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06화 (106/335)

0106 / 0335 ----------------------------------------------

연패 사슬을 끊다

1회 초 공격은 강호가 올린 1타점으로 끝맺음 된다.

후속 타자로 나온 박철, 전준오, 황제인을 삼진과 범타로 돌려세운 허프만의 호투가 있었던 것이다.

강호에게 15개의 공을 던지며 무너질 법도 했던 허프만이지만, 이어서 타석에 오른 세 타자를 8개의 공으로 잡아내며 건재한 모습을 보여준다.

"허프만 투수, 황제인을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에이스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중계석의 권 캐스터는 강호에게 홈런을 맞고도 흔들림 없이 투구하는 허프만 투수를 칭찬하는 말로 1회 초 중계를 마무리 한다.

이어서 트윈스의 타순을 읽어내는 것과 동시에 타석에는 트윈스의 1번 타자 김용희가 오르게 된다.

"오늘 양 팀 투수 모두 주 무기가 투심 패스트볼 입니다. 허프만은 우완 투수고 자이언츠의 라일리는 좌완이죠. 역시 투심 구사 비율이 60%가 넘습니다. 와이번스 타자들은 좌완 투수의 투심에 잘 대응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라일리 투수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땅볼 유도 비율이 상당히 높거든요. 3루수 황제인, 유격수 오진택, 2루수 백강호로 이어지는 리그 최고수준의 내야 라인을 보유한 자이언츠 수비를 뚫어내고 타구를 외야로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조 위원은 트윈스 타자들의 전략이 중요하다 말하며, 관전 포인트를 지적한다.

'오늘 공이 가볍다. 이대로는 초반에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이언츠 선발투수 라일리는 남몰래 진땀을 흘리며, 불안한 속내를 감춰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연습구를 받아 본 포수 강민수는 오늘 라일리의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공이 가벼워. 로케이션도 안 좋고. 이런 공으로는 5회까지 가긴 무리야. 라일리의 투심은 구위가 가벼울 때 볼 끝도 무뎌지고 말아. 이런 상황에선 어떤 싸인을 내야할까?'

포수인 민수의 입장으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일리가 구종이 많은 투수도 아니어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아 보였다.

경기 운영을 고민하게 된 민수. 문뜩 그의 시선이 그라운드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2루수 강호에게로 향한다.

툭툭.

민수와 시선이 마주친 강호는 몸을 풀다말고 글러브로 자신의 가슴을 쳐 보인다.

그 후 글러브 끝으로 유격수인 오진택과 3루수 황제인, 1루수 김상훈을 차례로 가리켜 보이며 자신만의 싸인을 민수에게로 보낸다.

'선배. 애초 계획대로 갑시다. 선발투수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한, 두 번이겠습니까? 저희가 모두 막을테니 라일리 투수가 땅볼을 유도할 수 있게 싸인을 내주십시오.'

그런 생각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는 민수에게 살짝 미소 지어 보이는 강호 그 역시도 오늘 라일리의 공이 가볍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비 위치가 투수의 등 뒤쪽이다 보니 라일리가 던진 연습구 몇 개로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강호였다.

그가 보낸 싸인으로 민수는 고개를 들어 그라운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야수들을 바라본다.

수비력 하나 만큼은 어느 팀에게도 뒤지지 않을 동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민수는 그들을 믿고, 자신만의 경기운영 방법을 밀어 붙이기로 결정을 내린다.

'강호야. 그래. 원래의 계획대로 가자. 라일리는 라일리의 공을 던지면 되는 거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투수를 도와주면 되는 거야. 그게 우리 야수들의 역할이니까!'

민수는 야수들을 믿고 라일리가 던질 초구를 결정한다.

스트라이크와 볼을 오고가는 몇 개의 공이 던져진 후 트윈스의 선두 타자 김용희의 배트가 공을 때린다.

따악.

김용희의 타구 방향을 확인한 중계석의 권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인다.

"김용희 타격! 유격수 오진택의 정면으로 향합니다. 어려운 타구를 잘 잡아낸 오진택의 송구가 1루로 향합니다! 아웃! 좋은 수비로 라일리를 도와주는 유격수, 오진택! 오늘 라일리의 출발이 나쁘지 않습니다."

권 캐스터의 말이 끝난 후 조 위원이 해설의 말을 더한다.

"지금은 김용희 타자의 타구 질이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너무 야수 정면이었어요. 오진택 선수의 수비도 좋았고요. 아직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라일리 투수의 공이 좀 가볍게 느껴집니다. 한 번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어요."

