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91화 (9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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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스윙

1회 초 공격은 자이언츠부터 시작되었다.

중계석에서는 경기 시작과 함께 자이언츠 타자들의 라인업을 읽어낸다.

"자이언츠의 팀 타순입니다. 1번 타자 2루수 백강호, 2번 중견수 전준오, 3번 좌익수 김중호, 4번 3루수 황제인, 5번 포수 강민수, 6번에는 지명타자 김상훈, 7번 타자 1루수 이인호, 8번 유격수 오진택, 9번 타자 우익수 유성철의 순입니다. 이 위원께서는 오늘 자이언츠의 키 플레이어로 백강호 선수를 꼽아주셨네요."

타순 설명이 끝난 후 한 캐스터가 멘트를 이 위원에게 넘긴다.

"네 오늘 역시나 자이언츠 타선의 순서에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자이언츠의 한동현 감독은 1번에 있던 김중호와 3번 백강호 선수의 타순을 서로 바꿔버렸어요. 최근 타격감이 좋지 못했던 1루수 김상훈을 채중석 선수를 대신해서 지명타자 6번에 놓고요. 9번 자리에 있던 1루수 이인호 선수를 7번으로 올렸습니다. 매 시리즈마다 타순에 대한 변동이 심한 자이언츠 인데요. 오늘 눈여겨 볼 점은 백강호 선수의 리드오프 복귀가 아닌가 합니다."

이 위원의 해설이 끝나자 한명진 캐스터가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오늘 그 키 플레이어가 이정범 위원님과 비견되고 있는 바로 그 선수입니다. 백강호 선수를 만나보시죠."

한 캐스터는 타석에 들어서고 있는 강호를 이정범 위원과 비교하는 말로 흥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자이언츠 팬이 아닌 팬들도 한 캐스터의 중계를 들으며 '자이언츠에 저런 타자가 있었어?'라고 감탄을 하게 된다.

대부분은 강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위즈의 팬들이었다.

"타율 6할 5리. 홈런 4개, 도루 10개, 데뷔전 경기인 4월 9일 사이클링히트 기록 후, 정확히 일주일 후에 또 다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대단한 타자입니다. 이정범 위원, 백강호 선수의 이 기록을 어떻게 보십니까?"

강호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던 한 캐스터가 질문을 해오자 이 위원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시즌 초반의 성적이기는 하지만 백강호 선수, 대단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8일 경기에서 백강호 선수가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6할 대의 타율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됐죠? 4월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흠잡을 데 없는 활약을 이어나가는 중입니다."

이 위원은 대답을 간단히 했다.

왜냐하면 미리 맞춰둔 멘트로 답하기 위해서는 한 캐스터의 다음 질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 캐스터가 미리 정한 다음 질문을 던진다.

"말이 나와서 오프닝 때 드린 말씀을 이어드리겠습니다. 최근 백강호 선수와 이정범 위원의 현역 시절을 비교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데요.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캐스터의 이어진 질문에 이 위원은 멋쩍게 웃음 짓는다.

사전에 협의가 된 내용에 답변하는 것이지만, 본인의 입으로 말하려니 왠지 민망해진다.

"지금까지 백강호 선수의 페이스대로라면 제가 비교가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즌은 길고, 경기를 치러나가다 보면 어떤 변수들이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어서 자이언츠 구단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여 집니다."

"백강호 선수의 타율이 떨어질 거로 보시는군요?"

너무도 당연할 수 있는 한 캐스터의 말에 이 위원은 '하하'하고 웃어 보인다.

6할 대의 타율을 시즌 끝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위원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지금 타율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한 일이고요. 이번 달이 끝날 때까지 지금의 타율을 유지할 수 있다면 4할 대 타율 가능성은 점쳐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 캐스터는 이 위원의 말을 받으며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어느새 위즈 팀의 선발 투수 윤근호가 초구 투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선언과 함께 한 캐스터가 중계를 이어나가려는데 이 위원이 조금 전 끝났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입에 올린다.

"그런데 저하고 비교하기에는 포지션이 안 맞지 않을까요? 저는 현역 때 유격수였고, 백강호 선수는 2루수거든요. 시즌 초에는 우익수도 봤었고요. 굳이 비교한다면 자이언츠의 2루수 출신 레전드들과 비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위원은 재능이 뛰어난 후배들을 자신과 비견하는 것은 기분이 좋았지만, 포지션 문제는 짚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자 한 캐스터가 반박의 말로 답한다.

