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95화 (9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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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을 치르다

타구가 잘 맞기는 했지만 각도가 높은 편이어서 중계석에서는 외야 뜬공 처리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타구 내용을 중계하는 한명진 캐스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말이 이어질수록 목소리가 점점 고조된다.

"백강호 선수의 타구가 좌익수 쪽으로 높이 뜹니다. 좌익수 정민수가 위치를 잡습니다. 조금 물러나는데요. 타구가 멀리 뻗어갑니다. 정민수 선수 펜스 쪽으로 완전히 물러납니다. 타구가 계속 가는데요? 아?! 넘어갑니다! 백강호 선수가 때린 타구가 수원 위즈 파크의 담장을 완전히 넘겨버립니다!"

한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이며 강호의 타구가 홈런임을 알린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박재헌 위원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저는 뜬공인 줄 알았는데요. 이게 넘어가네요. 타구 각도가 60도 정도로 치솟은 것 같은데요. 백강호 선수의 파워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대단한 홈런입니다."

박 위원은 강호의 홈런이 고각으로 형성된 것을 지적하며 지금의 홈런이 나오기 어려운 형태의 홈런이라고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강호의 힘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백강호 선수 시즌 전 체중이 70kg밖에 되지 않았었거든요.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중에 계속해서 체중을 늘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의 체중이 92kg라고 합니다. 석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의 체중 증가라고는 믿기가 힘들어요. 그런 노력이 이런 홈런으로 결실을 맺는 것 같습니다. 참 좋은 선수에요."

박재헌 위원의 해설은 강호에 대한 칭찬으로 마무리 된다.

그 사이 홈을 밟은 강호는 코칭스태프에 이어 선수들과도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또 쳤어. 내가 또 해냈어! 좌익수 플라이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조용히 벤치에 앉은 강호의 눈빛은 기쁨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번 역시도 아이템 사용 없이 스스로 때려낸 홈런이었다.

공을 때렸을 때 타구 각도가 워낙 높아서 외야 뜬공이 될 줄 알고, '아'하는 탄식을 내뱉으며 1루로 향했었다.

그런데 타구가 담장을 넘는 것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베이스를 돈 강호다.

기쁜 마음을 자제하기 위해 빠르게 베이스를 돌다보니 벤치에 앉은 지금은 숨이 찰 지경이었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번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돼. 이틀 전 경기처럼 역전패를 당할 수는 없지. 내가 홈런을 때려낸 경기를 자꾸 져서는 안 돼.'

강호는 이번 경기를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이틀 전 경기처럼 자신이 때려낸 홈런이 희석되는 역전패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위즈의 남은 타자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그들의 타구 방향을 짐작해본다.

그러는 사이 9회 초 공격은 끝이 나고, 9회 말 위즈의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9회 말 위즈의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은 중심타선부터 시작됩니다. 앞선 두 경기에서 위즈의 중심타선 타율이 4할 6푼 대입니다. 자이언츠 입장으로서는 아직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중계석의 한 캐스터가 정규 이닝 마지막 중계를 시작한다.

곁에 앉은 박 위원은 한명진 캐스터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자이언츠는 홍성빈 선수를 마무리로 올렸거든요. 최근 성적이 좋지 못한 손명학 선수를 대신해서 홍성빈 선수에게 마무리로서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나쁘지 않은 결정 같습니다. 홍선빈 선수 최근 구위가 좋거든요. 오늘 승리 여부에 따라서 임시 마무리로 기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박 위원의 말대로 자이언츠의 마무리로 손명학 대신 홍성빈이 마운드에 올라 있었다.

89년생인 홍성빈은 올해로 31살 중견투수로서 오버핸드와 쓰리쿼터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다 재작년부터 쓰리쿼터로 투구 폼을 정해 자이언츠의 필승조로 활약 중에 있다.

불펜진의 대부분이 무너진 자이언츠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불펜 투수라는 평가였다.

그가 타석에 선 3번 타자 이진형을 맞아 초구를 던진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였다.

홍성빈의 초구 무브먼트를 뒤에서 지켜보던 강호는 수비 자세를 더욱 낮춘다.

'오늘 성빈 선배의 무브먼트가 밋밋해. 긴장하는 게 좋겠어.'

왠지 타구가 자신을 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위즈의 3번 타자인 이진형은 좌투좌타의 왼손 타자이다.

리포팅 자료에는 타구 방향의 70% 이상이 우측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2루 쪽으로 향하는 타구가 나올 확률이 무척이나 높다.

-타구가 2루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상대로 시스템의 메시지가 타구 방향을 가늠하게 했다.

강호는 속으로 '아니, 내 손으로 막겠어'라고 답하며 곧장 몸을 움직인다.

