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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패 사슬을 끊다
"세이프! 세이프!!"
3루심은 혹시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약했을까봐 세이프 시그널을 두 번이나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포수 유광남에게 받은 공이 들어있는 글러브로 강호의 팔꿈치를 태그 했던 카슨이 혀를 길게 빼문다.
2루 도루에 이은 강호의 3루 도루가 성공한 것이었다.
"백강호 3루 도루 성공! 도루 성공률 100%를 유지하는 백강호 선수, 이 도루는 올 시즌 백강호 선수의 16번째 도루로 기록이 됩니다! 여전히 도루 1위의 자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중계석의 권 캐스터가 강호의 연이은 도루 성공을 알린다.
조 위원 역시 강호의 3루 도루에 한 마디를 보탰다.
"지금은 스타트가 워낙 빨랐어요. 허프만 투수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가는 순간, 곧장 뛰었거든요? 유광남 포수가 도루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3루로 공을 던졌는데도 도루를 성공시키네요. 백강호 선수, 빠릅니다."
조 위원의 말대로 강호의 스타트는 무척이나 빨랐다.
도루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주력이 높아지는 아이템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주루 상황에서 마음가짐을 달리한 강호가 본연의 스퍼트를 100%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 위원은 강호의 빠른 발과 더불어 그로 인해 만들어진 팀의 득점권 상황을 지적하고 나섰다.
"백강호 선수 타석 전에는 1사 주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백강호 선수의 도루가 연달아 성공하면서, 1사 주자 3루의 득점권 찬스가 자이언츠에게 주어졌어요. 이래서 빠른 발을 가진 선수가 무서운 겁니다. 허프만 투수는 볼넷 하나를 내줬을 뿐인데 결과는 주자 3루가 되었거든요? 허프만 투수에게는 3루타를 얻어맞은 것과 동일한 데미지일 거예요."
조성한 위원의 지적대로 트윈스 투수인 허프만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못했다.
평소 멘탈이 강하다고 자부하며 자신의 고집대로 배짱 있는 투구를 밀어 붙이는 허프만이었지만, 지금만큼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게 느껴진다.
'침착하자, 침착해! 이번 타자에게 삼진을 잡아내면 실점할 일은 없으니까. 강호라는 선수에게 득점까지 허용할 수는 없어! 이익! 생각할수록 열 받네. 연속 도루라니? 광남은 대체 뭘 한 거야?'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애쓰던 호프만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강호의 연이은 도루 성공은 반대로 생각하면 광남의 연이은 도루 저지 실패로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포수 유광남을 바라보는 허프만 투수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광남, 도루 저지 하나 제대로 못하고, 체인지업 싸인만 자꾸 낼 거야? 이제 네 말 안들을 거야. 투심만 던질 거야.'
그렇지 않아도 고집대로 투심만 던지고 있던 허프만은 이제 광남의 리드 따르기를 거부할 생각이었다.
"볼."
1볼 1스트라이크에서 던져진 허프만의 3구는 볼로 선언되고, 싸인과 완전히 어긋난 코스의 투구 내용에 유광남 포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게 된다.
마운드 위로 걸어 올라간 유광남 포수, 급하게 달려온 통역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허프만, 진정해야 해. 투심만 던지다가는 답이 없어. 주자는 잊고 타자에만 집중하자. 자꾸 주자에게 신경 쓰니까 제구력까지 흔들리잖아."
통역을 거쳐 듣게 된 광남의 말에 허프만은 고개를 끄덕인다.
"올 라잇. 올 라잇, 아이 갓 잇!"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시그널을 해 보이는 허프만.
광남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허프만의 모습에 진정하고 홈으로 돌아간다.
만약 허프만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면, 유광남 포수가 그렇게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기는 개뿔, 투심 던질 거야. 너는 그냥 공이나 받아. 승부는 내가 볼 거니까!'
허프만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의 투구를 가져갈 것을 결정짓는다.
그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도 그랬다. 포수의 싸인을 잘 따르지 않기로 유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윈스 구단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구위를 발휘하는 투심과 체인지업, 거기에 타자를 현혹시키는 슬라이더를 트윈스의 스카우트 총괄이 높게 샀기 때문이었다.
