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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패 사슬을 끊다
트윈스 투수 코치는 자신의 약속은 지켰다.
1, 2실점 한다고 해서 선발 투수인 허프만을 교체하지는 않은 것이다.
대신 자이언츠의 5번 타자 강민수의 만루 홈런이 터지자 곧장 교체를 결정한다.
만루 홈런으로 4실점을 하고나서야 허프만을 마운드에서 내리는 트윈스 덕 아웃.
이어서 허프만을 대신할 투수가 6대 1로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게 된다.
"지운아,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여유 있게 투구하도록 해. 광남이 싸인 대로만 공을 던져."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오른 투수에게 당부의 말과 함께 들고 있던 공을 건넨다.
새롭게 마운드에 오른 트윈스의 투수는 88년생, 올해로 32살이 되는 베테랑 투수 윤지운이었다.
한 때 2군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평균 자책첨 부문의 수상을 하기도 했던 윤지운.
145km대의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좌완 투수로서 한 때는 트윈스의 선발 자원으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기량을 만개시키지 못하며 지금은 트윈스의 추격조로서 불펜 등판을 하고 있는 지운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지운은 투수 코치의 말에 묵묵히 대답하며 공을 건네 받는다.
투수 코치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팀이 초반 대량 실점을 하면서 5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추격조 투수인 윤지운을 올렸으니 경기를 뒤집을 구상은 아직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서 윤지운이 상황을 매듭지어 트윈스의 공격 기회에 찬스가 주어진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별다른 구상을 하고 있지 않은 트윈스 덕 아웃이었다.
'더 이상 실점만 내주지 않고 막으면 되는 거지. 그게 아니면 실점을 하더라도 지운이가 이닝만 먹어준다면 오늘 경기에서 투수 운용이 막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지운을 마운드에 올린 트윈스 투수 코치의 생각이었다.
그는 평범한 구위의 윤지운을 올리면서 1, 2실점의 추가 실점을 허용하더라도 이닝을 소화해서 불펜 운용에 여유를 가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팀이 이미 3연승을 하고 있는 트윈스는 초반 대량 실점을 한 상황에 필승조를 올리는 무리수를 던질 생각은 없었다.
패전처리 조. 또는 추격조라고 구분되는 지운의 오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내 나이도 올해로 32살인데, 추격조에서만 썩다가는 소리 소문 없이 1군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 이렇게 하다가는 답이 없어. 그동안 갈고 닦았던 공을 오늘 경기에서 던져야겠어.'
지운은 2군 무대에서 오랜 시간을 갈고 닦았던 불완전한 무기 하나를 오늘 경기에서 선보이고자 한다.
그 공은 각 팀의 리포팅 자료에도 올라가 있지 않은 공이었고, 따라서 통하기만 한다면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는 공이었다.
자신의 남은 프로 생활을 걸고 던지는 지운의 모험구가 포수 유광남의 미트로 뿌려진다.
"스트라이크!"
존의 구석을 파고드는 지운의 공에 타석에 선 자이언츠 6번 타자 김상훈이 크게 놀라며 포수와 주심을 번갈아 본다.
"와~이 공 구종이 뭡니까? 체인지업은 아닌 것 같은데요. 포크에요?"
트윈스의 포수 광남은 상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주심은 '포크 같은데?'라고 물음에 답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투수 윤지운이 빠르게 2구를 던지기 위한 와인드업 동작에 들어갔던 것이다.
"스트라이크!"
투구 인터벌이 거의 없이 던져진 지운의 2구는 또 다시 스트라이크로 판정이 된다.
광남은 지운의 낙폭 큰 변화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트에 든 공을 투수인 지운에게 다시 돌려준다.
공을 건네받은 윤지운은 광남의 다음 싸인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투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타석에 선 김상훈이 당황해하며 급히 손을 들어올린다.
"자, 잠깐!"
이미 투수가 투구 모션에 들어갔기 때문에 주심은 김상훈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던져진 윤지운의 3구.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은 윤지운의 3구가 존을 걸치고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김상훈의 삼진을 선언한다.
타석에 섰던 상훈은 혀를 빼물며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이며 타석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7번 타자로 타석에 오르는 유성철에게 짧은 말을 전한다.
"포크볼 같은데...낙폭이 너무 심해. 거의 커브 같아."
