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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끝내다
4월 2일에 개막전이 열리는 1군 무대와는 다르게 2군의 일정은 조금 빨랐다. 3월 31일에 개막전이 예고된 것이다.
방식도 1군 경기와는 다른 면이 있었다. 10개 팀이 경쟁하는 1군과는 다르게 2군 경기는 12개 팀이 경쟁을 하게 된다.
각 프로구단의 2군 팀에 상무 팀과 경찰청 팀이 포함된 2군 경기는 A리그, B리그, C리그의 세 개의 리그로 나누어진다. 이 중 자이언츠가 소속된 리그는 C리그였다.
자이언츠의 2군 선수들이 모인 상동에서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2군 개막전에 앞서, 훈련에 전념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강호! 턴 동작이 어설프다! 지금보다 한 호흡 빨리 턴 해야지!"
호통을 치는 굵직한 목소리에 강호가 '네!'하고 대답하며 자세를 고친다.
강호의 수비를 지도하는 코치는 수비코치가 아니라 손성조 감독이었다.
손 감독이 강호의 수비 훈련을 직접 지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손 감독과 강호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들이 있었다.
"양 총괄님이 말씀을 좀 드려야하는 거 아닙니까? 강호에게 중견수 훈련을 시키다뇨?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우려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여는 사람은 2군 작전코치인 김대주였다.
그는 2군 선수들이 상동에 집합한 후 한 통의 전화를 받고는 강호를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다.
전화기 너머로 강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1군 수석코치인 김민철이었다.
-대주야, 선수단 훈련 일정이 시작되면 강호가 어떤 훈련을 받는지 내게 좀 알려줘. 강호는 이제 1군 전력으로 분류를 하고 있어. 4월 중에 1군으로 올려야 하니까 강호가 어떤 훈련을 받는지 1군 수석인 내가 알아야 하지 않겠어?
김민철 수석은 다른 선수들은 묻지도 않은 채 강호의 훈련 일정을 궁금해 했다.
김대주 코치는 김 수석의 말에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부산동성중, 부산고로 연결되는 12년차 선후배 관계이다.
이 정도 정보를 공유하지 못할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다.
"그게 말입니다. 강호가 요즘 중견수 수비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손 감독님이 그런 훈련을 허락했다고?
김 수석 입장에서는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김 코치의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비하면 약과라는 생각마저 든다.
"손 감독님께서 강호의 훈련을 집적 지도하고 계십니다. 서학수 수비코치는 뒤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있어요."
-...
한동안 수화기 너머로 김 수석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김 수석이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 느껴진다.
김 코치는 답도 나오지 않는 고민에 들어간 선배에게 추가 정보를 주기 위해 입을 연다.
"그리고 또 말씀드릴 게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딴 게 있지? 뜬금없이 중견수라니? 장난하시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강호를 유격수로 키워야 한다는 게 손 감독님의 생각이셨는데 며칠 사이에 생각을 바꾸실 분이 아니야. 손 감독님은 뚝심이 있는 분이란 말이야. 말하지 않은 내용을 말해봐.
김 수석의 어조는 '그럼 그렇지. 어서 사실을 말해 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김 코치가 입을 열게 된다.
"경기에서는 강호를 2루수로 쓰신다고 합니다. 당장 31일 라이온즈 전에서부터요."
-.....
김 수석은 또 다시 입을 굳게 다문다.
이번에는 고민의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아무리 대단한 김 수석님도 이해가 가지 않겠지. 하루 온종일 중견수 훈련을 시켜놓고 경기에서는 2루수로 쓰신다니? 손 감독님의 생각은 당최 알 수가 없어. 그건 김 수석님도 마찬가지일 거야.’
생각을 마친 김 코치는 한숨을 내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손 감독 본인이 설명을 하지 않고 있으니 보이는 그대로만 말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손 감독님은 어디에 계시....아니, 아니야. 내가 손 감독님 휴대폰으로 전화해볼 테니까. 대주 자네는 자네 일 봐. 강호 얘기는 다른 데서 들은 걸로 할게.
김 수석은 통화를 마무리하며 전화를 다급히 끊는다.
혹시라도 후배인 김 코치에게 피해가 갈까봐 조금 전 들었던 정보의 출처는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김대주 코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양 코치님이라고 별 수 있으시겠나? 양 코치님은 손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은 곧이곧대로 따르는 양반이잖아. 절대로 반기를 들 분이 아니라고."
억양 강한 말투에 김 코치가 회상에서 깨어난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김 코치. 그의 시선에 강전호 배터리코치의 옆모습이 보인다.
강전호 코치는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산 사람이어서 부산 사투리에 비해서도 억양이 강한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 역시도 강호의 중견수 수비 훈련이 의문인 것인지 연신 혀를 차는 모습이다.
