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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날아오르다
팬들 중에는 강호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5할이 넘는 강호의 엄청난 타율이 시범경기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정식 경기에서는 타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 보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팬들은 강호가 때려낸 투런 홈런에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와아아! 대박이야! 초구부터 홈런이야~!"
"나는 이럴 줄 알았어! 백강호가 이럴 줄 알았다고! 너무 좋아!"
직접 사직구장을 찾은 팬들 중, 강호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던 팬들이 한 방의 홈런에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만큼 강호의 1호 홈런은 임팩트가 강한 홈런이었다.
"저거 장외 홈런 아냐? 완전 넘어간 것 같은데?"
"아니야. 내가 보니까 관중석 상단에 떨어진 것 같아. 조금만 더 높았으면 장외로 넘어갔을 거야."
"우와,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겼는데 파워가 엄청난가 보네. 신인 선수가 이런 홈런을 때려내네.”
사직구장의 홈팬들은 강호가 베이스를 모두 돌고 홈을 밟을 때까지 환호성을 그칠 줄 몰랐다.
그에 대한 찬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해설위원석에 앉은 이효범 위원의 생각도 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와아~정말 제대로 넘어갔어요. 사직구장의 외야 높이가 상당한 편이거든요. 다른 구장 같았으면 장외홈런이 나올 수도 있는 홈런입니다. 백강호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이효범 위원이 강호를 칭찬하는 말을 하는 동안 옆에 앉은 전 캐스터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강호의 배트가 공을 때린 순간부터 홈런임을 직감한 전 캐스터는 타구가 홈런으로 판정될 때까지 폭풍같은 말을 토해내며 에너지를 쏟은 후였다.
잠시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입을 연 전 캐스터의 말은 감탄사로부터 시작된다.
"아아~정말 짜릿한 홈런입니다. 백강호 선수가 초구에 떨어지는 공을 받아쳐서 홈런을 만들어 냅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죠? 홀랜도 선수가 던진 초구는 체인지업이에요. 초구부터 유인구를 던졌는데 코스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 코스를 받아쳐서 홈런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타격은 노력한다고 해서 나오는게 아니에요. 타고나야 합니다. 이번 타석에서 백강호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강호에 대한 이효범 위원의 찬사가 계속되는 동안 이미 홈을 밟은 강호는 덕 아웃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워오오! 루키, 한 건 했네!"
"잘 쳤다! 신고식 한 번 제대로 하네!"
코칭스태프와 모든 선수들이 강호와 손뼉을 마주치며 찬사를 보내온다.
그들과 모두 손을 맞부딪힌 강호는 구석 자리로 이동해 조용히 벤치에 앉는다.
이 때쯤이면 항상 환한 미소로 강호의 헬멧을 두들겼을 문표는 이 자리에 없다.
문표는 여전히 2군에 남아있었다.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까 무척이나 허전한 문표의 공백을 느끼며 강호는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힌다.
그런 그의 곁으로 캡틴인 강민수가 다가온다.
"강호야 첫 홈런 축하한다. 구단에서 운영 요원을 보내서 홈런 볼을 챙겨다 줄거야."
민수는 주장으로서 강호에게 축하의 인사와 덕담을 건넨 후, 그라운드 위로 걸음을 옮긴다.
3번 타자인 휴고가 타석에 섰으니 곧 민수의 차례가 다가온다.
그의 타순이 5번인 이유로 타석에 오를 준비를 해야 했다.
홀로 남은 강호는 통산 첫 홈런의 기쁨을 뒤로하고, 타격 당시의 감각을 복기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2회에서의 타격 기회. 강호는 바뀐 투수인 송창민을 응시하며 타석에 선다.
"백강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백강호 선수 앞선 타석에서 통산 1호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해설위원석의 전 캐스터는 강호의 재등장을 알린다.
그러자 이 위원이 기다리고 있던 해설을 시작한다. 그는 강호에 대한 코멘터리를 위해 그의 타석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의 1회 말 투런포로 자이언츠가 분위기를 가져오게 되었거든요. 홀랜도 선수가 크게 흔들린 것도 백강호 선수의 홈런부터였어요. 오늘 홀랜도 선수는 1회에만 4실점하면서 1이닝밖에 소화하지를 못했습니다. 또 다시 찬스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백강호 선수가 바뀐 투수 송창민에게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이 위원의 해설에 곁에 있던 전 캐스터가 막 떠오른 내용을 말한다.
"그러고 보니까 이효범 위원님도 대단하십니다."
"뭐가요?"
전 캐스터의 뜬금 없는 칭찬에 이효범 위원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려진다.
그러자 전 캐스터가 이 위원을 마주보며 빙긋이 웃어 보인다.
"경기 전에 백강호 선수를 키 플레이어로 지명한 것이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예언 적중률이 높으신데요?"
농담섞인 전 캐스터의 칭찬에 이 위원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하. 아닙니다. 백강호 선수의 시범경기 성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예측일 겁니다. 그만큼이나 백강호 선수가 좋은 선수라는 거예요. 자이언츠는 백강호 선수가 시즌 초반에 합류하면서 좋은 흐름을 탈 것이라 예상됩니다."
