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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날아오르다
장소는 자이언츠 구단 본부로 옮겨진다.
지정만 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자이언츠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장실에는 고화질의 대형 UHD TV가 설치되어 있어서 선수들이 흘리는 땀방울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사이클링히트? 사이클링히트가 뭐였지? 허 실장. 사이클링히트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
중계를 지켜보던 지정만 사장은 캐스터와 해설가가 계속해서 거론하는 하나의 용어에 관심을 가진다.
그의 부름에 기획실장인 허동준이 얼른 답한다.
"한 경기에서 한 명의 선수가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때려내는 기록입니다. 1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진기록이에요."
허 실장의 대답에 지 사장의 눈빛이 빛난다.
그의 눈빛 변화에 허 실장이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아이고, 사장님이 저런 눈빛을 할 때는 뭔가가 떠올랐다는 뜻인데. 오늘도 일찍 집에 가기는 글렀구나.'
속으로는 푸념을 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정중한 태도로 지 사장의 곁에 선다.
직장 생활이 20년이 되어가는 허동준 실장이다. 이 정도 포커페이스는 기본이라 할 수 있었다.
무려 구단 기획실의 실장 자리에 있는 허 실장이지만, 구단의 최고 수장인 지 사장 앞에서 만큼은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래? 아직 데뷔전에서 사이클링히트를 친 선수는 아무도 없는 거지?"
지 사장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묻고 있었다.
작년 말, 자이언츠의 사장에 임명된 지 사장은 야구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는 단계였다.
선수단 운영과 인사 관리에 대해서는 빠삭하다고 자부하지만, 원래 야구에 대해 모르던 사람이라 룰이나 기록에 대해서는 부하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데뷔 경기에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선수는 없습니다. 그건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마도 전 세계 야구사에 없는 일일 겁니다."
지 사장은 허 실장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미간을 찌푸린다.
그의 태도에 허 실장이 급히 말을 삼킨다.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 거야? 말실수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자신의 표정에 긴장하는 허 실장을 향해 지 사장이 핀잔을 준다.
"일 겁니다? 그 말 확실한 거야? 아니면 허 실장 개인 생각인 거야? 직장 상사에게 추측해서 보고를 올리면 어쩌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니, 자네는 잘못한 게 없어. 일을 못하는 건 잘못이 아니라 자질 문제니까."
지 사장의 말에 허 실장은 진땀을 흘린다.
'아, 진짜 말실수 한 번 한 거 가지고 너무 그러십니다. 자질이라뇨? 제가 구단에서 일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일로 자질 운운하십니까? 사람 서운하게요.'
속으로는 지 사장을 욕하면서도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허 실장. 그를 향해 지 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허 실장."
"네."
"허 실장은 사람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
"네? 사장님. 그게 무슨..."
뜬금없는 지 사장의 물음에 허 실장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러자 지 사장이 표정을 바꾸며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TV화면을 가리킨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면 일을 잘 하면 되는 거야. 얼마나 쉬워? 일을 잘하면 잘한다고 평가받지 않겠어? 저렇게 말이야."
이상한 논리로 말하며 지 사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화면에서는 강호의 홈런과 3루타 장면, 그리고 전속력으로 홈으로 슬라이딩해 가는 모습이 리 플레이되고 있었다.
지 사장의 손가락을 따라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던 허 실장은 속으로 반박하게 된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뭐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고 그러세요? 누군 기획실장 자리를 가위 바위 보로 딴 줄 아시나? 저도 업무 능력 인정받아서 진급했다고요.'
겉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항변을 속으로 되뇌며 허 실장은 억지웃음을 짓는다.
"그렇지요. 일을 잘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도 백강호처럼 일을 잘하면 되는 거야. 우리가 우리 일을 잘하면 자이언츠 기사마다 욕으로 도배된 댓글을 보지 않아도 돼!"
지 사장은 목소리를 높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강호의 활약상을 보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지 사장은 그것을 곧장 실행시킬 생각이었다.
'요즘 들어 나를 포함한 구단 수뇌부를 욕하는 글들이 지나치게 늘었어. 이 부정적인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는 반대급부가 필요해. 백강호의 사이클링히트를 이용하는 거야!'
지 사장은 이미 강호의 사이클링히트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아직 5회가 되지 않았으니 강호가 2루타 하나를 때려낼 확률은 충분해 보인다.
강호의 사이클링히트를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면 이것을 이용해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관심을 강호가 만들어낸 대기록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지금 당장 현장에 있는 운영 팀에게 연락해! 백강호가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는 순간에 강한 임팩트를 주란 말이야. 전광판에 사상 첫 기록이라고 써놓고, 축포도 터뜨리고, 꽃다발도 준비하고. 시상금도 지급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란 말이야. 사상 첫 기록이잖아!"
