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92화 (9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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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스윙

1회 말 위즈의 공격 상황.

마운드에 오른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는 윤명호였다.

"후우."

투구에 앞서 깊은 숨을 토해내는 윤명호.

83년생인 그는 올해로 37살이 되는 베테랑 투수다.

다 년간을 좌타자용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동하다 작년부터 5선발로 기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1선발인 지터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5선발이었던 명호가 4선발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다시없을 4선발 기회를 맞아 부푼 마음으로 들어선 2019 시즌. 하지만 3번의 선발 등판 동안 승리 없이 2패, 5.64의 방어율만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오늘 선발 등판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선발 전환이 가능한 다른 투수에게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높았다.

명호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경기인 것이다.

'잘하자. 윤명호! 만약 이번 기회를 날려먹는다면 두 번 다시는 선발 자리가 없을 지도 몰라. 선수 생활 마지막은 선발 투수로서 끝내야 하지 않겠어?'

명호는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타석에 올라선 상대 팀 선두 타자를 응시한다.

아직 초구도 던지지 않았는데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배어나오고 있었다.

37살의 베테랑 투수도 하위권 팀과의 평범한 경기에서 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알게 된다.

'좋지 않아. 명호 선배는 구위가 강한 타입의 투수가 아니야. 지금처럼 어깨가 굳어 있으면 릴리스 포인트가 흔들려서 제구가 되지 않을 거야. 구위도 약한데 제구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조기 강판될 우려가 커.'

자신의 수비 위치에서 상황을 살피던 강호는 선발 투수인 명호의 불안감을 감지했다.

윤명호 같이 베테랑 투수도 주전 경쟁으로 긴장하는 것을 보니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항상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프로 선수로서의 비애처럼 느껴진다.

강호는 혹시라도 이대현이 공을 때려낸다면 타구가 자신에게로 오기를 바랐다.

바람은 곧 현실이 된다.

-타구가 2루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느려졌다.

3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이대현의 타구가 2루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는 투수 윤명호가 던진 공의 방향, 타자 대현의 스윙 등을 근거로 해서 타구 위치를 재빨리 파악한다.

아이템 사용 없이도 타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시스템을 향해 '아니'라고 대답해주며 곧장 몸을 움직인다.

따악.

명호의 하이패스트볼을 다운스윙으로 때려낸 타구가 1루 방면으로 향한다.

타자인 대현은 안타를 직감하고, 타격과 동시에 1루를 향해 발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몇 걸음 못가 멈추게 된다.

파악.

1루 방면 쪽으로 몸을 날린 강호가 다이빙캐치로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잡아낸 것이었다.

그 모습에 중계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대현 안타...아! 잡았습니다! 백강호 선수가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몸을 날려서 잡아냅니다! 슈퍼캐치!"

이대현의 타구가 안타라고 생각했던 한 캐스터는 즉시 자신의 발언을 정정한다.

곁에 앉은 이 위원 역시 안타라고 여겼던 모양인지 놀란 목소리를 낸다.

"아아~ 지금은 정말 잘 잡았습니다. 어떻게 저 타구에 몸을 날려서 잡을 생각을 하죠? 참 대단합니다."

이 위원은 자꾸 '아~'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강호의 호수비를 칭찬한다.

그 때 한 캐스터가 1회 초의 상황이 생각난 것인지 다시 목소리를 높인다.

"1회 초 상황에서 이대현 선수에게 안타를 빼앗겼던 백강호 선수가 그에 버금가는, 아니 더 눈부신 플레이로 안타를 빼앗긴 울분을 되갚아 줍니다!"

"그러네요. 그걸 바로 갚아주네요. 하하, 오늘 경기 초반부터 재밌습니다."

이 위원 역시 한 캐스터의 말에 동감하며 웃음 짓는다.

한편 안타를 빼앗긴 당사자는 1루로 향하는 망부석이 된 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필이면 호수비를 해낸 것이 강호여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자신도 1회 초 상황에서 강호의 안타를 외야 뜬공으로 바꿔놓지 않았던가. 지금 타구가 직선타로 기록된다고 해서 억울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대현이 2루수 직선타로 물러나며 다음 타자가 타석에 선다.

"위즈 2번 타자 정민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정민수 선수 시즌 타율 2할 8푼 2리를 때려내고 있습니다."

한 캐스터가 위즈 2번 타자 정민수의 기록을 읽었고, 이어서 이 위원이 준비하고 있던 코멘터리를 덧붙인다.

"오늘 위즈 팀 조범혁 감독은 자이언츠 윤명호 선발에 맞서 1번부터 3번까지를 좌타자로 라인업을 짰는데요. 조금 특이한 라인업이죠? 윤명호 투수가 원래는 왼손타자 용 원 포인트 릴리프였거든요. 그런 투수에게 3번 타순까지 좌타자를 선택한 조범혁 감독의 기용을 눈여겨볼만 합니다."