유성철은 김상훈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이미 대기 타석에서 윤지운이 던진 낙폭 큰 변화구를 지켜본 성철이었기에 그에 대비할 타격 작전을 짜놓고 있었다.
하지만 윤지운이 갈고 닦은 변화구는 대비를 하고 있다고 해서 쉽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또 다시 주심이 삼진을 선언한다.
윤지운이 공 8개로 김상훈과 유상철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이다.
트윈스 덕 아웃에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윤지운의 호투.
그의 활약으로 3회 초 위기는 빠르게 마무리 된다.
윤지운 투수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보던 중계석의 조 위원은 이닝이 종료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지금 유성철 타자를 돌려 세운 공 역시 포크볼이죠. 윤지운 선수가 스플리터와 포크볼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 같아요. 원래부터 스플리터 구종을 가지고 있던 윤지운 투수거든요. 그런데 오늘 던진 포크볼은 낙폭이 엄청 나네요. 존에 들어오는 스플리터를 예상하고 스윙을 하면 어김없이 바닥을 찍고 들어오는 포크볼이 들어와요. 윤지운 투수. 이전 경기까지 저런 포크볼은 없었거든요. 오늘 경기에서 좋은 공을 던져줍니다."
윤지운 투수에 대한 조 위원의 해설은 거기에서 끝이 나게 된다.
이닝이 종료되면 늘 광고 방송을 내보내야하는 것이 방송사의 입장이었다.
곁에 앉은 권 캐스터가 얼른 멘트를 마무리하며, 중계 화면은 광고 화면으로 전환된다.
그 사이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인 라일리가 마운드에 오르고, 여전히 불안하게 느껴지는 연습구를 던지며 자이언츠 덕 아웃에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일단 불펜에 영명이하고, 규민이를 준비시키라고 해뒀습니다. 라일리가 3실점까지 내어주면 교체하는 게 어떨까요?"
자이언츠의 투수 코치인 여민석이 한동현 감독을 향해 그렇게 물어본다.
한 감독 또한 여 코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의 물음에 곧장 고개를 끄덕인다.
"그럽시다. 가급적이면 규민이보다는 영명이를 올리도록 하세요. 요즘 규민이의 성적이 좋지 못하니까 이번 기회에 김영명을 시험해 보도록 합시다."
한 감독은 2군에서 콜 업 시킨 불펜 투수 김영명에게 기회를 주자고 말한다.
하지만 한 감독의 속내를 들여다본다면 영명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욕구보다 심규민 투수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규민이는 안 돼. 여태껏 규민이가 말아먹은 경기가 몇 개인데? 괜히 5점이나 앞선 상황에서 위기를 자처하면 어떻게 뒷수습을 할 거야? 차라리 2군에서 올라온 영명이를 올리는 게 더 현명한 일이지. 조금 실수하더라도 2군 투수를 시험한다는 의미는 있으니까.'
한 감독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심규민이라는 이름이 지워지고 있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심규민을 2군으로 내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좌완 불펜 자원이 없다는 이유로 좌완인 심규민을 엔트리에 그대로 두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베테랑 불펜 자원인 박상현을 시작으로 4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한 83년생 윤명호 투수, 2군에서 올린 97년생 사준식 등 세 명의 좌완 투수가 불펜에 포진되어 있었다.
'규민이를 포함하면 불펜에 좌완만 네 명이야. 그 중에서 가장 불안한 규민이를 2군으로 내리고, 차라리 우완 투수 한 명을 올리는 게 낫겠어. 상동에 확인해봐서 명학이나 길준이의 구위가 괜찮다고 하면 일주일 후에 둘 중에 한 명을 올리는 방법도 있으니까.'
한 감독은 이번 경기의 결과에 상관없이 심규민 투수를 2군으로 내릴 작정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심규민 투수로서는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규민 투수 대신에 한 감독이 고려할 수 있는 투수는 당장에는 마무리였던 손명학이나 셋업투수였던 윤길준이 떠오르지만, 2군으로 내린 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당장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한 감독이 라인업 구상으로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마운드에 오른 선발 투수 라일리의 표정도 복잡해 보인다.
왜냐하면 1구째부터 3구째의 공이 연달아서 볼로 선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 쓰리."
