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81화 (8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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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수 없는 경기

전준오의 타점 이후에 다음 타자로 타석에 오른 3번 타자 김상훈은 외야 뜬공으로 물러나게 된다.

강호에게 3루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투수 장원종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투구로 호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4회 초 상황. 강호의 연이은 득점에도 불구하고 장원종이 호투하고 있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베어스 타선이 드디어 가동을 시작한다.

따악!

베어스의 4번 타자, 김재성의 호쾌한 타구가 사직구장을 가로지른다.

3번 타자 민병현의 끈질긴 볼넷 출루에 이은 도루, 그 후 터진 김재성의 투런 포가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대형 홈런이었다.

"김재성의 타구가 좌측 담장을 완전히 넘어갑니다. 이 투런포로 자이언츠의 2점 차 리드는 사라집니다. 게임을 리셋 시키는 김재성의 투런 홈런!"

중계석의 전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이며 상황 중계에 열을 올린다.

중계하는 캐스터 입장에서도 아슬아슬한 투수전보다는 화끈한 타격전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상황을 무위로 돌리는 홈런포가 가동될 때마다 양 팀 팬들의 긴장감은 고조된다.

지나치게 점수 차가 많은 경기나 반대로 득점이 나지 않는 경기보다는 양 팀이 물고 물리는 접전 상황을 이어나가는 경기가 야구를 보는 입장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경기일 것이다.

"지금은 김재성 타자의 스윙에 공이 걸려버렸어요. 오늘 박진웅 투수의 포심이 좋았거든요. 볼 끝도 좋았고, 로케이션을 가져가는 포인트도 좋았는데 김재성 타자가 이걸 받아 넘깁니다. 지금은 초구를 노리고 들어간 김재성 타자의 전략이 좋았습니다."

이 위원의 해설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김재성의 발이 홈을 밟는다.

이것으로 스코어는 2대 2.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저런 게 바로 슬러거야. 팀이 필요할 때마다 확실한 한방으로 보답하는 4번 타자. 아직 내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강호는 김재성 타자의 홈런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려 했다.

맞는 순간 경기장 좌측 하늘을 뚫어낼 듯이 높게 뻗어진 타구는 아름다운 궤적으로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는 홈런이었다.

언젠가 타격 아이템 사용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홈런을 때려내게 된다면 저렇게 완벽한 홈런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대신 김재성이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장점을 이번 경기에서 모두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 강호의 의도는 5회 초 수비 상황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아아! 허경빈의 타구가 2루수에게 잡히고 맙니다! 1루 주자 2루에서 아웃! 타자 주자도 아웃! 이닝 종료!"

중계석의 전 캐스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이닝 종료 상황에 목소리를 높인다.

미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서 느린 화면으로 화면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지금은 백강호 선수가 갑자기 튀어 나왔어요. 타구 위치를 보면 아시겠지만, 가운데를 완전히 가르는 안타 코스거든요. 그런데 이걸 잡아서 유격수에게 연결시킵니다. 오진택 선수도 공을 잘 잡아서 1루로 잘 던졌어요. 완벽한 병살 플레이에요."

이효범 위원은 강호로부터 시작된 병살 플레이에 '완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그림 같은 수비였고, 강렬한 임팩트로 다가왔다.

"위기 뒤에는 기회라는 말이 있거든요. 5회 말 상황에서 자이언츠 타선의 공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위원은 '위기 뒤에 기회'라는 문장으로 말을 맺는다.

그리고 이어진 5회 말 상황.

선두 타자인 8번 타자 유성철이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9번 타순인 김중호가 어려운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출루한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1번 타자인 강호.

여전히 베어스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장원종과의 세 번째 대결이었다.

"이번 대결은 흥미로운데요? 1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백강호 타자와 장원종 투수의 이번 경기 세 번째 맞대결입니다. 백강호 선수, 오늘 주자있는 상황에서는 처음 타석에 섭니다."

전 캐스터의 말에 이효범 위원이 해설을 더한다.

