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82화 (8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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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수 없는 경기

따악.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정면으로 향하며 안타로 기록된다.

그 안타로 강호의 두 번째 사이클링히트가 또 한 번 사직구장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펑, 펑, 퍼엉!

언제 준비를 해둔 것인지 구단 외곽 쪽에서 폭죽이 솟아올라 하늘을 빛 무리로 물들인다.

또한 전광판에는 강호의 통산 두 번째 사이클링히트를 알리는 글귀들이 화려하게 장식되고 있었다.

강호는 사직구장에 가득 울리는 환호성의 중심에 선 채, 덕 아웃을 바라보게 된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1루쪽 덕 아웃이 아닌 베어스가 자리하고 있는 3루 쪽 덕 아웃이었다.

'구형태 감독님. 어떻습니까? 당신이 포기한 선수가 사이클링히트를 때려내는 모습이요. 지금 제 모습이 보이십니까?'

강호는 들끓는 감정과는 다르게 차가운 시선으로 베어스의 덕 아웃을 응시한다.

덕 아웃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

짙은 색 고글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구형태 감독의 눈빛에 강호는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낀다.

구 감독에게 자신이 1군 무대에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고 있었다.

강호로서는 오랜 시간 염원했던 일이다.

군에 입대하여 전방 근무를 설 때도, 힘든 훈련 속에서도, 혹한기 훈련을 할 때도, 강호의 군장 속에는 항상 낡은 야구공이 들어 있었다.

베어스에서 방출되던 날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베어스 시절에 사용하던 낡은 야구공을 항상 품은 채로 잠이 들었다.

비록 타격 아이템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만든 기록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위치에서 구 감독과 마주하고 싶었다.

'백강호.'

구형태 감독은 그런 강호의 눈빛을 마주하고 있다.

피할 생각은 없었다. 한 때는 자신이 지도했던 선수다.

강호의 눈빛을 피할 이유도 없었고, 당당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구 감독은 강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만큼은 그 생각을 고치게 된다.

자신을 응시하는 강호의 눈빛은 베어스 시절 강호에게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강렬한 눈빛이었다.

만약 베어스 시절의 강호가 저런 눈빛을 보여줬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강호를 방출하지 않았겟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구 감독이 미소를 그려 보인다.

그의 미소는 아무런 사심도, 비틀림도 없이 순수한 웃음을 그려내고 있었다.

구 감독의 웃음과 마주하게 된 강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구 감독님. 지금은 그렇게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시즌이 진행되면서 그 웃음을 거두시게 될 겁니다. 자이언츠가 베어스를 만날 때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당신의 팀을 무너뜨릴 테니까요.'

강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오늘을 기억하기로 한다.

베어스 시절의 과거와 연결되는 오늘의 기억을, 절대 잊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그 날의 경기는 강호의 사이클링히트 활약 속에 자이언츠의 7대 4승리로 끝맺음된다.

베어스를 상대할 때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강호의 강한 의지가 작용된 결과였다.

경기가 끝난 후, 방송사의 인터뷰와 구단의 상금시상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강호는 사직동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 아침 일찍 사직구장에 출근했을 때 강호는 자신을 주목하는 많은 시선을 느끼게 된다.

"와아, 강호! 어제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 봤어? 대박이던데? 너보고 괴물이란다. 괴물. 우리 팀에 괴물이 살고 있었네."

체력 단련실에 들어서는 강호에게 상훈이 인사를 대신한 축하의 말을 전한다.

그는 강호를 보고 '괴물'이라 칭하며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을 건네주고 있었다.

얼떨결에 내려다 본 상훈의 스마트 폰에는 어제 베어스 전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고, 팬들이 작성한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괴물이라뇨? 저 그런 거 아닙니다. 아직 1군에 자리도 제대로 못 잡은 2군 선수 아닙니까? 이 댓글들은 좀 지나친 것 같네요."

상훈의 말에 딱히 답할 말이 없었던 강호는 스스로를 '그저 2군'선수로 표현하며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자 상훈이 일으킨 소란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 선수들이 차례로 입을 연다.

"뭐어? 2군 선수? 강호 네가 무슨 2군 선수야? 한 감독이 퍽이나 2군으로 내리겠다. 일주일 동안 사이클링을 두 개나 기록한 타자를 어떤 미친 감독이 2군으로 내리겠어?"

"그래. 강호 너는 이제 1군에서 뼈를 묻어야 돼. 어딜 2군으로 도망치려고? 네가 2군으로 내려가면 이렇게 난리가 난 팬들은 누구더러 수습하라고?"

