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73화 (7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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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2번 타자

강호가 두 번째로 맞이하는 경기 역시 이글스 전.

어제보다 확연히 늘어난 관중석을 바라보며 선수들은 다시 한 번 어제 강호가 작성한 대기록을 실감하게 된다.

"와아, 뭐야? 강호야. 저기 네 이름 적힌 플랜카드 보여? 벌써 팬클럽이 생긴 모양인데?"

"허헐, 나는 데뷔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플랜카드로 내 이름 적힌 걸 본 적도 없구만. 데뷔경기 사이클링히트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네."

경기를 준비 중이던 선수들이 관람석을 가리키며 강호에게 말을 건다.

어제의 기록으로 코치들뿐 아니라 선배 선수들도 강호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강호를 1군 예비 전력으로 보던 것이 오늘은 확실한 1군 동료로서 강호를 대해주고 있는 것이다.

고작 하루만의 변화라고 하기에는 대단한 태도변화였다.

'이래서 임팩트가 중요한 거구나. 선배들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 내게 말도 걸지 않던 선배들도 이제는 친한 척 다가오고 있어. 나를 1군 선수로 인정하겠다 이건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매우 좋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꿈의 무대인 사직 구장에 올라 선수들과 코치들, 그리고 팬들의 인정을 받으며 타석에 오르는 꿈을 꾸었었다.

간절히 바라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던 그 꿈을. 이렇게 쉽게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떨떨하기만 하다.

'그래도 자만해서는 안 돼. 이건 내 실력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니까. 아직 한 경기일 뿐이야. 내가 꾸준한 기록을 유지해야 만이 팬들의 응원도 있는 거야.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강호는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자신에게 환호를 보내는 팬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뜨거운 응원과 열망, 단지 백강호라는 이름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은 실력이야. 프로 선수는 결과로 말하는 거야. 어제의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팬들도 나를 응원하는 거겠지. 오늘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팬들이 등을 돌리는 것도 순식간이 될 거야.'

강호는 오늘 경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알았다.

어제의 기록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팬들이 기대하는 만큼은 충족시켜야 했다.

오늘의 타순도 어제와 다르지 않은 2번 타순, 그리고 수비 포지션은 2루수다.

강호는 주전이 보장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아이템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경기를 풀러나가려는 마음을 먹으려는 찰나,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가만 잊고 있었는데 정식 경기부터는 미션이 주어지게 되잖아? 내가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

미션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강호는 속으로 '미션'이라고 되뇐다.

미션창이 따로 있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흐릿한 기억에 의지하기 보다는 확실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이도 미션창이 시야에 떠오른다.

[Mission 1. 예견된 홈런왕]

정식 경기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라.

[Mission 2. 교타자의 각성]

정식 경기에서 연속 안타 기록을 유지하라.(다음 프리마켓 open까지)

[Mission 3. 4할 본능]

정식 경기에서 4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라.(다음 프리마켓 open까지)

세 개의 미션을 확인할 수 있다.

1군 무대에 입성하면 곧장 수행해야겠다 생각하고 확인 한 번 한적 없는 미션들이었다.

프리마켓에 다녀온 이후로 처음 확인하게 된 미션들을 보며 강호는 미간을 좁히게 된다.

1번 미션은 어제 가동한 홈런과 연결하여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2개의 남은 미션은 수행 조건에 대한 의문이 든다.

'교타자의 각성과 4할 본능의 조건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만약 내가 4월 18일에 1군에 합류했다면 한 경기 만으로도 미션 조건을 충족하게 되는 셈이야. 하지만 그렇게 쉬울 리가 없겠지.'

예측하기에는 두 번째, 세 번째 미션은 규정타석을 채웠을 때 조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제까지 팀이 7경기를 치렀으니 프리마켓이 열리는 19일까지 남은 경기는 8경기.

만약 미션 달성 조건에 규정타석을 충족해야하는 내용이 있다면 46타석을 채워야 규정 타석을 충족하게 된다.

어제 경기에서 5타석을 기록했으니 남은 8경기에서 41타석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한 경기에서 보통 4타석에 들어선다고 가정했을 때 애매한 숫자다. 만약 한 경기라도 교체되거나 주전으로 오르지 못한다면 다음 프리마켓이 열릴 때까지 규정 타석을 채울 수 없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본 강호는 규정 타석을 채우기에는 빠듯한 경기 수에 한숨을 내쉬게 된다.

미션을 처음 받았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혹시 기한 중에 미션을 달성하지 못하면 패널티 같은 것은 없는 거겠지?'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강호로서는 미션을 실패했을 때의 결과를 알지 못한다.