"내가 말이야. 손 감독님이 배울 점이 많은 어르신이라는 점은 인정을 해. 그런데 저런 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 당최 이해가 가야지 원."
혀를 차며 말하는 강전호 코치의 태도에 김 코치가 고개를 돌린다.
불편한 얼굴로 혀를 차는 강 코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혀를 차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강 코치가 혀를 찬다고 코치진 중에서 나이가 어린 편인 자신이 따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두 코치들이 미간을 좁히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강호의 곁에서 훈련 지도를 하고 있던 손 감독의 주머니에서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려온다.
손 감독은 오른손으로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김 수석은 왜 자꾸 전화질인 거야?! 1군은 한가한 모양이지?"
손 감독이 인상을 찡그려 보이며 소리친다.
전화를 건 사람은 1군의 수석코치인 김민철 수석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손 감독은 뒤편에서 잡담을 나누는 두 사람에게 손짓한다.
그러자 강 코치와 김 코치가 '네!'하고 답하며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2군 코치들에게 손 감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두 코치가 뒤에서는 불만을 토로할 수 있어도 손 감독의 면전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손 감독의 카리스마는 그만큼 강력한 것이다.
"누가 전화 받아서 나 바쁘다고 전해! 훈련 중인 사람한테 왜 자꾸 전화를 거는 거야?"
코치들이 다가오자 들고 있던 휴대폰을 휙 하고 던져버리는 손 감독. 두 사람 중 아직은 나이가 젊어 순발력이 빠른 편인 김대주 코치가 얼떨결에 전화를 받아든다.
'엉?'
자신도 모르게 손 감독의 구식 휴대폰을 양손에 받아든 김 코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곁에 선 강 코치를 바라본다.
그러자 강 코치는 아무 말하지 않고 표정으로만 '받아봐'하고 신호를 준다.
올해로 52살이 되는 마산 사나이, 강전호 코치도 손 감독이 무섭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김대주 코치는 별 수 없이 손 감독의 휴대폰 폴더를 열게 된다.
"여보세요. 손성조 감독님의 전화입니다."
익숙한 김 코치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경직됨이 느껴진다.
-너 대주 아니야? 대주 맞지? 손 감독님 전화를 왜 네가 받아? 손 감독님 어디 계셔? 어서 바꿔봐!
전화기 너머로 김 수석의 호통이 들려온다.
김대주 코치는 혹시라도 김민철 수석의 목소리가 손 감독의 신경을 거스를까봐 양손으로 휴대폰을 가리며 목소리를 낮춘다.
그러면서 그의 발걸음은 손 감독이 위치한 반대 방향으로 부지런히 움직인다.
"선배님. 그게 말입니다. 손 감독님이 직접 훈련을 주관하고 계셔서 제가 받았습니다. 네, 네. 그건 아니고요. 네. 네. 아니요. 아, 아닙니다. 그게 말입니다..."
어느새 김대주 코치의 말은 김 수석의 호통에 대한 변명으로 바뀌어 간다.
김 코치가 시야에서 사라진 사이 손 감독의 정신은 다시 강호에게로 향했고, 덕분에 강호는 비지땀을 흘리며 자세 교정에 집중해야만 했다.
'시범경기에서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구나. 너무 힘들어!'
강호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그라운드를 달려 나간다.
오늘 오전 훈련동안 달린 거리를 합하면 족히 20km는 넘을 것 같았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중견수 수비 훈련은 벌써 다섯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강호의 수비 훈련을 시키기 위해 손 감독 역시 새벽 일찍부터 상동에 출근한 상태였다.
'나는 그렇다 치고 손 감독님은 힘들지 않으실까? 훈련은 내가 한다지만, 곁에서 훈련을 지도하시는 손 감독님도 힘드실 텐데.'
그라운드를 달리면서도 손 감독이 걱정되어 힐끗 시선을 돌려본다.
그러자 예외 없이 손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딜 보는 거야?! 훈련에 집중하지 못해?!"
손 감독의 목소리에 얼른 고개를 바로 해야 했다.
강호는 손 감독의 지시대로 정신을 집중하고 표시된 동그라미 지점에서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뒷걸음질로 빠르게 펜스를 향해 이동한다.
오전부터 반복된 훈련은 외야수가 머리 뒤로 넘어가는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처리하기 위한 수비 훈련이었다.
같은 훈련을 다섯 시간 째 반복하는 것이 지겨울 만도 한데 훈련을 하는 강호도, 그것을 지시하는 손 감독도 지겨워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강호야. 너는 우리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야.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필요한 선수야. 그러니 조금 힘들더라도 내 훈련을 잘 따라와 다오.'