투수 홍성빈의 싱커에 레벨 스윙으로 반응하고 있는 이진형의 스윙을 확인한 것이다.

따악.

소리만으로도 잘 맞은 타구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속으로 '됐다'하고 탄성을 내지르던 베테랑 이진형 타자. 그의 표정이 곧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진다.

터억.

타구 방향으로 쓰러지듯이 다이빙한 강호의 글러브에 이진형의 타구가 빨려든다.

아웃이었다.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가 강호의 글러브에 걸려든 것이었다.

그 모습에 안타를 예감하고 있던 투수 홍성빈의 얼굴이 밝아진다.

"강호! 잘 했어. 잘 잡았어."

성빈은 혹시나 강호가 듣지 못했을까봐 두 번이나 잘 잡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성빈에게 글러브에 든 공을 꺼내 던지며 가슴을 툭툭 쳐보인다.

투수들이 불안한 투구를 할 때마다 강호가 늘상 취하는 제스쳐였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성빈으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짜식.'

강호의 제스쳐에 성빈은 피식 웃음 짓는다.

계속된 등판으로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황이지만, 강호의 호수비로 남은 두 개의 아웃카운트 정도는 잡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다.

그의 믿음대로 자신감을 회복한 성빈의 투구는 남은 두 타자를 범타로 돌려세운다.

홍성빈 투수가 세이브를 챙기며 경기는 4대 1,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이 난다.

강호의 투런 포가 쐐기점이 되어 위즈에게 시리즈 스윕 당하는 것을 막아낸 것이다.

"수고했다. 강호. 잘 했어."

한 감독은 강호와 악수를 나누며 칭찬의 말을 전한다.

경기가 끝난 후 일렬로 늘어서 악수를 나누던 선수들 중 유독 강호에게만 잘 했다는 말을 하는 한 감독.

최근 그의 심사를 반영한 칭찬이기도 했다.

'우리 팀의 4, 5월은 쉽지 않겠어. 2군에서 올라온 강호나 대우같은 신인들 덕분에 버티고는 있지만, 주전 선수들이 제 몫을 못해주고 있어. 특히나 투수 쪽이 심각해.'

한 감독의 생각이었다.

이대로 시즌이 진행된다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한 감독의 머리속에 피어난다.

자신감있게 추천한 휴고와 지터가 실패작으로 드러나게 되면, 성적 하락과 겹쳐서 시즌 중간에 감독이 교체당하는 수모를 경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방법이 필요해.'

덕 아웃을 정리하고 돌아서는 한 감독은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린다.

그의 발걸음과 함께 선수들의 걸음이 구단 버스를 향해 옮겨진다.

수원과의 원정 경기를 마치고, 사직으로 돌아가야 했다.

타이거즈와 위즈로 이어지는 원정 6연전에서 1승 5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자이언츠 선수단.

사직으로 돌아가는 구단 버스 안에서의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이 선수단의 분위기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버스 안에서 침묵을 깨는 것은 역시 최고참 선배들이었다.

"이러다가 불펜 물갈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아까 보니까 한 감독 표정이 심상치 않던데."

푸념과 같은 말로 입을 연 것은 투수 조 최고참인 박상현이었다.

원래 투수 조 최고참은 상현이 아닌 송명준이었지만, 그가 2군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이제 상현이 최고참이 되어 있었다.

최고참이기는 하지만, 대놓고 말을 꺼내기는 어려운 주제였던지 곁에 앉은 강호에게 귓속말로 속삭여온다.

대우와 가진성을 제외한 불펜 투수들은 상현과 꽤나 거리가 있는 앞쪽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목소리로 말해도 듣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을 하는 상현이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요. 한 감독님이라면 말입니다. 그..."

강호는 대답을 하면서 '그런데 제가 함부로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앞자리에 앉아있는 대우가 대화에 끼어들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또한 대우뿐 아니라 곁에 앉은 투수 가진성 역시 몸을 돌리며 흥미를 내비친다.

불펜의 물갈이가 있다면 진성 역시 그 대상이 되는 불펜 투수인 것이다.

"선배님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저도 내려갈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대우는 불안한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은 상현에게 질문을 던진다.

빠끔히 튀어나온 대우의 얼굴과 진성의 얼굴이 상현과 강호에게로 향한다.

상현은 그런 두 사람에게 먼저 주의를 줘야했다.

"일단은 목소리 좀 낮추고, 명학이나 길준이가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앞쪽 자리에 앉은 베테랑 투수 손명학과 윤길준의 눈치를 한 번 살핀 상현은 이내 입을 연다.

상현 본인이 투수조의 최고참이기는 하지만 명학과 길준의 나이 역시 적지 않았다.