곁으로 다가온 진택과 성철이 강호가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을 흔들어 보이며 장난스레 말한다.

성철은 휴고를 대신해서 우익수 자리를 맡은 외야수로서 시범경기 때 강호와의 오해를 풀고 친분을 쌓은 상태다.

진택은 몇 년 전부터 자이언츠의 유격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주전 내야수로서 날카로운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이 쾌활해 보였다.

"그래도 라인업은 한 감독님이 짜시는 거니까. 또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혹시라도 불펜 투수가 부족해서 2군 투수를 올리면 제가 내려가게 될 지 말입니다."

말을 하다 보니 스스로가 생각해 봐도 실현 가능성이 낮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강호는 그냥 변명 아닌 변명을 포기하고는 선배들의 칭찬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강호 너 시범경기 때부터 대우하고 선구안 훈련하고 있다며? 다이노스 전에서 보니까 효과가 제법 좋은 것 같던데. 우리도 같이 해도 될까?"

어느새 주제는 강호의 선구안 훈련으로 넘어가 있었다.

성철이 그동안의 선구안 훈련 과정을 선배들에게 발설한 것인지 진택과 상훈이 관심을 보인다.

"어? 강호 선배님 오셨습니까?"

마침 선구안 훈련용 연습구를 던질 투수가 무리에게로 다가온다.

그는 투수인 권대우였다. 강호와 원정 룸메이트로 지내며 많이 가까워진 사이다.

선배들은 선구안 훈련의 주체 두 명이 모두 모이자 어서 선구안 훈련을 시작할 것을 부탁했다.

'이것 참.'

그들의 부탁에 혀를 차면서도 강호는 거절의 말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공은 대우의 왼손이 던지는 것이고, 자신은 타석에 가만히 선 채 번호를 적어놓은 공을 지켜보면 된다.

선배 몇 명이 훈련에 동참한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가시죠. 그럼."

이렇게 해서 1루수 김상훈과 유격수 오진택, 우익수 유성철이 강호의 선구안 훈련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백업 포수인 진태마저 훈련에 합류하게 되면서 선구안 훈련의 모양새가 갖춰진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중요한 것은 오늘 오후에 시작되는 베어스와의 2차전이었다.

강호는 이번에도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최선의 계획을 세워 타석에 오른다.

따악!

1회부터 깔끔한 중전 안타로 팀의 포문을 여는 강호. 그의 발걸음이 1루 베이스로 향한다.

"강호, 오늘도 출발이 좋네. 깔끔한 안타였어."

1루 베이스 코치의 말을 들으며 그에게 보호 장비와 장갑을 벗어서 건넨다.

대신 주루용 장갑을 받으며 주루 계획을 세워 본다.

'오늘 선발이 그 유명한 유희건 투수구나. 견제 동작이 빠른 투수니까 무리한 리드는 피하도록 하자.'

강호는 마운드에 오른 상대 선발을 고려하여 평소보다 리드 폭을 적게 가져갔다.

좌완 투수인 유희건은 느린공에 비해서 견제 동작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 1루에서 비명횡사하기 싫으면 적당히 리드 폭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유희건 투수는 1루에 출루한 강호가 평소보다 리드 폭을 짧게 가져가자 '씨익'하고 웃어 보인다.

그 표정이 마치 자신을 향해 '제법인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어서 타석에 선 전준오가 순식간에 삼진으로 물러난다.

유희건의 로케이션 투구에 배트가 딸려 나와 버린 것이다.

손쉽게 '안타'아이템을 치고 나온 강호는 1루 베이스에 서서 유희건의 진면목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대단하네. 저렇게 느린 공으로 저런 로케이션을 가져갈 수 있다니. 타고난 재능 이상의 두뇌로 준오 선배를 완전히 제압해 버렸어.'

강호는 유희건의 투구에 감탄사를 내뱉는다.

종종 프로 투수치고는 느린 공으로 무시를 받기도 하는 유희건이다.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일부 팬들은 유희건의 느린공이 한국프로야구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희건의 공을 뒤에서 직접 보게 된 강호는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희건 투수의 장점은 공이 아니야. 상대 타자를 현혹시키는 로케이션과 구종 선택에 있어. 저건 포수가 싸인을 낸 것이 아니라 투수가 직접 구종과 코스를 선택한 결과야.'

강호는 유희건의 인상적인 투구를 눈에 담는다.

타고난 육체적 재능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선수가 어떤 식으로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강호가 유희건의 투구를 지켜보는 사이, 3번 타자인 김상훈마저 삼진으로 물러난다.

