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59화 (5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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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의 피날레

1루 베이스로 향하고 있는 강호는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방금 때려낸 투런포는 아이템을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내 힘으로 홈런을 때려낸 거야?'

강호는 대답 없는 자문을 하며 1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의 시선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홈런 시그널을 해 보이는 3루심의 모습이 보인다.

확실한 홈런 선언이었다.

'내가 홈런을 때린 거야? 그것도 첫 타석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강호의 표정이 변한다.

자신이 때려낸 홈런에 당황하던 기색은 사라지고, 기쁨의 미소가 자리하게 된다.

시범경기에서 하나의 홈런을 기록하고는 있었지만, 아이템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번 시즌 처음 만들어낸 홈런이었다.

정식경기 홈런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니지만, 강호에게만큼은 의미가 남다른 홈런이다.

'내게도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장타력이 생긴 거야. 분명해!'

강호는 속으로 환호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때려냈었던 홈런 중에 가장 호쾌한 홈런을 방금 때려낸 것이다.

그동안 기록한 2군 통산 3개의 홈런은 모두 펜스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행운의 홈런이었다.

구장의 펜스가 1군 경기장보다 짧은 2군 경기장이었기에 홈런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들이다.

그런 이유로 강호가 때린 3개의 홈런은 코칭스태프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었다.

오늘 기록한 투런 홈런이 강호의 프로 경험에서 가장 완벽하게 때려낸 홈런인 셈이다.

'조금 전의 타격은 헛스윙이 되도 좋다는 심정으로 휘두른 풀 스윙이었어. 중호 선배에게 볼넷을 내준 투수가 내게는 첫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올 거라는 가정에서 어퍼 스윙으로 휘둘렀었어.'

강호는 2루 베이스를 밟으며 홈런을 때려낼 때의 감각을 복기하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올 시즌 처음으로 때려낸 홈런이다.

손끝에 홈런을 때린 감각이 남아있을 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분명히 좌익수 플라이가 되었을 거야. 라인드라이브 성으로 뻗는 타구가 펜스까지 뻗지 못했을 테니까.'

과거 잘 맞은 타구들은 대부분이 외야수 정면의 플라이가 되고 말았다.

홈런은커녕 안타로 연결되는 타구도 드물었다.

조금 전의 공은 과거의 본인이었다면 좌익수 정면의 플라이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프리마켓 시스템 덕분에 파워가 급성장한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강호의 발은 어느새 3루 베이스를 지나고 있다.

'지금의 파워 스탯이 60이야. 만약 파워 스탯이 70대로 올라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호는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60의 파워 스탯으로 이렇게 깔끔한 홈런을 때려낼 수 있다면 파워가 70이상이 되면 어떤 타구를 날릴 수 있을 것인가.

또 80을 찍게 되면 어떻게 달라져 있을 것인가.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여어~강호! 홈런 좋았어. 시범경기 두 번째 홈런이지?"

"잘 노렸어! 제구가 흔들리는 투수의 공은 초구를 노리는 게 맞아. 잘 쳤어!"

코칭스태프의 칭찬에 일일이 하이파이브로 응수하며 강호는 덕 아웃으로 들어선다.

'이쯤 되면 목소리가 들릴 때가 된 것 같은데?’

강호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환영을 받으며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때 마침 기다리던 목소리의 주인이 다가온다.

"이야~우리 강호 후배. 하루가 다르게 타격이 좋아지네. 사인볼을 교환한 보람이 있어!"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이는 문표였다.

그는 과거 강호와 맞교환했던 사인볼을 거론하며 강호의 헬멧을 두들긴다.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강호여서 이 정도는 아프지 않았지만, 괜히 아픈 듯 연기하며 너스레를 떤다.

"아픕니다. 선배님. 너무 세게 때리는 거 아닙니까?"

"모르는 소리 하지 마. 홈런 친 타자들은 더 세게 때려줘야지 또 홈런을 칠 수가 있는 거야. 다음 번 타석에 섰을 때 내가 헬멧을 내려친 만큼 투수의 공을 갈겨버려. 그럼 올해 30홈런도 문제없어."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될 건 뭐야? 믿어봐. 이 선배가 어디 헛소리하는 거 봤어?"

문표의 호언장담에 강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자주 봤는데요. 입만 열면 헛소린데 어떤 거부터 지적해 드릴까요?'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벤치에 앉는다.

