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63화 (6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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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끝내다

강호는 그 날의 경기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적시타를 때리고, 도루를 하며 무려 8타점을 쓸어 담았다.

득점은 4득점을 기록하게 된다.

덕분에 상대팀 배터리의 분노를 사 몸에 맞는 공을 두 개나 기록하게 되었지만, 부상 염려가 없는 까닭에 쿨 한 태도로 1루에 출루하여 도루로 복수를 해주었다.

몸에 맞는 공 두 개가 나온 데다 고의 사구로 볼넷까지 기록해 기대했던 사이클링히트는 기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강호의 시범경기 마지막 경기는 그의 경기나 다름이 없다.

자이언츠는 강호의 대활약에 힘입어 12대 10의 진땀 승을 얻어내게 된다.

'이것 봐. 한 감독의 라인업은 제대로 된 게 아니었어. 강호의 타점이 아니었다면 팀이 대패했을 거야. 진 거나 다름없는 경기를 강호 혼자서 멱살을 잡고 끌어올린 거나 마찬가지야.'

김민철 수석 코치는 오늘의 경기를 돌아보며 강호의 활약을 높게 평가했다.

그의 시선이 덕 아웃에서 자신의 짐을 챙기고 있는 강호에게로 향한다.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김 수석은 사물함 한 편에 챙겨두었던 야구공 하나를 집어 들고는 강호를 향해 다가간다.

"백강호."

"네."

김 수석의 부름에 여전히 신인의 자세로 대답하는 강호다.

그의 공손한 태도에 대견스럽다는 듯이 웃음지은 김 수석. 오른 손에 들고 있던 야구공을 강호에게 건넨다.

"네가 부탁한 대로 어제 때린 홈런 볼을 구해왔어. 위즈 쪽에 부탁하기가 조금 애매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네."

김 수석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있었지만, 눈가에 가득 차오른 장난기는 가릴 수 없다.

강호는 그의 눈빛에서 김 수석이 자신과의 교감을 원한다는 것을 눈치 챈다.

"감사합니다. 수석 코치님. 어제 때린 홈런 볼은 꼭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괜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부탁하는 건데 이 정도는 들어줘야지. 정식 경기였으면 외야 쪽 팬이 챙겼을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는 위즈 쪽에서 쉽게 수거를 한 모양이야. 자, 받아라."

김 수석은 감사와 미안함이 담긴 강호의 인사에 손 사레를 치며 공을 건네준다.

강호는 김 수석이 건넨 야구공을 양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이게 내 힘으로 때려낸 홈런 볼이구나!'

야구공을 내려다보는 강호의 표정이 밝았다.

약간은 빛이 바라고 흠집이 있는 홈런 볼. 이번 시즌 들어 자신의 힘으로 때려낸 첫 홈런 볼을 꼭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형, 드디어 형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생겼어. 내 힘으로 처음 때려낸 홈런 볼을 형에게 주고 싶어.'

그동안 자신과 여동생을 위해 고생한 형을 떠올리며 강호는 눈시울을 붉힌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이후로 형은 가족의 기둥이자, 가장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소중한 기록이 생길 때마다 그 기록구를 형에게 선물하고 싶다.

'으음, 강호에게 사연이 있는 모양이구나.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하자.'

강호의 표정에서 가볍지 않은 사연을 느낀 김 수석은 몸을 돌린다.

이미 강호의 선수 기록을 여러 차례 접한 김 수석은 강호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강호가 짓고 있는 표정은 누군가 소중한 이를 떠올리며 짓는 표정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 역시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경험이 있었기에 이대로 물러나려 한다.

'강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내일부터는 상동으로 가게 될 녀석에게 여러 가지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은데.’

김 수석은 강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기로 한다.

팀의 지도부에 있는 까닭으로 강호의 상동 행 결정을 이미 알고 있는 김 수석이다.

그에게 당부의 말과 상동에서 주력했으면 하는 여러 조언들을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물러나는 게 맞는 것 같다.

'강호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너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구나. 손 감독님 밑에서 제대로 배워서 어서 빨리 1군으로 올라와라. 내가 책임지고 너를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강호가 들을 수 없는 마음의 소리를 가슴에 담으며 김 수석은 걸음을 옮긴다.

김 수석이 강호에게서 멀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어이, 강호 후배. 짐 싸다 말고 뭐 하는 거야? 어서 집에 가야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문표였다.

그는 야구공 하나를 소중에 감싸 쥔 채 회상에 잠긴 강호의 어깨를 친다.

문표의 행동에 회상에서 깨어난 강호는 야구공을 백 팩 깊숙이 챙겨 넣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가야죠. 이제 상동으로 돌아가야지요."

강호의 대답에 문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강호 후배가 상동엘 왜 가? 시범경기에서 5할이나 때렸는데 당연히 개막전에 출전하겠지. 안 그래?"

강호의 상동 행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문표로서는 강호의 1군 합류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시범경기 동안 기록한 강호의 타율은 5할 8리.