게다가 팀 내 불펜 투수 중에 최고의 연봉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이다.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음음, 아마도 한 감독이 실험적으로 2군 투수들을 올릴 수도 있어. 최훈이 부상으로 빠진 자리에 원래 2루 경쟁자들인 인태나 진만이 임정같은 내야수들이 있었잖아. 그런데 강호가 올라오면서 3명이 내려가고, 1명만 올라오게 되었단 말이야. 무슨 소린줄 알겠어? 엔트리에 두 자리가 비어버리게 된 거야. 덕분에 컨디션 안 좋은 휴고도 라인업에 남고, 성철이나 재호, 민아 같은 외야 백업들을 고스란히 1군 엔트리에 남겨둔 거야. 자리가 남으니까. 더군다나 진성이 너도 강호 덕을 본 셈이야. 강호가 올라오면서 남게 된 빈 자리에 불펜 투수인 너를 올린 거니까."

서두를 떼는 상현의 말에 진성의 눈빛이 잠시 강호를 향한다.

25살 동갑내기인 강호와 진성은 최근 들어 친분을 쌓기는 했지만, 아직은 거리가 느껴지는 사이다.

그런데 상현의 말을 통해 강호의 1군 콜 업으로 자신의 자리가 생겼다는 것을 재차 알게 된 진성으로서는 강호에게 고마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진성의 눈빛을 강호가 부담스럽게 느낄 무렵 상현의 말이 이어진다.

"조만간 1군 엔트리에 대대적인 개편이 있을 수도 있어. 한 감독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테니까."

상현의 이어진 말에 대우가 얼른 물어본다.

아직 스무 살 신인인 그에게 1군 엔트리에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1군 엔트리에 소속되면 약정된 최저연봉에 출장 수당을 더해 월급을 받게 된다.

대우나 강호처럼 연봉이 적은 선수들로서는 1군 경쟁에 살아남는다는 안도감 이면에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원래 최저연봉도 받지 못하던 강호는 1군으로 콜 업 되며 최저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그게 뭡니까? 선배님. 혹시 불펜 투수들을 재정비하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대우의 질문이었다.

아직 신인 선수인 대우이지만, 팀 내 분위기는 잘 알고 있었다.

한 감독이 칼을 빼든다면 불펜 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있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현은 대우의 질문에 고개를 내젓는다.

"불펜만이 아니야. 최근에 몇몇 야수들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도 문제란 말이야. 강호나 제인이, 준오, 중호처럼 상위 타선의 성적은 나쁘지 않지만 하위타선이 큰 골칫덩어리라고. 1루수, 지명타자, 유격수, 우익수 자리를 한 감독이 언제까지 저런 식으로 방치할 거라고 생각해?"

상현은 후배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의 말대로 지금 자이언츠는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 타격 부진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유격수와 우익수 자리에서의 타격 부진은 그러려니 해도 거포의 포지션이라 할 수 있는 1루수와 지명타순에서의 2할 대 타율은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다.

"어쩌면 상동에서 대규모 선수 콜 업이 있을지도 몰라."

상현은 2군에서의 콜 업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중요한 한 가지가 생략된 상태다.

2군에서 선수를 콜 업 한다면 1군에서 그만큼의 숫자가 2군으로 내려가야 한다.

사직과 상동의 대규모 선수 교환이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하아..."

진성과 대우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쉰다.

한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선수단을 재편성 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중 대우나 강호, 상현에 비해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한 진성의 불안감은 더하다.

"2군에서는 누가 올라올 것 같으십니까?"

잠시의 망설임 끝에 진성이 던진 질문이었다.

진성의 질문에 상현이 상동에 있는 2군 선수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려 본다.

그리고 장소는 상현의 기억 속, 상동으로 옮겨진다.

상현과 강호, 대우와 진성이 선수단 재편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무렵, 자이언츠 2군 경기장인 상동에는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찾아온다.

"뭐? 누가 찾아왔다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2군 사령탑인 손성조 감독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선수들의 데이터를 확인하며 자료를 취합하고 있던 손 감독은 뜻밖의 손님에 의아해한다.

"네, 사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감독님을 뵀으면 하신 답니다."

급히 감독 실을 찾은 구단 직원이 방문자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바로 자이언츠의 최고 권한자인 지정만 사장이었다.

'지정만 사장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상동에는 왜?'

손 감독은 의문이 들었다.

지 사장이 항상 늦은 시간까지 구단 사무실에 남아 업무를 본다는 사실을 모르는 손 감독으로서는 너무 늦은 방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문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다.

상대는 구단의 최종결정권자이지 않은가. 하던 일을 멈추고서라도 만나봐야 할 사람이었다.

"사장님은 어디 계시나?"

손 감독의 발걸음이 감독실 밖으로 옮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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