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88화 (8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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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전략을 세우다

강호는 이미 덕 아웃으로 들어와 있었다.

6번 타자인 채중석이 타이거즈의 세번째 투수가 던진 공을 통타하며 득점을 올리게 되었다.

채중석의 2타점 적시타.

뒤이어 타석에 오른 오진택이 좌전 안타를 때리지만, 2루 주자인 강민수가 홈에 묶이면서 상황은 다시 만루.

안타깝게도 8번 타자로 오른 유성철이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이닝은 종료된다.

그리고 맞이한 1회 말 수비 상황.

타석에서 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수비 상황에서는 자료 분석의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 강호.

그의 물 흐르는 듯한 수비가 이어진다.

"아웃!"

1루심의 아웃 선언과 함께 1회말 상황이 삭제되듯 지워진다.

투수인 라일리가 던진 공은 고작 다섯 개.

타이거즈 타자들이 모두 내야 땅볼과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며 3자 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하게 된다.

강호는 그 중에서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책임지며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스스로의 수비에 뿌듯함을 느끼며 덕 아웃으로 돌아온 강호에게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강호야. 괜찮은 거야? 억지로 무리할 필요는 없어. 너는 이제 주전 경쟁을 해야 하는 루키가 아니니까. 네가 잠시 엔트리에서 빠진다고 해서 네 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냐. 지금이라도 말해봐라. 몸이 좋지 않다면 곧장 병원으로 가도록 하자."

쓰고 있던 고글까지 벗고 말을 건넨 사람은 김민철 수석이었다.

그는 한 감독의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강호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선수운용이 이루어지는 팀이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설령 강호 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일단은 교체를 하고,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것이 코칭스태프가 해야 할 일이니까.

"진짜 괜찮습니다. 수석 코치님. 정 걱정되시면 경기가 끝나는 대로 병원에 가보겠습니다."

"정말이냐? 정말 괜찮은 거야?"

"네. 정말 헬멧에 빗겨 맞은 겁니다."

"그럼. 경기가 끝나는 대로 나랑 같이 병원으로 가보자. MRI정도는 찍어봐야지."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호는 김 수석의 말에 그렇게 답한다.

몸에 이상이 없는 강호로서는 딱히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

워낙 강속구를 머리에 맞아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경기가 끝난 후에 병원으로 가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일회용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아도 프리마켓 시스템의 효과는 여전히 유효해. 경기장 안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해도 부상을 입지 않는다. 이런 일로 라인업에서 제외돼 버린다면 주전 2루수 자리를 뺏길 지도 몰라.'

강호는 자신의 자리를 염려하고 있었다.

김 수석은 자신이 주전 경쟁에서 생존했다 말하지만, 라인업에 대한 결정권은 한 감독에게 있다.

팀의 내분을 알고 있는 강호로서는 마냥 어린애처럼 김 수석의 말을 믿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김 수석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다음에는 남들이 볼 때 부상이 심하게 우려되는 플레이는 피하도록 하자. 자칫 잘못하면 부상을 입지도 않았는데 엔트리에서 빠질 우려가 있으니까.'

강호는 김 수석의 걱정에서 하나의 사실을 깨닫고는 앞으로의 플레이에 조금 더 신중해지기로 한다.

그러는 사이 경기는 이어지고, 어느새 강호의 두 번째 타석이 다가온다.

2회 초 공격에서 9번 타자인 이인호가 볼넷으로 출루하고, 김중호가 안타, 2번 타자인 전준오가 외야 플라이를 때려내며 자이언츠는 또 한 점을 얻어내게 된다.

2회 초, 3점 앞선 가운데 1사 주자 1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오르게 된 강호.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운드 위의 투수를 바라본다.

'조금 전에 보니까 빠른 공에 대한 대처가 나쁘지 않지만, 정타로 연결시키지는 못했어. 145km가 넘는 빠른 공에는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마운드에 오른 투수, 박준평이 강호와 눈빛을 마주하며 초구를 결정한다.

경기 전 미팅에서 들은 강호는 컨택과 파워, 배트 컨트롤이 모두 뛰어난 타자였다.

규정 타석을 채운 지금 타율이 6할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타자와 상대할 때는 승부를 피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선수의 페이스라는 것은 결국 올라갈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가 있는 것이라 강호의 방망이도 조만간은 식을 거라는 게 준평의 생각이었다.

'그게 지금이면 좋겠는데 말이야. 일단 초구는 몸쪽 포심으로 던져보자.'

준평은 초구로 몸쪽 포심을 선택한다.

강호가 1회 상황에서 스티븐의 강속구에 헤드샷을 당했다는 사실에 착안한 초구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몸에 맞는 공을 직전 타석에 경험한 타자라면 몸쪽으로 붙는 공에 움찔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공으로 카운트를 잡아보려는 것이다.

파앙.

준평의 초구에 강호의 몸이 움찔거린다.

