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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스윙
위즈와 자이언츠의 3번 째 시리즈 맞대결은 중계석의 힘찬 멘트와 함께 시작된다.
"안녕하십니까? 수원 위즈 파크에서 열리는 위즈와 자이언츠 간의 시리즈 세 번째 경기를 중계하게 된 캐스터 한명진, 해설에는 박재헌 위원이 함께 하시겠습니다."
고정 멘트로 중계를 시작한 한 캐스터는 앞선 두 경기에 대해 거론한다.
자이언츠의 충격적인 역전패가 며칠 사이 핫 이슈였던 만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선 두 경기 모두 위즈가 짜릿한 역전승으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어요. 만약 자이언츠가 오늘 경기에서까지 패한다면 4연패가 됩니다. 박재헌 위원은 오늘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 캐스터의 질문에 박 위원은 준비해 두었던 답을 말한다.
"위즈 팀 입장에서는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야 하고요. 자이언츠 입장에서는 오늘 경기만큼은 내주지 않을 거라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타이거즈 전부터 시작된 3연패 사슬을 끊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동현 감독도 특단의 대책을 준비한 것 같아요."
박 위원은 한 감독의 새로운 라인업을 거론하며 사전 해설을 마친다.
라인업에 대한 설명은 경기가 시작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시타 시구와 애국가 제창이 끝이 나고, 양 팀 선수들은 경기 준비를 모두 끝낸다.
그것을 확인한 한 캐스터가 곧장 1회 초 공격 팀인 자이언츠의 라인업을 읽어나간다.
"자이언츠의 팀 타순부터 읽어드리겠습니다. 1번 타자 2루수 백강호, 2번 중견수 전준오, 3번 좌익수 김중호, 4번 3루수 황제인, 5번 캡틴 강민수, 6번 우익수 휴고, 7번 지명타자 채중석, 8번 타자 1루수 김상훈, 9번 유격수 오진택의 순입니다. 타선에 눈에 띄는 변화가 보입니다."
한 캐스터의 타순 설명이 끝난 후 박 위원이 정해진 말로 중계를 받는다.
"네, 하위 타선에 큰 변화가 있네요. 9번 타순에 있던 우익수 유성철 선수가 빠지고, 휴고 선수가 6번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또 1루수 자리에는 이인호 선수가 빠지고 다시 김상훈 선수가 8번 타순에 들어갔죠. 김상훈 선수가 맡았던 지명타순은 채중석 선수가 다시 되찾았고요. 타순은 휴고, 채중석, 김상훈, 오진택 선수의 순입니다. 전체적인 타순은 짜임새가 있지만 6번 타순에 들어간 휴고 선수의 활약 여부에 따라 중심타선과 하위타선의 연결고리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숨 가쁘게 내뱉은 박재헌 위원의 해설이 끝나고, 곧 이번 경기의 첫 타자가 타석에 오른다.
그는 다름 아닌 강호였다.
강호가 타석에 오르자 기다리고 있던 한 캐스터가 강호의 기록을 읽어낸다.
"자이언츠의 선두 타자는 1번 타자 백강호 선수입니다. 시즌 타율 5할 3푼 8리에 홈런 다섯 개. 19타점, 23득점에 도루 10개를 기록 중에 있습니다. 최근 3경기에서는 13타수 3안타로 조금은 부진한 모습입니다."
"네, 백강호 선수가 타이거즈 전 이후에 조금은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23일 경기에서 솔로 홈런을 때려내기는 했지만, 그게 그 경기에서 기록한 안타 전부거든요. 어제 경기에서도 5타수 1안타로 조금은 부진한 모습입니다."
박재헌 위원은 강호의 최근 모습을 '부진'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강호의 데뷔전 이후 활약이 엄청나서인지 연속 안타 경기를 이어나가고 있음에도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강호 선수의 타율이 5할 대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럼 백강호 선수의 타격을 한 번 지켜보시죠."
한 캐스터는 자연스럽게 중계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강호의 타격에 집중한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시청자들도 이제 막 승부를 시작한 위즈 팀 선발 투수와 강호와의 맞대결에 시선을 집중한다.
휘잉, 터업.
위즈 팀 선발 투수 베론의 초구가 포수의 미트에 틀어박힌다.
미트에 박히는 소리가 묵직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빠른 공임에는 분명하다.
잠시 타석에서 한 발짝 물러난 강호의 시선인 전광판을 향했다.
'152km. 리포팅 자료대로 상당한 강속구야. 하지만 생각보다 구위가 강해보이지는 않아. 포심은 타이밍만 잘 맞힌다면 충분히 정타로 때려낼 수 있겠어.'
강호는 어제 읽은 베론의 리포팅 자료를 떠올리며 다시 타격 자세를 잡는다.
그러자 빠른 모션으로 베론의 투구가 이어진다.
베론은 투구 패턴이 무척이나 빠른 투수였다.