3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34타점에 27득점, 13개의 도루와 13개의 볼넷을 기록한 상태다.

득점권에서의 펀치력과 장타력, 출루율과 주력, 그리고 타격과 수비 모두를 인정받은 선수가 2군에 내려갈 리는 없다는 것이 문표의 생각이었다.

강호를 바라보는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 중에서 오직 본인만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주 동안은 다시 올 일이 없겠지. 잘 있어라. 1군 무대. 2주 동안 이 악물고 훈련해서 더 좋은 모습으로 올라올 테니까.'

마지막으로 위즈 파크 경기장을 눈에 담은 강호의 걸음이 덕 아웃 밖으로 옮겨진다.

강호는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자신의 1군 콜 업이 약속된 2주보다 빨라질 거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강호의 발걸음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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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표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해 보인다.

"하아암~벌써 해가 져버렸네. 아이고, 빨리 집에 들어가야겠다. 성철 후배, 강호 후배. 우리 약속했던 저녁 식사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이 선배가 너무 피곤해~"

문표는 특유의 너스레로 뒤이어 내리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정말로 피곤이 얼굴에 내려앉은 문표의 표정에 성철이 피식 웃어 보인다.

위즈 파크에서 부쩍 친해지게 된 성철은 문표와 강호, 두 사람 사이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선배님 말씀대로 오늘은 해산하는 게 좋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사직동 근처에서 식사 날짜를 잡으시죠."

"그래, 그래. 성철 후배가 센스가 좋네. 이왕 식사 약속을 잡을 거 사직 구장 근처에서 모이기로 하자. 오늘은 말고. 오늘은 너무 피곤해. 나는 왜 경기 출전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피곤한 거지?"

문표는 재차 기지개를 켜며 자문해 본다.

그의 자문에 대한 답은 문표의 짐을 대신 들고 내린 강호가 해준다.

"나이가 있으시니 까요. 여기 있습니다. 선배님. 짐을 놔두고 내리셨어요."

문표는 나이를 거론하는 강호의 언어 공격에 욱하다가도 그가 가지고 내려준 자신의 짐을 확인하고는 '하하, 고마워'하고 웃음 짓게 된다.

"역시 강호 후배밖에 없어. 내가 가방도 화물칸에 넣어둔 줄 알았는데. 버스 안에 들고 탔었구나. 다들 짐 챙겨서 해산하도록 합시다. 4월 2일에 사직에서 만나요~"

문표는 자신의 짐을 챙겨서 구장 주차장을 떠난다.

사직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 문표였지만, 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강호와 성철은 사직에 남게 되겠지만, 자신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한 감독이 1군 사령탑으로 있는 한 사직에서 내리는 버스를 탈 리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본인이 상동으로 가게 될 것을 잘 아는 또 다른 인물이 픽 웃으며 걸음을 옮긴다.

그는 바로 강호였다.

'나나 문표 선배가 상동에 가는 것은 100%확실하다. 성철 선배가 사직에 남아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겠구나.'

강호는 부러운 시선으로 상철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는 집으로 향하는 길로 걸음을 옮긴다.

그 때 먼발치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호야!"

형의 목소리였다.

강호는 자신을 마중 나온 형의 모습에 환하게 미소 지어 보인다.

"형.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도착하는 지는 어떻게 알았어?"

강호는 반가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다.

동생의 무뚝뚝함을 잘 아는 강수는 씨익 웃어 보이며 답했다.

"척하면 척이지. 야구 선수 동생을 뒀으니까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냐? 강호야, 배고프지? 집에 국밥 사놨다. 같이 가서 저녁 먹자. 오늘은 어디서 안 먹고 왔지?"

강수는 동생의 무거운 백 팩을 넘겨받으며 수고했다며 등을 두들겨준다.

형의 손길을 느끼며 부산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강호.

강호는 그날 밤, 형에게 수원에서부터 가지고 온 홈런 볼을 선사하고는 다음 날이 되어 상동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제 2군 선수 신분으로 돌아왔으니 2군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으잉? 강호 후배?! 상동에는 어쩐 일이야? 손 감독님께 인사드리러 온 거야?"

조금은 늦은 오전 시간, 강호가 상동 구장에서 마주친 인물은 문표였다.

그는 웬일로 일찍 출근하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가 강호를 발견한 것이다.

문표는 시범경기 5할을 때린 강호가 2군으로 내려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 손 감독님이나 코치진에게 인사를 드리러 온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아~역시 우리 강호 후배야. 예의가 있어. 1군 올라가서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이렇게 2군 코치님들께 인사도 하러 오고 말이야. 좋아. 아주 좋아."

문표는 강호의 어깨를 치며 덕담의 말을 건넨다.

그런데 말을 하면서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문표의 시선이 강호의 양 손으로 향한다.

인사를 드리러 온 거라면 비타민 음료나 피로회복 음료 같은 것을 들고 있어야 할 텐데 강호가 양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야구 장비가 들어있는 백 팩이다.

문표의 눈썹이 씰룩인다.

"응? 강호 후배. 혹시?"

