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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수 없는 경기
다이노스와의 시리즈 두 번째 경기에서 황제인과 채중석의 홈런포가 터지면서 점수 차를
15대 7까지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결국 승부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강호는 안타 2개와 볼넷 하나, 도루 하나, 득점 1점을 기록하며 자신이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어진 시리즈 마지막 경기.
이번 경기에서도 타선은 6득점을 뽑아내며 제 몫을 다했지만, 세준이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음에도 불펜이 승리를 지키지 못해 8대 7로 역전패를 기록하고 만다.
그 결과 다이노스에게 2위 자리를 빼앗긴 자이언츠는 3위 자리로 내려앉았다.
"이러다 3위 자리도 며칠 못 지키겠네. 요즘 히어로즈가 바짝 치고 나오는 모양이던데, 조만간 히어로즈한테 3위 자리도 내줄 것 같아."
"다 이긴 게임을 이런 식으로 내주면 답이 없어. 타자들이 부지런히 점수를 내면 뭐해? 지키지를 못하는데. 지키지를."
"다음 일정이 홈에서 열리는 베어스 전이지? 이거 홈경기에서 스윕 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선수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었다.
코칭스태프들은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얼굴 표정에서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아~ 이번 시리즈는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냐? 한 일주일 동안 경기한 것 같은 기분이네."
"내 말이 그거라니까. 이번 휴식 일에는 집에서 꼼짝하지 말고 잠만 자야겠어."
버스에 올라탄 선수들이 피로를 호소하며 곧 짧은 단잠에 빠져든다.
원정 3연전을 마치고, 사직으로 돌아가는 1시간 남짓한 버스 이동 시간을 잠으로 보충해야할 정도로 3연전의 피로도가 크게 느껴지는 선수들이었다.
대다수의 선수가 잠이 든 버스 안에서 강호는 허리를 바로 세운 채 앉아있다.
그런 강호에게 누군가 말을 건다.
"강호야, 너는 부산으로 돌아가면 휴식일에 뭐할 거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쩌다보니 강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박상현 투수였다.
다이노스와의 3연전에서 투수조 최고참 중 한명인 상현과 친분을 쌓게 된 강호.
상현의 나이가 마흔이나 되다보니 같은 선수라기보다는 코치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강호가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문표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었다.
'나이 차이가 많은 문표 선배하고 가까이 지내다보니 상현 선배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가 않네. 이것 참. 문표 선배에게 고마워해야할 일인가?'
머릿속으로 문표의 능글맞은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피식 웃게 된다.
그리고 상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연다.
"친 형 집이 사직동에 있어서 형 집에서 지낼 것 같습니다."
강호는 하루가 주어지는 휴식 일에 사직동 형 집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원래의 습관대로라면 휴식 일에도 개인 훈련을 해야겠지만, 다이노스와의 3연전 동안 피로가 쌓인 상태다.
훈련보다는 휴식에 비중을 두어야할 것 같았다.
"선배님은 계획이 있으십니까?"
대답을 끝낸 강호는 상현에게 질문을 던진다.
친근하게 다가온 상현에게 질문에 대한 답만 하고 입을 다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혹시 상현이 자신과의 대화를 원할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꼼짝없이 집에서 쓰러져 있어야할 것 같아. 토요일 경기에서 무리를 했는지 허리가 조금 쑤시네."
대답을 하면서도 허리가 아픈 모양인지 상현은 미간을 찡그려 보인다.
그러고 보니 대다수가 잠든 버스 안에서 잠들지 않은 상현. 짐작하기로는 불편한 버스 의자 때문에 허리 통증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토요일 경기에서 강호의 수비 도움을 받으며 2와 2/3이닝을 던졌던 상현이다.
항상 원 포인트 릴리프로만 오르다가 2이닝 이상을 던진 경기가 그에겐 무리로 작용한 것 같았다.
'상현 선배의 허리 통증은 공공연한 비밀이라 한 감독도 알고 있었을 텐데. 2이닝 이상을 던지게 한 것은 너무한 것 같아. 아무리 팀이 크게 지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렇지.'
