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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의 피날레
타석에 오른 강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를 느낀다.
그 중 덕 아웃에서 날카롭게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백강호. 한 방 더 때려내봐. 만루 찬스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내게 보여달란 말이야.'
마음속으로 강호에게 주문을 내고 있는 사람은 한동현 감독이었다.
그동안 강호에게 만루 찬스가 주어진 적은 몇 번 있었다. 만루 기회에서 강호가 기록한 타율은 10할. 모든 만루 찬스에서 안타를 때려낸 것이다.
그러나 중심타선인 3번 자리에서는 만루 기회가 없었다.
이번의 타석에서 중심타선의 강호가 만루의 기회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확인해보려 한다.
"야야, 통닭 그만 처먹고 경기 좀 봐라. 지금 타자가 백강혼데 닭다리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경기를 보란 말이야."
한 편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김진명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곁에 앉은 진수를 타박한다.
그의 핀잔에 진수가 닭다리 살을 급히 넘기며 항변한다.
"아이 씨~임마, 백강호가 설마 또 홈런이라도 치겠어? 왜 먹는데 난리야? 치킨 먹을 때 건들고 그러면 천국 못가!"
"지옥가도 좋으니까 백강호 타점 올리는 거 좀 보라고."
"야, 백강호가 무슨 만능열쇠야? 보통 타자들이 3타석에 한 번 안타 치면 잘 한 거야. 직전 타석에서 홈런 쳤으면 이번 타석에는 한 번 쉬겠지. 진명이 너는 백강호만 나오면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치킨 조각을 튀기며 항변하던 진수는 곧 말을 멈춘다.
멍하게 벌려진 입은 다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위즈 투수의 초구를 받아친 강호의 타구가 외야 펜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왁! 뭐야?! 이번에도 넘기는 거야?"
"완전 홈런 코스인데?"
두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강호가 처음 기록하는 연 타석 홈런을 기대하며 날아가는 공의 방향과 좌측 펜스를 번갈아 바라본다.
터엉!
펜스를 직격하는 타구에 두 사람은 '아'하는 탄식을 내뱉었지만, 홈런이 되지 못한 타구는 안타가 된다.
낙구 지점을 파악하지 못한 위즈의 좌익수가 펜스를 맞고 튕겨 나온 공을 더듬고 말았다.
'이런!'
다급하게 펜스를 맞고 흘러나가는 공을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2루 주자와 3루 주자는 모두 홈에 도착해 있었고 1루 주자 역시 3루 베이스를 지나 홈으로 향한다.
위즈의 좌익수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홈으로 송구한다.
공은 빠르게 홈으로 향하지만, 끝낸 홈에 닿지는 못한다.
홈송구 되는 공을 중간에서 차단한 2루수가 송구 방향을 홈이 아닌 3루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위즈의 2루수는 1루 주자가 홈으로 가는 것을 막기에는 늦었다고 보고, 타자 주자인 강호의 3루 쇄도를 막아보려 했다.
촤하악!
위즈 2루수가 던진 공과 강호의 다리가 거의 동 타이밍에 3루 베이스로 향한다.
공을 받은 위즈 3루수가 강호의 발목을 태그한다.
타악.
발목을 글러브로 치는 소리와 함께 3루수가 글러브를 들어올린다.
3루심의 판정을 요구하는 그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강호를 태그한 3루수 본인이 느끼기에도 태그보다 강호의 발이 빨랐다고 보는 것이다.
"세이프."
3루심이 나직한 목소리로 세이프 콜을 한다.
주자를 일소하는 강호의 3타점 싹쓸이 3루타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우와~역전이다!"
"백강호! 잘했다! 이참에 사이클링히트까지 해라!"
"백강호가 다 해먹는구나! 백강호!"
강호가 선 베이스가 공교롭게도 3루 베이스인 까닭으로 자이언츠 팬들의 환호와 찬사를 정면에서 받게 된다.
강호는 그런 팬들을 향해 검지를 펼쳐 보이며 답례하고, 3루 베이스 코치에게 보호대와 장갑 등을 벗어 건넨다.
"아깝네, 강호야. 타구가 조금만 더 떴으면 넘어가는 거였는데 말야."
3루 베이스 코치의 말에 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고개를 내젓는다.
왜냐하면 조금 전의 3루타는 '3루타'아이템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안타였기 때문이다.
타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향했던지 3루타로 기록되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으로 2회 만에 6타점을 때려낸 된 거야. 공격에서만큼은 중심 타선의 도리를 다 했어.'
만족을 하게 된다.
한 경기 동안 한 타자가 6타점을 기록하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경우다.
그런데 그 드문 기록을 2회 초 공격에서 완성한 상태다.
아무리 아이템을 사용한 기록이라도 기분이 나쁠 리 없다.
그리고 기분이 좋은 것은 강호뿐만이 아니다.