몇 시간 째 목에 핏대를 세우던 손 감독의 표정이 잠시 변한다.
마치 화가 난 표정으로 훈련을 지도하던 손 감독은 아무런 불평 없이 무리한 훈련을 따라주는 강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그의 표정 변화는 찰나 사이에 스쳐간 것이어서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변화였다.
'백강호. 만약에 말이야. 내가 1군 감독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면. 그 때가 되면 반드시 너를 4번 타자로 기용하겠어. 그게 지금 내가 강호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약속이야.'
손 감독은 언젠가는 들려주고 싶은 약속을 마음으로 전하며 묵묵히 그라운드를 달리는 강호의 뒤편에 선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흘러 2군 경기의 개막전이 지나고, 1군 역시 개막전을 앞두게 된다.
길었던 3월이 지나고, 4월이 된 것이다.
그런데 4월 1일이 된 시점에서 자이언츠 팬들 사이에서 하나의 소문이 나돌게 된다.
소문은 자이언츠의 시즌 전망을 예측하는 기사에서의 댓글과 야구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 나간다.
"백강호 선수가 상동에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왜 백강호가 사직에 없는 거야? 엔트리에서 뺀 이유가 뭐지? 부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백강호 선수 부상 아니랍니다. 상동에서 훈련 잘하고 있데요."
"내가 어제 2군 개막전 관람 갔었는데 거기서 백강호 선수 봤어. 부상은 무슨, 2루수 자리에서 날아 다니더만."
"왜 백강호를 2군에 내린 거야? 한동현 감독 미친 거 아냐? 최훈도 빠진 마당에 백강호를 상동으로 보내면 누구더러 2루를 보라는 거야? 설마 이어산?"
"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한 감독 토토 하는 거 아냐? 계좌조사 한 번 해봐야할 것 같은데...?"
"한 감독 본인 것만 할 게 아니라. 가족 것도 하고, 사돈에 8촌까지 계좌 추적해야 돼. 분명 구린 게 나올 거야."
"아, 미친. 시범경기 5할 때린 백강호를 왜 상동으로 내린 거야?! 부상도 아니라며? 자이언츠 이 ○○○들이 진짜 선수기용 ○같이 하네. 올해는 시작부터 가을 야구 포기하는 건가?"
인터넷 여론이 심하게 들끓고 있었다.
모든 원인은 강호의 상동 행에 있었다.
시범경기 5할을 때려내고 호타준족의 능력을 뽐냈던 강호, 거기에 우익수, 2루수, 유격수 수비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최훈이 빠진 2루 자리가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강호를 상동에서 봤다는 목격담이 늘어나자 자이언츠 팬들이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개막전에 열린 트윈스와 자이언츠의 경기가 자이언츠의 2대 3. 석패로 끝이 나며 여론은 더욱 험악한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이번 시즌 자이언츠 5강 포기한 건가요?"
"야이 한 감독 이○○○가, 팀을 ○○이 만들라고 ○○○,○○○.○○○!"
"○○!개막전 라인업부터 ○싸고 앉았네. 야이 ○○○들아! 이게 뭐하는 ○○ ○○○○이냐? 휴고는 왜 1번에 쳐 넣어? 그 자리에 차라리 상동에서 2군 초토화시키고 있는 백강호를 넣으면 되잖아 이 ○○○들아!"
"한 감독 ○○○,○○○가. 내가 지금 죽창 하나 들고 잠실로 갈라니까. 기다리고 있어봐."
"한 감독 레이드 죽창 파티원 모십니다. 일정: 2019년 4월 3일. 18:30. 장소:잠실야구장. 한 감독을 사냥하면 자이언츠 감독이 바뀔 수 있습니다. 레이드 보상:자이언츠 가을야구."
"한 감독만 잡아서 되겠어? 최치열 운영 본부장하고, 이상현 단장도 잡아야지. 끝판 대장인 지정만 사장도 잡아서 쳐○○○를 ○○○해버려야지!!"
한 감독은 개막전 한 경기 만에 적어도 한 달 동안 먹을 욕을 벌어들이게 되었고, 그에 대한 악성댓글은 사장인 지정만의 눈에까지 들어간다.
지 사장은 구단 사장 자리에 앉아 한가로운 나날들을 보내다가 갑작스런 인격비하와 인격모독 댓글에 눈이 뒤집히고 만다.
그가 여태껏 살면서 가장 심한 비난의 글자들이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타앙!
양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자리를 박차게 된다.
지 사장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인지 씩씩 거리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한 감독에게만 향하던 비난 댓글이 나한테도 오잖아. 왜 내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는 거야? 누가 한 번 설명해 봐."
"...."
지 사장의 호통에 간부회의 자리라고 해서 모인 사람들이 입을 다문다.