"아...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전화하겠습니다."
허 실장은 지 사장의 생각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며 곧 휴대폰을 꺼내 든다.
그런데 지 사장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끝나면 제대로 된 일이 아니지. 각 언론 매체에 보도자료 싹 돌리고, 백강호가 최초 기록 달성한 거를 홍보하란 말이야. 매인 매체에 못해도 다섯 개 이상 뿌리도록 해! 공중파 스포츠 채널에 백강호에 대한 홍보자료도 돌리고."
"네, 그것도 지금 당장 지시하겠습니다."
"일 해라, 일! 일 잘한다는 소릴 듣고 싶으면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이번 기회에 자이언츠를 향한 모든 이슈를 백강호에게로 돌려야 해!”
지 사장은 큰 목소리로 자신의 야심찬 포부를 밝힌다.
자신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강호의 기록달성으로 덮어보려는 속셈이었다.
악성댓글을 피하기 위한 지 사장의 '강호 영웅 만들기'작업은 이렇게 시작된다.
구단 본부가 지 사장의 지시로 바쁘게 돌아가는 사이, 사직구장의 상황도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강호의 활약으로 9대0까지 벌려놓았던 스코어가 어느새 9대 6까지 따라잡혀 있었다.
상황은 6회 초, 자이언츠의 수비 상황. 선발 투수인 박세준이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내려간 후 6회에 오른 불펜 투수들이 제대로 불을 질러버린 상황이다.
이글스가 6회에만 6점을 뽑아낸 상황에서 여전히 주자는 1, 3루. 이닝을 종료시키려면 아웃카운트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저게 대체 뭐하는 짓들이야? 여 코치. 지금 당장 투수 교체 하세요. 당장 윤길준을 올리란 말입니다."
덕 아웃에서 한 감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기가 TV중계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화를 내지는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여 코치에게 투수 교체를 명령한다.
그러자 투수코치인 여민석이 잠시 답변을 망설인다.
"감독님. 아직 길준이는 몸이 덜 풀렸습니다. 다른 투수를 올려야겠는데요."
여 코치는 셋업 투수인 윤길준을 마운드에 올릴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검정색 고글 뒤로 가려진 한 감독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그럼 준비된 투수는 누굽니까? 누구든 지금 당장 투수를 올리세요."
"그게...권대우가 준비 됐습니다."
여 코치의 말에 한 감독이 말을 멈추게 된다.
권대우는 손성조 2군 감독의 추천으로 1군에 올라오게 된 불펜투수다.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올린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박빙의 상황에서 올린 적은 없다.
아직 스무 살밖에 안된 투수에게 중책을 맡기는 것이 망설여진다.
"권대우요? 다른 투수는 없는 겁니까?"
"진성이도 있기는 합니다. 가진성이요. 벌서 심규민, 김유설, 박상현을 써버렸으니까 대우나 진성이를 올릴게 아니라면 마무리인 손명학을 올려야 합니다."
여 코치의 말에 한 감독의 표정이 굳어진다.
마무리인 손명학을 6회에 올리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아직 몸이 풀리지도 않은 것은 둘째 치고, 6회에 마무리를 올려 실패했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
선발인 박세준이 내려간 후로 세 명의 계투진을 올렸지만, 갑작스럽게 터진 이글스 타선을 막지 못했다.
윤길준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결국 남은 것은 권대우와 가진성밖에 없다.
"여 코치의 판단은 누굽니까?"
권대우와 가진성, 두 2군 투수들 사이에서 가늠해보던 한 감독은 결정을 여 코치에게 떠넘긴다.
여 코치는 잠시 머릿속으로 경기 전, 두 선수의 컨디션과 구위 등을 떠올려보며 무겁게 입을 연다.
"저라면 대우를 올리겠습니다. 대우의 슬라이더 무브먼트가 좋습니다. 포심하고 슬라이더만 던져도 아웃카운트 두 개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여 코치는 대우의 땅볼 유도 능력과 슬라이더를 떠올리며 결정을 내린다.
그의 말에 조금은 망설이던 기색의 한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바꾸세요. 대신 길준이를 빨리 준비시키도록 하세요. 대우에게는 투구할 때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 하시고요."
한 감독에게 대우가 이닝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는 없었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이글스 타선을 막기에는 스무 살 루키 투수로는 무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윤길준이 몸이 풀리는 시간까지 최소 실점으로 버텨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 코치의 대답으로 권대우의 등판이 결정된다.
