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60화 (6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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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의 피날레

26일 화요일의 경기는 자이언츠의 완승으로 경기가 종료된다.

강호는 5타석 3타수 2안타, 홈런 하나에 3타점과 2득점, 그리고 도루 하나를 기록하며 중심 타선에서의 역할을 완수했다.

자이언츠는 강호의 맹활약과 선발인 박세준의 호투로 8대 1승 완승을 따내게 된다.

강호가 때린 투런 홈런이 결승타로 기록된 것이다.

"야들아, 뭐하고 있어? 수원에 왔는데 수원 갈비나 먹으러 나가자~"

시끄러운 목소리와 함께 숙소 방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문표였다.

숙소에는 강호와 진만을 시작으로 택근과 인태, 대우와 민경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들어온 문표의 곁에는 백업 우익수인 유성철이 함께 하고 있다.

성철을 대동하고 강호의 방을 찾은 문표는 순간 어이를 상실한다.

"너희들 뭐하고 있는 거야? 수원까지 와서 이렇게 재미없게 굴 거야?"

문표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핀잔을 준다.

하지만 그 말에 크게 미안해하는 이는 없다.

그저 '오셨습니까, 선배님?'하고 인사하는 후배들의 모습만 확인하게 된다.

"문표 선배님. 성철 선배님. 저희 방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정말 수원 갈비를 먹자고 오신 것은 아니겠죠?"

모두를 대신해서 강호가 문표의 말에 답한다.

방에 머물고 있던 여섯 명의 선수들 중에서는 강호가 가장 연장자다.

강호가 25살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20대 초반이어서 한참 선배인 문표에게는 그저 루키들로만 보인다.

"응. 정말 갈비 먹자고 찾아온 거야. 나가자. 강호 후배."

"설마요? 지금 시간이 열시가 넘었습니다. 숙소를 벗어났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실려고요?"

"뭐 걸리기야 하겠어? 운 좋으면 안 걸리는 거지."

강호의 물음에 답하면서도 안 걸릴 자신은 없는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강호의 곁에 앉는 문표였다.

성철 역시도 강호의 곁으로 이동 한다.

"선배님. 말이 됩니까? 두 분 선배님하고 저희들이 다 나가면 여덟 명이나 됩니다. 안 걸릴 수가 있겠습니까?"

강호는 목에 끼고 있던 VR기를 풀면서 문표에게 핀잔을 준다.

그 말에 대답하는 문표는 강호의 핀잔에 대한 답은 피하면서, 다른 주제로 화제를 전환한다.

"갈비는 때 돼서 먹기로 하고. 너희들 이건 자꾸 어디서 나는 거야? 여기가 무슨 가상현실 체험실이야? 원정 왔을 때마다 이렇게 숙소에만 처박혀 있을 셈이야?"

문표는 강호의 목에 걸린 VR기를 흔들면서 한탄해 본다.

단지 강호가 보고 있던 VR기만이 아니었다.

진만과 인태, 민경까지. 총 네 개의 VR기로 선구안 훈련 어플을 가동하고 있다.

다 큰 장정 여섯 명이 모여 증강현실 안경을 낀 채로 가상훈련을 하는 모습이라니.

문표는 자신의 신인 시절과 비교해 확 달라져 버린 신인들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 요즘 애들은 너무 최첨단이야. 옛날에는 방망이 하나 들고 숙소 옥상에 올라가서 동이 틀 때까지 휘두르고 그랬었는데. 안 그러냐, 성철아?"

"선배님. 저도 26살밖에 안 됐습니다. 강호하고 1살 차이밖에 안 납니다."

"뭐야? 너 지금 강호 쪽으로 붙겠다 이 말이야? 우리 성철 후배가 박쥐같이 내 쪽에 붙었다가 강호 후배 쪽으로 붙겠다는 말이지."

"선배님, 박쥐라니요. 그냥 옛날 이야기를 하기에는 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문표의 핀잔에 정색하며 답하는 성철, 문표는 그런 성철에게 장난치기를 포기한다.

대신 강호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강호 후배. 오늘 경기의 MVP잖아. 동료들에게 한 턱 쏘는 것도 없어?"

문표의 말에 강호는 처량한 표정을 연기하며 답한다.

"선배님, 저 이번 달 월급 130만원 나왔습니다. 그 돈도 글러브 산다고 다 써버렸어요. 아시지 않습니까? 육성군 선수 월급은 최저연봉이 안 된다는 거 말입니다."

강호의 한탄에 문표는 입을 다물고 만다.

그의 말대로 육성군 선수는 KBO가 정하는 최저연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육성군 선수들이 1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형편이다.

특히나 강호는 이번 달에만 글러브를 세 개나 구입한 상태다.