그저 미션 실패로 인한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

'어쨌거나 1번 미션을 수행하려면 오늘 경기와 내일 경기 모두 홈런을 때려내야 한다는 뜻이잖아.'

강호는 달성이 미지수인 두 개의 미션은 배제하고, 나머지 첫 번째 미션에 주목한다.

정식 경기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는 것이 미션 내용이었다.

어제 경기에서 이미 투런 포를 가동한 상태여서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홈런'아이템의 숫자는 5개. 아직 여유가 있었다.

'좋아. 오늘 팬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분명해 지는구나.'

오늘 경기의 방향을 잡은 강호는 진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곧 경기가 시작된다.

"어제 경기에서 백강호 선수는 사이클링히트라는 대기록을 달성해 냈습니다. 데뷔전을 치루는 신인 선수로는 처음인데요. 이효범 위원께서는 어제 경기, 어떻게 보셨습니까?"

중계석의 전 캐스터는 어제 강호가 기록한 사이클링히트에 대한 내용으로 오늘의 경기를 연다.

그가 강호의 기록에 대해 거론한 것은 이글스의 타순을 읽은 후, 자이언츠의 수비 위치를 설명한 다음이었다.

"어제 경기는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한 마디로 감동이었습니다. 어제 데뷔한 선수가 그런 기록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요."

어제 강호의 기록달성 가능성을 낮게 보던 이효범 위원이었다.

그런 이 위원에게는 강호의 마지막 2루타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전 캐스터는 그 후로도 강호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주고받으며 중계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경기는 빠르게 흘러 5회 말, 1아웃 상황. 강호가 세 번째 타석에 오른다.

"백강호 선수, 오늘 두 번의 타석에서 볼넷과 안타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기록은 7타석 6타수 6안타. 타율은 10할 입니다."

강호가 타석에 오르자 중계석의 전 캐스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록을 읊었다.

모든 타석에서 출루를 이어나가고 있는 강호여서 데뷔전 이후의 연속 출루 기록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3회 상황에서는 백강호 선수의 안타가 아쉽게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거든요. 현재까지 양 팀은 득점 없이 팽팽한 투수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 캐스터는 3회 상황과 함께 현재 양 팀의 스코어에 대해 말한다.

5회 말까지 양 팀의 스코어는 0대 0. 박빙의 투수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양 팀 모두 주자가 출루를 하더라도 3루 이상 진루시키지 못한 채 맥없는 타격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어제처럼 화끈한 타격전을 기대했던 팬이라면 실망스러운 경기일 것이다.

"지금 백강호 선수의 타석이 오늘 경기의 승부처일지도 모릅니다. 1사 상황이지만, 주자가 1루와 2루에 나가 있거든요. 백강호 선수의 클러치 능력이라면 2루 주자 정도는 홈으로 불러들이는 게 가능합니다. 이번 타석에서의 승부를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이효범 위원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어제 강호의 기록달성 가능성을 낮게 보았던 이 위원은 오늘만큼은 강호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강호의 타석이 승부처임을 밝히며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를 고조시킨다.

"그래! 오늘도 백강호 타격감이 좋은 것 같은데 한 방 때려라!"

"이런 투수전은 치우고 당장 안타 때리라고 해! 언제까지 빵 대 빵으로 갈 거야! 백강호, 때려라!"

중계로 경기를 관전하는 팬들은 답답한 무득점 경기를 강호가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강인했던 데뷔전 타격을 오늘 또한 이어가주기를 바란다.

신인 선수에게는 과한 기대일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해결사 본능에 기대를 걸게 된다.

TV중계 화면에 비친 이글스 투수가 강호를 향해 초구를 던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안타 한 번 때려봐! 딱 1점만 내보라고!"

팬들은 강호의 안타를 기대하며 5회에는 점수가 났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대로 강호가 호쾌한 스윙으로 투수의 초구를 공략했다.

따악!

강렬한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운다.

맞는 순간 보는 이들이 모두 '어!'하게 되는 강한 타구가 곧장 외야를 향해 뻗는다.

강호에 대한 기록을 나열하고 있던 중계석에서도 하던 말을 멈추고, 타구를 따라 시선을 옮긴다.

"쳤습니다! 좌중간으로 높게 뻗는 타구! 좌익수 손강민이 쫓아갑니다. 계속 갑니다! 멀리 갑니다! 넘어 갔습니다! 좌측 담장을 완전히 넘겨버리는 백강호 선수의 쓰리런 홈런이 만들어 집니다!!"