부웅.
2구는 강호의 헛스윙으로 볼 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 상황이 만들어진다.
베론의 빠른 투구 모션에 현혹당한 강호가 얼떨결에 배트를 내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2구가 존안으로 들어오는 스트라이크 성 공이기도 했다.
초구에 이은 2구 역시 152km의 강속구.
"후우."
강호는 길게 숨을 토해내며 다시 타격 자세를 잡는다.
자료로만 보던 상대 투수의 특성을 직접 마주하게 되자 느낌이 남다르다.
리포팅 자료에 투구 인터벌이 짧다고 적혀있긴 했지만, 막상 상대해보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짧게 느껴진다.
강호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타격 폼으로 자세를 변경한 후 3구를 기다린다.
왼쪽 팔꿈치를 몸 쪽으로 바짝 붙이는 강호의 타격 폼 변화에 중계석에서 지켜보던 박 위원이 입을 연다.
"백강호 선수 타격 폼에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요. 지금 발 위치를 보시면 오픈 스탠스로 왼발을 넓게 벌린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우완 투수인 베론 투수의 공을 넓게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박 위원의 말에 한 캐스터가 곧장 추가 설명을 요구한다.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없이는 박 위원의 말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시청자들의 수준에 맞는 쉬운 해설을 요구한 것이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렇게 왼발을 벌리면 타자의 시야가 넓어져서 다양한 구종에 대한 대처가 가능해요. 단점으로는 장타를 치기 어렵다는 부분이 있는데, 백강호 선수가 장타를 포기하고 컨택 위주의 승부를 가져갈 모양입니다."
박 위원의 설명에 따라 중계팀 PD가 강호의 타격폼 변화를 비교하는 영상을 중계 화면에 띄운다.
현역시절 30-30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호타준족의 대명사인 박재헌 위원의 전문성 있는 해설에 TV로 중계를 시청하는 자이언츠 팬들이 '아'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 사이 타석에 선 강호가 베론 투수의 4구를 맞이한다.
박 위원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베론의 3구는 파울이 된 상태였다.
티익.
배트에 공이 빗맞는 소리와 함께 타구가 높이 떠오른다.
위즈의 안진형 포수가 뒤로 향하는 타구를 잡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만, 몇 걸음 옮기지 않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타구가 뒤쪽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5구째 승부. 몇 개의 공을 상대해보며 베론의 빠른 속구에 타이밍을 잡기 시작한 강호가 배트를 좁은 각도로 휘둘렀다.
따악.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가 1루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파울 타구가 된다.
스트라이크보다는 볼에 가까운 투구였지만, 볼카운트가 1볼 2스트라이크로 몰린 상태여서 강호로서는 어쩔 수 없이 커트를 해낸 것이다.
이어진 6구는 홈플레이트를 원바운드로 찍고 뒤로 흐르는 볼이 되었고, 7구와 8구는 우측으로 향하는 파울이 만들어진다.
첫 타자부터 집요하게 물고 들어오는 승부에 위즈 팀 선발인 베론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런 상태로 결정한 베론의 9구. 강호는 간결한 스윙으로 베론의 포심을 받아쳤다.
따악.
배트가 공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타석에서 유격수 쪽으로 넘어간다.
멀리 뻗지는 못하는 공이었지만, 배트 중심에 워낙 잘 맞은 까닭에 유격수의 키를 훌쩍 넘기는 안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위즈 유격수 박기현이 껑충 점프해 보았지만, 타구를 잡기에는 무리였다.
이 모습에 중계석의 한 캐스터가 입을 연다.
"자이언츠의 출발이 좋습니다. 팀의 첫 타자인 백강호 선수가 깔끔한 좌전 안타로 1루에 출루합니다."
"백강호 선수 시리즈 내내 잘맞은 타구가 범타가 되면서 불운한 모습이었는데요. 오늘 경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베론 선수와 9구 째 승부 끝에 안타를 뽑아냈어요. 베론 선수로서는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거든요. 여기서 베론 선수가 감정을 잘 수습해서 투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한 캐스터의 중계에 이어진 박 위원의 말로 다음 상황이 연결된다. 타석에 들어서는 다음 타자를 확인한 후 곧장 기록을 읽어내는 한 캐스터.
"타석에 들어선 다음 타자는 전준오 선수. 시즌 타율 3할 1푼 4리에 홈런 2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반에 2할 대에서 시작했던 타율을 3할까지 끌어올렸어요."
"네, 최근 전준오 선수의 타격감이 괜찮거든요. 주자인 백강호 선수의 발도 빠른 편이니까 자이언츠 벤치에서 작전이 나올 확률이 큽니다."
박재헌 위원은 자이언츠의 작전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한 감독은 곧장 자신의 작전을 전달한다.
"강호에게 그린 라이트 신호를 주세요. 준오가 타격감이 좋으니까 번트로 아웃카운트를 날리는 것보다 도루하는 게 좋겠어요."