사이드암 치고는 빠른 140km 중반 대를 던지는 준평의 공에 배트를 내지 못한다.

주심의 볼 판정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는 강호.

"스트라이크!"

주심은 그런 강호의 시선과 마주하며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약간은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심의 선언이 번복될 리는 없었다.

'무브먼트가 지저분한데? 타이밍을 맞춰도 정타로 때려내기는 힘들겠어.'

강호로서는 많이 경험해 본적 없는 유형의 투수였다.

정타를 때려낼 자신은 없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타격으로 승부를 본다.

박준평 투수의 공이 익숙해질 때까지 커트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티익.

그의 의도대로 2구는 커트해 낸다.

준평이 던진 2구는 종으로 크게 떨어지는 커브. 눈높이까지 올라왔다가 존 아래를 걸치며 떨어지는 낙폭 큰 슬로우 커브였다.

강호는 커트해낸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다시 타격 자세를 취한다.

"볼."

3구는 볼이었다.

유인구로 던진 공이 존 밖으로 빠져나간다.

강호는 배트를 들어 올려 배트 끝에 시선을 맞추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판단이 끝났는지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투수를 응시한다.

티익.

4구는 뒤쪽으로 넘어가는 파울이 된다.

이어진 5구 역시 파울.

1회에 이어 2회에도 길어지는 강호의 승부에 양 팀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던져진 박준평의 6구.

'응?'

강호는 자신의 몸쪽을 향해 휘어들어오는 공에 몸을 피하려다가 다시 포수 미트 쪽으로 감겨들어가는 공의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얼른 배트를 뻗었다.

따악.

이번에도 파울이었다.

우타자의 몸 쪽에서 존으로 횡 이동하는 백 도어 슬라이더가 일품이었지만, 강호의 대처가 좋았다.

볼 카운트는 여전이 1볼 2스트라이크 상황.

강호는 투수인 준평을 응시하며 다음 공을 예측해 본다.

'지금 상황에서는 유인구 확률이 가장 높아. 하지만 바꿔 생각해서 빠른 포심을 밀어 넣는 승부를 걸 수도 있어. 일단은 패스트볼 타이밍으로 맞춰놓자.'

강호는 7구에 대한 대처를 패스트볼에 맞추고는 타격 자세를 취한다.

잠시의 기다림 후 던져진 준평의 7구는 기묘한 무브먼트로 존을 향해 움직인다.

움직임을 본다면 포심은 아닌 것 같았지만, 빠르기가 속구 타이밍과 같다.

강호는 망설임없이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호쾌한 소리에 곧장 1루를 향해 달린다.

배트에 닿은 볼 끝이 가볍게 느껴졌었다.

자신이 때린 공이 패스볼계열은 맞지만, 포심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강호의 시선이 외야로 뻗고 있는 공을 올려다본다.

팬들 역시 좌중간을 향해 날아가는 공을 바라본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원정 팬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홈 팬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흘러나온다.

강호가 때린 깊은 타구를 좌익수인 나지환이 어렵게나마 포구에 성공한 것이다.

"아, 이런."

덕분에 2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쳤던 1루 주자 김중호가 빠르게 1루를 향해 귀루 한다.

이로써 강호의 타구는 좌익수 플라이로 기록되고, 2회 초 상황은 1사 2루로 바뀐다.

다음 타자인 황제인마저 외야 뜬공으로 물러나며 이닝은 빠르게 종료되고, 2회 말 타이거즈의 6번 타자 안치형이 때려낸 투런 포로 점수 차는 1점으로 좁혀지게 된다.

그 후로 별다른 상황 없이 양 팀의 2이닝이 빠르게 지나가고, 5회 초 선두타자로 강호가 나선다.

원정 팬들이 위치한 관중석에서 '백강호, 백강호'하고 강호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강호, 다치면 안 돼! 몸조심하면서 해."

일부 팬들은 강호의 1회 초 헤드샷 상황을 걱정한 것인지 다치지 말라는 소리로 응원을 대신한다.

팬들의 걱정에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짐을 느낀다.

강호 자신이 언제 이런 팬들의 목소리를 들어봤겠는가.

1군 무대에 오른 것은 올해가 처음이어서 팬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 또한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싫지 않다. 이런 팬들의 성원을 계속 들을 수 있다면 부상을 입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차피 최소 170일 동안은 부상을 입지 않는 몸이잖아.'

김 수석과의 대화에서 몸을 사려야겠다고 생각한 강호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반성하게 된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김 수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부상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팬들.

그들 모두의 기대를 부응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볼 원."

주심의 초구 판단은 볼이었다.

타이거즈 마운드는 여전히 박준평이 지키고 있었고, 다소 지친 표정의 준평이 포수의 미트를 향해 2구를 뿌린다.

"스트라이크!"

