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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수 없는 경기
강호가 선두 타자로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때려내며 출루하자, 베어스 덕 아웃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생긴다.
"뭐야? 좌완한테 약한 거 아니었어? 잘만 때려내네."
"백강호가 가장 약하다는 게 좌완투수에다 완급조절이 가능한 베테랑 투수인데, 딱 원종이거든요. 조금 전 원종이의 전략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로케이션으로 가는 척 하다가 완급 조절로 결정구를 던진 건데요. 저런 걸 안타로 때려내면 사실 투수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죠."
투수코치와 타격코치가 전력분석 리포트와는 다른 강호의 타격에 혀를 내두른다.
베어스 벤치에서는 강호의 과거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강호가 과거 베어스 2군에 소속되어 있을 때 가지고 있는 자료와 더해서 다른 팀에 비해 정확한 전력분석 자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호가 전력분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2루타를 때려내고는 출루에 성공한 것이다.
'백강호.'
구형태 감독은 강호의 이름을 속으로 되뇐다.
그가 강호에게 의문이 드는 것은 하나였다.
'어떻게 남아있는 거냐? 네 재능으로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겼는데.'
구 감독은 의문이 든다.
2군 감독 시절, 자신이 보았던 강호의 잠재력으로는 지금의 활약이 설명되지 않는다.
구 감독이 보기에 강호의 재능은 딱 2군 용이었으니까.
그런데 자신의 과거 예상을 뒤엎고 강렬한 데뷔시즌을 맞이하는 강호를 보니 생각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짙은 고글에 가려진 구형태 감독의 눈빛이 깊게 잠긴다.
한 편, 2루 베이스를 밟고 선 강호는 자신의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도루다! 하나 남은 도루 아이템을 지금 사용해야겠어.'
강호는 3루 도루를 위해 마지막 남은 도루 아이템을 사용하기로 한다.
안타나 호수비 등에 비해 가지고 있던 도루 아이템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여섯 개의 도루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직전 경기들에서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사용해버린 상황이다.
사실 강호가 데뷔전 이후의 경기에서 7도루를 기록한 것은 대부분이 도루 아이템을 사용한 결과물이었다.
강호 스스로 만들어낸 도루 기록은 두 개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도루 실패로 인해 혹시라도 1군 주전 경쟁에 적신호가 들어 올까봐 확실한 상황이 아니면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또한 완벽한 도루 성공을 위해 하나 남은 도루 아이템 사용을 결정짓는다.
'지금 내 앞에서 3루로 뛰겠다는 거야?'
베어스 포수인 양희지는 리드 폭을 넓히는 강호의 행동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린다.
작년 한 해 동안 그가 기록한 도루저지율은 38.7%. 규정타석을 채운 포수들 중에서는 2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뛰어난 도루저지 능력을 갖춘 포수였다.
'원종이 형, 백강호의 리드 폭이 넓어요. 견제구를 던지세요.'
양희지는 2루에 있는 강호를 의식해 복잡한 싸인으로 투수인 원종에게 신호를 준다.
지금 그에게 타석에 선 2번 타자 전준오는 안중에도 없었다.
도발과도 같은 강호의 도루 의지를 박살내고 싶은 마음이 연속 견제구 싸인으로 나타난다.
"세이프."
2루심의 세이프 콜을 4번이나 듣게 된다.
무려 네 번의 견제구가 연속해서 2루로 날아든 것이다.
그럼에도 강호는 리드 폭을 단 1센티도 줄이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에 투수인 장원종과 포수 양희지의 미간이 동시에 찡그려진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좋아. 견제구로는 잡기 힘들다는 걸 인정하겠어. 한 번 네 마음대로 뛰어봐. 3루 도루가 얼마나 힘든 건지 이번 기회에 알려주도록 할 테니.'
희지는 더 이상 견제구 싸인을 내지 않기로 한다.
대신 강호가 3루로 뛸 것을 대비해 우타자의 몸 쪽으로 붙는 포심을 연달아 요구할 생각이다.
강호가 3루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곧장 3루수를 향해 공을 던지기 위함이었다.
주자와 포수의 치열한 신경전을 보게 된 중계석에서는 흥미로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1회 부터 베어스 배터리와 백강호 주자 간의 신경전이 대단합니다. 2번 타자에게 초구를 던지기 전에 견제구만 4개가 날아갔어요."
전 캐스터의 상황 설명에 이효범 위원이 묘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을 잇는다.
"지금 백강호 선수는 뛰겠다는 생각이에요. 백강호 선수의 3루 도루를 베어스 배터리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이 위원은 강호의 도루 시도를 확정짓듯이 말하고 있었다.
평소 강호의 플레이에 관심이 많은 이 위원은 강호가 도루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미세한 차이를 이미 간판하고 있었다.