"또 예언을 하시는 겁니까?"
"예언이라면 예언일 수도 있고요. 그만큼 자이언츠 타선에서의 짜임새가 느껴진다는 거예요."
이효범 위원과 전 캐스터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송창민 투수의 초구가 던져진다.
"볼."
송창민 투수는 강호의 첫 타석 홈런을 의식한 것인지 존 밖으로 빠지는 패스트볼로 초구를 선택했다.
강호는 일단 타석에서 물러나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더니 다시 투수의 눈을 노려보며 타격 자세를 취한다.
상황은 4대 0으로 자이언츠가 앞선 채로 1사 주자 2루의 상황. 발 빠른 주자인 김중호가 2루에 있었기에 짧은 안타로도 타점을 올릴 수가 있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강호는 이번 타석에서는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할 생각을 가진다.
득점권 상황에서는 '칠 때 친다'스킬 효과로 컨택과 파워가 상승하게 된다.
컨택 +5, 파워+3, 안타 확률을 10% 높여주는 스킬 효과를 믿고, 배트를 가볍게 쥔다.
'백강호, 시범경기 때도 그렇고 신인 같지가 않아. 1군 데뷔전이라 긴장하거나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한데 배트를 가볍게 쥐었어. 1회에 때린 홈런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건가? 쉽게 승부해서는 안 되겠어.'
초구를 지켜본 강호가 두 번째 공을 기다리며 배트를 가볍게 쥐자, 이글스의 포수 차연목이 곧장 사인을 낸다.
이번에도 바깥쪽으로 빠지는 패스트볼 사인이다.
'뭐야? 백강호를 거르자는 거야?'
연이은 볼 주문에 투수인 송창민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상대 타자는 1군 무대에 오늘 처음 입성한 신인 선수다.
1회에 투런포 한 방을 얻어맞았다고 이런 식으로 피하는 승부를 벌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다.
85년생인 송창민은 올해로 35살의 베테랑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루키에게 겁을 먹은 인상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포수의 다음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2구는 포수가 주문한 쪽이 아닌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던져진다.
티익.
공이 존안으로 들어오자 본능적으로 배트를 휘두른 강호. 아쉽게도 타이밍이 맞지 않은 스윙에 타구는 파울라인을 한참 벗어나는 파울이 된다.
강호는 연습 스윙을 한 차례 해보이고는 창민의 다음 공을 예측해 본다.
딱.
다시 날아온 3구 역시 존안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이었고, 타이밍을 조금 더 빨리 가져간 강호의 배트가 이번에는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파울 타구를 만든다.
"와아."
강호의 타구가 안타일 것이라 생각한 홈 팬들은 몸을 일으켰다가 자시 자리에 앉는다.
팬들의 시선에 기 싸움을 벌이는 베테랑 투수와 투지 있게 맞서는 신인 타자와의 대결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 중 오기 싫다는 친구, 진수를 이끌고 구장을 찾은 진명은 탄성을 내뱉으며 아쉬움을 표한다.
"아아...이번 건 좀 아깝네.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왔으면 페어타구인데. 백강호 정도의 주력이면 2루타는 당연한 거고 3루타도 노릴 수 있었어."
진명의 주장에 진수는 치킨을 뜯으며 반론을 제기한다.
"그거는 네 생각이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타 안 될 파울이 어디있겠어?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닭다리나 뜯어 먹어."
"넌 야구장에 먹으러 왔어?! 그렇게 오기 싫다고 하더니 막상 오니까 살판났네. 그만 좀 처먹고 경기에 집중 좀 해."
"내가 치킨 먹을 때 구박하지 말라고 했지? 너는 왜 백강호만 나오면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 거야? 누가 보면 백강호가 네 애인인줄 알겠네."
진수의 핀잔에 진명은 '허헐'하고 웃어 보이더니 눈을 붉힌다.
"내가 잘못 말했다. 너는 그냥 치킨이나 쳐 먹고 있어라. 경기는 나 혼자 볼 테니까. 내가 말을 말아야지."
"싫어 임마. 치킨 먹으면서도 경기는 볼 거야. 너나 좀 앉아서 봐. 뒷사람들이 너 때문에 경기 못 보고 있는 거 안 보여?"
두 친구의 다툼이 길어지는 동안 타석에서의 승부도 길어지고 있었다.
송창민이 던진 8구째 볼을 골라낸 강호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카운트는 3볼 2스트라이크.
볼넷이나 안타를 내줄 생각이 없는 창민과 안타를 쳐서 득점을 올리려는 강호의 승부가 길어진다.
덕분에 덕 아웃에서도 두 사람의 승부를 흥미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의외인데요? 강호가 저런 풀 카운트 승부를 잘 안하는 녀석이지 않습니까?"
여민석 투수코치가 곁에 있던 정호종 코치에게 묻는다.
여 코치 본인이 투수출신인 까닭에 타격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박식한 타격코치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정호종 코치는 턱을 쓰다듬으며 여 코치의 물음에 답했다.