이 위원의 말대로 2번 타자인 정민수 역시도 좌타자였다.

강호는 정민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좀 전의 호수비는 잊고 다시 정신을 집중한다.

정민수 역시도 우측 방면으로 향하는 타구가 많았던 까닭이었다.

따악.

예측했던 대로 윤명호의 3구째를 받아친 정민수의 타구가 우측으로 향했다.

이미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수비를 준비하고 있던 강호가 재빨리 2루 베이스를 향해 달린다.

터억.

자칫 중견수 쪽으로 빠져나갈 뻔했던 타구는 깔끔하게 강호의 글러브에 빨려든다.

그리고 역동작으로 몸을 돌려 1루를 향해 송구하는 강호.

그가 던진 공이 빠르게 1루수 이인호의 글러브로 빨려든다.

"아웃!"

1루심의 선언은 아웃이었다.

강호의 호수비로 발 빠른 타자주자 정민수 역시 어렵지 않게 잡아낸다.

이대현과 정민수의 타구가 모두 안타 성 코스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강호의 수비 두 번으로 무사 1, 3루가 될 뻔한 것을 주자 없이 2사로 막은 셈이다.

멘탈이 흔들리고 있던 윤명호 투수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강호! 나이스 캐치. 잘 잡았어!"

윤명호 투수가 감사를 표시하자 강호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답례한다.

그리고 다음 타자 이진형마저 2루수 땅볼로 막아내며 1회 말 3개의 아웃카운트 모두 강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이야~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들어왔어? 강호, 나중에 경기 끝나고 이 형님이 밥 한끼 살테니까 시간 좀 비워둬."

이닝을 종료시키고 덕 아웃으로 들어서던 강호에게 윤명호 투수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글러브를 내민다.

강호는 선배가 내민 글러브에 자신의 글러브를 맞부딪히며 대답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선배님. 이번 경기에서 제 쪽으로 오는 타구는 웬만한 거 빼고는 다 막아내겠습니다."

"그래. 완전 든든하네. 2회에도 좀 부탁할게. 이 형님이 2회 쯤에는 제구가 잡힐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오른쪽으로 가는 타구는 네가 잘 막아줘."

"네, 걱정마십시오."

두 사람은 덕 아웃에 들어오는 내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동안 큰 접점이 없었던 윤명호 투수와 3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친분을 쌓게 된 것이다.

2회 초 자이언츠 공격은 3자 범퇴로 빠르게 끝이나고, 2회 말 상황이 되어 강호는 또 하나의 타구를 걷어내며 아웃 카운트 하나를 올린다.

상당히 까다롭게 바운드되는 타구를 막아낸 강호의 호수비에 투수인 명호가 함박웃음으로 답례한다.

"강호, 나이스!"

기쁜 목소리로 외치는 명호의 음성이 강호에게 전달된다.

강호는 글러브를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그에 답례했다.

그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게 된 중계진에서 연신 감탄사가 나온다.

"아하, 지금 윤명호 투수가 백강호 선수에게 잘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입 모양이 나이스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 캐스터의 말에 이 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사실 윤명호 선수의 제구가 1회 때부터 조금 높게 형성되고 있거든요. 안타로 기록될 뻔한 세 개의 타구가 백강호 선수의 글러브에 막혀서 아웃처리 됐습니다. 위즈 팀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자이언츠 선발인 윤명호 선수로서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일 겁니다. 제가 만약 마운드 위의 윤명호 투수였다면 백강호 선수를 붙잡고 뽀뽀를 해주고 싶었을 거예요."

약간의 농담이 섞인 이 위원의 말에 한명진 캐스터가 웃으며 반문한다.

"하하, 그 정도입니까? 아쉽습니다. 이정범 위원께서 투수로 활동하셨다면 재밌는 장면을 많이 봤을 텐데 말입니다."

한 캐스터는 그라운드 위의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뽀뽀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대화를 다음으로 넘긴다.

강호를 포함한 자이언츠 내야진의 호수비로 2회 말 수비 상황 역시 3자 범퇴로 끝이 난다.

이닝은 3회 초로 넘어가고, 강호는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다시 타석에 올라서게 된다.

강호가 타석에 오르자 중계화면 하단에 표기되는 기록에서 특이점을 찾은 한 캐스터가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아아, 1회 초 상황에서 외야 플라이로 물러나며 백강호 선수의 타율이 5할 대로 떨어졌습니다. 6할 5리의 타율이 5할 9푼 1리로 떨어졌네요."

한 캐스터의 지적에 이 위원이 곧장 입을 연다.