외야 전용 글러브와 2루수 글러브, 그리고 혹시 몰라 구입한 1루수 글러브까지.

월급이 남아날 턱이 없다.

"아이고, 말을 말자."

결국 문표는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그런데 잠자코 문표의 곁에 있던 성철이 VR기로 훈련하는 후배들을 보며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성철이 강호를 향해 말을 걸어온다.

"근데 이걸로 뭐하는 거야? 야구 게임이야?"

VR기에 흥미를 보이는 성철의 행동에 침대에 걸터앉은 채 선구안 훈련 중이던 진만이 대신 대답한다.

말 수가 없고 사회성이 약했던 진만이었지만, 강호를 포함한 선수들과 어울리게 되자 성격이 조금은 변해 있었다.

"성철 선배님. 이거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VR기로 하는 선구안 훈련인데 말입니다. 170km 이상의 공도 설정할 수 있습니다."

"170? 어플로 하는 선구안 훈련이라고?"

"네. 어플 가격이 99달러나 됩니다. 비싼 만큼 효과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한 번 써 봐도 될까?"

"제 걸로 한 번 해보십시오. 재밌습니다."

성철은 어느새 진만에게 다가가 선구안 훈련 체험에 들어간다.

그런 성철을 바라보던 문표는 할 말을 잃었다.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올해는 재밌게 놀기는 글렀구만. 죄다 범생이들 뿐이니. 쓰읍.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러 가자.'

강호가 이끄는 야구 모범생 무리에 성철까지 가세해 버리자 문표는 우거지상이 되어 발걸음을 돌린다.

그런 그의 등 뒤로 강호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선배님! 어디 가십니까? 저희랑 놀다 가십시오."

강호의 부름에도 문표는 답이 없다.

그저 속으로 강호를 욕할 뿐이다.

'그게 어딜 봐서 노는 거야? 강호 후배는 다 좋은데 삶의 여유가 없어. 여유가.'

대답 없이 발걸음을 옮긴 문표는 결국 자신의 침대 위로 몸을 던진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어느새 시범경기의 마지막 일정인 27일의 해가 뜨고 있었다.

'오늘은 한 감독이 제대로 날을 잡았구나.'

김민철 수석은 뒷짐을 진 채로 덕 아웃에 붙은 라인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김일군 작전코치가 다가온다.

두 사람은 자이언츠의 한 때를 함께했던 클린업트리오 중 2인이다.

김민철 코치는 4번 타순을, 김일군 코치는 5번 타순에서 자이언츠의 90년대 타선을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보셨습니까? 김 수석님. 휴고가 1번에 들어가 있던데요."

김일군 코치가 라인업에 대한 말을 꺼낸다.

그의 말에 김 수석이 피식 웃어 보인다.

"왜? 휴고가 발 하나는 빠르잖아. 1번에 들어가면 도루 하나는 기똥차게 해주겠네."

김 수석은 한 감독의 라인업을 옹호하는 것처럼 말하며 조롱의 말을 하게 된다.

출루율이 3할 근처인 타자를 발만 빠르다고 1번 타순에 놓은 한 감독의 실험을 비난하고 싶다.

"휴고는 그렇다 치고 상위 타선에 뒀던 중호를 9번으로 돌리는 기용이 정상적인건지 의문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김일군 코치는 앞니로 혀를 물어 보이며 불편한 심사를 드러낸다.

김 수석 역시 '으음'소리로 불편한 심사를 표현하고는 말을 잇는다.

"지타 자리에 추정혁은 무슨 짓인지 알 수가 없어. 김 코치. 이게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지타 자리에 2할 2푼을 치는 2군 선수를 넣은 것은 좋다 이거야. 그런데 지타로 기용할 거면 전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타순에 기용을 해야지. 8번이라니. 세상에 지명타자를 8번 타순에 놓는 감독이 어디 있어? 4번에는 못 넣더라도 6번에는 둬야할 거 아냐?"

김 수석은 말을 하면서 분노가 끌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보통의 경기도 아니고, 시범경기의 마지막 경기였다.

그런 경기에서까지 선수를 테스트해 본다고 말도 안 되는 라인업을 들고 나온 한 감독을 욕하게 된다.

"그래도 한 감독이 아예 질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준오를 2번에 넣고, 백강호와 제인이, 민수는 클린업에 넣었네요. 2번부터 7번까지는 그래도 봐줄만 합니다."

김 수석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김 코치가 흥분을 가라앉힐 만한 말로 달랜다.

그의 말대로 의문투성이인 8, 9, 1타순과는 다르게 클린업부터 시작한 7번 타순까지의 라인업은 짜임새가 있어 보인다.

김 수석에게 그 말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며 낮은 어조로 입을 연다.