"아, 백강호 선수 원래 포지션이 유격수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은 2루수 자리를 맡고 있지만, 원래는 유격수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자이언츠 입장에서도 백강호 선수를 2루수에 두는 것보다 유격수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이 위원은 지금 한 캐스터의 말은 자신에게 답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으로 보았다.

그래서 진지하게 답을 하려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생겨 질문을 던져본다.

"전문가 누가 그러던 가요?"

"아니, 뭐. 다들 그러시던데요. 뭐. 제가 말씀드리는 전문가가 누가 있겠습니까? 스튜디오에 계시는 해설위원 분들이죠."

이 위원의 질문에 한 캐스터는 굳이 대답을 피하지 않고, 소속 방송사에 소속된 해설위원들이라고 답을 한다.

그 사이 위즈의 선발 투수 윤근호의 4구째가 이어지고 있었고, 포수 미트에 들어간 공은 다소 높다는 판정을 받으며 볼로 선언된다.

중계석의 두 사람이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볼 카운트가 2볼 2스트라이크가 되어 있던 것이다.

위즈 선발로 오른 윤근호는 4구째 승부를 통해 강호라는 타자를 판단 중에 있었다.

'생각보다 잘 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포심에 타이밍도 못 맞추고 있고, 체인지업은 지켜만 보고 있잖아.'

그것이 강호를 처음 마주한 근호의 평가였다.

백강호라는 선수가 처음 맞상대하는 타자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를 모를 수 없었다.

데뷔전 사이클링히트 기록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강호다.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현재 리그 1위 타율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2위 그룹과의 격차가 2할 가까이 나는 엄청난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 전 사전 미팅에서도 백강호를 주의하라는 투수코치의 지시가 있었다.

'또 유인구를 던지라고? 아니야. 이런 교타자 유형들은 의외로 하이패스트볼에 배트가 딸려오는 경향이 있어. 패스트볼로 승부 보자.'

근호는 포수인 안진형의 유인구 싸인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86년생으로 올해 34살인 근호는 위즈 팀의 최고참 중에 한 명이다.

KBO에 속한 프로 구단 중에 가장 역사가 짧은 위즈 구단이다. 신인 선수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중 주전 포수인 안진형 역시 99년생으로 올해 21살이 되었을 뿐이다.

기존의 안방마님이었던 윤효섭이 38살이 되면서 구단 측에서는 새로운 안방마님을 발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 때는 대형트레이드로 기대를 모았던 포수가 사건사고에 연류되어 이탈하면서 주전 포수 공백에 몇 년간 신음했던 위즈 구단이다.

다행히도 21살의 어린 포수 자원을 발굴할 수 있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은 포수의 나이가 어려 고참 투수들이 안진형 포수의 싸인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재작년부터 팀의 4선발 자리를 꿰차게 된 윤근호 투수 역시 그런 선배들 중 한 명이었다.

'근호 선배님이 또 속구만 던지는 병이 도지셨네. 왜 강타자들만 마주하면 속구로 결정구를 던지시려는 거야? 사전 미팅 때 그렇게 주의를 들어놓고는.'

포수인 안진형의 입장에서는 포심 싸인이 나올 때까지 고개를 흔들고 있는 선배 투수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바깥쪽 높은 코스의 포심 싸인을 낸다.

그러자 곧장 고개를 끄덕이는 윤근호 투수.

그의 5구가 안진형 포수의 미트를 향해 뿌려진다.

따악.

배트가 공을 때리는 소리가 타석을 가득채운다.

이어서 강호의 '아'하는 탄식이 간담이 서늘해져 있던 안진형 포수의 얼굴을 안도하게 만든다.

'실투였어.'

강호는 윤근호의 5구째 공을 파울로 때려낸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코너웍을 의도한 공 같았지만, 가운데로 몰리는 평범한 속구였던 까닭이다.

그립을 잘못 쥔 것인지 앞선 공보다 무브먼트도 적었다.

그런데 바깥쪽의 유인구에 대비하고 있었던 까닭에 밀어치는 타격을 준비했던게 패착이었다.

가운데 들어오는 실투가 1루 관중석 상단 높이 떠오르는 파울이 된 것이다.

타구 방향이 인필드 안으로 들어왔다면 분명 장타로 연결됐을 안타까운 공이었다.

'이제 내가 속구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상대 배터리가 어떻게 준비를 할까? 지금 보니까 상대 투수가 포수의 싸인을 자꾸 거부하는 모양인데.'

강호는 잠시 벗어나 있던 타석에 다시 자리를 잡으며 머리를 굴려본다.

