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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수 없는 경기
구장 내 체력 단련실에 도착한 강호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하게 된다.
"강호 너도 운동하러 나온 거야? 잘 됐네. 같이 운동하면 되겠네."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로 말을 건네는 인물, 그는 가진성이었다.
원래는 포수 포지션으로 자이언츠에 입단했지만, 타격 능력이 좋지 못해 불펜 포수로도 활동했었던 특이한 이력의 선수다.
포수로서의 수비력과 도루 저지 능력, 투수 리드능력을 높이 산 구단은 그를 상무로 입대시키며 타격 포텐이 터지기를 기대했지만, 포텐은 터지지 않았다.
대신 앉은 자리에서 도루자를 잡아내는 강한 어깨에 주목한 손성조 2군 감독의 조언으로 전혀 다른 분야에서 포텐을 터뜨리게 된다.
손 감독의 조언으로 1년 전, 투수로 전향하며 지금은 불펜 투수로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 같이 운동하면 좋겠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어."
"할 일? 오늘은 트레이닝 코치님이나 컨디셔닝 코치님 외에는 출근 안하셨을 텐데. 무슨 일을 본다는 거야?"
진성은 볼 일이 있다는 강호의 말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자 곁에 서있던 전태용 코치가 강호를 대신하여 입을 연다.
"강호 선수는 인 바디 측정 때문에 들른 겁니다. 체중을 측정해 보려고요."
강호와 함께 단련실로 들어서던 전 코치가 친절한 목소리로 답을 한다.
단련실 입구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실내에서 운동에 집중하던 이들이 호기심에 찬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두 사람은 먼저 전태용 코치에게 '오셨습니까?'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전 코치의 곁에 서있는 강호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 중 강호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 강호 너도 운동하러 나온 거야? 어허~이런 부지런한 후배님들이 휴식 일에도 집에서 쉬질 않고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경기장에 나온 거야? 그렇게 열심히 하면 우리같이 재능 없는 선배들은 어떻게 밥벌이를 하겠어. 살살들 해~"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주인공은 자이언츠의 주전 1루수인 김상훈이었다.
89년생인 상훈은 올해 나이로 31살이 되는 팀의 중고참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백업 포수인 김진태 선수가 서있었다. 94년생인 진태는 강호보다 한 살이 많다.
"강호, 운동하러 나왔나 보네. 그래, 휴식 일에도 체력 단련은 해두는 게 좋아."
강호는 상훈과 진태, 두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며 체력 단련장으로 들어선다.
뒤늦게 화장실에 다녀온 대우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운동하러 나오신 거예요?"
대우가 인사를 건네며 강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선수가 모이게 된다.
그들은 강호가 인 바디 측정을 한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며 함께 측정실로 이동한다.
'이 사람들이 운동하다말고 왜 따라오는 거야?'
저들의 관심에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딱히 비밀스런 일도 아니어서 함께 측정실로 이동한다.
어차피 선수 정보는 구단의 인트라넷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비밀로 한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정보가 아닌 것이다.
"신발, 양말 벗으시고 위로 올라서세요. 손에 힘주시고요."
전 코치의 지시에 따라 인 바디 측정기에 오른다.
그러자 대우가 조금은 놀한 표정을 짓는다.
"88킬로? 선배님 몸무게가 엄청 많이 늘었는데요? 이 정도면 스프링캠프 때보다 20킬로 정도 늘어난 거 아닙니까?"
"뭐 20킬로? 네가 사람이야? 어떻게 두 달 만에 20킬로를 늘려? 잠깐, 그러면 두 달 전에는 지금보다 20킬로가 적었다는 말이야? 지금도 그렇게 몸이 커보이지는 않는데?"
"강호, 너도 독한 구석이 있나보네. 와아, 어떻게 두 달 만에 20킬로를 늘리냐?"
강호나 전 코치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대우와 상훈, 진태가 놀라며 차례로 입을 연다.
그런데 그들이 말을 걸고 있는 당사자, 강호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88킬로!'
그저 놀랄 뿐이다.
어느 정도 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체중이 상당히 늘어난 상태다.
이제 몸이 가볍다는 이야기는 어디 가서 듣지 않을 정도의 체중이 되었다.
그리고 더욱 긍정적인 부분은 체지방 증가 없이 대부분 근육량이 증가한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현재 강호의 근육량은 건장한 성인 남자 기준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강호 선수! 근질 상태가 아주 좋아졌네요. 전에도 좋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더 좋아졌어요. 운동을 열심히 하신 모양이네요."
전 코치가 강호를 칭찬하는 말을 한다.
몇 주전 직접 측정을 하면서 강호의 신체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도 놀라게 된다.
몇 주 만에 4킬로의 몸무게를 불린 것도 대단하지만, 그 모든 체중이 근육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강호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몸을 관리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밸런스도 아주 좋습니다. 특히 양쪽 팔 근육 쪽의 발달이 인상적입니다."
전 코치의 말을 들으며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프리마켓에 방문하기 전, 인 바디 측정을 해보면서 대략적인 스탯 상승을 예상하게 된다.