여기서 잘못 대답했다가는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들들 볶일 것이 분명하다.
'아~뭐야. 간부회의라며? 결국 자기 열 받은 거 표출하려고 부른 거야? 회의시작부터 왜 화를 내고 그러시는 거야?'
'오늘도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글렀네. 집 사람한테 늦게 간다고 미리 전화를 해두던지 해야지.'
'댓글로 욕 좀 먹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럼 구단 사장 자리가 날로 먹는 건줄 알았나?'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갖가지 생각을 하며 지 사장을 속으로 욕했지만, 겉으로는 입을 굳게 다무는 모습이다.
그들의 행태에 지 사장의 분노가 더욱 커진다.
"구단 기사에 달리는 댓글 중에 한 감독이 차지하던 비중이 30%였어. 지금은 얼만지 알아? 90%가 넘어! 그리고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내 비중이 1%가 넘었다는 거야!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욕을 갈겨 쓴 이 댓글들을 보란 말이야!"
쿵!
지 사장은 족히 수백 장은 넘어 보이는 서류뭉치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그 육중한 소리에 일부 간부 사원들이 어깨를 움찔하는 모습이다.
'아, 누가 사장님 좀 말려봐.'
'저러다가 서류라도 던지실 기세네. 이럴 때는 이상현 단장이나 최치열 본부장이 나서줘야 하는 거 아냐?'
'단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부장밖에 안 되니까 그냥 찌그러져 있자.'
주변의 시선이 교차하더니 이내 한 사람에게로 모인다.
사장 다음의 위치인 이상현 단장에게 시선이 모아진다.
이 단장은 부하직원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는 헛기침을 하게 된다.
"홈흠."
그런데 그 소리가 컸다.
지 사장의 시선을 끈 것이었다.
'아차, 이런 젠장! 괜히 헛기침을 해가지고 사장님 눈이 나를 보고 있잖아?! 이놈의 목구멍이 낄 때, 안 낄 때 구분을 못하네. 아무 말이라도 뱉어야 해! 안 그러면 적어도 며칠 동안은 들볶이게 될 거야.'
이상현 단장은 급히 머리를 굴리고는 입을 연다.
일단은 아무 말이라도 뱉어서 지 사장의 사나운 기세를 잠재워야 한다.
그렇다고 주제와 상관없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댓글의 90%를 차지한다는 한동현 감독이었다.
"제가 잠실에 전화를 걸어서 한동현 감독에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급하게 꺼낸 말이었지만,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강호를 2군으로 내린 것은 한 감독의 결정이었으니 당사자와 대화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속으로 자신의 순발력을 칭찬하며 이 단장의 시선이 지 사장의 반응을 살핀다.
"당연한 거 아냐?! 그걸 지금 방법이라고 얘기하는 거야? 한 감독에게 당장 지시해! 안 그러면 내가 잠실로 찾아 가겠어."
지 사장의 불호령에 이 단장은 급히 휴대폰을 꺼내 든다.
이 불편한 회의 자리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오오~ 한 감독에게 전화 건다는 핑계로 여기서 나가자. 밖에서 통화하는 척하고 한 시간만 있다가 들어와야겠어. 한 시간이면 사장님의 분노도 가라앉아 있겠지.'
이 단장은 그런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통화하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한 감독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불편한 회의 자리가 또 생기지 않으려면 강호를 1군으로 올려야 했다.
"사장님. 지금 당장 한 감독과 통화를 하겠습니다."
"한 감독에게 똑바로 전해! 정신 단단히 차리고 일 하라고. 그리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물어봐! 대체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5할 치는 백강호를 내리고, 2할 대 2군 선수들은 잠실에 왜 데려간 거야? 팩스로 사유서 작성해서 보내라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지금 당장 전화하겠습니다."
지 사장의 지시에 이 단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을 빠져 나간다.
회의실 문을 닫고 나서며 한 시간보다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한 편, 이 단장이 나간 회의실에는 여전히 불편한 표정의 간부 사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이 단장님! 이러깁니까? 혼자 살려고 나가버리네.'
'와~저 인간, 저렇게 안 봤는데. 너무 하네. 단장이 나가버리면 사장님은 누가 말려?'
'오늘은 집에 못갈 수도 있겠구나. 집사람한테 밤샘 근무한다고 전화를 해줘야겠다...'
회의실에 남은 간부 사원들은 여전히 계속되는 지 사장의 불호령에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다.
그리고 회의실에서 나선 이상현 단장의 전화가 잠실을 향해 전파를 발산한다.
띠리리리링!
한 감독은 벨소리를 내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단장이 건 한통의 전화로 자이언츠의 1군 수뇌부가 바빠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