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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을 치르다
와이번스와의 시즌 첫 시리즈가 열리는 곳은 사직구장이었다.
이미 중계석에 자리를 잡고 있던 배성한 캐스터가 중계를 위해 입을 연다.
"사직에서 열리는 자이언츠와 와이번스 간의 시즌 첫 시리즈 중계를 맡은 캐스터 배성한입니다. 오늘 해설에는 안경훈 위원이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배 캐스터는 먼저 인사말로 중계를 시작한 후 양 팀의 성적에 대해 말을 한다.
"자이언츠는 올 시즌 10승 11패로 5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맞붙게 될 와이번스가 9승 12패로 자이언츠의 뒤를 쫓고 있는데요.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양 팀이 공동 5위가 되느냐, 아니면 자이언츠가 추격을 뿌리치느냐 하는 중요한 일전이 되겠습니다."
배 캐스터의 말에 곁에 앉은 안경훈 위원이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네, 최근 자이언츠의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거든요. 시즌 초반부터 불펜진이 흔들리면서 지는 경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오늘 한동현 감독이 들고 나온 라인업을 보니 특단의 대책이 마련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와이번스는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중심타선을 보유하고 있거든요. 3, 4, 5번 중심타선의 평균 타율이 4할이 넘어요. 오늘 경기에서도 김성연, 정의준, 최현, 이 세 선수가 뜨거운 타격감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가 와이번스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안 위원은 차분한 어조로 양 팀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해 주고 있었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자이언츠의 불펜 붕괴로 인한 라인업 변화와 와이번스의 뜨거운 중심타선에 관한 것이었다.
덧붙여서 하나의 변수에 대해서도 입을 연다.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양 팀의 1번 타순이 될 것 같네요. 와이번스의 1번에 유격수 가메스 선수가 포진되어 있는데요. 타율은 나쁘지 않은데 출루율이 썩 좋지는 못하거든요. 타율 3할 2푼 1리인데 출루율이 3할 5푼 3리에요. 2번인 김재영 선수는 타율과 출루율 모두 조금은 부족해 보이거든요. 반면에 자이언츠의 1번에는 2루수 백강호 선수가 위치하고 있어요. 타율 5할 2푼 6리에 출루율 5할 9푼 2리를 기록하고 있죠. 그리고 2번 타순에 2군에서 올라온 박철 선수가 기용되었습니다. 박철 선수 어제까지 2군에서 기록한 타율이 4할이 넘습니다. 출루율도 5할에 근접하고 있고요. 중심타선의 무게감은 와이번스 쪽에 기울지만, 테이블 세터 쪽은 자이언츠가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안경훈 위원의 긴 설명이 끝이 나자 캐스터인 배성한이 간략하게 정리의 말을 꺼낸다.
"테이블 세터는 자이언츠 쪽으로 기울고, 중심타선은 와이번스 쪽으로 기운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겁니다. 그리고 자이언츠의 중심타선도 크게 밀리지는 않거든요. 3번 전준오 선수 3할 2푼, 4번 황제인 선수 3할 7푼 6리, 그리고 5번 강민수 선수도 3할 대에요. 오늘 자이언츠는 타선이 얼마나 폭발해 주느냐에 따라 승부의 향방이 결정되어질 겁니다."
안경훈 위원은 그렇게 사전 해설을 마무리했다.
불펜이 불안하니 타선이 폭발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이 시구, 시타와 애국가 제창이 이어지고, 이제 경기의 첫 타자가 타석에 오른다.
1회 초, 와이번스의 공격은 1번 타자인 가메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스트라이크!"
자이언츠 선발의 초구는 주심의 콜과 함께 스트라이크로 결정된다.
오늘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박세준이었다.
그의 초구를 중계석에서 지켜본 안경훈 위원이 입을 연다.
"오늘 박세준 선수 구위가 좋네요. 패스트볼 스피드도 147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와이번스 타자들이 고생을 좀 하겠는데요?"
안 위원의 말에 배 캐스터가 가지고 있던 박세준의 기록을 읽어낸다.
"네, 박세준 투수 올 시즌 패전 없이 2승, 1.73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던진 초구가 앞선 경기들을 증명해주는 공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만약 박세준 선수의 제구가 잘 먹힌다면, 1점대의 시즌 방어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안 위원은 배 캐스터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두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세준의 2구가 포수 미트를 향해 뿌려졌다.
