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74화 (7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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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의 실험

이글스와의 홈 3연전을 기분 좋게 스윕으로 마무리 한 자이언츠는 다음 경기 일정을 위해 원정 버스에 짐을 싣는다.

다음 시리즈는 마산에서 열리는 다이노스와의 3연전. 이번 경기의 결과에 따라 상위권 팀의 향방이 가려지게 된다.

자이언츠는 이글스 전을 스윕하게 되면서 9경기 동안 6승 3패로 공동 2위로 뛰어오른 상태다.

공동 2위를 함께 차지하고 있는 다이노스와의 일전이 무척이나 중요한 상황인 것이다.

"마산 원정길은 가까워서 좋긴 한데, 너무 가까워서 원정 버스 안에서 할 게 없다는 단점이 있어. 잠을 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예능 프로를 보기에도 시간이 짧아."

구단 버스의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던 강호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호는 2군 버스에서처럼 VR안경으로 선구안 훈련을 하거나 주방용 장갑으로 손을 둘둘 말아 악력 운동을 하는 등의 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1군에서는 자신이 거의 막내뻘이다.

2군에서 5년을 머물렀던 관계로 25살이 되긴 했지만, 30대 베테랑들이 즐비한 1군 버스에서는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어린 편이다.

그래서 선배 선수들에게 주목받는 행동은 한동안 자제하려 한다.

'한동안 불편할 각오를 해야지. 1군 선수들과 친해지면 그 때, 자유롭게 행동하면 되는 거야.'

강호는 조직 생활은 단지 실력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2군에서 1군으로 콜 업 된 것은 새로운 조직 생활의 적응을 의미하는 것이니 한동안은 분위기를 보며 행동하려는 계획이었다.

강호의 이런 생각은 선배 선수들이 강호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데뷔 경기 사이클링히트에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 중임에도 강호가 거만하게 굴지 않고,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며 튀는 행동을 삼가는 등 호감 가는 행동을 해서 좋은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강호의 자리로 다가오는 캡틴 강민수의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팀 슈퍼 스타. 뭐하고 있어? 휴대폰? 여친한테 연락이라도 온 거야?"

자신의 자리로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거는 강수의 접근에 강호는 몸을 바로 했다.

보고 있던 휴대폰도 내려놓고 민수의 물음에 답한다.

"아닙니다. 선배님. 여친은 딱히 없습니다."

"뭐? 여친이 없어? 야, 너 정도 잘생긴 녀석이 왜 여친이 없어? 이 형이 소개 좀 시켜줄까?"

민수는 친근한 태도로 강호에게 말을 붙인다.

민수의 태도에서 실제로 여자를 소개시켜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다.

강호 입장에서도 여자를 소개받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1군 무대에서 생존경쟁을 펼치고,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벅찬 마당에 여자를 소개받아서 하루를 더 분주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직 여자 친구를 사귀는 일은 강호에게는 머나먼 얘기인 것이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선배님. 제가 내년까지 1군에서 생존하고 있으면 그 때 한 번 소개시켜 주십시오."

강호는 점잖은 말로 겸양을 표현한다.

말은 내년에 소개해달라고 했지만, 민수가 내년까지 지금의 말을 기억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팀의 캡틴이 호의를 가지고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왔는데 거절하기가 힘들어 머리를 굴려서 대답한 말이었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일단은 1군에 안착하고 나서 여자를 사귀게 좋은 거지. 잘 생각했어."

민수 역시도 진심으로 꺼낸 말은 아니어서 강호의 자세를 칭찬하며 진짜 본론으로 넘어간다.

"네가 알 수도 있는 내용인데 그래도 1군에 처음 올라왔다고 하니까 한 번 알려줄게. 1군 원정 때는 숙소로 잡은 호텔에서 2인 1실을 쓰거든. 시범경기 때 경험해 봤으니까 알고 있을 거야. 혹시 룸메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 봐. 내가 특별히 건의해서 원하는 대로 사용하게 해줄 테니까."