"백강호 선수는 주자가 없을 때보다 주자가 있을 때 강한 타입이에요. 앞선 타석에서 좋은 타격을 보여줬었거든요. 기대가 되는 대결입니다."

이 위원은 짧은 말로 해설을 마치며 말을 아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긴 해설보다 양 선수의 대결을 직접 지켜보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었다.

해설위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야구팬으로서 지금의 대결을 기대하게 된다.

'1회 때는 체인지업, 3회에는 슬라이더를 노려서 안타를 때려냈어.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노리고 들어온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으면 정타로 때려낼 수가 없었을 거야. 내 공은 그렇게 허술한 공이 아니니까.'

장원종 투수는 마운드 위에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호를 응시한다.

신인의 혈기를 잠재우겠다는 마음은 이제 없다. 대신 이번 타석만큼은 굳이 삼진이 아니어도 범타를 유도해서 강호에게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겠다는 생각이었다.

직접 승부해본 강호는 평범한 루키들과는 남다른 점이 많았다.

강호는 보통의 신인 타자로서는 커트해 내기도 힘든 자신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3루타를 만들어낸 타자다.

1회 때는 2루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이제 강호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된다.

'루키라고 생각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승부를 보겠어.'

의지를 다진 원종은 포수 양희지가 낸 싸인에 연거푸 고개를 내젓는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원종이 택한 공은 포심 패스트볼. 정면 승부로 강호를 상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부웅.

유니폼 옷깃 스치는 소리와 함께 원종의 초구가 뿌려진다.

1루에 주자인 김중호가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와인드업 후 던진 공이었다.

그야말로 전력투구. 베테랑 좌완투수가 혼신의 힘을 담아 던진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뻗어져 나간다.

뻐억!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이전과는 다른 강렬한 소리를 토해낸다.

앞선 타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묵직한 패스트볼에 강호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다.

'149km! 장원종 투수에게 이런 패스트볼이 있었구나.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자신의 타석에서 전력투구를 시작한 장원종의 공에 강호는 잠시 타석에서 물러나 생각에 잠긴다.

3년 전, 베어스 시절에 보았던 장원종의 공은 이 정도로 빠르지 않았다.

이후 tv중계로 보았던 공 역시 이렇게까지 빠른 적은 없었다.

장원종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2km. 최근 3년 간 150km에 육박하는 공을 던진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공을 던질 수 있으면서 숨기고 있었구나!'

강호는 다시 타석에 자리 잡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과연 완급조절의 대가다운 피칭이었다.

올해로 35살인 장원종이 5회가 되어서도 구속을 높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만약 강호 본인이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아니라 야구를 지켜보는 팬의 입장이었다면 원종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강호는 이런 공을 가진 원종에게서 안타를 때려내야하는 타자의 입장이다.

잠깐의 감상을 뒤로하고, 타석에 선 채 눈빛을 빛낸다.

'장원종 선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 본연의 능력으로 다시 승부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에요.'

강호는 원종의 눈을 마주하며 배트를 오른 쪽 어깨에 걸친다.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준 채 오른 쪽 뒤로 한껏 당긴 강호의 타격 폼은 장타를 의식하고 있는 타자의 것이었다.

초구를 전력투구로 던지면서 정면승부를 건 원종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래. 그렇게 나와 줘야지.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원종은 강호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주며,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간다.

그 사이 1루 주자 김중호가 2루로 뛰는 것이 보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포수 양희지의 도루저지 능력을 믿고 최고의 볼을 던진다.

부웅, 빠악!

배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포수 미트에 공이 틀어박히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원종의 2구를 받은 포수 양희지는 급히 몸을 일으켜 1루에 공 던지는 시늉을 한다.

2루로 도루할 듯 모션을 취하던 주자 김중호가 기겁하며 1루를 향해 슬라이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션만 취하고, 실제로 도루하지는 않은 것이다.

강호는 그런 주자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다. 배트를 크게 헛치느라 휘청거리는 몸을 수습하기도 바쁜 상태다.

