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58화 (5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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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의 피날레

수원 원정길에 오른 버스 안은 조용했다.

이번 원정이 시범 경기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선수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군 잔류가 확실시 되는 선수들은 개막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라 있었고, 반대의 경우에는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왜 이렇게 얼굴이 경직되어 있어? 뭐야? 수원에서 대패할까봐 걱정이라도 되는 거야?"

버스 안의 정적을 깨는 목소리는 역시나 문표의 것이었다.

문표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잘도 걸어 다니며 후배들을 독려한다.

"이 버스가 초상집 가는 버스였어? 왜들 이렇게 얼굴이 어두워? 다들 웃으면서 지내자고~"

문표는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

고참의 노력에 후배들은 '네, 하하'하고 억지스러운 웃음을 짓게 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분위기는 다시 어두워진다.

'문표 선배가 애쓴다고 해서 바뀔 분위기가 아니야. 시범경기가 처음인 루키들은 기대가 큰 만큼 실망 또한 큰 법이니까.'

벙어리장갑 속, 악력기에 힘을 주면서도 강호는 주변의 분위기를 읽고 있었다.

연차가 제법 쌓인 강호는 상황이 모두 이해되고 있다.

상동으로 가는 성적표를 받아들 신인 선수들의 좌절, 운 좋게 1군 무대에 합류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선수들의 기대감.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버스 내부의 공기는 무거웠다.

'결과를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별다른 부담감이 없어. 상동 행 소식을 일찍부터 알게 된 것이 다행인지도 몰라.'

자신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강호로서는 기대감이나 좌절과 같은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다.

좋은 성적을 기록해도 이미 상동 행이 정해진 상태다.

결과를 알고 있으니 좌절할 이유도 없었고, 혹시라도 사직에 남게 될 거라는 기대감도 없다.

'모든 것은 손 감독님의 결정에 의한 거야. 나는 그 분을 믿고 내 플레이에만 전념하면 돼.'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버스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수원 위즈파크에 도착하게 된다.

경기 전 훈련을 위해 자이언츠에 배정된 덕 아웃으로 들어선 강호. 그는 자신에 관한 변화를 읽어내게 된다.

'내 포지션이 2루수가 아니잖아?'

강호는 덕 아웃, 감독석 벽에 붙어있는 라인업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뜬다.

자신의 이름이 2루수를 뜻하는 2B가 아닌 SS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타순은 3번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시범경기 무대에서는 처음 접해보는 유격수 선발이자 3번 타순이었다.

'처음이다. 예전 손 감독님이 사직에 다녀가시기 전, 잠시 백업 유격수로 이름 올린 적은 있었지만, 유격수 자리에서 선발 출전하는 것은 처음이야!'

자신의 보직을 확인한 강호의 입가가 미소를 그린다.

2루수 자리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대만 스프링캠프 때부터 맡았던 유격수 자리가 반갑게 느껴진다.

시범경기의 마지막을 유격수 자리에서 장식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도 컸다.

'그럼 수비와 송구 스탯에도 변화가 있겠구나!'

포지션 변경을 알게 된 강호는 곧장 상태창을 열어 변화된 스탯을 확인한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74

파  워:60

선구안:56.1

주  력:75

수  비:72.4

송  구:60.7

멘  탈:80.2

생각했던 대로 2B라고 표시되어 있던 포지션이 SS로 변경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76.9로 상향되었던 수비 스탯이 72.4로 감소하고, 65.6이었던 송구 능력이 60.7로 감소된 상태다.

2루수 자리에서 유격수 자리로 이동하며 -5정도의 스탯 보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스탯 감소에 따른 수비력 저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강호는 오히려 미소 짓는다.

'시범 경기 말미에 내 원래 포지션을 점검해 보려는 건가?'

강호는 한 감독의 생각을 추측해 보았다.

상동 행이 정해진 자신을 원래의 포지션으로 출장 시킨다는 것은 마지막 점검의 차원이 있다.

이제 강호가 상동으로 가게 되면 최소 2주간은 한 감독과 다시 볼 일이 없게 된다.

한 감독은 마지막 두 경기에서 강호의 유격수 포지션을 점검해 봄으로써 4월 중순에 강호가 1군 무대에 합류했을 때를 구상하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강호의 입장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한동현 감독, 유격수 위치에서의 수비력과 타격 능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거겠지? 좋아, 당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겠어.'

결심을 내린 강호는 들고 있던 백 팩에서 2루수 글러브가 아닌 유격수 글러브를 꺼내 든다.

그의 백 팩에는 남들에 비해 많은 글러브가 들어 있었다.

