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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으로
3회 1아웃, 팀이 다섯 점을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던 윤지운은 5회에도 여전히 마운드에 올라 아운카운트 하나를 잡아내며 호투를 펼치고 있었다.
비록 자이언츠의 9번 타자인 김중호에게 2루타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윤지운의 포심을 노리고 친 김중호의 타격이 좋았기 때문이지 윤지운이 실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트윈스 덕 아웃에서도 강호와 맞상대를 하게 된 윤지운 투수를 교체 없이 마운드에 올려두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믿어보겠다는 건가? 좋아! 한 번 붙어보겠어!'
지운은 요즘 가장 핫한 타자 중에 하나인 강호를 맞아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포수인 유광남의 싸인을 기다린다.
그와 처음 상대하게 된 강호 역시 눈빛을 빛내면서 각오를 다지게 된다.
'윤지운 투수, 한 때는 좌완 스페셜리스트였지만, 지금은 구위가 많이 떨어져서 패전처리로 활용되고 있는 투수야. 오늘 보니까 포크볼을 새로 장착한 것 같은데. 자이언츠 타자들이 포크볼에 강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가? 이제 나를 기점으로 우리 팀의 타자들이 당신의 포크볼을 공략하게 될 거야.'
강호는 덕 아웃에서 지켜 본 윤지운의 포크볼을 떠올리며 예전 2군에서 최문표가 했었던 말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 자이언츠 타자들에게 포크볼을 던지다니. 상대 투수가 분석을 제대로 안 한 모양인데? 이제 곧 우리 타자들이 상대 투수의 포크볼에 정타를 때려낼 거야. 두고 봐."
문표는 2군 무대에서 함께 덕 아웃에 앉았던 루키들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지금은 자이언츠의 재활군 코치로 있는 조종훈의 포크볼을 거론하며 자이언츠 타자들은 포크볼이라는 구종에 내성이 쌓여 있다는 말을 했었다.
강호 역시 포크볼에 대한 대처 방법은 잘 알고 있었다.
상대 투수 윤지운이 좌완 투수라는 특이점이 있었지만, 스플리터와 포크볼을 구별해서 타격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장타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강호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홈플레이트를 찍고 볼이 되는 포크볼은 거르도록 하자. 존안으로 들어오는 스플리터만 노린다!'
강호의 타격 전략은 바로 그것이었다.
상대 투수의 장점인 스플리터를 노리는 것. 타격 전략을 세우고 타석에 선 강호는 아이템 사용을 묻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고개를 저어 보인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호는 아이템 사용을 묻는 시스템 메시지에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패전처리 투수에게 타격 아이템을 사용할 정도로 간절한 생존 경쟁은 이미 강호에게 없었다.
어느새 1군 주전 선수로 자리 잡게 된 강호.
그는 이번 타석 역시 자신의 타격 능력으로 윤지운을 상대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단타 하나면 돼. 중호 선배의 빠른 발이라면 단타로도 타점을 올릴 수 있을 거야. 스플리터만 노리자.'
강호는 마음을 정하고 윤지운의 초구를 기다린다.
이윽고 포수 유광남과 싸인을 주고받던 윤지운 투수의 초구가 뿌려진다.
퍼엉.
그리 무겁지 않은 소리가 포수의 미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강호의 고개가 주심을 향해 돌려진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초구 판단은 스트라이크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볼 판정이었기 때문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배트 끝을 응시한다.
'포심 타이밍도 충분히 맞출 수 있겠어. 하지만 윤지운 투수가 결정구로 포심을 던지지는 않을 거야. 분명 스플리터나 포크볼이 들어오겠지. 그것만 노리는 거야!'
강호는 처음 결정대로 윤지운의 스플리터를 노리고 타격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2구는 몸 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
처음에는 존안으로 파고드는 스트라이크로 보였지만, 공이 포수의 미트에 도착했을 때는 강호의 발목 위치까지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왼손 투수가 던지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상대하기 꺼려하는 강호로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3구째를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리던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뿌려지고 있었다.
티익.
윤지운의 3구째를 타격한 강호의 몸이 크게 휘청거린다.
스플리터인 줄 알고 타격을 한 것인데 윤지운의 3구는 포크볼이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낙폭이 큰 포크볼의 궤적에 가까스로 파울을 만들어낸 강호가 다시금 타석에 바로 선다.
'포크볼은 안 되겠어. 낙폭이 지나치게 커! 몇 번 더 상대해본다면 포크볼을 골라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스플리터와 크게 구별이 가질 않아. 이대로는 삼진을 당하게 될 거야.'