경기 전, 전력분석 자료를 통해 공부해 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평균 구속 143km대의 포심, 130km초반대의 슬라이더, 120km중반대의 체인지업, 그리고 슬로우 커브. 윤근호 투수가 결정구로 슬로우 커브를 선택할 확률은 없어.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포심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으로 결정구를 가져갈 확률이 높아. 스스로의 투구를 자부하는 윤근호 선수가 결정구로 택할 공은 결국.'

강호는 판단을 끝내고는 다시 타격 자세를 잡는다.

그에게 3번에서 1번으로의 타순 이동은 이제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는 포지션 변경이나 타순 이동 문제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위치가 자주 이동되다보니 '어, 오늘은 1번이네?'라고 쉽게 받아들이는 경지가 되었다.

이제 타순에서 완전히 빠지지만 않는다면 어떤 타순이든 개의치 않게 된 강호다.

대신 타순에 맞는 타격 전략은 미리 세워두고 있었다.

'슬라이더! 슬라이더야.'

강호는 투수의 공이 슬라이더임을 직감한다.

조금 전에는 수차례나 고개를 내저었던 근호가 이번에는 두 번 만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슬라이더를 직감하게 된다.

체인지업에는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슬라이더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강호 본인이 속구를 기다리는 타격을 보여줬으니 포심은 배제하고 생각한 결과였다.

'지금은 결정구를 던질 때야. 바깥쪽 코스가 아니라 분명 존을 훑고 들어오는 몸쪽 슬라이더야. 때리자!'

강호는 공이 근호의 손을 떠난 것과 동시에 한껏 끌어 당겼던 배트를 휘둘렀다.

타격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주로 밀어치는 타격으로 우측 코스를 공략하던 강호가 자신감있게 자신의 스윙을 가져간 것이다.

따악!

맞는 순간 장타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타구가 좌중간으로 뻗어나간다.

제대로 때려낸 타구는 각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라인드라이브로 좌중간 펜스 쪽을 꿰뚫어 버릴 듯이 뻗어져 나갔다.

적어도 2루타는 나올 것 같은 타구가 펜스를 향해 직격하는 모습이 팬들의 시야에 들어온다.

"어, 어?!"

"잡아, 잡아!"

위즈 팬들은 중견수인 이대현이 타구를 잡아주기를 바랐다.

한 때는 슈퍼소닉이라고 까지 불렸던 이대현의 빠른 발이라면 어쩌면 펜스를 강타할 것으로 보이는 저 타구를 잡아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된다.

"우와!!"

"잡았어!!"

홈팬들의 함성 속에 어렵게나마 타구를 잡아낸 이대현 선수가 글러브를 들어올린다.

머리 뒤로 넘어가는 타구를 끝까지 쫓아 그라운드 위를 나뒹굴면서도 타구를 놓치지 않은 그의 호수비에 감탄의 탄성을 내지른다.

반대로 장타를 직감하고, 2루 베이스 근처까지 도달해 있던 강호는 '아~'하는 탄성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돌린다.

상대 팀이기는 하지만, 박수가 절로 나오는 이대현의 호수비였다.

강호의 안타를 이대현에게 도둑맞은 셈이다.

"그렇지! 나이스 캐치!"

3루타를 예상하고 있던 투수 윤근호는 수비를 위해 홈 플레이트 근처까지 물러선 채 낙담하고 있다가 크게 환호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마운드 위로 걸음을 옮기면서 포구한 공을 2루수에게 던지고는 제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이대현에게 박수를 보낸다.

"선배님! 나이스입니다!"

34살로 투수조 최고참 중에 한 명인 근호가 선배님이라 부를 정도로 이대현은 나이가 많다.

83년생, 올해로 37살이 되니 슈퍼소닉 이대현도 어느새 은퇴를 고려할 나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기량저하를 의심하는 항간의 시선을 호수비 하나로 잠재우는 이대현.

덕 아웃으로 들어가던 강호는 그런 대현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번 바라본다.

'좋은 수비입니다. 하지만 저도 수비로는 만만치 않을 거예요.'

강호는 대현의 호수비에 안타를 뺏긴 후 투지를 불태운다.

리포팅 자료를 통해 파악한 이대현의 타구는 60% 이상이 우중간을 걸치면서 만들어진다.

중전 안타의 비율이 높고, 특히나 2루수 키를 넘기는 우전 안타들이 많았다.

이대현이 주로 당겨 치는 타격을 하는 좌타자이기 때문이다.

강호는 그 사실을 떠올리고는 이대현의 타석 때 이번에 뺏긴 안타에 대한 복수를 해줄 생각이었다.

1회 초 공격은 빠르게 지나고, 1회 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선 타자는 바로 슈퍼소닉 이대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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