한편 3루 베이스를 밟은 채 허프만과 포수 유광남을 바라보던 강호는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허프만이 흔들리고 있구나. 됐어. 이렇게 되면 쉽게 득점을 따낼 수 있을 거야. 더 흔들어보자.'
강호는 3루 베이스에서 허프만의 멘탈을 더 흔들어볼 생각이었다.
허프만은 오른손 투수였다.
그러니 3루 베이스에 위치한 자신의 모습이 세트 포지션 상태에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강호는 흔들리고 있는 허프만 투수를 더욱 흔들기 위해 일부러 투수의 눈을 응시한 채로 리드 폭을 크게 가져간다.
이미 평정심을 잃은 허프만은 강호의 도발에 더 분개하게 된다.
"세이프."
잠시 후 3루심이 세이프 판정을 하게 된다.
허프만이 3루에 견제구를 던졌기 때문이다. 견제구를 미리부터 대비하고 있던 강호는 3루 베이스를 슬라이딩하여 견제사 당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다.
'백 번을 던져봐라. 내가 잡히나.'
그것이 강호의 생각이었다.
이어서 허프만의 견제구가 계속된다.
4구째까지 견제구를 던진 허프만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포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진다.
이번 공 역시 투심이었다.
"볼."
허프만의 4구에 대한 주심의 판정 역시 볼이었다.
이제 투수에게 불리한 3볼 1스트라이크의 카운트 상황이 만들어진다. 바꾸어 생각해본다면 타자인 박철에게는 유리한 볼 카운트가 되어 있었다.
박철은 3루 베이스에서 활발한 주루 플레이를 하고 있는 강호를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음 짓게 된다.
한 때는 2군에서 함께 동고동락했었던 박철과 강호 두 사람.
박철은 불안정한 1군 주전 경쟁 속에서 자신의 타석 기회를 도와주는 강호의 센스 넘치는 주루 플레이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강호 선배, 덕분에 배트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유리한 볼 카운트를 얻었어요. 선배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반드시 출루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철은 2군 시절부터 타격 능력만큼은 인정을 받고 있는 선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2군 시절 유성철이 우익수로 이동하며 자신의 보직을 빼앗겼을 때도 지명타자로서 2군 경기에 모두 출전을 할 수 있었던 박철이었다.
그리고 지명 타자로 이동하게 된 박철은 4할 대의 고 타율을 기록하게 되며 1군으로 콜 업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철은 그런 자신의 타격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 배트를 힘껏 쥐었다.
사실 그는 볼넷을 얻어 출루할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강호가 만들어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타격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박철이었다.
22살로 아직 어린 신인선수였지만, 그는 강호 못지 않게 좋은 야구 지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따악.
허프만의 5구가 뿌려지고 타석에서 빠른 속구를 받아친 박철의 타구가 내야 수비를 뚫어내고 외야로 향하고 있었다.
타구가 향하는 방향을 확인한 강호는 천천히 홈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 중계석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아! 박철이 적시타를 때려냅니다. 3루 주자 백강호, 홈으로 천천히 여유 있게 들어옵니다. 다시 점수 차는 1점차로 벌어집니다. 2대 1. 자이언츠가 다시 1점차로 앞서갑니다!"
권 캐스터의 중계에 이번에는 조 위원이 아무런 해설을 더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저 속으로 '강호의 발이 박철의 타점을 유도한 거야'라고 생각하며 강호의 다음 타석 때 지금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메모지에 상황을 체크해 둔다.
"잘 했어, 강호! 아~ 네가 또 1점 내주는구나! 잘 했어!"
"2득점이 전부 강호 네가 만든 거지? 다음 타석 때도 득점 하나 더 내줘! 우리도 분발하도록 할게! 응?"
덕 아웃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배 선수들은 강호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칭찬과 응원의 말을 함께 건넨다.
이제 코칭스태프의 인사이동 문제로 고민하던 선수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호의 활발한 타격과 주루 플레이로 어느새 자이언츠의 덕 아웃 분위기가 완전히 살아나 있었다.
그 모습을 벤치 한 쪽에서 지켜보던 캡틴 강민수가 기분 좋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강호 녀석, 네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어. 이렇게 되면 오늘 경기는 절대 내줄 수 없지. 두고 봐. 다른 선수들은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너의 활약에 못지않은 타격을 해보이겠어!'