준평의 2구는 타자 몸 쪽부터 시작해서 존을 훑고 지나가는 슬라이더였다.

존의 좌우를 횡단하는 무브먼트에 강호는 미처 배트를 내지 못했다.

'슬라이더는 역시 안 되겠어. 아직 이런 슬라이더를 정타로 때리기는 무리야. 슬라이더는 커트하도록 하자.'

강호는 준평의 슬라이더 공략을 과감히 포기한다.

또한 포심에 대한 공략도 포기하기로 했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두어 빠른 공을 기다리고 있는 척 타이거즈 배터리를 속인 ,후 투수의 투구와 함께 무게 중심을 오른발로 이동시켜 변화구를 타격할 생각이었다.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준평의 3구가 포수 미트로 향한다.

따악.

타격음과 함께 아쉬운 표정의 강호가 배트를 끌어당긴다.

느린 커브임을 판단한 직후 제대로 노리고 때렸지만, 아깝게 파울이 되고 만다.

그 후로도 긴장되는 접전이 이어지고, 이윽고 준평의 7구째를 노린 강호의 배트가 보기 좋은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 낸다.

"뛰어, 뛰어, 뛰어!"

강호는 3루 베이스 코치의 콜을 확인하며 손쉽게 2루에 안착한다.

어려운 승부 끝에 준평에게서 2루타를 얻어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됐어! 사이드암 투수라고 해서 마냥 어려워할 필요는 없는 거야. 끈질기게 승부하다보면 답은 있으니까.'

강호는 스스로 만들어낸 2루타에 기뻐하며 마운드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지금의 2루타로 타이거즈 덕 아웃이 결정을 내린 것인지 주심에게서 공을 받아든 타이거즈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오른다.

투수교체였다.

박준평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김명진. 그는 92년생의 좌완투수로서 크지 않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이 주 무기인 투수였다.

타이거즈 벤치에서는 4번 타자인 황제인이 타석에 오르는 위기 상황을 맞아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어긋나고 만다.

따악!

황제인을 시작으로 강민수, 채중석에 이어지는 연 타석 안타를 맞으며 김명진이 2실점을 헌납하고 만 것이었다.

뒤늦게 오진택과 유성철을 범타로 돌려세웠지만, 9번 타자인 이인호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또 한 점을 내주고 만다.

김명진에 이어 다섯 번째 투수로 오른 현승혁이 어렵사리 마무리 했을 때는 이미 스코어는 6대 2로 벌어진 상황. 조금은 자이언츠 쪽으로 승기가 기울게 되었다.

"이번 경기는 가져오겠네요."

"타이거즈 쪽에서도 경기를 포기한 모양인데요. 야수 쪽에 신인 선수로 교체를 하네요."

6대 2에서 큰 상황 없이 8회까지 이어지자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낙승을 예상하게 된다.

타이거즈 역시 패배를 예상한 것인지 외야수 한 명과 내야수 한 명을 신인 선수로 교체하며 내일을 기약한다.

그런데 8회 말이 되자 상황은 뒤바뀌게 된다.

"아, 노수강에 이어 김성빈 역시 출루합니다."

중계석의 조 캐스터가 느긋한 목소리로 중계를 이어나가다 4번 타자인 나지환이 때려낸 타구에 목소리를 높인다.

"아, 뻗습니다! 멀리 갑니다! 넘어가나요? 넘어~갔습니다! 자이언츠의 턱 밑까지 추격해 들어가는 나지환의 쓰리런! 스코어는 6대 5, 한 점 차로 좁혀집니다!"

조 캐스터의 박진감 넘치는 해설 속에 점수 차는 1점 차. 타이거즈의 다음 타자는 한창 타격감이 좋은 이범화 선수였다.

따악.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 잠시 투수 교체를 망설이는 사이 이범화의 2루타가 기록되고, 부랴부랴 여민석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오른다.

"수고했다."

여 코치는 불펜투수로서 공을 던졌던 송명준의 등을 두들기며 다음 투수를 올린다.

다음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자이언츠의 필승 카드인 홍성빈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홍성빈은 다음 타자인 6번 타자 안치형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타이거즈 타선을 잠재우나 했지만, 대타로 나온 강한율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동점을 허용하게 된다.

이에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홍성빈을 내리고 최근 흔들리는 셋업 투수, 윤길준을 올리는 모험을 감행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따악!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이용구 타자의 홈런포가 터진 것이다.

이로써 8회에만 6점을 얻어낸 타이거즈가 8대 6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게 된다.

한 감독은 마무리인 손명학을 무리하게 올리고 나서야 8회 말의 상황을 매듭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9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 상황.

선두 타자인 전준오가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며 무사 1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것은 다름 아닌 강호였다.

강호는 혼란스러웠던 오늘 경기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타석에서 형이 항상 자신에게 해주던 말을 떠올리며 배트를 들어 올린다.

‘서두르지 말고, 다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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