주심에게 공을 받아들고 마운드로 오르는 여민석 코치. 투수 교체를 알아차린 홈팬들이 목소리를 낸다.
"그래. 당장 윤길준으로 바꿔! 이러다가 역전 당하겠어!"
"롯데 불펜 투수들 제대로 안 할래?! 맨날 불만 지르고 내려가네! 무슨 방화범이가?!"
"투수들 똑바로 해라!"
팬들의 성난 목소리가 마운드에까지 들려온다.
"수고했다."
여 코치는 마운드에 있던 박상현 투수에게 내려갈 것을 지시하며 마운드에 새로 올라오는 투수를 기다린다.
권대우. 아직은 앳된 얼굴을 간직한 스무 살의 투수가 마운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후우."
대우는 마운드에 오르기 전, 심호흡을 크게 해본다.
팀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른 적이 있지만, 홀드 상황에서는 1군 마운드에 선 적이 없다.
그래서 평소보다 마운드에 오르는 긴장감이 더욱 컸다.
"대우야. 네가 승부를 볼 필요는 없어. 최대한 승부를 어렵게 가져가고, 민수가 주는 싸인대로 공을 던져라. 적당히 시간만 끌어주면 돼."
"네, 코치님."
여 코치의 말에 대우가 기합든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여 코치의 시선이 함께 마운드로 오른 포수 강민수에게로 향했다.
"민수야. 무슨 분위기인 줄 알겠지? 유인구 싸인도 내고, 견제구 싸인도 내서 시간 좀 끌어라. 길준이가 아직 몸이 덜 풀렸다."
"알겠습니다."
베테랑 포수인 민수는 여 코치의 말에서 상황을 이해한다.
대우의 역할은 셋업 투수인 윤길준이 몸이 풀릴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마침 1루에 주자도 있는 상황이라 견제구를 던지며 최대한 시간을 벌 생각을 하게 된다.
'대우가 이 상황에 올랐어? 윤길준 선배가 몸이 덜 풀린 모양이구나. 그럼, 대우로 시간을 때우겠다는 생각인가?'
2루수 자리에 선 강호는 덕 아웃의 의도를 눈치 채고 있었다.
팀의 승리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박빙의 분위기로 뒤바뀌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신예투수를 시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고개를 힐끗 돌려보니 처음 보는 투수의 등판으로 어리둥절해하는 홈팬들의 모습이 보인다.
"뭐야?! 권대우가 누군데? 한 감독, 네 양아들이가?!"
"지금이 신인 투수 올릴 때야?! 경기 똑바로 안 할래?!"
일부 극성팬들의 목소리가 상황을 알려준다.
강호는 이번에는 마운드에 오른 대우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어깨가 잔뜩 경직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축된 모습이었다. 저런 상태로 투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대우로서는 사직구장의 정식경기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 처음이라 더욱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타구가 내 쪽으로 오면 좋을 텐데. 호수비 아이템도 13개나 남았고, 땅볼 타구만 내 쪽으로 오면 이닝을 끝낼 수 있어.'
이상하게도 6회 수비 상황에서 강호에게 향한 타구가 없었다.
이글스가 6안타를 기록하는 동안 단 하나의 타구도 강호에게 오지 않은 것이다.
호수비를 사용해서 팀의 위기를 막아내려 해도 타구가 오지 않으니 강호로서도 별 수 없이 팀의 6실점을 지켜봐야만 했다.
"후우~"
강호가 팀의 위기를 안타까워하는 사이, 연습 투구를 마친 대우가 크게 숨을 내뱉으며 심호흡한다.
포수의 싸인은 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포심. 대우는 싸인대로 바깥 쪽 포심을 던진다.
파앙!
144km의 빠른 포심이 포수의 미트를 파고든다.
언더핸드 투수치고는 상당히 빠른 구속이었다. 그의 초구에 한 감독의 투수 기용을 비난하던 홈팬들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뭐야? 언더가 144나 나오네. 공 좋은데?"
"공이 좋으면 뭐해? 볼 질만 하다 만루 채워주면 그 땐 어쩌라고. 그냥 윤길준을 올리는 게 답이야."
"일단 한 번 보자. 혹시 알아? 저 투수가 막아줄지 말이야."
팬들이 대우의 투구를 기대하는 사이 연달아서 2번의 견제구가 1루에 날아든다.
상황을 모르는 팬들은 대우가 승부를 피한다고 여기고,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자이언츠 투수들은 답이 없어."