원종이 허를 찔러 체인지업을 던질 것이라 판단하고 크게 스윙을 했던 것이다.

문득 강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전광판으로 향한다.

'151km. 더 빨라졌어!'

원종의 공이 150km를 넘어서고 있었다.

3루 쪽에 자리한 베어스 관중석에서 '와아'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습에 강호는 속으로 피식 웃음 지으며 다시 타격 자세를 취한다.

타이밍이 크게 어긋나 헛스윙이 되면서 이제 볼 카운트는 노 볼 2스트라이크 상황.

이미 사용한 타격 아이템이 강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효과를 발휘할 카운트가 되어 있었다.

'2스트라이크가 되면 사용한 타격 아이템의 효과가 발생하게 돼. 나는 그저 결과만 확인하면 되는 거야.'

강호는 끌어올렸던 긴장감을 내려놓은 채 마음을 편히 먹는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진 것. 어떤 행동도 결과를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다만 이미 사용한 아이템의 종류를 고려하여 배트를 힘껏 쥔 손에 힘을 풀지는 않는다.

'이걸로 삼구 삼진이야. 백강호 너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거다.'

원종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며 크게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다.

그의 마지막 무기가 포수 미트를 향해 뿌려진다.

원종이 선택한 3구는 150km를 오고가는 빠른 패스트볼이 아니라 체인지업이었다.

패스트볼 궤적을 그리지만, 갑자기 바닥으로 가라앉는 공은 패스트볼에 비해 30km나 느린 써클 체인지업이었다.

회심의 결정구는 느린 궤적을 보이며 강호의 몸 쪽 코스로 가라앉는다. 그 모습에 원종은 자신의 전략이 통했다는 것을 직감한다.

따악!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타격음을 듣고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몸의 회전을 달리하며 배트를 끌어당긴 강호의 배트가 떨어지는 체인지업의 타이밍에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갑니다. 멀리 갑니다. 계속 갑니다! 아직도 갑니다! 넘어 갑니다! 좌측 담장을 가볍게 넘기는 백강호의 투런 홈런! 이 홈런으로 자이언츠가 다시 앞서 나갑니다!

중계석의 전 캐스터가 강호의 투런 홈런을 목청껏 외친다.

그의 생동감 넘치는 중계에 곁에 앉은 이 위원은 잠시 입을 다문다.

"1루 주자 홈인! 그리고 타자 주자 백강호도 홈을 밟습니다! 4대 2! 승부는 다시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강호가 홈을 밟을 때까지 계속되었던 전 캐스터의 중계가 끝나자 기다리고 있던 이효범 위원이 입을 연다.

"지금은 백강호 선수가 체인지업을 노리고 들어간 겁니다. 2구째에 휘두른 스윙도 느린 변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거든요. 어린 선수가 베테랑 투수의 노림수를 완벽하게 깨뜨리네요. 백강호 선수, 멋있습니다."

이효범 위원의 말이 끝난 후,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전 캐스터가 다시 입을 연다.

이 위원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제는 백강호 선수의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3회 말 상황에서 사이클링히트를 거론했다가 핀잔을 들었던 게 억울했던 것인지 이 위원을 향하는 전 캐스터의 말은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결과가 이렇게 되자 이 위원도 민망함을 느끼고는 '허허'하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남은 타석에서 백강호 선수가 내야 안타 하나라도 기록하게 된다면 사이클링 히트가 완성됩니다. 오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게 되면 4월 9일 이글스 전에 이어서 불과 7일 만에 만들어지는 기록이에요. 이것 참 뭐라고 말씀드려야할 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 한 이 위원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타격 전문가인 그가 예측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호의 홈런은 갑작스러운 결과물이었고, 이제는 강호에 대해 해설할 때는 섣부른 예상을 삼가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강호가 홈을 밟은 이후에도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어 어느새 7회 말로 접어든다.

"와아아아!"

"때려라!"

홈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타자가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사이클링히트에 안타 하나만을 남겨둔 채, 7회 말 1사의 상황에서 강호가 타석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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