전 캐스터가 강호의 타격 상황부터 시작된 타구의 움직임을 결국 홈런으로 선언한다.

곁에 앉은 이효험 위원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강호의 타격에 대해 말했다.

"아~ 이건 걸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백강호 선수가 자기 스윙을 하는데 공이 배트 스윙에 걸린 거예요. 패스트볼을 노리고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스윙입니다."

이 위원은 강호의 스윙이 이미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준비된 타격임을 강조한다.

그의 해설을 듣지 못하는 관람석의 홈팬들은 그저 강호의 홈런에 기뻐하며 환호를 내지르고 있다.

"와아~대박이야!"

"백강호 멋있다! 오늘도 터뜨리는 구나!"

강호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베이스를 돌았다.

그가 홈을 밟으며 스코어는 3 대0. 자이언츠가 앞서가는 점수가 만들어진다.

강호의 홈런 이후에는 이렇다 할 득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9회까지 3대 0의 리드를 지킨 자이언츠가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강호가 때린 쓰리런 홈런이 결승타점으로 기록된 것이다.

"잘 했어! 강호. 오늘도 한 건 해주는구나!"

경기가 승리로 끝나고 그라운드에 줄서서 코칭스태프와 하이파이브를 나눌 때 한 감독이 건넨 말이었다.

한 감독은 밝은 표정으로 강호의 활약을 칭찬했다.

신인 선수의 활약으로 팀이 승리했으니 감독 입장으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팀의 구멍처럼 느껴지던 2루 포지션을 완벽하게 매워주는 강호의 수비 또한 만족스러웠다.

'이런 선수를 내가 왜 2군으로 내렸을까? 처음부터 손 감독의 말을 따르는 게 아니었는데.'

한 감독은 강호를 2군으로 내렸던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한다.

강호를 보호하려는 손 감독의 강한 요청으로 인한 일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때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하는 의문투성이다.

한 감독의 후회를 뒤로하고 다음 날의 경기는 이어진다.

"쟤가 백강홉니까? 별로 잘 치게 안 생겼는데요?"

양 팀 간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이글스의 선발 투수로 내정된 이월형이 강호의 훈련 모습을 살펴본다.

월형은 이글스의 4선발로서 이제 막 전성기에 들어선 팀의 기둥이었다.

그는 이틀 동안 맹타를 뽑아낸 강호의 훈련 모습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경기 전 미팅에서 코칭스태프가 강호를 요주의 인물로 지적하며 조심스러운 승부를 가져갈 것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몸은 호리호리해도 장타력이 장난이 아니야. 공을 때릴 때 소리가 무슨 배트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라니까. 너도 경기에 들어가면 백강호 타석 때는 조심하도록 해. 유인구 위주로 승부를 낼 테니까, 싸인 잘 따라주고."

이월형의 물음에 포수인 차연목이 답하며 강호를 상대할 전략을 말해준다.

한참 선배인 차연목의 말에 겉으로는 '네'하고 대답했지만, 월형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제 막 올라온 루키에게 승부를 피해서야 되겠어? 내가 제대로 박살내주마.'

강호를 바라보는 눈빛을 빛내며 의지를 다지는 월형.

올해로 서른 살의 중견 투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다.

어서 강호를 상대하고자 하는 마음에 경기 시작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른 마운드 위에서 타석에 오른 강호의 얼굴을 노려본다.

'네가 그렇게 대단한 신인이라고? 신인은 다 똑같은 신인이야. 이제 슈퍼 루키의 시대는 없는 거야. 얼마나 잘 치나보겠어!'

월형은 강호의 활약을 신인의 행운으로 보았다.

두 경기 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 여기고, 강호의 콧대를 꺾어줄 생각을 가진다.

그래서 포수 차연목이 요구한 싸인보다 조금 더 안 쪽 코스로 공을 던질 생각이었다.

구종 역시도 자신의 구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포심으로 택한다.

'잘 봐라. 이게 프로 10년 차 투수의 공이다!'

초구부터 있는 힘껏, 전력으로 공을 던지는 월형. 그의 공이 150km에 육박하는 빠르기로 포수의 미트를 향한다.

하지만 포수 차연목은 월형이 던진 공을 잡을 수 없었다.

벼락같이 휘두른 강호의 배트가 월형의 공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따악!

타격음과 함께 월형이 외야를 향해 곧 바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게 된다.

강호를 우습게보던 월형의 승부가 투런 홈런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결정지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홈런으로 강호의 연속 경기 홈런이 3이라는 기록을 이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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