덕 아웃에서 지켜보던 코칭스태프들 역시 팬들처럼 환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허헛, 강호가 다 쓸어 담았네요. 진웅이가 1회에 무너져서 어렵게 가나 했더니 이렇게 역전을 시켜주네요."
여민석 투수코치의 말에 곁에 있던 정호종 타격코치가 답을 한다.
타격코치인 정호종은 강호가 때려낸 두 번의 장타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강호가 조금 전에 친 3루타는 정말 좋았어. 앞전 타석의 홈런보다 더 잘 맞은 타구였단 말이야. 스윙부터 시작해서 배트 컨트롤까지 완벽했어. 비거리도 좋았고. 타구 각도가 1도만 높았어도 홈런이 됐을 거야. 강호의 타격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야."
강호를 칭찬하는 정 코치의 말에 여 코치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4할이 넘는 타자가 더 좋아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러다 5할 찍는 거 아닐까요?"
여 코치의 장난스러운 가정은 단지 가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연타석 안타를 때려낸 강호의 타율은 종전의 4할 8푼 3리에서 정확하게 5할을 찍은 상태다.
시범경기 81타석 만에 62타수 31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강호였다.
아직 코칭스태프들은 모르고 있는 강호의 5할 기록을 해설위원석에 앉은 두 인물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설명 하고 있다.
"와아, 백강호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지금 3루타를 기록하면서 시범경기 타율이 5할이 됐어요. 이게 말이 되는 기록입니까? 만약에 지금의 경기가 시범경기가 아니라 정식 경기였으면 엄청난 기록인 거예요."
해설위원석의 양현준 위원이 목소리를 높인다.
양 위원이 강호가 때려낸 3루타를 다각도로 분석하며 설명을 한 뒤였다.
그런데 강호가 이번 안타로 5할이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더욱 흥분하며 해설을 이어나간다.
"이 정도면 개막전이 시작되더라도 백강호 선수의 자리는 확실해 지네요. 2루수든 유격수든 우익수든 상관없이 백강호 선수가 1군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당연해진 거예요."
양 위원의 장담에 곁에 앉은 조 캐스터가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음향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질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양현준 위원이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백강호 선수가 개막전 이후에도 지금의 기록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조 캐스터의 질문에 양 위원이 웃어 보인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힘들겠지만, 4월 한 달 간은 4할 대의 타율도 기록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백강호 선수의 타격이 최근 들어 더 뜨거워졌거든요.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면 못해도 2주 동안은 고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체력 관리 문제죠."
양 위원은 강호가 정식경기에서는 타율이 많이 떨어질 것으로 보았다.
5할 타율은 고사하고, 4할 타율을 기록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범경기 여건상 보기 드문 고타율을 기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개막전 이후까지 이어지리라 보는 전문가는 드물 것이다.
"다음 타자인 자이언츠의 4번 타자, 황제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조금 전의 3루타로 백강호 선수의 시범경기 타점이 32타점이 됐어요. 시범경기 동안은 리그 1위 기록입니다. 시범경기에서 유일하게 30타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되는군요."
"30타점이요? 하하, 백강호 선수 대단하네요."
"만약 지금의 타점 생산 능력이 개막전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200타점도 가능한 페이스입니다."
200타점을 논하는 조 캐스터의 말에 양현준 위원이 순간 '허!'하고 헛웃음을 짓는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기록에 부정의 말부터 나가게 된다.
"KBO역사가 이어지는 한 200타점이 완전 불가능한 기록은 아닐 겁니다. 저도 그런 대기록이 달성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거론하기에는 좀 많이 이른 것 같습니다."
양 위원의 해설을 빙자한 핀잔에 조 캐스터 역시 자신이 너무 오버한 것을 인정하며 대답했다.
"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백강호 선수의 이어지는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자, 황제인 선수의 기록도 살펴보겠습니다."
조 캐스터는 민망했는지 황제인 선수의 기록을 나열하며 중계를 이어간다.
자신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알지 못한 채 강호는 발을 올리고 있던 3루 베이스에서 발을 뗀다.
위즈 측에서 투수를 교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호에게 6타점을 허용하면서 2회까지 6실점한 선발 투수를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제인 선배. 초구입니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세요. 땅볼이 나와도 무조건 홈으로 파고 들 테니까요.'
강호는 투수 교체 타이밍에 배터 박스 밖에 나와 연습 스윙을 하는 제인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덕 아웃 쪽의 사인을 확인하던 제인은 강호의 날카로운 눈빛을 느끼고는 3루 베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려본다.
'강호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말 안 해도 다 알겠다. 그러니까 그만 좀 노려봐. 내 얼굴에 구멍 나겠어.'
강호의 눈빛에서 마음을 읽어낸 제인은 피식 웃어 보인다.
의욕 넘치는 후배의 눈빛이 밉지가 않다.
