 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한동안 강호가 하는 훈련을 바라보던 상현은 성철의 얼굴을 스치듯 바라보다 무언가가 떠오른 건지 그를 향해 입을 연다.

"아, 맞아! 성철이 너 소식 들었어? 준오가 어깨 담 때문에 오늘 라인업에서 빠질 것 같다고 하던데?"

상현의 갑작스런 말에 성철이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입니까?'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되묻는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재호 선배가 중견수로 들어가겠네요?"

성철의 물음에 상현이 '너 정말 몰랐구나'라고 혼잣말하며 그의 물음에 대답한다.

"아니야. 재호가 아니라 네가 라인업에 들어갔어. 중견수로 말이야. 너 2군 있을 때 원래는 중견수였다며? 김민철 수석님이 강하게 건의해서 오늘 라인업에는 네가 중견수로 들어갔다고 하던데? 3번 타순이지 아마?"

상현이 전해준 갑작스런 희소식에 성철이 '아! 진짜입니까?'라고 되물으며 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래, 진짜지~ 여민석 투수 코치님에게 내가 직접 들은 얘기야. 네가 오늘 선발 중견수로 출전하는 거래. 정 못 믿겠으면 나중에 선수 라인업 한 번 확인해 봐."

상현의 말에 성철은 '나중이라뇨? 지금 당장 확인해 봐야죠'라고 대답하며 손에 든 악력기를 침대에 내려놓고는 숙소 방문을 박차고 나간다.

그의 행동에 다른 선수들은 각자의 훈련을 멈추고, 활짝 열린 방문을 바라본다.

더 이상 훈련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여긴 강호는 당기고 있던 밴드를 내려놓고는 모두를 향해 입을 연다.

"밥 먹으러 가시죠. 이제 저는 다 끝났습니다."

강호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이미 개인 훈련을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응, 그래'라고 대답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한편 라인업 확인을 한 후 기분 좋게 강호의 숙소 방으로 돌아온 성철은 아무도 없는 숙소 방에 선 채 분개하고 있었다.

"뭐야? 나 빼고 다 밥 먹으러 간 거야? 전화라도 한 통 해주던지? 이렇게 휴대폰이 있는데 전화를....응? 전화 했었네? 내가 왜 이걸 못 봤지? 카톡도 왔었네? 식당으로 오라고. 아, 이것 참."

상철은 자신의 실책을 탓하면서 식당이 있는 2층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장소는 숙소인 호텔에서 고척 경기장으로 옮겨진다.

"우리 팀 외야라인은 이렇게 정리되는 건가? 성철이가 중견수로 들어가고, 우익수 자리에 박철이 들어가니까 뭔가 라인업이 젊어 보이는데? 하하."

타격 코치인 정호종의 말에 덕 아웃 한편에서 훈련 장비를 챙기던 강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정 코치의 말대로 2군에서 올라온 유성철과 박철이 외야라인을 맡게 되면서 외야 라인의 평균 연령이 확연히 내려가 있었다.

원래 중견수 자리를 맡고 있던 중견수 전준오는 86년생 34살이었고, 우익수 자리에 있던 외국인 선수인 휴고는 88년생 32살이었다.

여기에 26살인 유성철과 22살인 박철이 들어가자 87년생인 좌익수 김중호를 포함하더라도 외야의 평균 연령이 확 내려가게 된 것이다.

33살이었던 자이언츠의 외야 평균 나이가 27살로 확 줄어들어 있었다.

준오 역시 좋은 외야수이지만 아직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외야 라인을 채우자 팀이 세대교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나나 대우, 진성이까지 생각하면 의도치 않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지. 여기에 2군에서 어린 선수들 몇 명만 수혈된다면 영락없는 세대교체 시즌이 되는 거야. 한동현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강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경기 전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한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세대교체 시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이 어린이날 이 전에 시작된 이번 히어로즈와의 시리즈에서 일어나게 된 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5월 3일, 고척에서 히어로즈와 자이언츠, 자이언츠와 히어로즈 간의 시즌 첫 시리즈 중계를 맡은 캐스터 한명진입니다. 해설에는 양현준 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한명진 캐스터의 힘찬 중계와 함께 시리즈 첫 경기의 시작을 알린다.

한 캐스터는 1회 초 공격에 들어가는 원정 팀 자이언츠의 타순을 읽어 내리기 시작한다.