'백강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도루를 시도할 때의 디딤 발을 왼쪽에 둔다. 무게 중심이 도루를 하려는 방향보다 반대 방향에 있다는 소리야. 이렇게 되면 스타트가 늦을 수밖에 없지만, 대신 견제사를 당할 확률은 크게 줄어들어. 빠른 스타트를 포기하고 안정적인 도루를 하겠다는 뜻이지. 웬만한 주력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일 거야.'
이 위원은 자신이 알게 된 강호의 도루 버릇을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다.
혹시라도 자신의 해설로 인해 강호의 도루 버릇이 간파되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위원의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어느새 투수 장원종의 초구가 뿌려지고, 이미 그 전에 스타트를 감행한 강호의 발이 3루 베이스로 향한다.
부웅.
강호의 도루를 확인한 전준오는 반사적으로 스윙을 했지만, 공은 컨택되지 않고 양희지 포수의 미트에 빨려든다.
"스윙, 스트라이크."
주심의 선언을 들을 사이도 없이 공을 잡아낸 양희지 포수가 즉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타석에 선 전준오 선수를 피해 3루 베이스로 공을 던진다.
38.7%의 도루 저지율을 자랑하는 양희지 포수의 송구가 정확하게 3루수의 미트로 빨려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슷한 타이밍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쇄도해 들어간 강호의 손이 3루 베이스에 닿는다.
모두의 시선이 3루심에게로 향한다.
"세이프!"
3루심의 세이프 선언에 팬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와아, 3루로 도루를 하네. 웬만한 다리로는 안 되는 거잖아?"
"백강호 주력이 100미터 11초대라는 거 모르는구나? 시범경기 때부터 3루 도루도 자주하고 그랬어."
팬들은 무사 2루 상황에서 무사 3루 상황으로 기회를 만드는 강호의 도루를 칭찬한다.
이제는 깊은 땅볼 타구에도 자이언츠가 1점을 앞서갈 수 있는 상황.
타석에 선 전준오는 배트를 가볍게 쥔다.
'컨택만 하자. 강호의 발이라면 얕은 외야 플라이에도 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야. 굳이 풀 스윙을 할 필요가 없어.'
준오는 영리한 플레이로 팀의 첫 타점을 기록할 생각을 가진다.
그의 의도대로 장원종의 2구째를 받아친 타구가 중견수가 서있는 외야 방향으로 높이 뻗는다.
"강호야, 태그 업하고 홈으로 뛰어!"
준오의 타구가 그리 깊은 플라이가 아니라고 판단한 3루 베이스 코치가 다급한 목소리로 강호에게 주문을 낸다.
강호는 그의 말대로 긴 다리를 뻗어 3루 베이스에 얹어놓았다가 베어스 중견수가 공을 포구하는 즉시 홈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든다.
그의 발이 얼마나 빨랐던지 굳이 슬라이딩을 할 필요도 없이 선 채로 홈을 밟는다.
"백강호 홈 인~자이언츠가 전준오 선수의 외야 플라이로 손쉽게 1득점을 가져갑니다."
중계석의 전 캐스터가 시리즈 첫 득점을 알린다. 그의 중계를 받은 이효범 위원이 조금 더 자세한 해설을 더한다.
"지금은 백강호 선수의 주루플레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앞선 상황에서 3루 도루가 있었기 때문에 외야 플라이가 득점으로 연결된 겁니다. 이 1득점은 백강호 선수의 발로 만든거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 위원은 강호의 빠른 발을 칭찬하며 자신의 중계 일지에 강호에 대한 내용을 추가한다.
그가 보기에 강호의 30도루를 예견했던 다른 전문가들의 추측은 틀린 것으로 보인다.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중계일지에 '백강호 45도루 이상 가능'이라고 기입하며 강호의 주력을 상향 수정한다.
만약 강호의 1번 타순이 보장된다면 한동안 나오지 않았었던 자이언츠 출신 도루왕이 탄생하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런 예측도 하게 된다.
"잘 했어. 강호. 오늘도 부지런히 뛰는구나."
덕 아웃으로 돌아온 강호는 선수들의 환영을 받으며 자신의 자리로 이동한다.
그의 시선은 곧장 마운드에 오른 장원종 투수에게로 향한다.
혹시나 자신의 도루에 기분이 상한 상대 투수가 조금은 흔들리는 피칭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러나 강호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원종 투수는 선취점을 빼앗겼음에도 흔들림 없는 피칭으로 3번 타자 김상훈과 4번 타자 황제인을 차례로 삼진 처리하며 위기에 강한 모습을 또 한 차례 증명해 낸다.
그리고 다시 마주하게 된 장원종과 강호.
3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또 다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강호의 득점 이후 이렇다 할 상황 없이 여전히 1대 0의 불안한 리드가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1회에는 너를 우습게 봤다는 걸 인정해. 하지만 지금은 다를 거야. 내가 가진 모든 무기들로 백강호 너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겠어.'