"으흠. 경기 결과가 승리로 끝난다 해도 이런 라인업을 개막전 이후까지 들고 나오게 해서는 안 돼. 한 감독에게 제동을 걸만한 제동 장치가 필요해."

김 수석은 대화를 정리하며 몸을 돌린다.

한 감독의 목에 제동 장치를 걸어주고 싶었지만, 딱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무시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다시 시간은 흘러 경기가 예정된 오후 1시를 향해 시계바늘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라인업 꼬라지가 왜 이래? 왜 8번에 있던 휴고가 1번으로 가고 지타 자리에 추정혁이 들어간 거야? 그것도 8번으로."

강호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린다.

일부 주축 선수들이 코칭스태프가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모습이 보인다.

타격 준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오른 휴고와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운 추정혁을 주제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타 자리에는 원래 중석 선배님이니까 휴식 차원에서 다른 선수를 기용한 건 좋은데 왜 추정혁이야? 문표 선배나 2군의 유동근을 지명타자로 기용해야하는 게 맞지 않아? 타율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정혁이 보다는 문표 선배지."

"낸들 알겠어? 한 감독 라인업이 이랬던 게 어디 한 두 번이어야지. 백강호처럼 포텐 터지는 애들도 있으니까 2군 선수들을 계속 올려보는 거지 뭐."

"강호같이 터지는 애들이 많을 것 같았으면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이 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겠어? 안 터지니까 비싼 외국인 선수들을 사오는 거지. 한 감독은 왜 그걸 모르는 거야?"

베테랑 선수들의 귓속말이 강호의 귓속을 파고든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표출되던 베테랑들의 불만이 이제는 공공연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강호는 불안감을 느낀다.

'1군 분위기는 점점 나빠지겠구나. 이런 분위기일 때 상동으로 내려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되나?'

강호는 딱히 베테랑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럴 연륜이나 친분이 없는 점도 있지만,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1번 타자인 휴고가 이미 타석에 섰으니 3번 타순인 강호 역시 타석에 설 준비를 해야 했다.

'아직 남아있는 아이템의 숫자가 많아. 오늘이 시범 경기 마지막이니까 인상에 남는 활약을 해주어야겠지?'

배트를 들어 올린 강호는 속으로 남아있는 아이템의 숫자를 가늠해 본다.

인벤토리에는 여전히 많은 수의 아이템이 보관되어 있다.

총 50개가 넘는 아이템들이 남아있었다.

그 중 홈런은 7개가 남았고, 특히 호수비 아이템의 수는 14개나 된다.

호수비 같은 경우에는 불안한 우익수 포지션에 대비하여 많이 사둔 것이었는데 프리마켓에 다녀온 직후부터 내야에 기용되면서 사용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상태다.

'이 정도 아이템이면 사이클링 히트는 기본이야. 운이 따라준다면 사이클링홈런도 가능해.'

순간 사이클링홈런을 떠올렸던 강호는 속으로 고개를 젓는다.

아까운 홈런 아이템을 시범경기에 쏟아 부을 수는 없다.

하나 정도 사용하는 것은 괜찮아도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아이템이 없어서 불안감에 시달렸었는데. 이제는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많아서 고민하게 됐구나. 이것 참.'

강호는 격세지감을 느끼며 그라운드 위로 오른다.

상대 팀 투수의 제구력이 흔들리는 것인지 첫 타자인 휴고부터 몸에 맞는 볼이 나왔다.

2번 타자인 전준오가 타석에 섰으니 대기 타석에 올라 스윙 연습을 하는 제스쳐라도 보여야 했다.

아이템을 사용해 편하게 타격을 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납득할 수 있는 신인의 모습을 보여야하는 것이다.

'첫 타석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첫 타석부터 홈런을 때려낼까? 아니면 2루타 정도를 때려내서 팀의 기회를 연결시킬까?'

타격 상황에서의 아이템 사용을 고민해 본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고민이 된다.

내일 날짜로 2군에 내려가게 되면 1군 콜 업까지는 2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4월 중순에 콜 업이 이루어진다면 4,5일 정도 1군 경기를 치룬 후, 다시 프리마켓의 장이 열릴 것이다.

오늘 경기에서는 홈런을 제외한 아이템은 아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따악.

그 때 호쾌한 타격음이 강호의 이목을 끈다.

2번 타자인 전준오가 깔끔한 중전 안타로 팀의 첫 안타를 신고하는 모습이었다.

휴고의 발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중견수 코앞에 떨어진 안타로는 3루까지 갈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휴고는 아쉬워하며 2루 베이스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무사에 주자 1,2루 상황. 강호가 타석에 들어선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이템 사용을 물어보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시야에 뜬다.

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지고 있는 가운데 강호가 씨익 웃어 보이며 시스템의 물음에 답을 한다.

'물론이지.'

이미 이번 타석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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