퍼엉!
포수의 미트를 때리는 소리가 타석을 가득 채울 정도로 강한 구위였다.
"볼 원."
하지만 주심의 선언은 볼이었다.
초구와는 다르게 공이 존을 벗어나자 배트를 내려던 가메스는 얼른 배트를 회수하는 모습이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가메스.
그가 오늘은 공을 신중하게 보고 있었다. 그 신중한 태도에 세준의 시름이 깊어진다.
'포심 제구가 안 된다.'
세준은 2구를 던진 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연습구를 던질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경기에 들어서고부터 갑자기 포심 패스트볼의 제구가 되지 않고 있었다.
평소보다 구속은 더 나오고 있었지만, 제구가 되지 않는 공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세준은 일단 하나의 속구를 더 던져보기로 하고, 판단을 유보한다.
뻐억!
임팩트 강한 소리와 함께 3구가 포수 강민수의 미트에 박힌다.
이번 공은 타자 가메스의 몸을 맞힐 뻔한 위험한 공이었다.
전광판에는 151km라는 구속이 찍힌다.
'평소보다 세준이의 팔꿈치 각도가 조금 더 올라갔어. 덕분에 구속이 올라갔지만, 제구가 안 잡히고 있는 거야. 투수 코치님도 이미 발견했을 텐데?'
자신의 수비 위치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호는 세준의 투구에서 특이점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린다.
강호의 수비 위치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바로 뒤에서 살필 수 있는 까닭에 평소 마운드 위에 오른 투수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강호였다.
그런 강호의 눈에 평소와는 다른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지는 세준의 모습이 그려진다.
강호가 생각하기에는 세준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투수의 구속이 올라간다고 해서 무조건 컨디션이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강호가 발견한 사실을 덕 아웃에서 보게 된 여민석 투수코치의 행동이 바빠진다.
"감독님. 세준이의 릴리스 포인트와 팔 각도가 안 좋습니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불펜을 준비시켜 두는 게 어떨까요?"
차분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한 감독은 여 코치의 제안에 인상을 찡그리게 된다.
"1회 초부터 불펜을 준비시키면 어쩌자는 겁니까? 세준이를 1회에 강판하면 오늘 경기는 질 수밖에 없어요."
한 감독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입장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한 감독은 어제 날짜로 마무리 손명학과 셋업 투수 윤길준을 2군으로 내리고, 상동의 선수들을 1군으로 대거 콜 업 시킨 상태다.
2군 투수들이 엔트리에 대거 포함된 상태에서 선발 투수를 1회에 강판시켜버린다면 오늘 승부는 시작부터 내주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1회에 바꾸자는 말씀이 아니라 일단 준비는 시켜두는 게 어떨까요?"
여 코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갑자기 릴리스 포인트가 완전히 어긋나버린 세준의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며칠을 지켜보며 투구 자세를 살펴봐야할 필요가 있었다.
"좋습니다. 추천할 만한 투수가 있습니까?"
납득은 하고 있지만, 질문을 던지는 한 감독의 목소리는 여전히 신경질적이었다.
그의 태도에 여 코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는 대답을 위해 입을 연다.
"지터를 준비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1군에 통할만큼 던질 수 있는지도 확인하고 말입니다."
여 코치는 뜻밖의 말을 꺼내고 있었다.
패트릭 지터. 한 감독이 직접 선택한 선수로 한 때는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로도 활약했지만, 지금은 메이저 시절의 구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시범경기 내도록 구위를 끌어올리지 못한 지터는 결국 개막전 경기에서 조기 강판된 후 2군으로 내려 보냈었다.
한 감독은 와이번스와의 시리즈를 앞두고 2군으로 내려 보냈었던 지터를 불펜으로 콜 업시킨 것이다.
"지터?"
놀란 눈으로 되묻는 한 감독뿐만 아니라 주변에 서있던 코치들 역시 놀란 눈을 치켜뜬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지터라면 잠시 2군을 다녀왔다고 해서 구위가 올라올 리 없는 선수였다.
그런데 여 코치가 지터를 롱릴리프로 제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터를 1군에 올린 한 감독 본인도 여 코치가 지터를 추천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그의 표정은 복잡한 심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여 코치가 지금 나를 맥이려는 거야? 아니면 진심으로 지터를 올리자고?'