한 때 현역 선수로 활동했었던 조 위원은 금세 라일리 투수의 구위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TV로 중계를 지켜보던 자이언츠 팬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감돈다.

"뭐? 라일리 공이 또 가볍다고? 라일리 저 놈은 쉬는 날 동안 뭐하고 다니길래 선발로 던지는 날에 저러는 거야?"

"라일리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이야? 그냥 봐! 내야수들이 알아서 잘 막아주겠지. 라일리는 야수들 덕을 많이 보는 거야. 다른 팀 내야수들이었으면 얄 짤 없어!"

팬들은 이미 팀의 에이스인 라일리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

매 경기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라일리의 투구로 야수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감독을 욕하게 된다.

"한 감독이 데려온 외국인 선수들은 하나같이 왜 다 이 모양이야? 내가 던져도 저 정도는 던지겠네. 나한테 20만 달러를 줘봐라. 내가 오늘부터 자이언츠 1선발 할 테니까!"

"뭐? 어디서 개소리야? 네가 1선발이면 나는 경기 안 볼래. 오늘부터 그냥 축구 볼래."

"나 한 번 믿어봐. 나 공 잘 던져. 시속 100km는 나올 거야."

농담이긴 하지만 팬들이 스스로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를 자처할 정도로 팀 투수들은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따악.

그 사이 트윈스의 2번 타자 오지한이 우측으로 향하는 강한 타구를 때려냈다.

그 타구에 동물적으로 반응한 강호의 몸이 그라운드 위로 떠오른다.

터억!

글러브 속으로 빨려드는 타구를 확인한 강호는 공을 꺼내 1루심에게로 내보인다.

"아웃!"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잡아낸 강호의 호수비에 아웃이 선언되고, 초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투수 라일리가 강호를 향해 글러브를 들어 보인다.

"땡큐, 강호! 잘 잡아써!"

라일리는 어설픈 한국말로 강호를 칭찬한 후 다음 투구에 들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공은 가벼웠고, 트윈스의 3번 타자 카슨이 받아친 타구가 외야로 뻗는다.

타구의 위치를 지켜보던 중계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아! 좌익수 김중호가 이 타구를 잡아냅니다! 트윈스의 1회 말 공격은 자이언츠 야수들의 호수비로 모두 막혀 버리네요! 이닝 종료!"

권 캐스터의 빠른 중계 속에 세 개의 아웃 카운트가 모두 올라가고, 자이언츠의 외야수들이 빠른 걸음으로 덕 아웃으로 이동한다.

그 때까지 마운드에 서서 야수들을 기다리고 있던 라일리 투수가 좌익수 김중호에게 글러브를 내밀며 입을 연다.

"땡큐, 충호! 잘 잡아써!"

라일리는 강호에게 했던 칭찬을 중호에게도 해보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구위가 좋지 않은 오늘 같은 날에 야수들의 수비 도움을 받게 된 것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라일리였다.

'조금 더 집중하고 다음 이닝부터는 잘 던져보자.'

그렇게 각오를 다져보는 선발 투수 라일리.

그럼에도 다음 이닝에 던지는 그의 공은 여전히 가벼웠다.

따악!

2회 말, 2아웃 상황에 타석을 가득 채우는 타격음이 결국 라일리를 마운드 위에 주저앉게 만들었다.

"넘어 갔습니다! 이 홈런은 임헌 선수의 올 시즌 마수걸이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양팀 스코어를 동점으로 만드는 홈런이 됩니다! 스코어 1대 1! 경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중계석의 권 캐스터는 임헌이 때린 홈런으로 상황이 1대 1, 동점 상황이 된 것을 알렸다.

곁에 앉은 조 위원은 권 캐스터의 말에 해설의 말을 덧붙인다.

"라일리 투수의 투심이 1회 부터 좋지 않았거든요. 제구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볼 끝이 좀 약했어요. 결국 임헌 선수에게 홈런을 허용하면서 불안감을 들어내네요. 올 시즌에 라일리 투수가 이런 모습으로 대량 실점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트윈스 입장에서는 흔들리기 시작한 라일리 투수의 공을 잘 공략하면 될 것 같습니다."

조 위원은 또 한 번 투수 라일리의 공이 가볍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금의 상황을 마무리 했다.