민수의 말에서 강호는 그가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를 알게 된다.

1군 원정도 2군과 다를 바 없이 2인 1실로 숙소를 쓰는 모양이었다. 사정에 따라 2군 선수들은 3인 1실이나 4인 1실을 쓰기도 하지만, 1군에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캡틴인 민수가 설명을 잇는다.

"자, 누구로 하고 싶어? 뭐, 정 룸메할 사람이 없으면 나하고 써도 괜찮아. 지금은 진태하고 쓰고 있는데. 네가 나를 원한다면 진태한테 나도 딴 살림 차리고 싶다고 한 번 말해보지 뭐."

민수가 피식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한다.

강호가 자신의 말에 긴장을 할까봐 장난스럽게 긴장을 풀어주는 태도에서 그의 인성을 알게 된다.

'민수 선배가 실력만큼이나 인성이 좋다는 소문이 사실이구나. 이러니 주장 자리를 3년 넘게 도맡고 있는 거겠지.'

민수의 친화력과 인성이 좋다는 사실은 야구계에서도 널리 소문난 사실이었다.

국대 경기를 할 때에 다른 팀에서 차출된 투수들도 강민수가 포수를 본다고 하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하니 친화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임을 알 수 있다.

거기에 포수로서는 레전드인 박경완 코치와 비견되고 있을 정도이니 실력도 차고 넘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현역 선수 중에 민수와 커리어를 비교할 수 있는 포수는 베어스의 양희지 선수가 유일하다는 평가다.

'누구와 룸메를 하지? 1군에는 문표 선배도 없고, 택근이도 없고, 인태나 진만이도 내가 1군으로 올라오면서 상동으로 내려져 버렸고, 생각해보니 마땅한 사람이 없구나.'

그동안 2군에서 함께 룸메이트 생활을 하던 택근이나 진만은 지금 상동에 있다.

가장 친분이 있는 문표 역시 2군에 있고, 최훈의 대체자로서 2루 보직에 있던 황인태나 임정, 오진만도 강호가 1군에 올라오는 순간, 한 감독의 지시로 모두 상동으로 내려져버린 상태다.

한 감독은 백업 내야수들을 상동으로 내리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느껴지는 불펜 투수들을 1군에 올리며 실험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지. 불펜 투수! 대우가 지금 1군에 남아 있었지!'

불펜 투수들에 생각에 미친 강호는 대우의 이름을 떠올리고는 곧장 입을 연다.

"대우 룸메가 정해져 있습니까? 2군에서 올라온 불펜 투수 중에 권대우 말입니다."

"대우? 아마 불펜 조 선배하고 같이 쓰고 있겠지. 내가 불펜 조 조장한테 한 번 얘기 해볼게. 웬만하면 대우랑 한 방 쓰게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강호 너는 우리 팀의 슈퍼스타인데 그 정도도 못해주면 섭섭하지."

민수는 본인만 믿으라면서 강호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마터면 대화해 본적도 없는 선배 선수와 같은 방을 쓸 뻔했던 강호로서는 민수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대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원정 경기 때마다 무려 마흔 살의 박상현 투수와 같은 방을 쓰던 대우는 강호가 자신을 룸메로 선택한 것을 두고두고 고마워하게 된다.

올해로 스무 살인 대우로서는 나이 차이가 자신과 두 배 차이가 나는 박상현 선수와 한 방을 쓰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우와 한 방을 쓰게 되면 선구안 훈련도 부담 없이 할 수 있겠어. 다행스러운 일이야.'

강호는 캡틴인 민수의 배려에 만족해하며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다시 활성화한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는 종료시키지 않은 문자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다.

수신 날짜는 강호가 데뷔전을 치렀던 4월 9일이었고, 시간은 경기가 종료되었을 무렵보다 조금 뒤의 시간인 오후 11시였다.

