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68화 (6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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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날아오르다

강호의 3루타로 2회말 1사 주자 3루 상황. 자이언츠가 5대 0의 큰 점수차로 앞서게 된다.

전광판에 표기된 자이언츠의 점수가 4에서 5로 바뀌는 것을 확인한 전 캐스터가 경쾌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방금 전에 이효범 위원께서 승부가 길어지면 타자인 백강호 선수가 유리할 거라 말씀해 주셨는데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백강호 선수가 밀어치는 타격으로 1타점 3루타를 만들어 냈어요. 계속해서 이효범 위원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장난을 담은 전 캐스터의 말에 이효범이 '하하'하고 웃음 짓는다.

"첫 타석과는 다르게 백강호 선수가 배트 타이밍이 맞지 않았거든요. 2회 들어서 긴장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 끈질긴 승부 끝에 안타를 기록하네요. 백강호 선수, 신인답지 않은 대단한 활약입니다."

이 위원의 말이 끝나자 할 말을 정해놓고 기다리던 전 캐스터가 곧 바로 하나의 기록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한다.

"지금 백강호 선수가 3루타를 때려내면서 사이클링히트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어요. 이효범 위원께서는 지금 시점에서 백강호 선수의 사이클링히트 가능성, 어떻게 보시나요?"

전 캐스터가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바로 시범경기 마지막 경기에서 강호에게 기대되었던 사이클링히트였다.

강호는 2회 말까지 하나의 홈런과 3루타를 기록한 상황이다.

두 타석밖에 서지 않았지만,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논하기에 나쁜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해설위원인 이효범은 조금은 소극적인 태도로 답한다.

"글쎄요. 프로야구가 창단된 이후에 데뷔전에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선수는 없었거든요. 최근에는 2018년 다이노스의 테인즈가 기록했었고요. 국내 타자로서는 17년에 다이노스의 나범현 선수가 기록한 게 가장 최근의 기록입니다."

이효범 위원은 전 캐스터가 슬쩍 내민 기록지에서 최근 사이클링히트 기록을 읽어내며 사이클링히트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말한다.

프로야구 전체의 기록에서 1년에 하나도 나오기가 힘든 것이 사이클링히트 기록이다.

가장 힘들다고 여겨지는 홈런과 3루타를 때려내긴 했지만, 강호가 프로통산 데뷔전인 것을 생각했을 때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 전에 백강호 선수가 보여준 끈질긴 타격이나 2루타 코스에서 3루타로 향하는 빠른 주력으로 판단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오늘 경기를 관전하는 또 다른 흥미 거리가 될 거 같아요."

이효범 위원은 그래도 아직은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며 기대를 가지고 tv중계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그렇지. 남은 게 안타랑 2루타뿐이잖아. 그러면 충분히 가능한 거 아냐? 사이클링히트가 매번 실패하던 게 결국 3루타를 못 때려서 그런 거잖아?"

집이나 회사, 혹은 퇴근길에 인터넷, 휴대폰 등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전문가가 아닌 팬들도 알았다.

강호가 사이클링히트를 칠 확률이 최소 절반에 육박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팬들은 강호의 사이클링히트를 머리에 담으면서 불편한 음색으로 시작되는 전 캐스터의 다음 설명을 듣게 된다.

"아아...지금 이글스에서 또 투수를 교체하는데요? 송창민 투수의 역할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전 캐스터의 말대로 주심에게 공을 받은 이글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오르고 있었다.

투수코치가 공을 가진 채 마운드로 향한다는 것은 곧 투수교체를 의미한다.

이 장면을 본 이효범 위원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너무 빠른 느낌입니다. 송창민 선수가 백강호 선수에게 공을 많이 던지기는 했거든요. 하지만 롱릴리프 역할로 올렸는데 아직 원 아웃밖에 잡지 못했어요. 이닝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글스 입장에서는 조금 위험한 투수교체일 수도 있어요."

이효범 위원의 걱정이 이어지는 동안 강호는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있는 송창민 선수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안타로 인해 강판되는 상대 투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통쾌한 마음이 더 크다.

베테랑 투수와의 승부에서 끈질긴 승부 끝에 아이템 사용 없이 장타를 뽑아낸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강호야. 너 괜찮은 거야? 슬라이딩을 뭐 그렇게 살벌하게 해? 어디 다친 거 아냐? 괜찮아?"

강호에게 보호대와 장갑 등을 건네받으며 3루 주루코치가 걱정스레 물어온다.

슬라이딩 과정에서 상당히 격하게 베이스로 들어왔던 강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부상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의 슬라이딩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이글스 3루수도 '괜찮아? 안 아파?'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3루 코치가 뭐랍니까? 강호는 괜찮데요?"

다급한 목소리로 강호의 상태를 묻고 있는 사람은 자이언츠의 감독인 한동현이었다.