자신도 한 때는 저렇게 투지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강호의 투지는 자신의 루키 때보다 더 강렬한 것이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
'바뀐 투수가 우투수라면 강호 네가 투수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어줘. 나는 패스트볼만 노리고 타격할 테니까.'
제인은 패스트볼 타이밍으로 스윙을 맞춰보며 강호에게 시선을 보낸다.
그러자 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인다.
제인은 그 모습에 '정말 내 마음을 알아들은 거 아냐?'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좋아. 우투수로 바뀌는구나. 우투수가 세트 포지션을 잡으면 시야에 내 모습이 잡힐 수밖에 없어. 리드 폭을 많이 가져가서 투수의 멘탈을 흔들자.'
신기하게도 강호의 생각은 제인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교체된 위즈의 투수가 혼란을 느끼도록 투수의 시야에서 지속적으로 움직임을 보인다.
연습구를 마치고 세트 포지션에 들어갔던 투수는 당연히 강호의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휘익. 탁.
"세이프."
바뀐 투수가 첫 번째로 던진 공은 견제구였고, 3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한다.
이미 귀루 해있던 강호는 투수를 슬쩍 바라본 후, 다시금 리드를 가져간다.
3루수에게 공을 돌려받은 투수가 그런 강호의 행동에 눈썹을 찡그리는 모습이 보인다.
'신경 쓰이지? 신경 쓰일 거야. 내가 더 신경 쓰이게 해 줄 테니까 견제구를 더 던져봐.'
강호가 도발의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세트포지션에 들어간 투수를 노려본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견제구가 날아왔다.
연속으로 던져진 견제구에 강호의 옷이 흙먼지로 더럽혀질 무렵, 3루 관중석에서 항의와 응원을 담은 함성이 터져 나온다.
"마! 마! 마!"
위즈 투수의 견제구를 탓하는 일사불란한 응원 소리에 강호는 흐트러진 옷을 재정비하고는 다시 리드 폭을 벌린다.
'백 번을 던져봐라. 내가 잡히나.'
강호는 자신감 있게 리드를 가져간다.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정확히 신장보다 두 발짝 더 리드한 강호는 귀루 했을 때 한 발짝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해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것만으로도 베이스를 터치할 수 있을 정도로만 리드를 하고 있었다.
투수가 의식하는 것보다 리드 폭이 적은 것이다.
그럼에도 투수가 강호를 신경쓰는 것은 지속적으로 홈으로 뛸 모션을 취하는 강호의 움직임에 있었다.
"강호 녀석. 제대론데요? 저런 주루 센스는 어디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강호의 리드 자세를 지켜보던 안준영 주루코치가 입을 연다.
그의 말에 박한중 수비코치가 답했다.
"주루는 주루코치인 안 코치한테 배웠겠지. 강호 주력이 11초대라며? 그 정도 주력이면 저런 자신감 정도는 있어야지."
안 코치의 너스레에 박 코치가 덕담으로 화답한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드디어 바뀐 투수의 초구가 던져졌고, 초구를 노리고 있던 제인의 배트에 걸리고 만다.
따악.
타격음과 함께 타구 방향을 확인한 강호가 곧장 홈으로 달린다.
깊은 땅볼 타구를 잡은 유격수가 강호의 빠른 스타트에 홈 송구를 망설이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위즈 유격수가 던진 공이 1루로 향한다.
거기서 이변이 일어나게 된다.
"세이프!"
1루심이 우렁찬 목소리로 세이프를 선언한 것이다.
위즈 유격수가 홈 송구를 망설이는 짧은 시간동안 부리나케 달린 황제인의 발이 빨랐다.
기록원들은 지금의 상황을 실책이 아닌 황제인의 내야 안타로 기록하게 된다.
강호의 빠른 발 덕분에 얻은 1타점이었다.
'강호 녀석 덕분에 안타 하나 건졌네.'
제인은 1루 베이스 코치와 주먹을 마주치며 피식 웃는다.
강호의 열정적인 플레이가 자신의 초심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그것이 내야 안타로 연결된 셈이다.
지금의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강호에게 고맙기도 해서 자꾸만 조금 전의 상황을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강호 같은 녀석이라면 팀 성적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정식 경기에서도 잘 부탁한다. 백강호.'
제인의 눈빛이 득점을 올린 후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호의 등으로 향했다.
제인은 강호의 믿음직스러운 저 뒷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번 타자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강호의 질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심판의 콜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창작의 요소가 있습니다.
예전 어느 심판의 tv인터뷰 때 포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볼 라이트, 볼 레프트'등 볼이 존의 어디로 벗어나는지를 말해주는 심판도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판도 여러 유형이 있어서 친절한 심판도 있고, 불친절한 심판도 있을 거라는 가정에서 온 창작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_^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식사 든든히 챙겨드시고, 무더위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점심 먹기 전에 한편 투척하고 갑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