잠시 고민을 하던 한 감독은 여 코치의 제안이 후자라고 판단을 내리고,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지터를 준비시키도록 하세요."
"네."
여 코치의 대답으로 상황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한 감독을 제외한 코칭스태프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왜 한 감독은 지터를 1군으로 올려서는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거야?'
'우리가 지터라는 폭탄을 안고 꼭 경기를 해야 하나? 지터가 공 던지는 걸 볼 바엔 세준이가 볼 질 하는 걸 보는 게 더 편하겠어.'
속으로 불만이 많은 코치들이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의 불안감을 안은 채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이 터져 나오며 자이언츠 코칭스태프의 시선은 그라운드 위로 옮겨진다.
세준의 5구째 유인구를 받아친 가메스의 타구가 유격수 오진택의 키를 넘는 좌전안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코칭스태프의 불안이 현실로 다가온다.
'아, 이런! 이러다가 진짜 지터를 다시 보겠네.'
'안 돼, 세준아. 지금이라도 잘 던지면 안 되겠니? 지터 공 던지는 거 보면 내가 속이 터져서 경기를 볼 수가 없어.'
코칭스태프들은 세준의 호투를 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시범경기와 개막전에서 지터의 투구가 최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한편 2루 수비 위치에 자세를 잡고 있던 강호는 타석에 오르는 다음 타자를 보며 머릿속의 기억을 떠올린다.
'김재영 타자. 스위치히터이지만 최근 들어 좌타석에 서는 경우가 많아졌어. 좌타석에 섰을 때 타구 방향 80%가 오른 쪽으로 향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타구 스피드가 빨라서 안타가 되는 경우가 많아. 만약 타격한다면 타구가 내게 올 확률이 높아!'
강호는 김재영 타자가 타격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선발투수인 세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타구가 날아온다면 더블 플레이로 세준의 어깨를 가볍게 할 수 있었다.
포심 제구가 안 되고 있었지만, 희한하게도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는 그래도 존안으로 넣고 있는 세준이다.
제구력이 크게 필요 없는 포크볼까지 활용한다면 몇 이닝 정도는 끌고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강호의 바람은 곧 현실이 된다.
따악.
제구가 되지 않아 정가운데로 몰린 공을 타자인 김재영이 받아친 것이었다.
강호에게 아이템 사용을 묻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올랐고, 부정의 의사를 밝힌 강호는 곧장 몸을 움직인다.
터억.
강호의 글러브에 빠른 타구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중계석에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김재영 타격, 아! 백강호 선수가 이 공을 잡아냅니다! 2루로 토스, 아웃! 다시 공은 1루로 향합니다. 1루에서도 아웃! 김재영의 타구가 병살타로 연결됩니다."
배 캐스터의 상황 중계에 곧장 안 위원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2루수 백강호 선수의 수비가 좋았어요. 타구의 속도가 빨랐거든요. 우익수 앞의 안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저걸 잡아내네요. 대단한 수비력입니다."
안 위원은 강호의 수비를 칭찬하며 그로 인해 흔들리던 세준이 2아웃을 손쉽게 잡아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금의 병살타로 주자가 모두 지워졌거든요. 이제 박세준 투수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3번 김성연 선수까지 잘 막아내고 이닝을 종료시킨다면 2회 때부터는 조금 더 안정감 있는 투구를 기대해볼 수 있을 거예요."
안 위원 본인은 세준의 제구가 잡힐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tv중계를 보고 있는 자이언츠 팬들을 위해 긍정적인 코멘터리를 말한다.
그의 말대로 와이번스의 3번 타자 김성연을 맞이한 세준은 8구째까지 이어지는 승부 끝에 좌익수 뜬공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1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팀의 선두타자로 타석에 오르는 선수는 강호였다.
강호는 당당한 걸음으로 타석에 오른 후 상대 투수의 눈을 마주본다.
'오늘 경기는 우리 팀이 이겨야만 해. 절대로 쉽게 물러서지는 않겠어.'
와이번스의 선발 투수 에머리를 바라보는 강호의 눈빛은 강렬했다.
그런 강호의 눈빛으로 인해 경기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은 강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강호를 상대하기 위한 에머리 투수의 초구가 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