문표가 말하는 일곱 글자와 의문 부호에서 그의 심정을 눈치 챈 강호는 피식 웃게 된다.

이런 반응을 기대하며 문표에게는 비밀로 했었는데 막상 그 표정을 보게 되니 웃기기 그지없다.

"저 오늘부터 다시 2군입니다. 선배님. 상동에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이는 강호. 그런 강호의 뒤통수를 뜨악 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문표.

두 사람의 상동 생활은 다시 시작된다.

한 편, 하나 둘 씩 합류하고 있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강호 녀석이 몸을 잘 만들었어. 이제야 조금 야구선수 같은 테가 나는구만."

만족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 그는 2군의 사령탑인 손성조 감독이었다.

그의 곁에는 양용민 3군 총괄이 함께하고 있다.

"반대로 문표 녀석은 더 허술해 졌는데요? 저런 태도로는 상동에서도 살아남기가 힘들겠습니다."

양용민 코치는 창밖에서 소란을 떠는 문표를 보며 장난스러운 평가를 한다.

그의 말이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손 감독은 허물없이 웃어 보일 수가 있었다.

"파하하. 그게 문표의 장점이지 않아? 문표는 저렇게 허술하게 굴다가도 타석에만 서면 승부사가 된단 말이야. 한 감독이 문표와의 앙금을 씻어내기만 한다면 괜찮은 대타 전력을 얻을 수가 있을 텐데. 아쉬운 일이야."

손 감독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시선을 돌린다.

이제 선수들이 돌아왔으니 구상해 두었던 훈련 스케줄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몇몇 선수들에게는 특별한 훈련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 대상자의 얼굴을 방금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손 감독은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한 편, 그 시간. 남들보다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김 비서. 부탁한 자료들 전부 가져와요."

-네, 사장님. 자료 정리가 끝나는 대로 가져가겠습니다.

"뭐하는 거예요. 일 시킨 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자료 출력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죄송합니다. 사장님. 5분 안에 정리해서 들어가겠습니다.

"3분 안에 끝내세요."

일을 시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인터폰으로 비서를 닦달하고 있는 인물은 자이언츠 구단의 사장인 지정만이었다.

그는 시범경기 동안의 모든 자료를 확인한 후 1년 동안의 구단 성적을 예측해보려 한다.

또한 1년 동안 구단이 해야 할 일들을 구상하여 올해의 청사진을 그려보려는 것이다.

"프로야구 구단이 가만히 앉아서 관객들을 기다리는 시대는 벌써 지났어. 적극적으로 팬들을 관리하지 않으면 관객을 잃게 될 거야. 지역 유소년들을 후원하는 일이나 부산 시민들과의 행사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해."

지 시장은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 많았다.

팀 성적과 연계한 행사나 평판이 좋은 은퇴 선수들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행사 계획은 운영 팀과 같은 실무진이 결제를 올리게 되지만 지정만 사장은 이런 사소한 부분부터 수뇌부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팀 성적이 좋을 때는 그에 맞는 계획을,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그것을 대비한 계획을 미리 세워두는 거야. 일 처리는 그렇게 하는 거란 말씀이야."

지 사장은 스스로의 업무 스타일에 만족하며 비서가 가져다줄 자료를 기다린다.

비서에게 3분을 지시했기에 지 사장은 정확히 3분을 재는 스톱워치를 작동시킨 상태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지 사장은 자신의 철두철미함에 스스로 감탄하게 된다.

"일을 할 때는 이렇게 분 단위로 쪼개서 일을 하는 게 능률이 좋아. 암, 그렇고 말고. 그럼 남은 2분 동안 댓글 반응을 데이터로 만들어볼까?"

자신이 하는 행동이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 사장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업무에 집중한다.

가장 먼저 시작한 업무는 팀 기사에 대한 댓글 등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응? 백강호가 개막전 라인업에 들어 가냐고 묻는 질문이 많구만. 하긴 백강호가 시범경기에서 잘 해주기는 했지. 한 감독이 어련히 알아서 개막전 라인업에 넣으려고. 팬들의 걱정이 지나쳐.”

지 사장은 스스로 대답하며 백강호의 1군 합류에 긍정을 표시한다.

원래 야구를 잘 보지 않았던 지 사장이 보기에도 강호의 시범경기 활약은 대단했다.

한 감독이라면 강호를 중심타선에 기용해 봄에 강한 자이언츠의 전통을 이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댓글을 살피던 것을 멈추고 3분이 지났음을 알리는 스톱워치에 눈을 돌린다.

"김 비서. 뭐하고 있어? 3분 지났잖아. 자료 빨리 가져오란 말이야. 사장인 내가 프린트 출력을 직접 해야겠어?!

지 사장은 모니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통화 버튼을 누른 인터폰에 다가가 소리를 지른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별 거 아니라 여기며 넘어간 팬들의 개막전 라인업에 대한 관심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를 미처 알지 못한 채, 부하 직원을 닦달하기 바빴다.

시간은 다시 빠르게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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