그는 전준오처럼 배트를 내보지도 못한 채 선 채로 4구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아 버리는 투구 내용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다.

'제인 선배는 유희건 투수를 어떻게 상대할까? 제인 선배의 장점은 타고난 피지컬도 좋지만, 본능적인 배트 스윙이 대단하다는 거야. 제인 선배라면 쉽게 삼진을 당하지는 않을 거야.'

강호는 팀의 4번 타자인 제인이라면 유희건 투수에게 안타를 뽑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많은 이들이 황제인의 장타력에 집중하느라 외면하는 사실은 사실 그의 컨택 능력이 파워에 앞선다는 점이었다.

지나친 풀 스윙으로 때로는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크게 배트를 휘두르면서도 투수가 던진 공은 반드시 배트에 맞히는 재주가 있었다.

단지 문제는 배트에 맞은 타구가 내야 뜬공이 될 확률이 조금 높다는 점이었다.

따악.

이번에도 제인이 때린 타구가 내야 높이 떠오른다.

"아웃!"

포수 양희지에게 잡힌 공으로 주심의 아웃 콜이 선언한다.

선두 타자인 강호가 출루한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1회 말 공격이 끝나버린 것이다.

"아~오늘 유희건 공이 장난 아니네. 제구가 칼이네. 칼!"

"저걸 어떻게 때려? 나한테 슬로우 커브만 연속 두 개 던지는 거 봤어? 그 다음에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대체 어떻게 치란 말이야?"

"강호야, 너는 안타 때리고 출루했잖아? 어떻게 안타를 때린 거야? 그냥 냅다 휘두른 거야?"

덕 아웃으로 들어오니 유희건 투수의 투구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선배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유희건 투수에게 강호가 뺏어낸 안타를 궁금해 한다.

안타를 때린 강호도 사실 어떻게 안타를 때려낸 건지를 설명할 수 없다.

'안타'아이템을 사용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저 적당한 말로 넘어가기로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체인지업만 노리고 쳤습니다. 체인지업은 노리고 치면 정타로 만들기 쉬우니까요."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강호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긴 체인지업이 회전수가 좀 적긴 하지. 유희건 투수 포심이 느려보여도 구위가 약한 건 아니란 말이야. 배트에 걸려도 정타로 만들기 힘드니까 차라리 체인지업을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강호의 생각 없는 말에 선배들이 이상한 결론을 내리며 각자의 글러브를 챙긴다.

2회 초 수비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결론이 나는 거야? 나도 잘 모른단 말이야.'

강호는 벌써 그라운드에 나가버린 선배들의 뒷모습을 머뭇거리면서 바라보다가 할 수 없이 자신의 수비 위치인 2루로 향한다.

자신이 말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강호의 의문 속에 2회 초 수비가 끝이 난다.

그리고 다시 맞이한 2회 말 자이언츠 공격.

따악!

5번 타자로 나선 채중석이 중전 안타를 치고 출루한다.

공교롭게도 그가 때려난 유희건의 구종은 체인지업이었다.

"오오, 체인지업 공략이 통하나보네!"

"유희건이 체인지업이 공략 당한다는 것을 알면 그 때부터는 체인지업을 안 던질 테니까 나는 포심을 노리면 되겠다!"

채중석이 안타로 출루하자 대기하고 있던 타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그들은 나름의 공략 계획을 짜며 자신의 타석을 준비한다.

따악.

이어서 6번 타자인 강민수마저 안타로 출루하자, 자이언츠 선수들의 눈빛이 돌변한다.

"유희건이 흔들리네! 기회다!"

"체인지업! 체인지업만 노리자!"

강호가 보기에는 우습기 그지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잘 던지고 있던 유희건의 체인지업만 노리고 들어간 타자들이 연달아 안타를 때려내자 7번 타자인 오진택이 볼넷, 유성철이 희생플라이, 9번 타자 김중호가 안타를 때려내며 순식간에 2득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럴 수도 있구나.'

벤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오른다.

야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것을 잘 알지만, 상대 투수의 특정 구종을 공략하기 쉽다고 여기자 귀신같이 안타를 때려내는 선배들의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백강호 선수, 한 방 때려줘요!"

"안타 하나만 치자. 백강호! 때리라!"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호에게 안타를 기대하는 홈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포수인 양희지가 연타를 얻어맞은 유희건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사이 강호는 이번 타석에서의 타격 전략을 세운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야에 떠오르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호는 타격을 정한다.

2회 말, 2점 앞서는 상황에서 1사 주자 1, 2루 상황.

강호가 선택한 타격 전략은 2루타였다.

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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