한 감독은 데뷔 경기에서 호쾌한 장타력을 뽐내는 강호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런데 3루 진루과정에서 강호의 부상이 우려되는 플레이가 나오자 절로 걱정의 목소리를 뱉어내게 된다.

일주일 동안 팬들의 엄청난 비판과 비난, 그리고 본부장의 닦달을 받은 끝에 올린 강호다.

고작 한 경기 만에 부상으로 2군에 내려 보낼 수는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옷이 조금 찢어진 것 같던데 피도 안 나네요. 강호 녀석 보기보다는 몸이 튼튼한가 봅니다."

3루 코치에게서 강호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온 김민철 수석이 한 감독을 안심시킨다.

순간, 서로가 흠칫 놀라며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친다.

시범 경기 때의 말싸움 이후로 대화가 없었던 한 감독과 김 수석.

개막전이 시작되고서도 여전히 서로 말을 걸지 않았던 두 사람이 강호의 부상이 염려되자 무의식중에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흠흠."

괜히 어색해진 두 사람은 동시에 헛기침을 해 보인다.

덕 아웃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쯤, 바뀌는 투수를 기다리며 대기 타석에 선 4번 타자 황제인은 배트로 스파이크를 두들기며 속으로 미소 짓는다.

'강호 녀석 덕분에 기회가 생기겠구나. 휴고가 땅볼만 치지 않는다면 내게 기회가 연결될 수도 있어.'

제인은 강호가 발로 만든 기회가 자신까지 연결되기를 바랐다.

최악의 경우 휴고가 땅볼을 치고, 그 사이 강호가 홈으로 쇄도해 득점한다면 주자가 모두 사라진 2아웃의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게 된다.

그 경우만 아니라면 휴고가 삼진을 당하더라도 2사 주자 3루의 득점권 찬스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휴고가 아웃카운트를 올리지 않고 출루를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볼."

바뀐 투수의 초구가 볼이 된다.

초구에는 대부분 배트를 내던 휴고가 웬일로 침착하게 다음 공을 기다린다.

"볼 투."

2구 역시 볼이 선언 되자 휴고가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서 잠시 물러선다.

이글스의 바뀐 투수가 제구가 안되는 것을 확신한 모양이다.

새로 마운드에 오른 이홍걸은 갑작스런 교체되어 몸을 푼 시간이 지나칠 정도로 짧았다.

3구 역시 볼이 되고, 4구는 구속을 늦추어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5구째에는 릴리스 포인트가 어긋나 높게 뜨는 볼을 던지고 말았다.

"볼 넷. 베이스 온 볼."

결국 주심의 콜은 휴고를 1루로 걸어 나가게 만든다.

이어서 타석에 선 4번 타자 황제인.

제인은 땅볼 타구만 때려도 타점을 올릴 수 있는 상황에서 특유의 풀스윙으로 타구를 외야로 때려낸다.

"황제인 선수의 타구가 좌익 선상에 높이 뜹니다! 가나요? 가나요?! 아! 좌익수가 위치를 잡습니다. 3루 주자는 태그업 준비를 합니다!"

중계석의 전 캐스터는 이글스 좌익수가 타구 낙구지점에 자리를 잡자 짐짓 긴장감 넘치는 어조로 현장을 중계해 본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보던 이효범 위원은 전 캐스터의 뻔뻔한 중계에 웃음 지으며 선수를 쳐버렸다.

"백강호 선수의 주력이면 저 정도 깊은 타구에는 손 쉽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서서 들어가게 될 거예요."

이 위원이 선수를 쳐버리자 전 캐스터는 김이 빠지기는 했지만,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상황을 중계한다.

"주자 뜁니다. 좌익수가 던진 공이 2루를 지나 홈으로! 세이프! 백강호 선수, 선 채로 홈을 지납니다!"

전 캐스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광판에 표기된 자이언츠 득점 스코어가 6으로 바뀐다.

2회 만에 강호의 정식경기 2득점이 기록원에 의해 기록된다.

"여어, 강호 좋았어! 오늘은 네 덕분에 시원시원하게 가는구나!"

강호는 2회 만의 대량득점으로 신이 난 코칭스태프의 환영을 받는다.

득점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해낸 강호는 2회까지의 주인공으로 도약하게 된다.

자이언츠는 연이어 터진 타선의 득점으로 2회에도 4점을 올리며 2회 말이 종료되었을 때는 8 대0. 큰 점수 차로 앞서나간다.

2회가 지나 몇 이닝 동안 양 팀 득점 없이 경기가 진행되며 맞이한 4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 상황.

4회 말 공격에서 선두 타자로 오른 것은 강호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백강호 선수의 타석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과연 또 다시 안타를 때려낼 수 있을지. 자이언츠 팬 분들도 많이들 기대하고 계실 것 같아요."

중계석의 이효범 위원은 4회 말이 시작되자마자 강호에 대해 얘기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전 캐스터 역시 이 위원의 발언에 동조하며 분위기를 더욱 끌어 올린다.