유격수 글러브를 시작으로, 3루, 2루, 1루, 심지어 외야수 전용 글러브까지.

한 감독이 자신의 위치를 언제 어디로 변경할지 몰라서 포수와 투수를 제외한 모든 수비 글러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동현 감독 밑에서는 중심 타선에 서는 것도 처음이야. 남은 경기는 고작 두 경기. 짧게 주어진 기회지만, 내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겠어.'

의지를 다진 강호가 그라운드로 뛰어나간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자이언츠와 위즈의 경기가 시작되어 있었다.

경기가 시작된 직후, 자이언츠의 덕 아웃에 자리한 김민철 수석은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감독이 강호를 3번 타순으로 놓았어. 중심타선에 놓았다는 것은 이제야 강호의 타격을 인정한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거야?'

김 수석은 한 감독의 생각을 읽어내기 위해 머리를 굴려본다.

강호의 3번 기용은 김 수석과의 상의 없이 한 감독의 독단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2군의 사령탑으로 있는 손 감독에게 강호를 잘 지켜보라는 당부를 받은 김 수석이었기에 지금의 타순 변화에 신경을 쓰게 된다.

상동에 있는 손 감독에게 강호의 향상된 주력과 데이터를 넘겨준 것도 김민철 수석인 것이다.

'시험을 해보겠다는 거야? 타순과 수비 포지션을 모두 변경했을 때 강호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 지를 지켜보겠다고?'

한 감독의 생각을 읽어보며 흘깃 고개를 돌린다.

그가 시선을 돌린 곳에는 감독석에 앉아 선수들의 데이터를 확인하는 한 감독의 옆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는 사람이야. 어떨 때는 단순해 보이다가도, 가끔 예상하지도 못한 일을 벌이고는 해. 한 감독, 당신이 강호에게서 알고 싶은 게 대체 뭐야?'

한 감독에 대한 의구심을 속에 품으며 경기를 지켜보게 된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선수 데이터에 고개를 박고 있던 한 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백강호. 우익수 자리에서는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어. 정규 시즌이 시작된 후 혹시라도 휴고의 타격이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면 우익수 대체 자원으로 사용해도 좋을 거야.'

조금 전까지 휴고의 시범경기 기록을 살펴보던 한 감독은 정식 경기 후의 구상을 해본다.

현재까지 휴고의 시범경기 타율은 2할 7푼 3리. 홈런 2개에 장타율은 5할 대를 기록하고 있다.

크게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은 분명하다.

한 감독은 휴고가 정식 경기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할 때의 대체자로 강호를 내정하려 했다.

그러나 2루 포지션에서 경쟁 중인 선수들의 기록을 확인 후에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기존 2루수였던 최훈이 빠진 자리에는 이어산과 오진만, 황인태와 임정의 대체 자원이 있어. 모두 수비 능력은 나쁘지 않지만, 하나같이 타격이 문제야.'

2루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 한 감독의 인상이 찡그려진다.

강호를 제외해도 2루 경쟁자가 4명이나 된다.

누구 하나만 두각을 드러내도 2루 자리를 맡기련만 타율이 2할 8푼을 넘기는 선수가 강호를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황이다.

그래서 염두해 두고 있던 경우의 수 하나를 오늘에서야 꺼낸 든 것이다.

'오진택의 2루수 이동. 이게 통해야 할 텐데.'

한 감독이 내린 결론은 오진택이었다.

기존에 2루 자리를 맡고 있던 강호가 상동으로 내려가게 되면 딱히 내키는 대체자가 없다.

이어산, 오진만, 황인태, 임정은 마음에 차지 않았으니 당장 떠오르는 것은 허리 부상으로 상동에 가있는 기존 2루수 최훈이다.

'내린지 얼마나 됐다고 최훈을 올리겠어? 괜히 욕이나 먹겠지. 안 그래도 나에 대한 평판이 바닥을 치는데 최훈을 1군으로 올리면 뒷감당이 힘들어. 최훈을 무리하게 올려서 성적이 좋으면 모르겠지만, 나쁠 것을 예상한다면 최훈 카드는 고려하지 않는 게 좋아.'

한 감독은 머릿속에서 최훈 카드는 지워버린다.

대신에 꺼내든 것이 오진택의 2루 기용이었다.

'진택이는 원래 내야 전 포지션의 수비가 가능해. 몇 년간 주전 유격수 자리에 있었지만, 2루 수비가 크게 어색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결정하게 된 것이 오진택과 강호의 수비 위치 교환이었다.

