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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끝내다
한 감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있었다.
개막전 당일에 걸려온 단장의 전화는 그러려니 했다. 팬들의 비판이 있었다고 하니 총 사령탑으로서 겸허히 수용할 생각이다.
'그래도 백강호를 올리는 건 안 돼. 2군에 내린지 얼마나 됐다고 백강호를 벌써 올려? 그러면 내 꼴이 뭐가 되겠어.'
단장의 독촉 전화에도 한 감독은 강단 있게 버텼다.
솔직히 손 감독에게 강호 이야기를 벌써 꺼내게 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개막전 이후의 세 경기에서 3연승을 거두며 구단 측의 독촉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라이온즈의 남은 두 경기를 모두 내어주며 다시 2연패.
승률은 3승 3패. 5할 대 승률로 내려앉게 되었다.
-한 감독, 정말 이럴 거야? 나 모가지 날아가는 거 보고 싶어? 내가 잘리면 한 감독이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학교, 동문끼리 좀 상부상조하자. 한 감독.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상동에 전화를 해. 한 감독 입장이 정 그렇다면 내가 전화하는 수가 있어.
연패가 시작되자 어김없이 걸려온 단장의 전화에 또 다시 한숨을 내뱉는다.
고작 6일 동안 몇 통의 독촉 전화를 받는지 모를 정도다.
결국 한 감독으로서도 더는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손 감독님. 저 한동현입니다."
한 감독은 손성조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주일 이르기는 했지만, 강호 정도의 적응능력이라면 금방 1군 무대에서 기량을 발휘할 거라 생각된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아, 안녕하십니까? 한 감독님. 저 김대주입니다. 지금 손 감독님이 휴대폰을 사무실에 두고 가셔서요. 혹시 전할 말씀이 있으십니까?
한 감독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는 2군 작전코치인 김대주 코치의 것이었다.
어쩌다보니 김 코치는 손 감독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 감독은 의외의 상황에 기가 막히면서도 전화를 건 목적은 잊지 않는다.
"김대주 코치. 급한 일이에요. 지금 당장 손 감독님과 통화했으면 합니다."
한 감독은 손성조 감독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김 코치의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이내 대답이 들려온다.
-지금 손 감독님과 거리가 좀 있어서 말입니다. 일단 전화를 끊으시면 제가 손 감독님께 휴대폰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김 코치의 음색이 조금은 어색했다.
한 감독은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는 손 감독의 전화를 기다린다.
잠시 후, 손 감독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나 손성조요. 전화했다고 들었습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손 감독의 음성에 한동현 감독은 마른침을 삼킨다.
강호를 2주 동안 2군에서 훈련시키겠다는 약속을 자신이 먼저 어기는 셈이다.
말을 잘할 필요가 있었다.
'손 감독님은 능구렁이 같은 양반이야. 만약 손 감독의 페이스에 말리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해.'
한 감독은 각오를 다지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백강호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 감독은 미사여구는 생략하며 강호의 이름으로 포문을 연다.
강호를 중심으로 한 두 사령탑의 거래가 또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한 편 같은 시간, 상무와의 원정경기를 마치고 김해로 돌아오게 된 강호는 독신자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선다.
복장은 가벼운 트레이닝 복장으로 갈아입은 상태다.
'주력을 조금 더 올려둬야 해. 1군에 올라가게 되면 개인 훈련을 할 시간이 줄어들게 돼.'
강호는 주력을 더 올리기 위해 스퍼트 훈련을 익혀둔 상태다.
휴식일인 월요일에도 쉬고 있을 여유가 없다. 1군 콜 업까지는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기량을 올려두고 싶었다.
'체중은 그런대로 만족해. 하체 근육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혔으니까. 이제 1kg만 더 올리면 90kg가 된다.'
강호의 현재 체중은 89kg이다.
2군 경기와 수비 훈련으로 바쁜 와중에도 프로틴 섭취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덕분에 강호의 몸은 시범경기 때보다 조금 더 탄탄해져 있었다.
주력도 조금 더 빨라졌다.
상동에서 다시 측정한 강호의 100미터 주력은 11초 5.
0.1초의 발전이었지만, 그 0.1초를 줄이기 위해 강호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고작 일주일이지만, 수비에 약간의 진전이 있었어. 이제 라인드라이브 성으로 넘어가는 타구를 놓치지는 않을 거야.'
강호는 러닝을 하면서 그동안의 훈련 내용을 되짚어본다.
스스로는 약간의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었지만, 2군 수비 코치인 서학수가 놀랄 정도의 빠른 발전 속도였다.