한 감독의 말은 복잡한 싸인으로 바뀌어 강호에게 전달된다.
강호는 덕 아웃에서 나온 싸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리드 폭을 넓게 벌린다.
'도루 아이템없이 한 번 뛰어보자!'
강호는 생각과 함께 눈빛을 빛낸다.
그동안은 도루 아이템에 의존해 너무 소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했었다.
도루 아이템을 사용할 때는 몸을 날리는 허슬 플레이를 망설이지 않았었지만, 반대로 도루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무게중심을 왼발에 두고 언제든 귀루 할 수 있는 자세로 리드를 가져갔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자신의 리드 폭으로 도루 가능성을 점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연달아 날아오는 베론의 견제구 속에서도 단 1센티도 리드 폭을 줄이지 않은 채 적극적인 도루 자세를 취한다.
"세이프!"
1루심의 네 번째 세이프 콜과 함께 강호가 몸을 일으킨다.
귀루를 위한 네 번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강호의 옷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강호는 무게 중심을 오른발에 두고는 도루할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베론의 초구가 홈을 향해 던져지는 것과 동시에 행동에 나선다.
파학.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한 강호의 몸에 가속도가 붙는다.
그동안 11.5초의 뛰어난 스퍼트에도 불구하고, 주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었다.
혹시라도 있을 도루 실패로 한 감독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없었으면 했던 것이다.
2군에서 막 올라온 백업 선수에게 한 번의 도루 실패도 치명적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더 이상 강호는 주전 경쟁을 펼쳐야하는 2군 선수가 아니었다.
"2루! 2루!"
누군가의 목소리에 투수의 초구를 받은 안진형 포수가 곧장 몸을 일으킨다.
포수의 손을 떠난 공이 2루로 향하고 있을 때, 강호는 이미 2루 베이스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강호는 치열한 도루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전 경쟁은 종결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훈이 빠진 2루수 자리는 자신이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혹시나 최훈이 돌아온다 해도 5할 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자신을 2군으로 내릴 수는 없다.
최훈을 백업으로 돌리던지 아니면 강호 본인이 다른 포지션의 주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 2루를 향하는 강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촤아악.
포수의 공이 2루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강호의 발끝이 2루 베이스에 닿아 있었다.
"세이프."
2루심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세이프를 선언했고, 이제 무사 아웃카운트 없는 상황에서 주자 2루의 찬스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더불어서 강호의 시즌 도루가 11개로 올라가게 된다.
"아~~백강호 선수 빠릅니다. 지금은 태그 할 필요도 없이 세이프네요."
한 캐스터가 놀란 목소리로 강호의 도루 상황을 중계한다.
그러자 한 때 호타준족의 상징이었던 박 위원의 동의를 표한다.
"지금은 출발이 빨랐습니다. 늦은 화면으로 보시면 안진형 포수가 2루로 공을 던졌을 때 이미 백강호 선수가 슬라이딩에 들어가고 있거든요. 베론 선수의 공이 슬라이더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빠른 주력입니다. 이제 무사 2루 상황이 만들어졌으니까 자이언츠 입장에서는 절호의 찬스가 온 거예요."
박 위원의 말대로 1회 초부터 자이언츠에게 찬스가 주어지고 있었다.
최근 타격감이 좋은 2번 타자 전준오는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베론의 3구째를 통타한 중전안타로 1타점을 올린다.
"잘 했어. 강호!"
"깔끔하네. 오늘은 선취점을 너무 쉽게 냈는데?"
덕 아웃으로 들어선 강호에게 코칭스태프들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 후 3번 타자인 김중호가 삼진 아웃, 4번 타자 황제인은 안타를 치고 출루한다.
1사 1, 3루 상황에서 5번 타자인 강민수가 행운의 안타로 1타점을 내며 자이언츠의 점수는 2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다음 타자인 휴고와 채중석이 차례로 삼진을 당하면서 자이언츠의 기회는 2점으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시작된 1회 말, 위즈의 공격.
에이스 본능을 각성한 자이언츠 선발 투수 라일리의 호투로 위즈의 1회 말은 지워진다.
뿐만 아니라 라일리는 6회까지 109개의 공을 던지면서 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 호투로 위즈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뒤이어 오른 권대우가 1이닝을 막아내며 승리가 자이언츠 쪽으로 기우나 했지만, 8회에 오른 셋업투수 윤길준이 1실점하며 위기를 자처했고, 급하게 소방수로 나선 박상현이 간신히 위기를 막아낸다.
9회 초 점수 차는 2대 1상황. 앞선 두 번의 경기에서처럼 역전의 가능성을 남겨둔 채 9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고, 1사 2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타자는 1번 타자 강호였다.
따악!
팀이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상황에서 강호가 상대 투수 김기령에게 때려낸 타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