'이 정도라면 다음 프리마켓 방문 때에는 체중이 90kg을 넘겠구나. 그 정도 몸무게 증가라면 힘이 모자라서 정타를 때려내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될 거야.'
더욱 기대가 된다.
아직은 힘이 부족해 질 좋은 타구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강호가 때려낸 질 좋은 타구는 열에 일곱은 타격 아이템을 사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다음 프리마켓 방문 후에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정타의 확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4일만 지나면 다시 프리마켓이 열린다.'
강호는 눈빛을 빛낸다.
다음 프리마켓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중이다.
아이템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2주 동안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아이템이 있었다.
타격 마스터나 극강의 파워 같은 기간제 아이템은 손도 대지 않은 상태다.
원래는 1군무대로 콜 업 되자마자 사용하려 했지만, 일회용 타격 아이템만을 사용해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필요해서가 아니야. 알고 싶은 거야. 훈련과 경기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스탯으로 확인하고 싶어.'
스스로의 변화를 알고 싶었다.
3주가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에 전념했고, 경기에서는 누구보다도 집중하며 플레이를 펼쳤다.
그 모든 것은 다음 프리마켓 방문 시에 스탯 보정을 받기 위한 노력이었다.
'베어스 전이 끝나면 프리마켓이 열린다.'
측정기에서 내려온 강호는 마지막 분기점이 될 베어스 전을 위해 개인훈련에 박차를 가한다.
강호와 함께 운동하려던 상훈과 진태 등은 강호의 지독한 훈련 스케쥴에 결국 혀를 내두르고는 물러나게 된다.
같은 운동선수인 그들에게도 강호의 운동량은 지나칠 정도로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위 팀 베어스와의 사직 3연전 무대가 열린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베어스와 자이언츠의 시즌 첫 시리즈 중계를 맡은 캐스터 전용제, 해설에는 이효범 위원입니다."
중계석의 힘찬 중계로 경기의 막은 오른다.
시타, 시구 행사가 끝이 나고 자이언츠의 선수들이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걸음을 옮기자 전 캐스터가 곧장 수비 포지션을 읽기 시작한다.
"자이언츠의 수비 포지션입니다. 외야에는 좌익수 김중호, 중견수 전준오, 우익수 유성철, 내야에는 3루수 황제인, 유격수 오진택, 2루수 백강호, 1루수 김상훈, 배터리에는 포수 김진태 선수와 투수 박진웅 선수가 호흡을 맞추겠습니다."
전 캐스터의 말이 끝나자 기다리고 있던 이 위원이 포지션에 대한 해설을 더한다.
"우익수 자리에 유성철 선수가 들어갔어요. 최근 들어 우익수 자리에 대한 실험이 잦은 자이언츠거든요. 타격감이 좋지 못한 휴고를 빼고, 유성철 카드를 넣은 실험이 어떤 결론을 낼 지 주목해볼만 합니다."
이 위원은 그 외에도 포수 자리에 캡틴 강민수 대신 김진태가 들어갔다는 것과 투수로 박진웅이 나온 것들을 지적하며 해설을 이어나간다.
그 사이 타석에서는 베어스의 첫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투수 박진웅이 베어스의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사이 강호는 2루수 자리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진웅 선배의 볼 끝이 좋아. 저 정도 공이라면 우리 팀이 크게 밀리는 일은 없을 거야.'
강호가 보기에 박진웅의 구위가 좋아 보인다.
제구력도 나빠 보이지 않아서 베어스 타자들이 쉽게 득점을 얻어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런 예상은 맞아 떨어져서 베어스 타자들은 진웅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채 1회가 종료된다.
오늘도 1번 타순으로 나서게 된 강호는 덕 아웃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 배트를 집어 들었다.
그 사이 중계가 이어진다.
"오늘도 자이언츠의 출발은 백강호 선수부터 시작됩니다. 백강호 선수 데뷔전 이후로 여전히 타격감이 뜨겁습니다. 다섯 경기 동안 17타수 13안타, 홈런 3개, 11타점, 10득점을 기록하며 타율 7할 6푼 5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섯 경기 기록이긴 하지만 7할 대라는 비현실적인 타율을 설명하는 전 캐스터의 얼굴이 표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곧 자신의 말에 부연 설명을 더한다.
"도루 또한 7개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오랜만에 나온 괴물 신인이라고 봐야겠는데요?"
강호를 일컬어 '괴물'이라고 평하는 전 캐스터의 말에 이 위원이 대답한다.
"괴물이죠. 백강호 선수의 타격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데뷔 후 다섯 경기 동안은 괴물 같은 활약을 한 것이 맞습니다. 백강호 선수가 홈런을 때려낸 세 경기는 자이언츠가 모두 승리했어요. 이런 기분 좋은 징크스까지 만들어낸 신인인데 괴물이라고 보는 게 맞겠죠."
이 위원과 전 캐스터의 말은 단지 두 사람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요즘 들어 화려하게 등장해 뜨거운 타격감을 이어나가는 강호를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괴물 신인이 등장한 것이라 평하며 강호의 이번 시즌 활약을 예견할 정도였다.