서 코치는 강호의 외야 수비를 평가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저 정도 수비라면 평균치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2군에서라면 중견수 자리를 맡겨도 될 거예요. 1군에는 워낙 수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모르겠지만, 강호 정도의 타격능력이면 1군에서도 안착할 수 있어요. 강호는 4할 타자 아닙니까?"
서 코치는 강호의 중견수 수비로 1군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 거라 평가했다.
고작 10일 간 훈련에 매진한 결과로는 후한 평가인 셈이다.
또한 서 코치는 강호의 내야 수비에 대한 평가도 남겼다.
"2루가 됐든 유격수가 됐든 3루든 간에 강호의 내야 수비는 2군에서 논할 정도가 아닙니다. 1군에도 강호 정도로 수비하는 내야수들은 많지 않아요. 지금 당장 1군에 올려도 탑 급의 활약은 해줄 겁니다."
서 코치는 강호의 내야 수비가 2군에서는 경쟁자가 없다고 보았다.
수비 코치로서는 최고의 찬사를 한 셈이다.
그의 말을 듣고나서 강호는 문득 궁금해졌다.
'스탯이 과연 얼마나 올랐을까?'
프리마켓이 다시 열리면 달라질 능력치가 궁금해진다.
지금 상태창을 열어보아도 알 수가 없다.
훈련과 경기로 인한 보정 부분은 오직 프리마켓 내에서만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스탯 변동치를 알 방법이 없었다.
'기대된다. 다른 건 몰라도 주력과 선구안, 수비만큼은 상당한 스탯 증가가 반영될 거야. 파워도 꽤 오르게 되겠지.'
강호는 네 가지 스탯에 대한 상승을 기대해 본다.
손 감독과 매일같이 반복하는 수비 훈련 말고도 강호가 개인적으로 진행 중인 훈련이 많았다.
VR기를 이용한 선구안 훈련과 악력기로 손아귀의 근력을 높이고 있다.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개인 훈련은 잠이 들기 전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다시 프리마켓의 문이 열리면 상당한 성과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사실상 준비는 끝났다고 봐야 해. 아쉽게 느껴지는 주력도 리그 전체를 놓고 봐도 열손가락 안에는 들 거야. 지금 당장 1군에 올라가도 생존 경쟁을 이겨낼 자신이 있어!'
강호는 각오를 다지며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인다.
달리다보니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난다.
주력이 빨라지면서 스스로가 체감하는 속도감이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 속도감에 취해 강호는 달리고 또 달렸다.
"헉, 헉, 헉!"
한참을 달린 강호는 허리를 굽힌 채 숨을 몰아쉰다.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나서야 자리에 멈춘 강호. 얼굴에 범벅이 된 땀방울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릴 때, 허리춤에 매어놓았던 포켓 벨트에서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온다.
딴딴, 딴딴딴딴~
자정의 정적을 깨는 벨소리에 강호는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꺼내든 휴대폰 액정에는 익숙한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감독님이 이 시간에 왜?"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갑작스레 손 감독에게 걸려온 전화에 생각이 많아진다.
"네. 백강호입니다."
-강호야. 나 손 감독이다. 너한테 해줄 얘기가 있어서 밤늦게 전화를 했어.
손 감독의 말에 강호는 긴장하게 된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손 감독이 자신에게 전화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촉각을 곤두세운다.
-화요일부터는 상동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
"네?"
난데없는 손 감독의 말에 강호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상동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손 감독의 말. 과거에도 그와 비슷한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강호는 문득 지금의 상황이 베어스 시절의 기억과 오버 랩 된다.
"강호야, 내일부터는 구장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미안하게 되었구나. 네 야구는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부디 다른 분야에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베어스 2군 감독이었던 구형태 감독의 말이었다.
방출을 통보하며 위로를 전하던 그 목소리. 강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와 손 감독의 말이 오버랩 됨을 느낀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손 감독님은 나를 버릴 분이 아니야. 절대로 그럴 리 없어!'
아니라고 위안해 보지만, 어느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러닝으로 흘린 노력의 땀과는 다른 땀방울이 전신을 잠식한다.
강호는 자신의 시범경기 성적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또한 2군에 내려온 이후의 성적 또한 매일매일 체크하고 있었다.
'시범경기에서 5할 8리. 상동으로 내려온 이후 지금까지 4할 4푼 7리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나를 방출할 리가 없어.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손 감독님이 그럴 리 없어!'
강호는 어렵게나마 마음을 안정시킨다.
자신이 기록한 올해 성적과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손 감독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강호는 마음을 진정시킨 후 예의를 갖춰 물어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손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요일부터는 사직으로 가도록 해.
사직으로 가라는 손 감독의 말, 그 말에 강호의 표정이 변한다.
"그 말씀은..."
-그래. 콜 업이다. 화요일부터는 1군에 소속되어 경기를 하는 거야. 축하한다. 강호야!