강호는 한 감독의 선수기용을 속으로 나무란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한 감독의 무분별한 선수기용에 피해를 보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가는 5월이 되었을 때, 남아나는 불펜 투수가 몇이나 될까하는 염려가 든다.
"아참, 나도 집이 사직동이야. 몇 년 전에 사직동 주공 2차에 집을 얻었거든. 언제 기회 되면 밖에서 식사 한 번 같이하자. 와이프랑 딸들도 데리고 나갈게. 큰 딸이 네 팬이거든. 하하."
두 딸을 떠올린 것인지 상현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어느새 대화는 상현의 딸 자랑으로 옮겨가고, 강호는 상현의 말에 웃는 얼굴로 대꾸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단지 친분을 쌓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상현이 오랫동안 프로 무대에서 펼쳤던 경쟁에 가려진 또 다른 이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인한 눈물을 참아내는 마흔 살의 노장 투수 박상현, 그도 누군가의 아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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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는 늦잠을 잘 생각이었다.
휴식일인 월요일만큼은 평소보다 늦게까지 잠을 자려는 생각에 휴대폰 알람도 끈 상태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아하, 아직 일곱 시 밖에 안 됐네."
거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는 너털웃음을 짓게 된다.
형이 아침 일찍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에 잠이 깬 후로는 다시 잠이 오질 않았다.
어제 마산 원정에서 자정이 지나서야 사직으로 돌아온 까닭에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게 되었다.
잠들기 전에는 12시간 이상은 잘 거라는 각오로 침실에 들었는데 고작 6시간을 자고나니 다시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이어진 생활 습관이 강호를 잠들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러닝이나 하러 나가자. 더 잔다고 득 될 것도 없으니까 훈련이나 해야지."
결국 트레이닝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서게 된다.
한 때는 주력을 높이기 위해 매일 같이 러닝을 뛰기도 했었다.
1군에 포함되면서 팀 훈련과 경기를 병행하다보니 러닝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시간이 남을 때는 이렇게 러닝을 뛰고는 한다.
'그러고 보니 주력을 다시 측정하면 몇 초나 나올까? 11초 대 이상부터는 0.1초 줄이는 것도 몇 개월은 걸린다고 하던데.'
강호는 현재의 주력이 궁금해진다.
주루코치인 안준영에게 듣기로는 국가대표 급 육상선수들이 0.1초를 줄이기 위해서는 1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야구선수 출신인 안준영 코치이지만, 주루코치 연수 과정에서 단거리 육상 연수를 다녀온 이력이 있다.
그가 말하기로는 100미터 11.5초의 선수가 10.5초로 단축시키는 과정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주력이 11초대라면 그냥 그쯤에서 만족하는 게 좋아. 우리는 육상선수가 아니라 야구선수잖아. 이제 강호 네가 0.1초의 기록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해. 체격 조건, 식습관,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생활 습관이나 버릇 같은 모든 것을 바꿔야 되거든. 그렇지 않고서는 10초대로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좋아. 이쯤에서 만족하자. 11초대의 기록도 충분히 빠른 거니까."
주루 코치인 안준영 코치의 말이었다.
그 때의 강호는 자신의 주력이 10초대로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했었다.
안준영 코치는 '불가능'이라는 간단한 말로 강호의 의문에 답한다.
10초대에 진입하는 것은 단거리 육상선수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과연 불가능할까?'
강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신은 프리마켓 시스템의 적용을 받고 있는 상태다.
exp포인트를 모아서 주력을 최대치까지 찍는다면 마의 10초대 돌파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상태라면 주력이 얼마나 될까?'
문득 다음 프리마켓에서 보정될 주력 수치가 궁금해진다.
훈련의 성과로 스탯이 보정되는 프리마켓 시스템 상, 다음 프리마켓 방문시 주력이 대폭 상승할 거라는 기대가 든다.
현재 강호의 주력 스탯은 75. 그러나 실제 주력은 표시된 수치보다는 훨씬 높게 느껴진다.
상태창의 스탯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것이 아니라 프리마켓을 방문하는 한 달에 한 번만 갱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소 80은 넘었을 거야. 100미터 스퍼트가 11초 5인데 주력 수치가 70대에 머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얼마나 오르게 될까?'