라일리는 다음 타자로 나선 7번 타자 유광남에게 볼넷을 내주었지만, 8번 타자인 손주연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어렵게나마 2회 말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3회 초, 자이언츠 공격에서 1사 주자 없는 상황의 타석에 들어서게 된 강호.

다시 마주하게 된 트윈스 선발 투수 허프만을 노려보며 타격 전략을 세워본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될까? 홈런 아이템으로 1타점을 기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거야. 기회를 다음 타자에게 연결하는 출루가 필요한 시점이야. 그래, 이럴 때는 차라리 그 아이템을 쓰자.'

강호는 이번 타석에서는 아이템을 사용하기로 한다.

최근 프리마켓을 다녀온 이후로는 대부분의 경우에 스스로의 힘으로 타격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팀의 연패를 끊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은 사용하자는 생각이었다.

-주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호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볼넷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후 타석에서 타격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중계석에서 지켜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바빠진다.

"백강호 선수의 1회 초 타석은 정말 흥미진진했거든요? 허프만 투수의 투심을 잘 커트해 내면서 15구째 체인지업을 제대로 노려 쳤어요. 그라운드 홈런으로 기록됐지만, 타구 높이가 조금만 높았어도 그냥 홈런으로 될 수 있었던 타구였어요. 지금 대결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강호 선수가 이번에도 허프만 투수의 변화구를 노릴 지, 아니면 투심을 공략하고 나설 지, 한 번 지켜봐야겠습니다."

권 캐스터의 말에 조성한 위원이 말을 덧붙인다.

"아마도 백강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타격 전략을 짜놓고 올라섰을 거예요. 트윈스 배터리 입장으로서는 그런 점을 인지를 하고, 구종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1회 초는 너무 투심만 남발했거든요? 이번 대결에서는 다양한 구종과 로케이션으로 승부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허프만과 유광남 포수의 신경전을 알 리 없는 조성한 위원은 그런 식으로 두 선수의 대결에 대해 평가한다.

그 사이 강호를 다시 만난 허프만 투수의 초구가 뿌려지고 있었다.

퍼엉!

강력한 구위의 초구가 뿌려지고, 잠시 판정을 망설이던 주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게 된다.

그 모습에 강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이런 코스도 스트라이크를 잡아주는 거야? 그래도 어차피 결과는 볼넷이니까, 한 번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나는 가만히 서있을 테니까.'

인상을 써보이던 강호는 자신이 사용한 아이템이 '볼넷'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리고 이어진 허프만의 2구째는 거의 비슷한 코스로 날아온 투심. 그러나 주심이 이번에는 볼이 빠졌다고 본 것인지 볼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어진 3구와 4구 역시 볼. 스트라이크로 시작됐던 볼 카운트는 어느새 3볼 1스트라이크가 되어 있었다.

허프만의 입장으로서는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 놔! 그러니까 투심 던지자니까. 유인구에 안 딸려오잖아. 광남! 지금이라도 투심만 던질게. 그렇게 자꾸 이상한 싸인 내지마라고.'

허프만은 이제부터는 자신의 주 무기인 투심으로 승부하려는 마음을 먹는다.

반면에 포수인 유광남은 허프만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 이번 공은 조금 아까웠어. 다음 공은 몸 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를 던지면 백강호의 배트가 딸려 나올 거야. 허프만, 슬라이더로 던져! 백 도어 슬라이더로 가자!'

그렇게 생각한 유광남 포수는 슬라이더를 요구한다.

그러나 두 선수의 고민은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강호의 아이템 사용으로 결과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스 온 볼."

주심이 볼넷을 선언하자 강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1루로 걸어 나간다.

그 모습에 허탈한 미소를 짓는 허프만과 유광남 포수. 그런데 그보다 더 그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자이언츠의 2번 타자인 박철의 타석에서 허프만이 초구를 던지는 것과 동시에 강호가 2루 도루를 성공한 것이었다.

견제구를 4개나 던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루로 뛴 강호의 도루는 2루심의 세이프 선언으로 도루 성공으로 기록되게 된다.

'아 놔, 도루까지 하네. 백강호라고 했나? 나는 저 타자가 좀 싫어지는 거 같애.'

허프만은 2루 베이스를 밟고 일어선 강호를 향해 미간을 좁혀 보인 후, 다시 포수의 싸인을 확인하기 위해 홈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허프만 투수가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베이스에서 발을 뗀 강호의 리드 폭이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강호의 시선은 어느새 자신이 밟고 있는 2루 베이스에서 3루를 향해 옮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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