그런데 벤치 근처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강호가 앉는 벤치는 주로 문표와 스무 살 루키들이 앉는 벤치였다.

새로 자리 잡은 선수는 그들과는 접점이 없는 인물이다.

"강호야, 홈런 축하한다. 초구를 노린 게 적중한 것 같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성철이었다.

그는 94년생으로 올해로 26살이 된다. 강호보다 1살 많은 선배다.

강호와 함께 2군에서 올라온 성철은 휴고가 부진으로 빠지면서 유력한 우익수 자원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강호가 우익수로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휴고마저 돌아오자 성철의 자리는 공중에 뜨고 만다.

'올해도 안 되겠구나. 1군 올라가기가 미치도록 어렵네.'

성철은 거의 포기 단계에 이른다.

2군 무대에서 3할 5푼을 치는 타격도, 수비 능력도, 빠른 주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상동으로 내려갈 날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그런 성철에게 이변이 생겼다.

"성철아, 휴고가 개막전 라인업에 이름 올리면 네가 백업으로 엔트리에 등록될 거야. 시범경기 때는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정식 경기에는 기회가 주어질 테니까 부지런히 몸을 만들어라."

뜻밖의 말이었다.

말을 하는 당사자가 1군 수석 코치인 김민철이었기에 믿지 않을 수는 없다.

성철은 떨리는 심정으로 확인 차 물었다.

"정말입니까? 코치님. 제가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다고요? 1군에 말입니까?"

"왜 싫으냐? 싫어도 어쩔 수 없어. 1군 외야 자원 중에 민아하고 재호가 있지만, 우익수 자원으로 쓰기 애매해졌거든. 한 감독도 너를 백업 자원으로 콜 업 시킨다고 하니까 준비를 잘 해두도록 해."

김 수석이 건넨 말은 결국 한 감독의 결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성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게 된다.

'됐어!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오는 구나.'

성철은 기뻐한다.

백업 수비수로 등록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유망주로 7년을 구르며 26살이 된 성철이다.

이런 기회라도 온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런 감사한 마음은 강호에게로 옮겨졌다.

강호가 우익수 자리에서 내야로 이동하게 되며 자신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 여긴 것이다.

'처음에는 강호가 미웠었어. 강호로 인해 유력해 보이던 1군 콜 업이 멀어지게 되었으니까. 질투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 하지만 시범경기가 끝나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강호의 포지션 이동으로 내가 덕을 보게 되는구나. 미안했다. 백강호.'

성철은 강호에게 한 번도 표현해 본적 없는 질투와 미움,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털어내는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상대 투수가 제구력이 흔들리는 것을 노린 게 맞지?"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는 성철. 강호는 그의 웃는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을 받게 된다.

'성철 선배 입장에서는 그동안 내가 많이 미웠을 텐데.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니까 마음이 홀가분하구나.'

강호는 성철이 표현하는 사과와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동안 성철의 질시를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거론할 수는 없었다.

프로선수들에게 경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의 편린들을 모두 말하기 시작한다면, 운동선수는 여가 시간을 말싸움으로 모두 허비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프로선수들은 뻔뻔할 필요가 있었다.

미안한 부분이 있어도, 탓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았다.

"네, 선배님. 중호 선배에게 볼넷을 줬으니까 저에게는 초구에 카운트를 잡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거라 봤습니다. 구종은 포심이고 말입니다."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철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았다.

화해의 손을 내미는 연장자에게 불편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기회에 관계가 어긋났던 성철과 관계 개선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스윙 궤적도 평소하고는 다르던데? 대만에서 프랑코 코치한테 배운 거야?"

"네, 맞습니다. 문표 선배님하고 택근이도 같이 지도를 받았습니다."

"어쩐지 스윙 폼이 프랑코 코치가 강조하는 대로 움직이더라 했어. 좋은 타격이었어."

성철은 강호의 스윙을 칭찬하며 그의 어깨를 두들긴다.

하나의 홈런이 촉매제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어쩌면 운동선수들만이 가진 감정교류 방법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1회 초 공격이 끝날 때까지 대화의 꽃을 피운다.

잠시의 시간은 지나고, 누군가가 강호의 곁으로 다가와 글러브를 건넨다.

"강호 선배님. 수비 나가셔야죠. 유격수가 늦어서야 되겠습니까?"

글러브를 건네며 말하고 있는 사람은 안민경이었다.