큰 폭으로 상승할 주력 스탯을 기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스탯의 상승 또한 기대하고 있었다. 특히나 수비와 선구안, 파워 스탯에서의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거라 예상된다.
경기가 진행되는 날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개인 훈련을 해왔던 강호다.
휴식을 취할 때에도 VR안경으로 선구안 훈련을 하며, 악력기로 손아귀 근력을 키워왔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 백강호 선수? 휴식 일에 뭐하십니까?"
러닝을 한 지가 꽤 지난 시간, 사직구장 주변을 돌고 있던 강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호는 반가운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태용 코치님. 안녕하십니까? 출근하시는 길이세요?"
강호가 상대를 확인한 후 고개 숙이며 반갑게 인사한다.
친근한 미소로 다가오는 인물은 자이언츠의 트레이닝코치인 전태용이었다.
그는 80년생, 올해로 마흔 살이 되지만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도 존댓말로 대하는 젠틀한 사람이었다.
"네, 저희 같은 트레이닝 코치들은 일요일에 쉬고, 평일은 출근합니다. 어차피 원정에 따라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강호의 물음에 전 코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의 말대로 전 코치는 트레이닝 코치보다는 컨디셔닝 코치에 가까웠다.
구단 원정에 동행하는 코칭스태프가 아니어서 사직 구장에 상주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1군 팀이 원정 중일 때는 상동으로 이동해 육성 군 선수들을 도와주기도 한다니 마냥 편한 직업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참, 백강호 선수 체중 늘리고 계셨잖아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겉보기에는 제법 몸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태용은 트레이닝 복 속에 감춰진 강호의 몸매를 살피면서 물어본다.
그의 물음에 강호는 대답을 망설인다.
1군 무대에 처음 올라서게 되었다는 긴장감과 연이은 혈전으로 체중 변화를 체크하지 못한 지가 일주일이 넘었다.
프로틴 섭취를 계속하고 있고, 식사량은 오히려 늘어났으니 체중이 늘었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글쎄요. 몸무게를 재보지 않은 지가 일주일이 넘어서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85킬로는 넘지 않았을까요?"
강호의 어정쩡한 대답에 전 코치가 웃음 지으며 제안한다.
"하하, 그럼 구장 체력 단련실에 함께 가서 측정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이 기회에 백강호 선수 인 바디 자료도 업데이트 하고 말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네요. 강호 선수 체중이 얼마나 증가 했는지를요."
전 코치의 제안에 구미가 당긴다.
지난번에 측정했을 때와 체질량과 근육량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고 싶기도 하다.
'혹시 모르지. 또 키가 자랐을 지도.'
키가 또 자라지는 않았는지도 궁금해진다.
물론 키가 자란 것은 스탯이 대폭 오르면서 나타난 효과이기는 했지만, 만약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하하, 실례라뇨. 아닙니다. 휴식 일에도 경기장에 나와서 개인 훈련을 하시는 선수들도 꽤 있습니다. 김진태 선수나 김상훈 선수는 휴식 일에도 개인 훈련을 하러 나옵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권대우 선수가 구장 내의 체력 단련실을 이용해도 되냐고 카톡이 왔더라고요. 아마 권대우 선수도 올 것 같네요."
전 코치의 말에 강호는 반색을 표한다.
대우가 경기장에 나온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하던 자신에게 시간을 함께 보낼 동료가 생기는 셈이다.
아직 다른 선수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1군에서 대우는 가장 친한 동료 중 한명인 것이다.
'대우가 경기장에 나온다면 녀석에게 선구안 훈련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되겠어. 아무래도 VR안경으로 하는 것 보다는 직접 투구를 지켜보는 것이 도움이 될 테니 말이야.'
강호는 대우와의 선구안 훈련을 기대하며 웃어 보인다.
아직은 휴식이나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보다 기량 향상을 위한 훈련이 더 즐겁게 느껴지는 강호, 휴식 일에도 그의 경쾌한 발걸음은 야구장으로 향한다.
이때의 시간은 오전 아홉 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