민수는 웃음기 띤 얼굴로 강호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는 자신의 배트를 집어 들고는 그라운드 위로 오른다.
박철의 안타로 3번 타자인 전준오가 타석에 섰으니 5번 타순인 자신이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3번 타자인 전준오와 4번 타자인 황제인이 모두 아웃된다면, 이번 공격 기회에 민수 자신이 타석에 설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강호의 활발한 주루플레이와 박철의 이어진 적시타로 트윈스 투수인 허프만의 멘탈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이닝에 반드시 나까지 기회가 올 거야. 강호야, 지켜봐라. 너뿐만이 아니라 우리 선배들도 경기를 이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줄 테니까.'
민수가 배트를 쥔 채 눈빛을 빛내는 사이, 3번 타자 전준오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고 있었다.
이제 상황은 1사에 주자 1, 2루 상황.
4번 타자인 황제인이 타석에 들어선다.
갑작스레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 허프만의 투구 내용에 트윈스 덕 아웃에서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조금 전, 포수 유광남과 함께 마운드에 올랐던 통역 역시 투수 코치를 따라서 마운드로 걸음을 옮겼다.
"허프만, 몸이 어디 안 좋은 거야? 여유를 가지고 투구를 해.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아 있어. 1, 2실점 하더라도 내리지 않을 테니까 평소에 하던 대로 투구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투수 코치는 허프만에게 위로와 당부의 말을 전달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다.
허프만은 코치의 당부에 '땡큐, 코치. 빌리븐 미. 트러스트 미.'라는 말로 어필하며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하지만 그런 행동 자체도 허프만의 나쁜 버릇 중에 하나였다.
자신의 없을 때도, 속으로 다른 생각이 있어도 겉으로는 사람들을 속이는 행동으로 젠틀한 모습을 유지해 왔던 허프만 투수.
그에게 속은 투수 코치와 유광남 포수는 이번에도 큰 걱정 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정작 공을 던져야하는 투수 허프만은 걱정이 많았다.
'쉣! 거기서 몸에 맞는 공이 나오다니?! 망했어. 이제. 투심 제구도 안 돼! 정말 광남 말대로 체인지업만 던지다 강판되게 생겼네. 이게 다 저 강호라는 타자 때문이야!'
허프만은 이미 홈을 밟고 자이언츠 덕 아웃으로 들어가 버린 강호의 얼굴을 원망스럽게 째려본 후 싸인을 받기 위해 유광남의 손끝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 후 자이언츠의 4번 타자 황제인을 상대하기 위한 초구가 뿌려진다.
따악.
깔끔한 타격음이 타석을 가득 채우며 잘 맞은 타구가 투수 허프만을 지나쳐 2루 베이스까지 스치고 지나간다.
깔끔한 중전 안타였다.
타구 방향 때문에 잠시 움찔했던 2루 주자 박철이 멈칫하는 사이 모든 주자의 발이 베이스에 묶여버린다.
"아아~"
3루 베이스를 밟고 선 박철이 홈으로 가지 못한 자신의 결정을 한탄하게 된다.
하지만 덕분에 1사 만루의 상황이 캡틴 강민수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민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에 속으로 미소 지으며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런 민수의 시선이 덕 아웃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응원을 펼치고 있는 강호에게로 향했다.
'강호야, 잘 보도록 해. 네 활약에 응답한 나의 타격을.'
민수는 평소에 잘 하지도 않는 유치한 어조로 강호에게 속마음을 전하고는 배트를 강하게 쥔다.
그런 그의 눈에 모자를 벗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보인 후, 투구를 준비하는 허프만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벌써 다 파악이 끝났어. 허프만. 투심 아니면 체인지업. 네가 초구에 던질 구종은 그 두 가지가 전부일 거야. 그리고 내가 노릴 구종은 단 하나!'
민수는 이미 허프만이 던질 초구를 타격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윽고 허프만의 손에서 공이 던져지고, 기다리고 있던 민수의 배트가 강하게 휘둘러진다.
따악!
그라운드를 가득 채우는 타격음이 울려 퍼지고, 곧 루상에 있던 모든 주자들이 홈을 향해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