1군 콜 업을 말하는 손 감독의 말을 듣고는 사고가 정지한다.
평생을 살며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이 반칙으로 얻은 기회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붙들고 싶을 정도로 꼭 한 번 올라서보고 싶었다.
'내가...사직으로 가게 된다고? 1군으로?'
속으로 묻게 된다.
그동안의 노력과 시련들, 바닥을 경험하며 겪었던 비참한 심정들. 모든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강호를 뒤흔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하고 싶었다.
이후에도 손 감독이 몇 마디의 덕담과 조언을 해주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통화를 끝낸 강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갈무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2019년 4월 8일, 00시가 막 지난 무렵, 강호의 1군 콜 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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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또 다시 흘렀다.
강호에게 1군 콜 업 소식을 듣게 된 친 형, 강수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나긴 월요일이 지나 어느새 화요일 아침. 일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 강수는 시계를 확인한다.
'6시 30분. 정확히 열두 시간이 지나면 강호의 경기가 시작되겠구나.'
손꼽아 기다리던 동생의 1군 데뷔무대였다.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서 오늘의 일정은 5시 30분까지만 잡아놓았다.
동생의 데뷔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글스 경기라고 했었지. 대전이 아니라 사직에서 열리는 경기라서 다행이다.'
만약 강호의 첫 경기가 지나치게 먼 거리에서 열리는 경기였다면 직접 가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10년 동안 현장 바닥을 구르며 어렵게 일군 사업이었다.
동생들을 키워내며 고생으로 만든 일터인 까닭에 함부로 쉴 수가 없다.
마음 편히 쉬기에는 강수의 인생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반복된 인생이었다.
그렇기에 강호의 첫 경기가 사직에서 진행되는 것을 마음깊이 감사했다.
강수는 감사한 마음을 지닌 채 현장으로 나선다.
"여기가 올록볼록 튀어 나온 것 같은데요? 사장님. 여기 한 번 봐주세요. 맞죠? 작업이 잘못된 거 맞는 거죠?"
집 주인 여자가 볼멘소리로 묻는다.
작업 현장에 나온 강수는 좀처럼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강호의 경기를 꼭 보러 가야한다는 생각에 시간은 자꾸 가는데 실수가 잦아진다.
10년 간 현장에서 구른 베테랑답지 않은 실수의 연발이었다.
'차라리 오늘은 쉴걸 그랬어. 이러다가 늦을 수도 있겠어.'
그렇게 생각이 들자 강수는 인부들과 함께 작업을 서두른다.
서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작업은 늦어져 6시가 조금 넘어서야 겨우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강수는 얼른 작업 도구를 챙겨 트럭에 싣고는 사직으로 엑셀을 밟는다.
빵,빵, 빵!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가 강수의 차에서부터 퍼져나간다.
평소에는 얌전하게 운전을 하는 강수이지만, 지금만큼은 운전이 많이 조급해 보인다.
'이제 6시 20분. 이러다가 제 시간이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 더 서둘러야 해!'
마음이 급해지니 몸 곳곳에 땀방울이 배어나온다.
에어컨을 켤 겨를도 없이 운전에만 집중하던 강수, 잠시 후 그의 차가 사직 운동장에 도착했다.
끼익.
급하게 도로변에 주차를 한 후, 차문을 박차고 나가는 강수.
누군가가 그에게 퉁명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총각. 여기다 주차하면 딱지 끊어요!"
"끊어도 상관없어요!"
대답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장 입구를 향해 달린다.
그러면서 손목에 차고 있던 전자시계를 내려다본다.
현재 시각은 6시 34분. 이미 경기가 시작된 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강호의 데뷔전 무대를 조금이라도 놓치기 싫은 강수는 가슴이 터질 정도로 빠르게 달린다.
"표! 여기 있습니다!"
검표 직원에게 던지듯이 표를 넘겨주고는 또 다시 달리기 시작한 강수.
어느새 그의 발걸음이 1루 쪽 관중석에 도착한다.
그리고 보게 된 넓디넓은 야구장의 푸른 전경.
이미 시작된 경기에서 이글스 야수들이 수비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고, 투수는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타석에 선 자이언츠의 타자를 확인하는 순간, 강수는 억눌린 목소리를 내고 만다.
"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강수의 놀란 탄성과 타자가 휘두른 배트가 공을 때리는 타격음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그 순간, 주변은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린다.
============================ 작품 후기 ============================
65편과 66편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의 방향이 시놉을 짠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연재를 뒤로 미룰까 했는데 다행이도 방향성을 잡게 되어서 예정대로 연재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이제 1군 무대에 오른 강호의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됩니다.
우리 강호 선수가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