강호는 전략을 약간 수정하기로 한다.
포심과 스플리터, 그리고 포크볼의 궤적이 같은 출발선상에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구를 컨택하기가 힘들게 느껴진다.
이제야 다른 동료들이 윤지운에게 어려움을 느낀 이유를 알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포크볼에 강한 자이언츠 타자들이라고 해도 스플리터와 포심, 포크볼을 오고가는 윤지운의 투구 패턴을 공략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조성한 위원이 3회 상황에서 말하지 않았던 해설의 말을 지금 대결에서 하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는 타격 뿐 만아니라 발이 상당히 빠른 타자거든요. 1회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했고, 3회는 연달아서 두개의 도루를 기록했죠. 그러니까 정타로 때려내는 타구만이 안타가 되는 게 아니라 빗맞은 타구도 내야 안타로 기록 될 수가 있는 겁니다. 백강호 타자는 윤지운 투수의 공을 상대할 때 그 점을 유의해서 공략한다면, 충분히 안타를 때려낼 수가 있을 거예요. 반대로 윤지운 투수는 그런 점을 고려해서 조금 더 적극적인 투구를 해 나가야겠습니다."
조 위원은 강호의 빠른 발을 지적하며, 빗맞은 타구도 안타로 연결될 수 있음을 얘기했다.
그 후 윤지운 투수의 4구째가 이어졌고, 권 캐스터가 상황을 중계한다.
"아! 이번 공 역시 파울이 됩니다. 백강호 선수가 1회와 3회 타석에 이어서 이번 타석도 끈질긴 승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백강호 선수 혼자서 트윈스 투수들에게 24개째 공을 던지게 하고 있어요. 이런 면 때문에 백강호 선수가 리그 최고 수준의 리드오프로 거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 캐스터는 강호를 일컬어 리그 최고수준의 타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직은 활동기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인 급 타자에게 하는 최고의 찬사였다.
권 캐스터와 조 위원이 강호의 활약을 칭찬하는 동안 이어서 윤지운의 5구째가 뿌려졌고, 이번 공은 홈 플레이트를 찍고 들어오는 포크볼로 판단한 강호의 배트가 중간에 멈춰선다.
"볼."
강호의 배트가 나가다 말고 멈췄기 때문에, 주심의 볼 판정에 유광남 포수의 손끝이 1루심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윤지운의 시그널을 확인한 1루심이 양팔을 펼쳐 보이며 강호의 배트가 돌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접전상황.
강호는 연달아서 윤지운의 공을 힘겹게 커트해내며 자신이 기다리던 스플리터를 때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가 때려낸 공은 스플리터가 아니었다.
윤지운과의 8구째 승부.
지윤이 던진 포심이 약간 높은 쪽 코스로 형성된 것을 확인한 강호의 배트가 벼락같이 휘둘려진다.
따악.
맞는 순간 안타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타구가 원 바운드로 그라운드를 찍고, 유격수 오지한을 스치는 안타가 될 것 같이 보였다.
터억.
그런데 변수가 일어나고 말았다.
오지한이 강호의 타구를 끝까지 쫒아 슬라이딩으로 타구를 잡아낸 것이었다.
마치 런 앤 히트 작전처럼 이미 스타트를 끊었던 김중호는 3루에서 잡을 수 없었지만, 타자 주자인 강호는 1루에서 아웃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믿고 오지한은 곧장 1루를 향해 공을 던진다.
후웅, 터억.
오지한의 송구가 트윈스 1루수 정성혁의 글러브를 파고든다.
그와 동시에 강호의 오른발이 1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1루심을 향하게 된다.
"세이프!"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윤지운의 스플리터를 공략하려했던 강호의 계획은 빗나가고 8구째 포심을 받아친 그의 타구가 내야안타로 기록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1, 3루 기회가 자이언츠에게 주어진다.
반대로 투수 윤지운에게는 위기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뚜렷하게 누가 이겼다는 결과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내야안타를 치고나간 강호가 조금은 우위에서는 승부결과가 나오게 된다.
"아 조 위원께서 말씀하신대로 내야안타가 기록되네요? 어떻게 이 상황을 예견하신건가요?"
중계석의 권 캐스터는 조 위원이 스쳐가는 말로 했었던 강호의 내야안타가 실제로 만들어지자 묘한 웃음을 지으며 조 위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조위원이 '허허허' 웃어 보이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어요. 백강호 선수의 발이 빠르고 타격능력도 좋으니까, 이쯤에서 내야안타가 나오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건데 백강호 선수가 내야안타를 기록하네요. 이제 자이언츠는 1, 3루의 득점권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음 타자인 박철과 전준오 선수의 활약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윤지운 선수 투구 수가 40개가 넘었거든요. 트윈스 덕 아웃에서는 투수교체를 고민할 시점이기도 한 거 같아요."