원종은 다시 마주하게 된 강호를 향해 미소 지어 보인다.
1회 때 허용한 2루타가 신경 쓰일 법도 한데 오히려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에서 그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원종은 승부사였다.
상대에게 안타를 허용하더라도 다음 타석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원종은 자신만의 철칙에 따라 이번 타석의 초구는 바깥쪽에서 몸 쪽으로 휘어들어가는 슬라이더로 결정한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초구 판단은 스트라이크였다.
강호는 바깥쪽에서 시작해 몸 쪽으로 횡 이동하는 슬라이더의 무브먼트에 놀라고 만다.
2군 무대에서는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무브먼트였다.
슬라이더를 노리고 휘둘렀어도 정타로 연결시키기 힘든 움직임이다.
'확실히 대우가 던지는 슬라이더와는 차원이 달라. 9년 연속 10승 기록에는 이런 무기가 숨어있었구나.'
강호는 속으로 감탄한다.
좌완 투수로서는 최초로 9년 연속 10승 기록을 달성한 장원종이다.
만약 올해에도 10승을 기록한다면 역대 최다 기록인 10년 연속 10승과 타이가 된다.
그런 투수가 전력으로 던지는 공을 쉽사리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자만심일 것이다.
'지금 내 타격 능력으로는 장원종 투수의 슬라이더를 공략할 수 없어. 애초의 계획대로 간다!'
강호는 이번 타석에 오르며 욕심을 버린 상태였다.
1회에 때려낸 2루타는 아이템을 사용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번 타석에 들어서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안타를 때려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장원종 투수의 커리어를 이겨내기에는 아직은 부족함을 느낀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이 공을 던진 원종을 놀라게 만든다.
맞는 순간, 장타임을 깨닫게 하는 강한 타구가 외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터엉!
이번에도 펜스를 직격한 타구가 외야 그라운드 위로 떨어진다.
타구 판단이 늦었던 좌익수가 급히 공을 주워들었지만, 이미 강호의 발은 2루 베이스를 지난 상태였다.
뒤늦게나마 3루로 공을 뿌린다.
"세이프."
공이 도착한 후 3루심의 세이프가 선언 된다.
여유롭게 3루타를 기록하는 강호. 이번 3루타 때는 슬라이딩 없이 베이스에 선 채로 안착할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깊은 타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각도가 조금만 높았더라면 홈런이 되었을 타구였다.
"와아아! 백강호 최고네!"
"공만 잘 치는 게 아니라 발도 기가 막히네! 잘 했다. 백강호!"
3루 베이스를 딛고 선 강호에게 홈팬들의 환호가 이어진다.
중계석에 앉아 있는 전 캐스터가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중계에 들어간다.
"아아~ 백강호 선수 빠릅니다! 지금 3루에 서서 들어갔어요."
전 캐스터의 말을 이 위원이 받았다.
"좌익수 박진우가 공을 더듬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수비를 했더라도 3루타로 기록됐을 겁니다. 그만큼 타구가 깊었고, 백강호 선수의 발도 빠르니까요. 오늘 백강호 선수가 1번 타자로서의 제 몫을 톡톡히 해냅니다."
이효범 위원의 해설이 끝난 후, 무언가가 생각난 것인지 전 캐스터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오늘 백강호 선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3회까지 맞이한 두 타석에서 2루타와 3루타를 기록한 상황입니다. 홈런과 안타 하나만 때려낸다면 사이클링히트 가능성도 있습니다. 백강호 선수는 데뷔 전 경기에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전적이 있는 선수거든요."
벌써부터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점치는 전 캐스터의 말에 이 위원이 웃어 보인다.
2루타와 3루타로만 점치기에는 사이클링히트라는 기록의 무게감이 가볍지 않다.
"아직은 모릅니다. 홈런이라는 게 때리고 싶다고 때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두 개의 장타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상대가 장원종이예요. 장원종 투수가 두 개의 장타를 허용하고 난 후에 홈런까지 내어줄 거라고는 쉽게 생각할 수 없어요. 9년 연속 10승을 기록한 선수거든요. 그런 커리어가 쉽게 쌓이는 건 아니에요."
이 위원은 이번 경기에서 강호의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강호가 2루타와 3루타를 때려내긴 했지만, 아직 홈런이라는 어려운 기록 하나가 남아 있었고, 또 상대 선발이 장원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한 자세로 상황을 해설하게 된다.
따악.
그 사이 다음 타자로 나선 전준오가 2루수 쪽으로 향하는 땅볼을 때린다.
내야 땅볼이긴 하지만 빠르게 스타트한 강호의 발이 홈을 밟고 지나갔고, 이번에도 자이언츠는 손쉽게 1득점을 기록하게 된다.
이제 스코어는 2대 0상황.
자이언츠가 앞서고는 있었지만, 양 팀 선발이 건재한 가운데 경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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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점심 먹기 전에 한 편 올리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