그들이 예견한 강호의 기대 성적은 3할 이상의 타율에 10홈런 이상, 그리고 30개의 도루를 기록해줄 거라는 기대였다.
"출전 경기가 아직 다섯 경기밖에 되지 않아서 약점이 드러날 시기도 아니거든요. 한동안 백강호 선수의 뜨거운 타격감이 계속되지 않을까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효범 위원은 그렇게 강호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마운드에 오른 베어스의 선발 투수는 이미 두 개의 공을 던진 상태였다.
베어스의 선발로 나선 투수는 장원종이다.
한 때 자이언츠의 기대주로 관심을 모았던 원종은 FA와 함께 거액의 몸값을 받고 베어스로 이적한 선수다.
좌완이라는 장점과 안정된 제구력,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매년 10승 이상은 보장된 선수라는 평가다.
'백강호, 너에 대한 전력 분석은 이미 끝났어.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른 구단들이 너에 대한 자료가 없다고 여기겠지. 그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오늘 내가 증명해주마.'
강호를 바라보는 원종의 눈빛이 번뜩인다.
며칠 전, 구단의 전력분석 팀에서 강호에 대한 분석 자료를 받았을 때, 원종은 미소를 지었다.
단지 강호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자이언츠 타선에 대한 모든 자료가 담겨 있는 분석 자료에서 원종을 웃게 만드는 점은 단 하나였다.
"좌완에게 약점이 있다고? 이것 참 고마운 일이네."
좌완에게 약하다는 점 외에도 완급 조절이 가능한 투수에게 약하다는 강호의 약점을 알게 되자 원종은 더 이상 강호의 자료를 읽지 않았다.
완급 조절이 가능한 대표적인 좌완투수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강호라는 루키는 자신에게 쥐약이라는 말이 된다.
'내가 너를 위해 특별히 포심과 체인지업만으로 상대해줄게. 좌완투수의 완급 조절이 뭔지 똑똑히 보도록 해.'
속으로 미소 지은 원종이 강호의 몸 쪽에서 꺾여나가는 체인지업을 3구로 선택한다.
제구력이 좋은 원종이기에 존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코스로 공이 뿌려졌고, 주심은 그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고 있었다.
이로써 볼 카운트는 1볼 2스트라이크.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루킹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배트를 내려 하겠지. 다이노스 전에서 제법 공을 커트하는 능력이 있었다던데. 내 공은 쉽게 커트하지 못할 거다.'
원종은 포수 양희지의 다음 싸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결정구를 뿌린다.
컨택 능력이 뛰어나 투수의 공을 곧잘 커트하는 타자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원종이 선택한 4구는 그 약점을 파고드는 하이패스트볼이었다.
타자 눈높이에서 떠오르는 하이 패스트볼은 컨택 능력이 좋은 타자로서는 배트가 딸려 나올 수밖에 없는 공이었다.
"볼."
그런데 강호의 배트는 끌려나오지 않았고, 주심은 볼을 선언한다.
원종의 예상이 어긋나게 되면서 2볼 2스트라이크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인구를 예상한 거야? 루키치고는 제법 침착하네. 그럼 이 공도 한 번 골라내봐.'
원종은 눈높이에서 형성되는 공을 참아낸 강호에게 다음 공을 던진다.
그가 선택한 공은 다시 몸쪽 체인지업.
좀 전의 패스트볼과 연결되는 체인지업으로 강호의 삼진을 유도할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원종의 생각은 맞아 떨어져서 강호의 배트가 5구째에 딸려 나오고 있었다.
'됐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이던 원종. 그런데 잠시 후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이 원종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체인지업을 노리고 있었던 것인지 강호는 몸쪽으로 가라앉는 체인지업을 정확하게 때려내었던 것이다.
다행이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질 좋은 타구는 사직구장의 좌중간 펜스를 직격하는 강렬한 2루타로 기록되고 있었다.
"세이프!"
2루심의 세이프 콜로 2루 베이스에 안착한 강호는 잠시 자신을 응시하는 투수 장원종의 눈을 마주본다.
'장원종 선배. 미안하지만 베어스에게는 질 수 없습니다. 오늘 경기, 반드시 자이언츠의 승리로 만들겠습니다. 반드시요!'
원종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는 강호의 눈빛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 때 1군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3년간 몸담았었던 구단 베어스. 이제는 자신의 기억 속에 가장 쓰디쓴 기억을 남긴 경쟁 팀이 되어 있었다.
강호의 시선이 투수 장원종에게서 베어스 덕 아웃에 자리한 누군가에게로 옮겨진다.
그는 바로 자신의 방출을 결정했던 구형태 감독이었다.
짙은 색의 고글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어서 눈빛을 읽을 수 없었지만, 강호는 여전히 차가웠던 그의 눈빛을 기억한다.
'구형태 감독님. 오늘부터 저를 다시 보게 될 겁니다. 당신이 기억하던 백강호가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