조 위원은 강호가 만든 안타로 윤지운 투수가 교체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트윈스의 덕 아웃에서 투수코치가 올라온다.
하지만 주심에게서 공을 받지 않은 채 윤지운에게 그저 당부와 격려의 말을 하고는 다시 덕 아웃으로 들어간다.
투수교체는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나를 믿어주겠다는 말인가? 실점을 하면 내린다고 했으니 실점만 하지 않으면 돼. 끝까지 승부를 보자!'
윤지운 투수는 강호에게 내야 안타를 허용한 것이 승부에서 졌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것은 강호의 빠른 발과 상황이 만들어낸 행운의 안타였고, 자신은 자이언츠의 다음 타자인 박철과 전준오를 이기면 이 승부를 자신의 승리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두 타자를 연속으로 범타로 돌려세우며 힘겨웠던 승부를 가져오게 된다.
'윤지운 투수가 저런 투수였구나.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어. 저런 투수가 왜 패전처리나 하고 있는 거지? 트윈스의 불펜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닐텐데?'
강호의 생각은 비단 그의 생각만은 아니었다.
트윈스의 코칭스태프는 물론 팬들, 그리고 중계석에서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권 캐스터와 조 위원 역시 윤지운의 호투에 큰 감명을 받고 있었다.
"트윈스가 이번 경기에서 얻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자이언츠에게 2연승을 따내면서 시즌 첫 3연승을 이어가고 있고요. 윤지운 투수라는 좋은 불펜 자원을 발견하게 됐네요."
조 위원의 말에 권 캐스터가 동의하며 이닝의 종료를 알리는 마무리 말로 대화를 끝낸다.
tv중계에는 광고가 흘러나가는 사이 트윈스의 투수 코치는 호투를 펼치고 덕 아웃으로 들어온 윤지운에게 그의 역할이 여기까지였음을 알려준다.
"수고했다. 다음에도 그런 투구내용을 보여줄 수 있겠지? 내일 경기는 쉬고 모레부터는 추격조가 아니라 다른 역할을 맡을 수도 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
윤지운 투수는 투수 코치의 말에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날의 경기에서 트윈스는 윤지운이라는 투수를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자이언츠 선발인 라일리의 구위와 제구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야수들의 수비 도움을 받으며 6이닝 동안 110개의 투구 수를 기록하며 1실점으로 트윈스의 타선을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라일리가 좋지 못한 구위에도 호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호를 포함한 자이언츠 내야수들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땡큐, 가이즈! 강호, 진택, 제인. 땡큐. 잘해써. 고마어!"
라일리는 오늘 자신이 잡아낸 아웃카운트 절반 이상을 책임진 강호와 진택, 제인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은 세 사람은 피식 웃어 보인다.
그러면서 강호는 나머지 이닝 또한 자신에게 오는 타구는 잘 막아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방심하면 안 돼. 요즘 우리 팀의 불펜이 많이 약해졌으니 언제 위기 상황을 맞이할지 몰라.'
강호는 언제든 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라일리에 이어 7회에 마운드에 오른 김영명 투수가 만루 상황을 자처하며 1실점한 상태에서 뒤이어 오른 권대우 투수가 7회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승계 주자 두 명을 홈으로 불러들여 2실점을 추가로 내어주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대우, 잘 했어! 네가 내보낸 주자도 아니었잖아. 역전당한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풀 죽어 있지 마."
강호는 2실점을 허용한 후 고개를 숙인 채 덕 아웃으로 들어서고 있던 대우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런 위로가 통했는지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대우는 더 이상의 실점을 내어주지 않으며 마무리 투수에게 승전을 위한 바통을 넘긴다.
9회 초에는 또 다시 볼넷으로 출루한 강호가 득점을 올리며, 9회에도 자이언츠는 2점을 추가해 트윈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8대 4.
자이언츠가 트윈스를 누르고 시리즈 스윕 당하는 것을 방어해낸 것이었다.
이 경기에서 강호는 6타석 4타수 2안타 1홈런 2볼넷, 3도루 4출루, 1타점과 2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리드오프로 경기에 나선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강호가 또 한 번 자이언츠 팬들과 전문가들의 머리에 각인되는 경기를 펼쳐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강호의 활약은 그 날 밤, 베이스볼 투나잇과 아이러브 베이스볼 등의 야구 전문 프로그램에서 거론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