"강호가 초구에 배트가 나가는 편이기는 하지. 그런데 조금 이상한 건 배트 타이밍이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거야. 1회에 홈런을 때릴 때는 분명 완벽한 자기 스윙을 가져갔었는데 지금은 컨택 위주로 스윙을 하고 있거든."
정 코치가 의문 섞인 표정으로 말하자 오히려 여 코치가 강호의 타격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타자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정 코치와는 다르게 여 코치는 던지는 상대 투수의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한다.
"제가 볼 때는 말입니다. 강호가 일부러 송창민의 멘탈을 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 코치의 말에 정 코치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정 코치가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지자 여 코치가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연다.
"송창민이 2회부터 올라왔지 않습니까? 지금 던진 공까지 투구 수가 서른 개를 넘었어요. 그 중에서 강호에게 10개를 던졌고요. 정타를 허용한 것은 중호가 때린 안타 하나지만, 승부의 템포가 느려지면서 송창민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강호를 볼넷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으면 이제부터 던지는 공은 가운데로 몰릴 가능성이 있어요."
여 코치의 가정에 정 코치가 고개를 젓는다.
투수가 그런 식으로 무리하게 삼진을 잡으려 한다면 넋 놓고 지켜볼 타자가 누가 있겠는가.
반드시 타격을 할 거라는 가정이 든다.
"지나친 비약 아냐? 강호같이 타격 컨트롤이 좋은 타자에게 대놓고 가운데로 던지는 투수가 어디 있겠어? 그러다가 연타석 홈런이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정 코치님. 타구가 인필드로 들어와도 야수가 잡으면 아웃입니다. 투수가 마음이 약해지면 야수들이 아웃을 대신 잡아줄 거라는 나약한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송창민처럼 주말 경기에서 연투하고, 오늘 경기에서도 롱릴리프로 던져야 하는 상황이면 공 몇 개 정도는 허술하게 던질 수도 있는 거예요."
여 코치는 철저히 투수의 관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의견이 정 코치에게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어진 송창민의 11구가 가운데로 향하고, 강호의 배트가 또 다시 파울을 만들어내자 여 코치의 주장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강호가 또 커트를 했네요."
여 코치는 강호의 커트를 지적하며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내세웠다.
"저건 커트라고 보기에는 타이밍이 좀 빨랐어. 패스트볼을 노렸는데 슬라이더가 들어와서 파울이 된 거야. 커트 했다기보다는 구종 파악이 잘 못된 거라고. 그리고 강호가 11구째를 받아친 것을 보고 송창민이 12구는 볼을 줄 수도 있어. 결정구를 던질 때 유인구 승부는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거잖아."
"정 코치님 내기 하실까요. 제가 보기에는 12구는 가운데로 들어오는 포심입니다. 강호가 포심이든 변화구든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있어요. 제가 현역 시절이었다면 존안으로 들어가는 포심을 던졌을 거예요."
여 코치의 확언에 정호종은 입을 다물게 된다.
내기를 제안할 정도라면 여 코치가 상대 투수인 송창민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 코치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민이 던질 다음 공을 기다린다.
따악.
창민의 12구째를 통타하는 호쾌한 타격음이 덕 아웃으로 파고든다.
구종은 중앙에서 약간 바깥쪽으로 치우친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이 공을 제대로 노린 강호가 스윙 후 오른손을 놓으면서 밀어치는 타격을 한 것이다.
배트 타이밍이 맞지 않는 타자가 가끔 파울을 만들어내기 위해 밀어치는 타격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공교롭게도 1루수의 곁을 스치는 페어 타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세이프."
강호의 안타에 여유롭게 홈으로 들어온 김중호는 세이프 판정을 받았고, 뒤늦게 공을 잡은 우익수가 2루를 향해 공을 뿌린다.
"돌아, 돌아. 돌아!"
3루에 있던 자이언츠 베이스 코치는 강호를 향해 '돌아'를 외친다.
우익수의 공이 2루로 향했지만, 강호는 이미 2루를 지나 3루로 향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3루 승부가 가능해 보였다.
강호는 베이스 코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를 악물고 3루를 향해 내달린다.
터억.
그리고 강호가 몇 발짝을 떼었을 무렵, 우익수가 던진 공이 2루수에게 전달되었고, 2루수는 곧장 3루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강호는 다급한 3루 베이스 코치의 시그널을 확인한 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3루를 향해 몸을 날린다.
몸을 날린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을 것이다.
경기 중 부상의 염려가 없는 강호는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은 채 거칠게 슬라이딩해 들어간다.
"와아아!!"
"뭔데?!"
관중석은 이 아슬아슬한 승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덕 아웃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특히 여 코치와 정 코치 또한 3루심을 향해 눈을 부릅뜬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느낀 3루심이 양팔을 활짝 펼치며 콜을 외친다.
"세이프!!"
주심의 선언으로 강호의 안타는 3루타로 인정된다.
3루타를 확인한 홈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를 만끽한다.
"우와아아!!"
"발 진짜 빠르네!"
"백강호! 백강호!!"
홈 팬들은 1회 투런에 이어 2회에도 3루타를 때려낸 강호의 이름을 목청껏 외친다.
강호의 통산 두 번째 타석은 1타점 3루타로 기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