"자이언츠 타순부터 읽어드리겠습니다. 1번에는 2루수 백강호, 2번에는 좌익수 김중호, 3번에는 중견수 유성철, 4번에는 3루수 황제인, 5번 타자는 포수 강민수, 6번에는 지명타자 채중석, 7번 우익수 박철, 8번 1루수 김상훈, 9번에는 유격수 오진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이언츠 타순에 변경점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한 캐스터가 라인업 설명을 마치자 기다리고 있던 양현준 위원이 달라진 자이언츠 타순에 대해 설명한다.

"네, 3번 타순에 있던 중견수 전준오 선수가 어깨 담 증세로 라인업에서 빠진 상태거든요. 그래서 3번 자리에 원래 우익수를 보던 유성철 선수가 중견수로 들어가고요, 2번에 있던 지명타자 박철 선수가 우익수로 들어가고 타순은 7번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6번에 있던 김상훈 선수가 8번으로 내려가고, 6번에는 지명타자로 채중석 선수가 올라왔네요. 그리고 오진택 선수가 9번으로 옮겨지고, 박철이 있던 2번 자리에는 원래 9번에 있던 김중호 좌익수가 전진 배치 됐네요. 아~~이게 전준오 선수가 빠지면서 급하게 한 처방 같은데요. 조금은 상위 타선의 무게감이 가벼워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현준 위원은 기존 3번 타자인 전준오가 빠지면서 자이언츠 상위 타선의 무게감이 줄어들었다고 해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키 플레이어로 한 명의 선수를 지목하고 나선다.

"저는 오늘 키 플레이어로 1번 타자인 백강호 선수를 보고 있어요. 2번, 3번이 다소 무게감이 약해졌지만, 반대로 6번 타순에 채중석 선수가 이름을 올리면서 채중석, 박철, 김상훈, 오진택으로 이어지는 하위 타선이 조금은 무게감이 더해지거든요? 7번에 박철 선수는 최근 경기 타율이 3할 4푼 2리까지 올라갔어요. 8번 김상훈 선수도 3할 대에요. 오진택 선수가 2할 5푼 9리로 조금 약하기는 한데, 그래도 6번, 7번, 8번으로 이어지는 타선이 1번인 백강호 선수에게 어떤 찬스를 연결시켜 주느냐에 따라서 자이언츠의 향방이 갈릴 것 같습니다."

양 위원은 1번 타자인 강호가 하위 타선과 상위 타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보통 양 위원이 말한 역할은 하위 타선에서 8번이나 9번 타자가 하는 역할이었지만, 오늘 자이언츠 타선에서는 1번 타순에서 강호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줘야 한다고 설명하는 중이었다.

양 위원의 설명 후 히어로즈 수비 위치를 읽어주는 한 캐스터의 말이 이어지고, 곧 경기가 시작된다.

퍼엉.

히어로즈의 선발 투수, 맥도날드의 공이 포수 박동현의 미트에 내려 꽂히고 있었다.

신장이 195cm나 되는 좌완투수 맥도날드의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에 강호의 배트가 움찔거린다.

"스트라이크!!"

맥도날드의 초구에 대한 주심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초구는 유리한 볼 카운트를 가져가기 위해 정 가운데로 밀어넣는 공이었다.

강호는 무의식적으로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맥도날드의 초구 구속을 확인한다.

'149km? 구위를 생각하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공이 아니야. 정타로 때려낸다고 해도 밀리는 타구가 나올 거야. 맥도날드 투수에게 때려낸 타구가 외야 뜬공이 될 확률이 높은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강호는 리포팅 자료로만 보던 맥도날드 투수를 직접 상대해보며 그가 가진 장점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2구에서 리포팅 자료에 언급된 단점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볼."

주심의 볼 판정으로 볼 카운트는 1볼 1스트라이크가 되고,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서 반 발짝 물러선다.

'슬라이더 무브먼트가 밋밋해. 투구 폼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에 속구인지 슬라이더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겠어.'

속구와는 확연히 다른 궤적으로 포수 미트에 꽂히는 맥도날드 투수의 슬라이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리포팅 자료에 나와 있는 것처럼 노리고 친다면 장타로 연결시킬 수 있는 평범한 슬라이더였다.

강호는 2구만에 맥도날드 투수에 대한 대략적인 분석을 마치고 배트를 힘껏 쥔다.

그 후 맥도날드 투수의 손을 떠난 3구째의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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