강호나 김민철 수석의 입장에서는 한 감독이 강호를 테스트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 감독이 걱정하는 것은 최훈과 강호의 부재로 인한 2루 공백인 것이다.

'이 참에 강호의 유격수 수비도 확인을 해보는 거지. 겸사겸사 여러 가지를 시험해보는 것이 감독 아니겠어?'

생각을 마친 한 감독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는다.

경기는 이미 1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어 있었고, 1번 타순으로 나선 전준오가 초구부터 방망이를 휘둘러 유격수 땅볼로 물러난다.

'준오가 요즘 많이 조급해. 타율도 생각보다 낮은 편이고. 개막전에는 1번 타순으로 내지 않는 게 좋겠어.'

한 감독은 전준오의 이름에 가위표로 체크를 한 후에 다시 그라운드 위로 시선을 돌린다.

이번에 오른 타자는 좌익수인 김중호였다.

그는 시범경기 동안 2할 8푼 9리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리고 있어서 3번 타순에 기용했었지만, 오늘은 2번 타순으로 타석에 올렸다.

'중호도 조금 애매해. 타율이 많이 나쁜 것은 아닌데 장타율이 작년에 비해 많이 떨어졌어.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주력도 예전만 못하고 말이야. 정식 경기에서는 상위 타선보다는 하위 타선에 넣는 것이 좋겠어.'

한 감독은 김중호의 이름에도 가위표로 표시를 한다.

그러는 사이 상대 투수의 초구가 포수의 미트에 꽂힌다.

"볼."

주심의 볼 선언에 위즈의 투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본인의 판단으로는 스트라이크로 본 모양이었다.

"주심이 볼이라면 볼인 거지."

한 감독은 투수의 행동에 핀잔을 주며 다시 선수 데이터에 시선을 내린다.

'가만 보자. 준오와 중호를 하위타선으로 빼버리면 테이블 세터에는 대체 누구를 넣어야 하는 거야? 중심 타선인 제인이나 상훈이를 1, 2번 타순으로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진택이를 넣기에도 애매하고.'

한 감독은 테이블 세터 자리를 고민하며 강민수의 이름은 배제하고 있었다.

포수인 강민수를 1번이나 2번 타순에 놓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업 우익수인 성철이가 발이 빠르긴 한데, 성철이를 타순에 넣으려면 휴고를 빼야 돼. 그건 있을 수 없어. 2루 자원인 인태나 임정이 그 다음으로 발이 빠른 편이데...'

한 감독은 결국 한숨을 내쉬게 된다.

인태와 임정의 타율이 2할 8푼까지만 올라와도 테이블 세터 자리에 대한 고민은 없을 것이다.

임정의 시범경기 타율은 2할 6푼 4리, 인태는 2할 5푼 4리, 그리고 진만은 2할 5푼 6리였다.

누구 하나를 선택하기가 애매한 기록이다.

'진만이가 장타력은 좋아도 발이 빠른 편은 아니야. 하위 타순에 기용한다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1, 2번에는 어림도 없어. 결국 임정이나 인태가 올라와줘야 해.'

한 감독의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 주심이 볼넷을 선언한다.

위즈의 선발 투수가 제구력이 잡히지 않는 것인지 2번 타자인 김중호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이어서 타석에 선 타자는 강호였다.

강호가 타석에 올라왔음에도 한 감독의 고민은 계속된다.

'어쩔 수 없겠어. 준오나 중호 중 한 사람은 테이블 세터에 넣어둬야지 뭐. 방법이 없잖아. 마땅한 대체자도 없이 테이블 세터를 모두 빼버리면 출루는 누가하고, 득점은 또 누가 하겠어? 발만 빠른 휴고를 1번 자리에 넣었다가 출루율이 폭망하게 되면 그 욕은 내가 다 먹는 거야.'

한 감독은 답답한 심정에 기록지에 가위표를 마구 긁적인다.

그가 짜증이 날 때하는 버릇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그 때, 한 감독의 짜증을 날려버리는 호쾌한 소리가 덕 아웃을 파고 든다.

따악!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경쾌한 타격음이었다.

상대 투수의 초구를 노린 강호의 배트가 좌측 펜스를 넘겨버리는 홈런을 때려낸 것이다.

기선을 제압하는 선제 투런 홈런이었다.

'역시 백강호야. 강호를 빼고서는 라인업 구상이 제대로 되질 않아. 어떻게 해서든 약속한 일정보다 강호를 빨리 콜 업 해야겠어.'

한 감독은 강호가 때려낸 홈런을 바라보며 복잡한 구상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백강호의 이름이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강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선제포로 위즈와의 2연전 경기의 서막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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