오늘 안방마님 자리에는 캡틴인 강민수가 출장하고 있었기에 민경은 벤치를 지키고 있다.

강호는 자신의 글러브를 챙겨준 민경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전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백업으로 이름이 올라간 성철은 벤치에 남게 되었지만, 개막전 라인업에 들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은 없어보였다.

"잘 다녀와라. 웬만하면 히어로즈 전에서처럼 멋진 거 하나 보여주면 좋고."

성철이 응원의 말로 강호를 보내준다.

강호는 글러브를 들어보이며 대답을 대신한다.

오랜만에 유격수 자리에 위치하게 된 강호는 가장 먼저 마운드를 살핀다.

터엉.

포수의 미트를 때리는 호쾌한 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이미 투런을 때려낸 까닭에 강호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오늘 경기에서는 더 이상의 타격을 보여주지 않아도 제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운드에 오른 선발 투수의 모습까지 확인하니 마음이 더욱 가볍다.

'오늘 선발은 세준이었지. 이번 경기는 쉽게 가져올 수 있겠구나.'

강호는 오늘 경기에서의 낙승을 예상하게 된다.

왜냐하면 마운드에 오른 투수가 박세준이기 때문이었다.

95년생인 박세준은 강호와 동갑내기 투수다.

하지만 강호와는 걷는 길이 전혀 다른 선수일 것이다.

2015년 위즈에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되어 넘어온 세준은 2016년부터 본격적인 포텐을 터뜨리게 된다.

외국인 투수들이 무너질 때에도 선발 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자이언츠가 사랑하는 안경 낀 에이스의 계보를 잇는다.

자이언츠의 한국인 투수 중에서는 세준이 에이스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1선발인 지터가 2군으로 내려간 지금, 라일리가 에이스의 계보를 넘겨받았어. 하지만 우리 팀의 에이스는 라일리가 아니라 세준이로 봐야 해. 성적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강호는 세준을 실질적인 에이스로 보고 있었다.

그 의견은 강호만의 것이 아니라 자이언츠 선수단 대부분의 의견이다.

세준의 시범경기 성적은 4경기 선발 출장에 24와 2/3이닝 동안 5자책점을 기록하며 방어율이 고작 1.83밖에 되지 않았다.

패배 없이 3승만을 기록한 세준은 이제 어엿한 에이스로 성장해 있는 것이다.

모든 팬들이 기대했던 박세준의 성장이었다.

'부럽다고 해야 할까? 세준이는 위즈에서 넘어온 이후로 구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를 받으면서 에이스의 길을 걸어 왔어. 데뷔 때부터 팬들의 기대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성장했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야구를 하는 녀석이야.'

부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세준이 가진 기량과 실력, 그리고 야구 인생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악마와 계약을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미 강호는 악마와의 계약보다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세준이 첫 타자에게 초구를 던질 무렵, 어김없이 뜨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강호는 미소 짓게 된다.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그래. 맞아. 내게는 프리마켓 시스템의 도움이 있으니까. 어쩌면 세준이가 가진 재능보다 내가 얻게 된 행운이 더 큰 것일지도 몰라.'

마음을 다 잡으며 정신을 집중한다.

시스템이 예고한 타구가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안타를 허용하고 만다.

따악!

공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강호가 몸을 날린다.

그는 마치 용수철처럼 허공으로 솟아올라 외야로 빠져나갈 듯이 뻗어져 나가는 타구를 낚아챈다.

타악.

간발의 차이로 강호의 글러브를 파고드는 타구는 글러브 속에서 몇 바퀴나 회전을 한 후에야 완전히 잡아낼 수가 있었다.

타구 스피드가 엄청난 타구였던 것이다.

강호는 바닥에 착지와 동시에 볼을 꺼내 2루심에게 내보인다.

"아웃."

2루심의 침착한 아웃 콜이 있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된 관중들의 함성이 뒤따른다.

"와아!!"

"나이스 캐치!"

"백강호, 최고다!"

팬들의 성원은 투수인 세준이 아니라 강한 타구를 잡아낸 강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세준과는 다른 강호의 야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57편에서 혼동이 되는 버스 하차 장면과 강수와 강호의 대화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독자님들의 관심과 응원에 큰 힘을 내고 있습니다.

더욱 섬세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집중하겠습니다.

점심 먹기 전에 한편 투척하고 갑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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