"떨어진 게 5할 9푼입니까? 사실이기는 한데 참신하게 들리네요. 백강호 선수의 초반 활약이 대단하기는 합니다. 떨어진게 5할 대라뇨. 이것 참."

이 위원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렇기 얘기했다.

이미 앞선 타석에서 강호의 타율 이야기를 했던 두 사람이지만, 근래에 보기 드문 엄청난 고 타율에 강호의 매 타석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아마도 강호를 상대해야 하는 투수일 것이다.

'1회 초 때는 대현 선배가 잘 잡아줬으니까 중견수 뜬공이 된 거지 사실은 3루타 코스였어. 백강호를 상대할 때는 더 집중해야겠어.'

위즈 선발인 윤근호는 강호가 다시 타석에 들어서자 긴장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한다.

그의 시선에서 자신을 경계한다는 인상을 받은 강호는 즉시 전략을 수정했다.

이번에도 포심으로 볼 카운트를 잡고, 슬라이더로 결정구를 던질 것이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린다.

그 직후, 근호의 공이 뿌려졌다.

티익.

초구는 파울이 된다.

슬라이더를 예상했던 강호의 배트가 근호의 공을 꽤나 차이가 나는 타이밍으로 맞힌 것이다.

근호의 초구는 포심이었다.

아무래도 쓰리쿼터와 비슷한 근호의 투구 동작이 슬라이더를 던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 모양이다.

더군다나 좌완 투수라는 이점도 있었다.

강호는 들고 있는 배트를 한 차례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다음 공을 승부하기 위해 타격 자세를 잡았다.

부웅!

이번에는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헛스윙이었다.

주심은 당연히 스윙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고, 두 개의 공 만에 볼 카운트가 불리하게 몰려버린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윤근호 투수가 곧장 결정구를 선택하고, 3구를 뿌린다.

티익.

3구는 파울이 된다.

구종은 몸 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고, 간신히 커트해낸 강호의 중심이 휘청거린다.

그 모습에 중계석에서 지켜보던 이정범 위원이 입을 연다.

"이번 타석에서는 백강호 선수에게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네요. 위즈 배터리가 백강호 선수에게 던질 구종 선택을 잘 한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삼진을 잡아내려고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윤근호 투수의 승리가 예상 됩니다. 일단 바깥쪽으로 빼는 공을 하나 가져가고, 몸 쪽 승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 위원은 윤근호 투수가 로케이션 투구로 2볼 2스트라이크를 만든 다음 승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근호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4구에는 낙폭이 큰 슬로우 커브로 허를 찔러봤지만 볼 판정을 받았고, 5구째에 던진 공은 몸 쪽으로 바짝 붙는 포심이었다.

정석적인 승부가 아닌, 변칙 승부에 강호의 몸이 움찔한다.

배트를 내야하나 참아야 하나의 고민 끝에 강호는 결국 빠르게 배트를 휘두른다.

그냥 지켜보기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것 같은 공이었던 것이다.

파학.

배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강호의 발이 1루를 향한다.

공이 배트 안쪽에 맞아 배트가 부러져 버렸지만, 타구 방향은 나쁘지 않았다.

유격수 키를 넘기는 좌전 안타가 나올 수 있는 타구였다.

"아아!"

그러나 강호는 걸음을 멈춘 채 탄식해야했다.

이번에는 유격수 박기현이 뒤쪽으로 달리며 글러브를 뻗는 곡예와 같은 동작으로 자신의 타구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또 다시 강호의 타구가 위즈 팀 야수의 호수비로 막혀버린 것이다.

강호는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짓다가 미련 없이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에 중계석의 한 캐스터가 입을 연다.

"아~오늘 백강호 선수 운이 없습니다. 1회에 이어 3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네, 박기현 유격수의 수비가 좋았죠? 행운의 안타로 기록될 뻔한 타구가 내야 뜬공으로 기록되네요."

두 사람의 평가대로 강호의 두 타석은 운이 없었다.

강호는 수비에서라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정신을 더욱 집중했고, 그 덕분에 몇 차례 더 좋은 수비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6회 초 공격 상황.

선두 타자로 나선 9번 이인호 선수가 내야 땅볼로 물러나고, 강호가 두 번째 타자로 타석에 오른다.

투수는 여전히 윤근호 투수.

6회 1아웃을 잡을 때까지 1실점도 허용하지 않은 그가 여전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강호는 앞선 타석과 마찬가지로 이번 타석에서도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은 채 타격 자세를 준비한다.

그리고 맞이한 윤근호 투수의 초구.

초구 타격을 준비하고 있던 강호의 벼락같은 스윙이 휘둘러진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윤근호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친 강호의 타구가 외야를 향해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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