강호는 메모리에 저장시켜 둔 그 날의 문자 메시지를 또 다시 확인하며 뿌듯한 감동을 느낀다.

발신인이 손성조 감독으로 되어 있는 짧은 문자였다.

[백강호, 잘 했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라. 항상 응원하고 있겠다.]

길지 않은 짧은 문자는 평소 손 감독의 무뚝뚝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대기록 달성에도 축하한다는 내용 하나 없는 평범한 문자, 하지만 강호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트로피같이 느껴진다.

강호는 마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손 감독이 보낸 그 날의 문자를 다시 꺼내보며, 초심을 잃지 않기를 또 한 번 각오한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마산구장에서 벌어지는 다이노스와의 2019년 첫 시리즈가 시작된다.

"야구를 사랑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4월 12일부터 시작되는 자이언츠와 다이노스, 다이노스와 자이언츠의 1차전 시리즈 경기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캐스터 권성호. 해설위원에는 이홍철 위원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중계석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시리즈 개막을 알리는 권 캐스터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두 팀 간의 첫 맞대결 중계가 진행된다.

자이언츠와 다이노스의 팬들은 tv중계를 통해, 또는 스마트 폰으로, 혹은 문자 중계나 라디오 중계 등 다양한 경로로 양 팀 간의 첫 시리즈 대결을 시청하고 있다.

다이노스 팬으로서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자이언츠를 상대로 늘 그랬던 것처럼 우세한 경기를 펼쳐 1위 자리로 도약하기를 바랐고, 자이언츠 팬 입장에서는 항상 약세를 면치 못하는 다이노스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와 주기를 바란다.

"언제까지 다이노스한테 약점 잡힌 채로 살 거야? 이번에는 좀 이겨라! 이제 천적 관계 청산할 때도 됐잖아."

자이언츠 팬들은 천적 관계가 형성되어버린 다이노스 전에 승리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항상 공룡만 만나면 약해지는 거인들.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 징크스가 올해에는 반드시 깨지기를 바라게 된다.

"1회 초 공격은 자이언츠부터 시작이 됩니다. 타순 소개드리겠습니다. 1번에는 2루수 백강호, 2번 중견수 전준오, 3번 1루수 김상훈, 4번 3루수 황제인, 5번에는 지명타자 채중석, 6번에는 포수 강민수, 7번 유격수 오진택, 8번에는 우익수 유성철, 9번에는 좌익수 김중호 선수의 순입니다. 오늘 이홍철 위원께서는 키 플레이어로 1번 타순의 백강호 선수를 꼽아 주셨어요?"

권 캐스터는 타순 소개를 끝으로 중계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강호의 이름을 거론한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이홍철 위원이 대답한다.

"네, 오늘 자이언츠 타선에 변동이 많습니다. 가장 눈에 뛰는 변화가 2번 타순에 있던 백강호 선수를 1번으로 올리고, 전준오 선수를 2번으로 이동시킨 거죠. 그리고 우익수 자리의 휴고 선수를 빼고, 유성철 선수가 8번 타순에 배치되었다는 점입니다. 기존 3번에 배치되어 있던 휴고를 김상훈 선수로 대체하고, 타선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권 캐스터는 키 플레이어인 강호에 대해 물었지만, 이홍철 위원은 준비한 대로 전체적인 타순 변화에 대해서만 설명을 한다.

어차피 강호가 1번 타순으로 오르게 될 테니 경기가 시작되면 강호에 대한 해설을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이홍철 위원은 권 캐스터의 중계에 수동적으로 대답하다가 강호가 타석에 오르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백강호 선수. 지금 화면에서 보시는 것처럼 최근 3경기 타율이 9할입니다. 경기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타율은 제 자리를 찾게 되겠지만, 최근의 타격감이 그만큼이나 뜨겁다는 의미로 볼 수 있죠. 3경기 연속 멀티 히트와 3경기 연속 홈런 기록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 자이언츠 팬들이 눈여겨 봐야할 관전 포인트는 1번 타순으로 이동한 백강호 선수가 얼마만큼 활발하게 출루를 이끌어 내느냐, 그리고 자이언츠의 바뀐 상위 타선에서 어떻게 중심 타선으로 기회를 연결시키느냐, 그 점이 되겠습니다."