"우리가 왜 매번 이런 경기를 봐야 되는 거야? 감독, 코치들은 학습 효과도 없어?! 자체적으로 선수를 못 키우겠으면 사서라도 데려오던지 해야 할 거 아냐?!"
온갖 비난이 난무하던 사이, 대우의 2구가 포수에게로 향한다.
"볼 투."
역시나 볼이었다.
이번에도 바깥 쪽 높게 빠지는 포심이었다. 그런데 구속이 145km가 찍힌다.
기대해볼만한 구속이긴 했지만, 이어지는 볼에 팬들은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반대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강호였다.
-타구가 2루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메시지를 확인한 강호는 곧장 아이템 사용을 결정한다.
1사에 주자 1,3루 상황. 자신에게 향하는 타구를 막아내기만 한다면 병살로 이닝을 종료할 수 있다.
실수로 스트라이크가 된 대우의 실투가 팀의 위기를 막는 기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따악!
대우가 던진 공이 타자의 배트에 맞는 소리가 2루까지 전달된다.
"큭!"
자신의 곁을 스치는 타구에 투수인 대우가 본능적으로 글러브를 뻗어보지만, 잡기에는 타구가 너무 빨랐다.
투수가 잡지 못한다면 깨끗한 중전 안타로 기록될 코스였다.
유격수가 잡기에는 멀었고, 그렇다고 2루수가 잡기에는 강호의 수비 위치가 너무 우측으로 치우쳐 보인다.
"어?!"
그런데 그 때 대우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이변이 일어난다.
타구를 향해 전력질주를 시작한 강호의 몸이 어느새 2루 베이스 근처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타구를 포구하는 내야수가 전력질주 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대우의 입장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코칭스태프와 팬, 중계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었다.
"아! 백강호 선수가 타구를 잡아냅니다!"
갑작스레 2루 쪽으로 튀어나온 강호의 모습에 전 캐스터가 놀라 소리친다.
평소 2루수의 수비 위치는 1루와 2루의 중간 정도이다. 2루 베이스로 향하는 타구를 잡기에는 유격수만큼이나 먼 거리인 것이다.
강호가 그 타구를 잡는 모습은 야구 중계를 오래한 전 캐스터의 입장으로서도 센세이션 한 모습이었다.
"백강호! 2루 직접 찍고 1루로 공을 뿌립니다! 1루, 1루! 아웃!! 이닝 종료!!"
전 캐스터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플레이를 빠르게 중계하게 된다.
너무 빠르게 흘러간 상황이라 카메라는 이닝이 끝났음에도 몇 번이나 리플레이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와아~ 지금 수비는 뭐라고 표현해야 되죠? 지금 백강호 선수가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베이스를 밟고 송구했어요. 덕분에 백강호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닝은 종료되었지만, 엄청난 수비를 해낸 강호는 그라운드에 누워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1루로 무리하게 송구를 하느라 바닥을 뒹굴었기 때문이다.
홈팬들은 강호의 슈퍼 캐치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우려의 눈빛도 함께 보낸다.
"강호야! 괜찮아? 허리? 허리가 안 좋은 거야?"
강호가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질 못하자 자이언츠 야수들이 이닝이 끝났음에도 덕 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 모습에 김민철 수석이 트레이너를 대동하고 그라운드 위로 직접 걸음을 옮긴다.
자이언츠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팬들과 중계진 모두 강호의 상태를 걱정하는 가운데 당사자인 강호는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누워있다.
'역시, 하나도 안 아파. 아이템을 쓰니까 이런 플레이도 가능해지는구나.'
스스로도 이런 수비가 가능할 것이라 여기지 않았는데 막상 결과가 좋게 나오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숨긴 채 강호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다.
이런 플레이를 선보이고도 곧바로 몸을 일으키면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된다.
트레이너가 곁에 온 지금에야 몸을 일으키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백강호 선수. 일어납니다!"
"다행입니다. 지금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니까 큰 부상은 아닌 것 같네요. 백강호 선수, 적극적인 수비도 좋지만 몸을 아낄 필요가 있어 보여요."
중계진은 그렇게 멘트를 마치며 광고 화면으로 화면을 넘긴다.
그리고 그 직후, 몸을 일으킨 강호에게 홈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과 격려가 뒤따른다.
"와아아아!!"
"잘했다! 백강호. 진짜 잘했어!"
"강호 선수, 다치면 안 돼! 내일도 경기해야 되잖아! 다치면 안 돼, 안 된다고!"
팬들의 환호와 함께 몸을 일으킨 강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긴다.
강호는 한 번의 호수비로 팬들의 뇌리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잠시 후, 모두의 관심은 강호가 오르게 될 6회 말 타석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