"만약 이번 타석에 안타나 2루타를 기록하게 되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상대하는 투수는 앞선 타석에서 백강호 선수가 상대한 선수와는 또 다른 선수입니다. 백강호 선수, 데뷔전에서 매 타석마다 다른 투수를 상대하는 진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아, 그러네요. 1회에는 선발 투수인 홀랜도에게 투런 홈런을 뽑아냈었고, 2회에는 송창민 선수에게 3루타를 때려냈어요. 그 때 이홍걸 투수로 투수가 교체되고, 4회에는 이홍걸 투수가 아닌 강기현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어요. 이글스가 4회에만 4번 째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면서 백강호 선수는 3명의 투수를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이효범 위원은 지금의 장면이 재밌게 느껴지는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전 캐스터는 그의 말을 받아 강호에 대한 스카우트 리포팅 하나를 읽는다.

"백강호 선수, 초구에 타격할 확률이 5할 대입니다. 초구가 오면 두 번 중에 한 번은 배트를 휘두른다는 말인데요. 이번에는 배트를 내지 않았어요. 강기현 선수의 초구는 스트라이크. 2구째 승부에 들어갑니다."

전 캐스터는 강호가 초구를 타격하지 않았을 때 2구부터는 타율이 떨어진다는 점을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처 말을 꺼내지 못한다.

따악!

이글스 투수가 던진 2구를 받아친 강호의 타구가 외야를 향해 뻗어 나간다.

너무나도 깨끗한 안타는 중견수의 발치에 떨어지는 단타로 기록된다.

강호가 이번에도 안타를 때려낸 것이다.

"안타입니다! 백강호 선수 오늘 세 번째 안타를 4회 만에 기록해 냅니다! 선두 타자 안타!"

"아~이렇게 되면 정말 모르겠는데요? 사이클링히트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두 사람의 중계에 TV를 지켜보던 자이언츠 팬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홈 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환호와 박수는 TV로 중계를 지켜보는 팬들보다 더욱 컸다.

"와아! 백강호 죽이네!"

"1군에 처음 올라온 거 맞나?! 엄청 잘하네!"

"백강호 선수! 다음 타석에서는 2루타! 2루타 때려 주세요!"

안타를 치고 1루 베이스에 선 강호의 귀에 홈팬들의 환호와 성원이 들려온다.

이제는 세 번의 타석을 치루며 약간의 여유가 생긴 강호.

팬들을 향해 싱긋 웃어주고는 베이스에서 발을 뗀다.

'2루타? 그건 다음 타석 때의 얘기고 지금은 출루 상황에 집중하자!'

강호는 다음 타석의 찬스보다 지금 출루를 이끌어낸 안타를 득점으로 연결할 생각이었다.

아웃카운트가 없는 무사 상황이었으니 자신의 주루 플레이에 따라 타석에 선 타자가 안타를 때려낼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어서 불문율에 따라 도루하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리드 폭을 가져가서 상대 투수의 신경을 자극할 마음을 품게 된다.

강호는 2번 타순인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 것이다.

"강호가 뛸 모양인데요?"

코칭스태프 중 강호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누군가가 도루 가능성을 입에 담는다.

그러자 팔짱을 낀 채로 강호를 바라보던 한 감독이 입을 연다.

"뛰어야죠! 8점차도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 요즘 야구 아닙니까? 강호한테 사인을 보내세요. 도루를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입니다."

한 감독의 말에 몇몇 코치들이 인상을 찡그린다.

팀이 크게 앞선 상황에서 주자가 도루를 한다면 상태 벤치의 분노를 살 수 있다.

강호의 다음 타석 때 빈볼 위험은 물론이고, 4번 타자인 황제인이나 캡틴인 민수에게 빈볼이 날아들 수도 있는 일이다.

'말려야 하는데.'

코칭스태프는 하나같이 한 감독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2회 상황에 본의 아니게 한 감독과 대화를 했던 김 수석은 입을 다물고 있다.

김 수석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누가 한 감독과 이야기하고 싶겠는가.

결국 강호에게 그린라이트 사인이 전달된다.

'강호야. 도루하지 마라.'

한 감독을 제외한 모든 코칭스태프는 사인을 받은 강호가 도루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은 캡틴인 강민수를 포함한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자이언츠 선수단의 시선이 타자에게가 아닌 1루 주자인 강호에게로 향한다.

코치들과 선수들이 살펴본 강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사인을 받고서 도루를 할지 안할지 판가름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모든 것은 강호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 작품 후기 ============================

요즘은 기록적인 타고투저의 시대라 팀이 크게 앞선 상황에서도 도루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합니다.

오늘도 날씨가 더울 것 같습니다. 덥지만 즐거운 주말이 되시기를 바라봅니다.^_^

점심 먹기 전에 한편 투척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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