이 위원의 설명이 끝난직 후, 다이노스 선발 투수인 최검강의 초구가 뿌려진다.

최검강은 195cm의 우월한 신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공은 그리 빠르지 않은 편이었다.

한 때는 145km의 패스트볼을 던지기도 했지만, 30대가 되면서 기교파 투수로 서서히 가닥을 잡아가는 투수다.

기교파 투수답지 않게 제구력이 뛰어나지는 않은 편이어서 강호는 최검강의 초구를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스트라이크!"

주심은 투수의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선언한다.

강호는 약간은 몸 쪽으로 붙는 공을 스트라이크 선언하는 주심의 모습에서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 성향을 대충이나마 파악하게 된다.

'몸 쪽은 후한 편인데 바깥쪽은 어떨까? 2구째도 일단 지켜보자.'

강호는 1번 타순으로 출장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팀의 리드오프는 타석 기회가 많은 대신에 공을 조금 더 오래봐야 하는 책임이 있다.

공격을 시작하는 선두 타자로서 상대 투수의 성향이나 정보들을 파악해야하는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

대만 스프링캠프를 시작으로 시범경기 때나 2군에 있을 때도, 또한 1군으로 올라와 2번 타순에 배치되었을 때 역시 강호의 초구 타격 성향은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다.

타격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강호로서는 공을 길게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초구 승부를 본 것인데 그로 인해 강호가 지켜보는 공의 숫자는 팀 내에서도 가장 적은 편이다.

이런 강호를 1번 타순에 넣은 것은 모두 한 감독의 실험 정신에 의한 것이었다.

"볼, 라이트."

주심은 투수의 두 번째 공은 오른쪽으로 빠졌다고 말하며 볼은 선언한다.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 스윙을 한 차례 해보인 뒤 타석에 다시 선다.

그리고 이어지는 3구.

딱.

짧게 끊어 친 배트가 투수의 3구를 1루 관중석으로 향하는 파울로 만들어 낸다.

강호는 잠시 공을 때려낸 배트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다시 타석에 선다.

'1번 타순으로 서니까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그동안 내가 공을 너무 적게 보기도 했어. 이번 타석을 시작으로 투수의 공을 길게 보는 훈련도 병행해야겠어.'

마음을 먹은 강호는 어깨에 힘을 풀며 빠지는 코스의 공을 커트할 수 있게 준비한다.

이미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안타 아이템을 사용한 강호.

최대한 많은 공을 보기로 마음을 먹은 직후, 최검강의 4구가 뿌려진다.

티익.

또 다시 만들어진 파울 타구는 3루 쪽 관중석으로 향했다.

이로써 최검강이 강호에게 삼진을 잡으려면 다섯 번째 공을 던져야 한다.

초구 승부가 잦은 강호치고는 꽤나 긴 승부인 것이다.

그런데 승부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간혹 주심 중에 포수가 납득할 수 있도록 어떤 방향으로 볼이 됐는지를 알려주는 심판도 있다고 합니다.

볼 라이트, 볼 레프트, 업, 다운 등으로 알려주는 것이죠.

연재 편수가 늘어나면서 문의 댓글이 종종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답변을 달았을 때 글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가급적이면 본문으로 답변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주 부터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집에 에어컨이 없는 저로서는 난감한 소식입니다. 저처럼 집에 에어컨이 없는 독자님들 모두 지혜롭게 더위를 이겨내시길 기원합니다.^_^

오늘도 점심 먹기 전에 한편 올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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