주심의 쓰리 볼 판정에 라일리가 미간을 좁혀 보인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스트라이크로도 판정할 수 있는 공이 연달아 볼로 선언됨에 따라 투수 라일리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라일리 입장으로서는 코너 웍을 찌르는 이런 공들이 볼로 판정되어 버린다면 더 이상 던질 공이 없는 상황에 몰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가 없구나. 일단은 가운데로 공을 밀어 넣어야겠어. 어차피 한국 타자들은 쓰리 볼 상황에서는 스윙을 하지 않으니까.'
라일리는 4구째 공은 최대한 구속을 줄여 스트라이크를 잡는 공을 던지려 했다.
평소에 비해 10km 이상 줄어든 라일리의 투심이 민수의 미트 한 가운데를 파고든다.
"스트라이크!"
라일리가 던진 4구에 대한 주심의 선언은 스트라이크였다.
이렇게 해서 3볼 1스트라이크 상황이 만들어진다.
타자가 자신의 타격을 가져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황의 볼 카운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볼 카운트가 라일리 투수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몰린 가운데 눈빛을 빛내고 있는 것은 투수인 라일리도, 타자인 이현종도 아니었다.
자신의 수비 위치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던 강호가 눈빛을 빛내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시야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구가 2루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은 이현종이 때린 타구가 강호에게 향한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강호는 그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입술을 비틀며 미소를 그려 보인다.
'아니, 사용하지 않겠어. 좌타자인 이현종의 타구가 내게로 향한다면 강한 강습타구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라일리의 공이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그의 주 무기가 변종 패스트볼 계열인 투심이야. 이현종 타자의 타격 성향을 봤을 때 강한 타구보다는 땅볼로 1, 2루 사이를 꿰뚫는 타구가 될 확률이 높아. 내 수비 능력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강호는 시스템 메시지에 거절 의사를 밝혀 보인 후 곧장 좌측을 향해 걸음을 뗀다.
그 직 후, 조금은 먹인 듯한 타격음과 함께 라일리의 5구를 받아친 트윈스의 9번 타자, 이현종의 타구가 강호의 예측대로 1, 2루 간 사이를 꿰뚫는 땅볼 타구로 형성되고 있었다.
먹히기는 했지만, 강하게 맞은 타구는 불규칙 바운드를 만들어내며 1루수인 상훈과 2루수인 강호 사이를 빠져나갈 듯이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높이 튀어 오르는 타구에 강호는 글러브를 최대한 높이 들어 올린 후 몸을 날린다.
터억.
강호의 글러브에 타구가 걸려들었다.
쓰러진 자세 그대로 공을 꺼내든 강호는 1루수인 상훈에게 공을 토스했다.
그리고는 1루심의 판정을 기다리게 된다.
"아웃!"
비슷한 타이밍이기는 해도, 타자 주자인 이현종의 발이 조금 늦었다는 1루심의 판정이었다.
강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몸을 일으켜 다시 자신의 수비 위치로 돌아왔다.
라일리는 그런 강호에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색한 한국 말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캉호, 땡큐! 잘 잡아써!"
라일리의 말에 글러브를 들어 올려 보인 강호는 이어진 트윈스 1번 타자 김용희의 타구 역시 잘 처리해내면서 라일리의 고민을 덜어준다.
따악.
2번 타자인 오지한이 2루타를 치고 나가긴 했지만, 다음 타자인 카슨을 외야 뜬공으로 처리한 라일리 투수.
깊은 한숨을 내쉬며 덕 아웃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불안하긴 했지만, 3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는 호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라일리로 계속 밀고 나가야 되겠어. 일단 5회까지 지켜보기로 하자.'
한 감독은 선발 투수인 라일리의 승리 요건이 달성되는 5회까지 한 번 믿고 맡겨보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4회는 순식간에 지나 경기는 중요한 승부처인 5회로 이어지고 있었다.
5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 상황에서 1사 2루의 득점권 상황에 타석에 선 것은 오늘 경기에서 한 개의 볼넷과 하나의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강호였다.
"와아아~~"
"백강호 때리라!"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환호 속에 타석에 오른 강호.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여전히 트윈스의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투수 윤지운에게로 향한다.
윤지운 역시 강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강호를 마주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서로 다른 입장에 선 두 선수는 하나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승부, 지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